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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동안의 거짓말 - 과학과 전문가는 여성의 삶을 어떻게 조작하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디어드러 잉글리시 지음, 강세영.신영희.임현희 옮김 / 푸른길 / 2017년 7월
평점 :
동네 병원에서 엄마가 암 판정을 받은 뒤 정밀검사를 위해 소견서를 받아 바로 대학병원으로 갔다. 당시 엄마는 물론이고 가족들은 멘붕에 빠진 상태로 이런저런 검사실에 들렀고 혹시나 하는 기대로 담당의를 기다렸다. 이미 눈물과 충격으로 모두가 기진맥진해 있는 그 때, 등장한 의사(교수)는 들뜨고 환한 얼굴로 (분명 내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남은 검사 몇 가지를 더 진행한 후 바로 수술날짜를 잡자고 했다.
이렇다할 설명도 건너뛰고 다짜고짜 수술을 말하니 당황스러웠고 몇 가지 기본적인 질문을 의사에게 던진 나는 수술은 좀 더 알아보고 결정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의사 뒤에 우리 담당의로 생각되는 여의사가 서 있었는데 그녀는 내 말에 콧방귀를 뀌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난 내가 너무 두서 없었나 싶어 어리둥절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상태였고 당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제대로 살필 멘탈도 아니었던 것 같다. 내 말에 당황했는지 얼굴빛이 변한 교수는 우리에게 수술을 쇼핑하듯 하지 말라고 장황한 설교를 한 뒤 자리를 떴다.
얼마 뒤 간호사를 통해 담당의가 내게 전화를 했다. (아까 교수를 따라왔던 콧방귀인것 같았다)그녀는 내게 "감히 교수님 앞에서 다른 데 가서 수술을 받고 싶다고 하다니 감히"라 하며 격분한 투로 나에게 따졌고 지금 당장 퇴원하라고 했다.(한밤중이었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나의 대처는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녀가 전화로 비난을 퍼붓는데도 미안하다는 말뿐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 내가 뒤늦게 이 일을 떠올렸을 때 환자와 가족을 걱정하기는 커녕 하나의 수술케이스로 생각하며 의술을 상품으로 만들고 있는 건 그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수소문 끝에 좋은 의사를 만났고 (앞선 대학교수와 동문이자 선배) 무사히 수술을 마친 뒤로 엄마는 다시 열정적으로 살고 계시다.
에릭 시걸의 소설 '닥터스'에 의사는 상처받은 치유자란 말이 나온다. 환자와 함께 질병과 맞서 싸우는 그들은 분명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될 존재들이다. 더구나 요즘과 같은 상황에서는 그들의 노력과 헌신에 감사한 마음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들에게 씌워진 권위는 때로 그들도 역시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 정도로 강력하다.
여성주의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상대적으로 절반의 인류임에도 어떻게 무구한 세월동안 이렇게나 여성들이 차별받았는지 이 구조의 튼실함이, 출처가 늘 궁금했다.
왜 어떻게 이런 뿌리깊은 구조가 자리잡았을까. 심지어 상당수의 여성에게조차 통념으로 받아들여져 끊임없이 계승되고 있는 이 강력한 힘의 근원이 어디인지가 알고 싶었다.
이 책을 보면 어느정도 그 답을 얻을 수 있다. 소위 엘리트라 할 수 있는 과학자들과 의사들이 산업화에 편승해 합리적이고 객관적일 것이라는 믿음의 양탄자를 탔고 자본가들은 여기 이해관계가 맞아 그 양탄자가 잘 날수 있도록 엔진에 비용을 지불해왔다.
p.123 메치니코프Metchnikoff는 콜레라균의 효과를 시험하기 위해 큰 컵 한 잔 분량의 콜레라 비브리오를마셨다. 그 후 ˝미생물 사냥꾼들"은 황열, 말라리아, 결핵 매개체에 기꺼이 스스로를 노출시켰다.
이타심과 강박적인 욕구로 물질적 보상을 경멸한 탓에 과학자는 구세주의 품성을 떠맡았다. 현미경 위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 탓에 굽어 버린 과학자의 어깨는 군중의 죄와 질병을 짊어지고 있었다. 뉴욕 슬론 케터링암연구New York‘s Sloan-Kettering Institute for cancer research의 비석에는 ˝이 벽 안에 있는몇 사람의 끊임없는 노동이 많은 사람을 살리리라.˝라고 쓰여 있다.
미국 최초의 억만장자 록펠러Rockefeller와 카네기 Carnegie가 자선을 통해 자신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간 곳 또한 생물과학의 제단이었다. 부자들은 수없이 저지른 죄의 대가가 생물 실험실의 금욕적 분위기에서 마치 생명으로 바뀌기라도하는 것처럼 생물과학으로 몰려갔다.
그들이 활용한 사슬은 때로 신경증과 히스테리로 또는 자궁과 난소 그리고 모성본능으로 취할 수 있는 여성에 관련된 모든 것에 동원되었다. 남성이 강하고 분별있고 진취적이라면 여성은 약하고 수동적인 상태로 가정에 갇혀 지내는 것이 가정을 수호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당연시 되었다. 최근 모든 일이 혁신이란 포장지로 완성되는 것처럼 과학은 진보와 개혁이란 포장으로 빛을 내며 안으로는 여성에게 둘러진 사슬을 옥죄면서 성장해갔다.
물론 과학과 의학이 인류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과학자들 중 영향력 있는 이들이 자본이라는 시장의 시류에 편승하며 권위에 도전했던 시작과 달리 가부장제의 바톤을 건네 받아 스스로 권위의 자리에 앉았다. 이들이 권위라는 권좌에 앉아 전문가의 왕관을 쓰고 새로운 억압자로써 여성 차별의 역사를 쓰는 과정을 이 책은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