1902년 10월 5일, 파리의 몽마르트르 묘지에서 거행된 졸라의 장례식에서 프랑스 북부의 드냉에서 달려온 광부들의 대표단이 세 시간 넘게 졸라의 묘혈 앞을 돌면서 <제르미날>의 작가에게 보내는 경의와 함께 "제르미날! 제르미날!"을 연호했다는 감동적인 이야기는 그날 이후 졸라가 언급될 때마다 빼놓지 않고 등장하곤 한다.-p.374 옮긴이 해설 중


귀족과 부르주아만을 다루던 소설의 역사를 뒤로 하고 <목로주점>으로 최초의 민중소설을 쓴 에밀졸라는 <제르미날>을 통해 <목로주점>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민중의 또 다른 일면을 그려낸다. 

<목로주점>에서 독자를 분통터지게 하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은 여주인공 제르베즈가 랑티에와의 사이에서 낳은 셋째 아들 에티엔이 이 책 <제르미날>의 핵심 인물이다. 20대 초반의 에티엔은 기계공으로 일하던 곳에서 자신의 상사를 때려 쫒겨난 뒤 한겨울 배고픔과 추위에 떨며 일할 곳을 찾아 헤매고 있다. 그에게 익숙치 않은 탄광에서 절박했던 순간 겨우 일거리를 찾게 되었음에도 첫날부터 그곳의 열악하고 고된 조건에 하루치 일당만 받고 떠나려 하지만 결국 운명처럼 자리를 잡게된다.


르 보뢰는(탄광이름) 깊은 땅속에 납작 웅크린 음험한 짐승처럼 한껏 몸을 움츠리면서 거친 숨을 길게 내쉬었다. 마치 인간의 육체를 집어 삼켜 속이 더부룩한 것처럼.p.26


그 후 성실하고 건실한 청년 에티엔은 몇 달만에 탄광에서 숙달된 노련한 일꾼으로 인정받게 되고 사회주의 이상에 관심이 있던 터라 그곳 탄광 노동의 불합리한 현실을 즉시 감지한다. 곧이어 그는 광부들의 지지를 얻어 탄광 근로자들의 연대를 위한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게 되고 굶주림에 하루하루 버텨가던 노동자들을 더욱 사지로 몰던 탄광회사를 상대로 파업을 이끌게 된다. 에밀졸라는 당시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여파로 인해 생긴 혼란과  쏟아지던 다양한 사회,경제적 이론들을 에티엔이 책을 읽고 배워가는 과정으로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에티엔과 라스뇌르,수바린의 갈등은 좌파 가운데에서도 그 이론과 실천을 달리했던 실제 여러 부류의 양상이기도 했다.


열두 살에서 열다섯 살 정도 되는 망나니 같은 사내아이들은 차마 입에 담기 힘든 거친 말들을 마구 내뱉었다. 그들에게 탄차가 도착한 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더 거친 말들을 외쳐대야 했다.(...) "어이! 이 망할 것들이 다들 죽어 자빠졌나!" 카트린이 경사면을 향해 소리쳤다. p.73


특히 배고픔과 방치속에서 이른 시기에 성에 탐닉하는 탄광촌의 젊은이들과 거기 따라오는 끝없는 출산과 가난의 악순환은 상대적으로 사치스럽고 나태한 삶을 사는 탄광회사 사람들과 비교되면서 노동자의 빈곤과 비참한 상황을 극대화한다. 이런 가운데 주인공 에티엔과 카트린,샤발의 삼각관계는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다. <목로주점>에서 드러났듯이 집안 내력인 알콜 중독에 빠지지 않으려는 에티엔은 술 한잔만 마시면 살인의 충동에 빠진다고 카트린에게 고백한다. 그런 그와 카트린은 처음부터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음에도 샤발의 훼방으로 이루어지지 못하는데 그럼에도 에티엔을 향한 질투와 분노를 멈추지 않는 샤발이 만들어내는 여러 갈등상황은 몰입도를 높여주는 큰 요소중의 하나였다. 


르 보뢰 탄광에 갈 때나 그곳에서 돌아올 때면 어김없이 풀밭에 누워 있는 남녀가 발에 차이곤 했다. 특히 수프를 끓이기 위해 땔감을 주우러 가거나, 그가 기르는 토끼에게 먹일 갈퀴덩굴을 따려고 탄광의 다른 쪽 끝으로 갈 때면 몹시 난감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p.199


'탄광'에 관한 소설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로 대물림 되는 탄광 노동자들의 힘겨운 상황을 조금 느껴봤을 뿐이었는데 <제르미날>을 통해 낯선 탄광 속의 축축하고 숨막히는 구조를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었다. 갱내 가스를 비롯해 계속되는 붕괴위험과 60도를 넘나드는 열기, 부족한 공기 등의 열악한 조건은 인식하지 못했던 탄광 노동자들의 비참함을 알려주었고 이렇게 목숨을 건 노동자들과 이들을 보조하며 평생을 갱 안에서 살아가는 말에게도 에밀졸라는 시선을 던지라고 말한다. 어려운 살림을 근근히 꾸려가는 탄광촌의 여성들을 비롯해 등장하는 인물들도 많고 캐릭터도 다양하지만 누구 하나 무심히 지나칠 수 없을 만큼 강렬하게 작품에서 살아나 끝까지 책을 놓기 힘든 몰입도를 경험했다. 




*한국인이 치킨을 즐겨먹는다면 당시 프랑스인들은 토끼를 즐겨 먹었던 것 같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고 소설의 배경이 된 시기.1884~1886)

*제르미날 1,2권의 표지가 기막히게 내용과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책장에 문학동네가 늘어나고 있다.

*오타나 잘못된 문장, 띄어쓰기 문제등을 지적해 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오타남발자 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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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0-24 20:3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1등^^

미미 2021-10-24 20:37   좋아요 3 | URL
⸜(*ˊᗜˋ*)⸝1등에게 감사와 축복을 마구마구ㅋㅋㅋㅋ

새파랑 2021-10-24 20:37   좋아요 4 | URL
제가 확인 결과 오타도 없고 내용은 더 완벽합니다~!!
알콜 중독은 유전이 맞군요~! 이 책도 역시 민중을 다룬 사실주의 소설이 밎네요. 이책에도 발암유발 인물이 나오네요 ㅋ
엄청난 몰입도로 미미님 폭풍독서 하신거 같아요. 전 곧 구매하겠습니다 😆

미미 2021-10-24 20:47   좋아요 4 | URL
어제 절반만 읽고 <제2의 성> 보려고 했는데 놓질 못하고 2시간만?에 뚝딱 읽었어요.(요즘 소설이 안읽어졌음에도 그래서 깜놀함요ㅋㅋ)발암인물 한명씩 넣는거 졸라의 의도인지 계속 봐야겠군요ㅋㅋㅋ🤭

레삭매냐 2021-10-24 20:3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탄광 소설/영화 언급해 주시니
정말 오래 전인 그러니까 이완
맥그리거가 청년 시절에 나왔
던 <브래스드 오프>라는 영화
가 떠오르네요.

19세기 프랑스에는 에밀 졸라
라는 대작가가 가난과 절망에
찬 민중들의 삶을 대변해 주었
는데 21세기 대한민국에는 그
런 작가 하나 없다는 게 참
서글퍼지는 그런 밤입니다.

미미 2021-10-24 20:43   좋아요 5 | URL
영화 연계 너무 좋아요! 저 자칭 이완 맥그리거 왕팬인데 이 영화를 몰랐네요. 97년 영화라니 얼른 찾아봐야겠어요~♡

공감합니다.노벨 문학상도 안나오고 말이죠. 무척 아쉬운 점입니다.레삭매냐님이
소설좀 써주세요.(진심)
٩( *˙0˙*)۶젭알!

그레이스 2021-10-24 20: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타 발견 못했습니다.
저도 오타쟁이라, 올려놓고 여러번 수정합니다^^
조지오웰의 <위건부두 가는 길>이 생각납니다

미미 2021-10-24 20:54   좋아요 4 | URL
찌찌뽕(๑>ᴗ<๑)ㅋㅋ아! 그 책 저 어딘가 있는데!!!그레이스님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막시무스 2021-10-24 20:5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영화보다 더 재미난 후기 인정입니다!ㅎ 목로주점이 먼저라면 그것부터 읽어야 하나하고 살짝 고민했네요!ㅎ 졸라의 열풍이 다시 불고 있네요!ㅎ

미미 2021-10-24 21:08   좋아요 4 | URL
쥐어짜 쓴 글이라 편두통이 왔는데 고맙습니다. 막시무스님 칭찬에 싹나았어요ㅎㅎ
(୨୧ ❛ᴗ❛)✧ 아 순서는 크게 상관없을듯 해요!

2021-10-24 2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미 2021-10-24 21:18   좋아요 4 | URL
오 폴스타프님 비댓 안하셔도 되는데요ㅎㅎㅎ지난번 한 명 더 있다고 하셨던것만 생각나서 안그래도 주저하다 둘째로 적었는데 <인간짐승>이
둘째 이야기군요!!(소름)
지금 그 책이 빨갛게 대기중입니다(・ัᗜ・ั)وㅎㅎ

*으앗 수정했습니다ㅋㅋㅋ 감사해요!👍👍

2021-10-24 2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ni74 2021-10-24 21: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중독유전자가 있다더니 정말 그런가봐요. 남들보다 도박 음주 등에 쉽게 중독되는 ㅠㅠ 저의 팔랑귀도 왠지 유전인듯한 ㅎㅎ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얼릉 읽고 싶어지는 리뷰입니다 *^^* 미미님 알고는 있었지만 좀 멋지신듯 ㅎㅎㅎ

미미 2021-10-24 21:27   좋아요 3 | URL
이런 유전이 질병유전보다 더 무서운것 같아요! 팔랑귀 저도👋ㅎㅎㅎㅎ
미니님 포함 멋진 분들이 북플에 잔뜩 포진해 있어서 닮아가는 걸까요?(부디!계속 더 닮자!)ㅎㅎㅎ
감사해요~ 미니님♡(❁ᴗ͈ˬᴗ͈)⁾⁾⁾♡

페넬로페 2021-10-24 21: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졸라의 민중소설을 빨리 읽고 싶군요~~
필립 로스와 함께요^^
뭔가에서의 악순환이라는 것이 왜이리 모질게 이런 사람들에게 달라붙는 것인지 ㅠㅠ
밑바닥에서의 포기와 체념은 너무 무서운것 같아요**
저야말로 오타쟁이랍니다~~

미미 2021-10-24 22:16   좋아요 4 | URL
저도 필립로스,이언 메큐언까지 미국작가들 소설도 점점더 좋아져요! 소설은 역시 비극👍( ᵘ ᵕ ᵘ ⁎)♡ 페넬로페님도 찌찌뽕입니다~♡ㅎㅎㅎ

붕붕툐툐 2021-10-24 23:1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덕분에 표지를 더 유심히 들여다 봤습니다~ 저 이제 곧 목로주점 읽을 예정인데 그다음 졸라 책으로 찜!!ㅎㅎ

미미 2021-10-24 23:27   좋아요 3 | URL
저 이런 표지 좀 무서버하는데 이 그림 보면 슬픔만 전해집니다😭 툐툐님도 에밀 졸라 분명 좋아하실거예요~!!ㅎㅎ
포근한 밤 되세요♡( •⌄• ू )✧♡

난티나무 2021-10-25 06: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토끼 고기 지금도 팔아요. 즐겨먹는지는 모르겠으나 정육점 가면 늘 머리째 껍질 벗겨진 토끼들이 있기는 해요…@@ 뜬금없는 댓글이었습니다.ㅠㅠ

미미 2021-10-25 08:53   좋아요 2 | URL
오~ 귀한 정보예요!!
현지에서 난티나무기자님~♡ 여러 조건과 상황에 따른 당연한 결과겠지만 나라마다 다른거 신기해요!ㅎㅎ(๑˃̵ᴗ˂̵)و

Falstaff 2021-10-25 09:58   좋아요 3 | URL
영국소설 읽으면 토끼고기 먹는 장면 무지하게 많이 등장합니다.
제일 맛나는 부위는 콩팥이라고 하더군요. 귀족, 부르주아 들도 즐깁니다. ㅋㅋ (저도 먹어봤습니다.)
우리나라 시장(모란시장 같은 곳)에서 파는 토끼고기는 확인을 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법대 졸업하고 연달아 사시 떨어지니까 모란시장에서 닭모가지 비트는 사업하는 후배한테 들었는데, 가끔 고양이 잡아서 토끼고기라고 판다더군요. 으윽. 이런 것 굳이 일러드리지 않아도 되는 거 같은데요. ㅋㅋㅋㅋㅋ

미미 2021-10-25 10:08   좋아요 3 | URL
아앗 영쿡도 즐기는군요!! 비둘기를 닭으로 속여 판다는건(닭둘기의 유례?) 소설에서 읽은게 기억나는데 고양이도 토끼로 속여 판다니... 소름이고 쇼킹입니다! 이런 세상물정 정보 항상 캄솨,목마릅니다👍ㅋ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1-10-25 06: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제르미날은 배경이 탄광이군요.
노동자의 빈곤과 열악한 환경을 보여주는데 있어 탄광은 정말 딱일듯 싶습니다. 벌써부터 캄캄 답답 숨이 막히는 느낌...
꼭 읽을 책이지만 역시나 기대됩니다.

미미 2021-10-25 08:57   좋아요 4 | URL
저도 쿨캣님과 같은 생각을 했어요~♡ 가장 보이지 않는 노동,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노동이라고요ㅠㅠ
석탄은 당시 필수적이었는데 말이죠. 이작품 최곱니다👍(๑•᎑<๑)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