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를 본다. 무서워서 낯에.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에 공포를 느끼기도 하고 보이는 것에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결국 공포란 부질없는 것. 삶은 부질없는 것들에 눈이 멀어 정작 실체에 눈뜨지 못하는 것인지 모른다.
p.15
샤흐트는 규정들을 어기는 행동을 즐겨 한다. 터놓고 말하면, 나도 그에 뒤지지 않는다. 우리는 그렇게 침대에 나란히 누워 온갖 이야기들을 나눈다. 살아온 이야기들, 다시 말하면 직접 겪은 일들을 지껄인다. 하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꾸며낸 이야기들을 훨씬 더 많이 한다. 뜬구름 잡듯 지어낸 이야기들. 그럴 때면 우리를 둘러싼 벽들이 위아래로 흔들거리며 나지막이 울리는듯하다. 비좁고 어두운 방이 차츰 넓어지고, 길들, 넓은 홀들, 도시들,성들, 낯선 사람들과 풍경들이 나타나고, 천둥이 치고, 누군가 속삭이고, 지껄이고, 우는 소리들이 들려오는 것 같다.
시의원의 아들로, 부유한 가정에서 부족한것 없이 살았던 것으로 느껴지는 주인공 야콥은 어느날 벤야멘타 하인학교에 스스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여러 인물들을 관찰하며 그들 사이를 여행하듯 부유한다. 자신에 관한 이야기는 꺼리면서, 어딘지 수수께끼같은 분위기가 풍긴다. 그의 육체는 비록 의도적으로 하인학교에 묶여 있지만 그는 오히려 누구에게도 구속되지 않은 반항적이고 자유로운 존재다. 다만 그는 어떤 이유로 인해 구속 상태에 스스로 들어간 것이다.
p.31
무언가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것은 때로 너무나 유혹적이다. 그래서 그것을 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된다. 구속은 불법적인 행동을 하고 싶도록 만든다. 그래서 나는 기본적으로 모든 종류의 구속을 사랑한다. 만약 어떤 규율도, 어떤 의무도 이 세상을 지배하지 않는니면, 아마 나는 죽어버릴 것이다. 너무나 지루한 나머지 입맛을 잃고 굶어 죽거나, 불구가 되어버릴 것이다. 사람들은 나를 다그치고,구속하고, 감독하기만 하면 된다.
마치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속 주인공 요조에게서 두려움을 뺀 캐릭터가 바로 야콥이다. 독자에서 있어 요조의 두려움은 큰 매력이기도 하니 그걸 뺐다고 하면 어쩐지 진부한 캐릭터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극과 극은 통하기 때문일까?
p.101
순응하는 것, 그건 생각하는 일보다 훨씬, 훨씬 더 고상한 일이다. 생각을 하면 저항하게 된다. 그래서 생각하는 것은 항상꼴사납게 일을 망쳐버린다. 철학자들, 그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많은것을 망쳐놓았는지를 알기나 할까. 의도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무언가를 행한다. 그러니까 말이다. 그게 훨씬 더 필요한 일이라는 말이다. 이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머리들이 쓸데없이 일하고 있다. 그것은 너무나,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학술적으로 다루고, 이해하고,지식을 갖게 되면서 인류는 삶에 대한 용기를 서서히 잃어버리고 있다.
또는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니체의 이론을 실행에 옮기는 인물로도 느껴진다. 그래서 찾아봤다 로베르트 발저가 프리드리히 니체의 영향을 받았는지.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는 1844~1900까지 살았다. 로베르트 발저의 생애는 1878~1956이다. 역시 시기적으로 겹친다. 영향을 받은 것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어쨌든 주인공 야콥의 진정한 의도는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것을 다 믿을수도 없다. 하지만 그는 평범하지 않아 매력적이고 불온하고 순응하지 않는 인간인 동시에 순응하는 인간이기에 불안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p.117
무언가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다른 곳에서는 그것을 두 배로 하라는 것을뜻한다. 무심하고, 신속하게, 가볍게 내려진 허락보다 더 따분한 것은없다. 나는 모든 것을 얻고 싶다. 모든 것을 경험하고 싶다. 웃음도 그야말로 극단적인 경험을 필요로 한다. 웃음으로 가슴이 터져버릴 것같을 때, 타들어가는 화약을 모두 어찌해야 좋을지 모를 때, 그때 나는 비로소 웃음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중략) 거의 모든 일들이, 거의 모든 욕망들이 바로 금지되었기에 매혹적인 웃음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울어서는안 된다는 상황, 그것이 사람을 더 울게 만든다. 사랑을 포기하라는것, 그래, 그것은 사랑하라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하면, 난 열 배로 사랑한다.
읽다보니 궁금해져서 작가인 발저에 관해 설명된 부분을 찾아 앞 커버에서 안쪽을 읽는다. 어떤 슬픔이 느껴진다. 굵직한 삶의 궤적들은 한 인물에 대해 말해 주기도 하지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소설과 마찬가지다. 모든 소설은 자전적이지만 자전적이지 않기도 하니까. 인생은 몇 가지 단편적 사실들로 설명되어지지 않는다. 훨씬 복잡하다. 작가들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위대하거나 졸렬한 인생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부질없는 걸 알면서도 다시 어떤 대목에서 작가가 궁금해지면 그의 자취가 어떠했을지 찾는다. 나는 어떤 기록으로 남게 될까. 또는 기억으로.. 남기고 싶기도 그러고 싶지 않기도 하다. 이런 무한반복의 이중어법이 이 작품의 특징이다. 그렇게 읽어 나가는 과정에서 삶의 관점이 하나 더 열리는 것도 같다. 느낌대로 살 필요를 느낀다.
여기까지는 읽다보니 떠올랐던 책들
다 읽어보자 발저의 작품들! 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