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컴퓨터 모니터가 고장났는데 <템페스트>를 읽은 나도 어쩌면 고장이 난 느낌이다.
<제2의 성>을 읽다가 머리도 식힐겸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템페스트>를 읽었다. <캘리번과 마녀들>이 영감을 받은 작품이 바로 이 <템페스트>라는데 <제2의 성>을 읽다가 이 작품을 읽어서인지 많은것들이 낯설게 느껴진다.일단 줄거리는 이렇다. 동생에 의해 지위를 비롯한 모든것을 잃고 어린 딸과함께 바다에 유배되다시피한 푸로스퍼로. 그는 과거에 마법을 연구했었는데 도착한 섬에서 그 능력을 사용해 에어리얼이라는 정령과 캘리번이라는 죽은 마녀의 사생아를 휘하에 두어 섬을 다스린다. 그러던 어느날 그를 배신한 동생 앤토니오와 거기 도움을 줬던 나폴리 왕 알론조등이 배를 타고 이동중이었다. 푸로스퍼로는 정령 에어리얼을 시켜 배가 난파된것처럼 꾸미고 그들을 섬으로 끌어들인뒤 흩어지게 하고 자신의 딸(미랜더)와 나폴리 왕 알론조의 아들 퍼더넌드를 결혼시킨다. 그런뒤에 배신자들을 모두 용서한다는 내용이다. 줄거리는 환상적인 면과 희극적인 면이 있고 비교적 단순하다. 공연으로 직접 볼 수 있으면 재밌겠구나 기대도 되는 그런 작품이다. 셰익스피어가 희곡작가로써의 삶을 정리하며 쓴 마지막 작품인만큼 푸로스퍼로의 마지막은 셰익스피어의 관객을 향한 고별 인사에 가깝다.
˝이제 저는 부릴 정령도 없고
걸 수 있는 마술도 없고 해서
기도로 구원되지 않는다면
저의 마지막은 절망이 됩니다.
기도는 뚫고 들어가 자비를 움직여서
온갖 잘못들을 용서합니다
여러분도 범죄를 용서받으시려거든
관대하게 저를 놓아주십시오.˝ (퇴장) p.132
그런데 내가 불편하고 고장난 느낌이 든건악의 상징처럼 묘사된 캘리번 때문이다.그는 물고기를 떠올리게하는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어머니인 마녀의 기질을 물려받아 습관처럼 저주를 퍼붓는다. 심지어 자신의 주인인 푸러스퍼로를 배신하려다 발각되고 느닷없이 잘못을 뉘우치기도 한다. 정령은 정신을 상징하고 이 괴물로 묘사되는 캘리번은 육체의 죄를 의미한다고 해설에 나와있다. 그래도 직접 작품을 읽은 느낌은 맥락이 좀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내가 감히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이런 평을 하다니...그래서 어딘가 고장난 기분이라고 쓴 것이다. 아무리 마녀의 자식이라도 아무리 육체의 죄의 상징이라도 어딘가 좀 이상하고 자의적이랄까그래 작가란 자신의 작품을 자신이 원하는대로 구현할수있고 여기 악으로 묘사된 캘리번은 단지 상징성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주위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그런 필요에 의해 얼마나 많이 획일화되고 평가절하되고 생략되고 배제되는지 알게된 이상 이 불편해진 느낌을 쓰지않을 수 없었다. 이 작품에서 푸로스퍼로의 딸 미랜다는 본인의 의지란 것, 인간적인 살아있는 감정이란것이 없어보인다. 과연 그녀의 그런 태도는 외딴 섬이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맥락에 맞는 것일까? 그리고 마녀라는 캘리번의 엄마에게는 대체 어떤 일들이 있었던걸까. 그녀는 어쩌다 이런 불명예를 얻게 된 것일까. 연극 공연이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극찬일색이다. 반면 내가 다 읽고 난 뒤 얻은 느낌은 구멍이 많이 난 스타킹을 매만진 기분이었다. 희곡을 바라보는 또다른 희곡을 지켜보면서 꺼림찍한 이기분.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깠다고 욕을 먹을지도 모르겠다. (시무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