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장동민 데뷔 초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꽁트마다 그가 여러 직업으로 등장해 이런저런 직업적 만담을 상대와 주고 받는 개그를 했었다. 한번은 장동민이 택시 기사로 분했는데 그가 말하길 "나는 남이 내 차에 타는게 그렇게 싫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이건 뭐 상담사가 사람 만나는걸 싫어하고 은행가가 계산에 진저리내고 운동선수가 땀흘리는걸 꺼리는 격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개그였다.


안토니오 타부키는 이탈리아 출신인데 포르투칼을 사랑했다. 그리고 포르투칼의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에게 심취했다.타부키의 '레퀴엠'은 페소아를 향하고 있다. 이 작품은 한 부두에서 리스본의 죽은 시인 '페소아'를 만나기까지 23명의 인물들을 먼저 만나는 여정으로 시작된다. 이들은 부조리한 환각이고 꿈이며 과거이자 미래다. 또한 페르소나이고 의식,무의식이다. 마치 장동민처럼 친절하지만 길을 모르는 택시기사가 나오고, 집시와 젊은 시절의 아버지가 등장한다. 구걸하는 마약중독자에게 돈을 뜯기고,죽은 친구와 바텐더, 묘지관리인 등을 만난다. 그들과 이야기하며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마치 단테의 여정처럼. 그리고 페소아와 마주한다.


p.112 나와 함께한 것이 편하지 않았나요?, 그가 물었다. 아니요, 내가 대답했다. 대단히 중요했어요, 하지만 불안하게 했지요, 말하자면 언제나 날 가만두지 않았다는얘깁니다. 그랬겠지요, 그가 말했다, 나와 관계된 건 다 그렇더군요. 하지만 말예요, 문학이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불안하게 하는 것 말입니다, 의식을평온하게 하는 문학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요. 동의합니다.내가 말했다. 하지만 이런 점도 있어요. 저도 나름대로는 이미 꽤나 불안정합니다, 당신의 불안정이 내 불안정에 더해서 고뇌로 이어진 것입니다. 평화로운 행진보다는 고뇌가 좋습니다, 그가 확신을 표명했다, 두 가지 중에서 선택하라면 단연 고뇌지요. (페소아와 나의 대화)


  페소아가 그랬던 것처럼 타부키는 여러 정체성을 그려낸다. 그들과 마주하고 대화하며 따옴표를 쓰지 않는다. 누가 너 이고 누가 나 인지 경계가 모호해진다. 과거의 기억도 마찬가지다. 이미 지나간 과거는 분명하지 않고 흐릿하다. 결국 내가 만난 사람들과 나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경계가 모호해진다. 우리는 의식속에 살아가지만 우리 내부를 이루는 것은 경험과 무의식의 파편들이다. 


p.21 당신은 영혼을 믿습니까? 영혼은 적어도 이 순간, 우리가 앉아서 말하고 있는 이 공원에서, 내가 믿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납니다,내가 말했다. 말하자면 이 모든 걸 내게 불러일으킨 건 내 영혼이었습니다, 그게 정확히 내 영혼인지 확실하진 않아요, 어쩌면 내 무의식인지도 모르죠. 날 여기로 데려온 게 나의 무의식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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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8-10 21:0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1등 ✋🖐

미미 2021-08-10 21:07   좋아요 4 | URL
아이참ㅎㅎ🌸( ⁎ ᵕᴗᵕ ⁎ )🌸

scott 2021-08-11 00:07   좋아요 2 | URL
[영혼을 믿지 않지만!]
미미님의 타부키 리뷰에서 언급 하신 무의식의 세계는
믿습니다!!
(・ิω・ิ )
( ・ิω・)ノิ

새파랑 2021-08-10 21:0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2등✌

미미 2021-08-10 21:07   좋아요 4 | URL
2등까지🌸(⑅´•⌔•`)🌸이모티콘 답례ㅎㅎ

새파랑 2021-08-10 21:09   좋아요 5 | URL
2등✌ 와 112쪽 문장 완전 좋네요. 문학은 나를 불안하게 내 불안정에 더해서 고뇌뢰 이어지게 한다니~!

뭔가 철학적인 여정인거 같아요. 저도 평화보다는 고뇌에 한표 😆

미미 2021-08-10 21:12   좋아요 4 | URL
그쵸?! 저는 아직 전체를 이해하는 건 기대안하고 이런 문장 수집하는데 만족해요! 꽤 있어요. 나중에 함 빌려서 읽어보세요. 아주 얇아요ㅎㅎ

반유행열반인 2021-08-10 21:1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남 가르치는 게 그렇게 싫더라구요 누가 누굴 가르쳐 하고… 저도 저 개그 좋네요 ㅎㅎㅎㅎ

미미 2021-08-10 21:17   좋아요 5 | URL
선생님이시면 큰일인데요ㅋㅋㅋㅋㅋ사진 찍는거 싫어하는 배우도 있어요ㅋ

scott 2021-08-11 00:14   좋아요 4 | URL
이 개그 저도 좋습니다 .•♥

초란공 2021-08-10 21:4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직업군인이 되어 월급도 받고 집걱정 없이 관사에서 살고 싶다는 어떤 아이가 말하더군요. ˝하지만 군대가기 싫어요!˝ ㅋ 페소아적 딜레마라 해야할까요 ㅋㅋ

미미 2021-08-10 22:02   좋아요 5 | URL
페소아적 딜레마 딱인데요?!ㅋㅋㅋㅋ예전에 ‘달인‘도 그런 식으로 매회초마다 명명했던걸로 기억해요ㅋㅋ

페넬로페 2021-08-10 21:4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누군가가 제가 책을 읽는걸 한심하게 보는게 그렇게 싫더라고요 ㅎㅎ
이 책 넘 흥미로운데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그 전에 여러 여정을 거치는 것!
누군가 그렇게 절 만나러 오면 좋겠어요^^

미미 2021-08-10 22:06   좋아요 5 | URL
ㅋㅋㅋ생각할수록 갖가지 사례가 떠올라요! 페소아의 ‘불안의 책‘ 읽다 말았는데 다시 읽고 싶어졌어요. 작품을 통해 다시 살려내고 애도하는 게 특별하게 느껴졌어요~♡

붕붕툐툐 2021-08-10 21:5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우와~ 오늘 미미님 개그 뭔지 확실히 알아버리고~(미미님을 웃기기 위한 공략을 세워본다~😍)

미미 2021-08-10 22:08   좋아요 4 | URL
툐툐님은 저를 웃기기 쉬울거예요! 이미 툐툐님한테 마음이 열려 있으니까요~😆😍

붕붕툐툐 2021-08-10 23:03   좋아요 3 | URL
아니, 미미님 말본새 왤케 예쁘신겁니까? 닮고 싶다앙~ 헤헤헷~😘

scott 2021-08-11 00:15   좋아요 3 | URL
두분은 제가 웃겨 드릴께요 ㅎㅎ
♪ ∧,_∧
   (´・ω・`) ))
 (( ( つ ヽ、 ♪
   〉 とノ )))
  (__ノ^(_)

mini74 2021-08-10 22:0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문학은 불안하게 해야하는 것. 평화로움보단 고뇌.페소아를 참 잘 나타내는 말 같아요 ㅎㅎ 저희 동네에선 요즘 아이들과 이런 유머가 유행입니다. 옛날엔 개 풀 뜯어먹는 소리하고 있네였는데 요즘 우리동네에선 ~ 시조새 파킹하는 소리하고 있네. 빌게이츠 해피포인트 적립하는 소리하고 앉아 있네. 뭐 ㅎㅎㅎㅎㅎ

문장들이 다 좋아요. 페소아책 읽으며 좋은 구절 긋다보니 한 권 거의 다 였던 생각이 납니다. 나보다 색연필이 먼저 알아본 좋은 문장들. 여전히 어려워요 ㅎㅎ

미미 2021-08-10 22:11   좋아요 5 | URL
페소아 읽으셨군요! 저도 여기저기 밑줄 긋고 좋아했는데 읽다만...🙄그래도 문동꺼랑 배수아님 번역 둘다 가지고 있어요~♡

미니님 동네 사람들에겐 개그DNA가 만땅인것 같은데요? 제 스타일! 거기로 이사가고파요ㅋㅋㅋㅋ

scott 2021-08-11 00:18   좋아요 5 | URL
오! 빌 게이츠 카드 긁는 소리까지는 들어 봤는뎅 ㅋㅋㅋ

페소아 번역은 배수아님은 독일어로 중역

김한민님은 직접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2년동안 거주 하면서
페소아만 평생 연구하는 번역자 제니스와 함께 살면서 번역하셨습니다 ^^

미미 2021-08-11 00:25   좋아요 4 | URL
스콧님 말씀에 놀라서 찾아보니 다행히 김한민 번역가님의 페소아 시 번역집이 저에게 있네요~♡(역시 읽다가 멈췄는데 좋은 시가 많았어요👍)

mini74 2021-08-11 10:30   좋아요 3 | URL
아르떼에서 김한민작가님이 페소아에 대해 쓴 책도 좋아요. 김한민작가님 환경운동가이기도 하고 조카를 위해 형하고 환경그림책 만들어서 히트도 치시고. ㅎㅎ

미미 2021-08-11 11:50   좋아요 3 | URL
헉~♡♡ 마침 페소아의 책을 몇권 사려고 했는데
알려주셔서 아르떼 것도 넣었어요!! 김한민 작가님에 대해서도 알아봐야겠어요~😉

바람돌이 2021-08-11 01: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페소아가 여러 이명을 가졌던걸 소설로 만든듯하네요. 자신이 좋아하는 인물에 대해 저렇게 책을 쓸 수 있다는거 성공한 덕후 맞네요. ^^

미미 2021-08-11 07:00   좋아요 3 | URL
네! 소설에서라도 직접 만나고 이야기 나누고 싶었나봐요~♡ 😊

페크pek0501 2021-08-11 12: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장동민으로 시작해서 페소아로 끝나는 글.
저 9등입니다. 댓글 쓰는 차례로요. ^^**

미미 2021-08-11 13:27   좋아요 1 | URL
맥락이 좀 떨어지는건 더위탓이라고 우기고 싶습니다ㅋㅋㅋㅋ😳

서니데이 2021-08-11 22: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같은 말을 들어도, 같은 일을 겪어도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는 것으로
우리가 서로 다른 내면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미미님, 오늘도 더운 밤입니다. 시원하고 좋은 밤 되세요.^^

미미 2021-08-11 23:13   좋아요 2 | URL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함께 할때 더 재밌고 다양한 일들을 기대해 볼 수 있겠죠?! 서니데이님도 시원한밤 되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