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니카의 눈물
권지예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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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소설을 읽고 싶은 날이었다. 그래서 소설을 골라들었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수상작가 권지예 10년 만의 소설집' 이라는 띠지의 홍보문구에서, 아...상을 탄 작가구나... 아... 10년만에 이면 신인작가는 아니겠구나... 그런데 왜 이렇게 이름이 낯설까 싶었다.

소설을 좋아하지만 많이 읽는편이라고 하기엔 부족한 나는 아마도 이름이 널리 알려진 작가들의 작품 위주로 읽어왔나 보다. 솔직히 현실적으로 가장 편안하고 무난한 선택이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좋아하게 된 작가들은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도 찾아 읽게 되곤 했다.

이 책은 6편의 중단편 작품이 실린 소설집인데 대부분의 단편집들이 그러하듯 문예지들에 발표됐던 작품들을 모은 것이다. 내가 문학전공도 아니고 문예지를 구독할 만큼 문학에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니니 이렇게 소설집으로 나오고 나서야 알게 된다. 그리고 다시 깨닫게 된다. 우리나라에 정말 글 잘쓰는 작가들이 많구나!

처음 들어본 작가였지만, 이름을 확실히 기억할 수 있을만큼 자기색깔도 뚜렷하고 글도 무난하게 잘 쓰는 작가였다. 1997년에 등단했다는데.... 아이쿠 이런 너무 오랫동안 모르고 있어서 괜시리 미안해진다.;;; 표지 그림 속 럭셔리해 보이는 저 여인은 누구일까... 일단, 베로니카는 아니었다. ㅎㅎ

첫번째 작품은 [베로니카의 눈물] 은 쿠바를 배경으로 한다.

한국인 작가인 모니카는 쿠바로 여행을 떠난다. 몇달 묵으면서 글을 쓰려고 아파트를 빌렸다. 그 아파트 관리인이 베로니카였다. 일흔이 넘은 쿠바할머니 베로니카는 쿠바와 쿠바인을 대표하는 성격들을 드러낸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하지만 가난해서 의기소침해지는... 불쑥불쑥 들이닥치는 베로니카와 글을 쓰기는 커녕 삼시세끼 먹는 것부터가 문제인 모니카의 좌충우돌 엮이는 시간들은 모녀인듯 모녀아닌 모녀같은 남남 사이다.

모니카! 슬픈 얼굴 하지마! 돈이 다가 아냐. 난 아침에 눈 뜨면 정말 행복해서 노래해. 우리도 사는 데 물론 스트레스 많이 받아. 어느 곳에서든 인생이 늘 행복한 건 아닐 거야. 모니카! 봐봐, 돈은 중요하지만 인생은 돈이 다가 아니잖아. 그럼 어찌 사는가가 중요해. 사랑이 제일 중요하지. 내 마음에는 사랑이 가득하거든. 가난하지만 행복하다구. 오오! 미 꼬라손! 미 아모르! 미 비다! (오오 내 심장, 내 사랑, 내 인생이여!) 그녀의 목소리와 눈빛에 물기가 돌았다. (p. 60)

모니카, 중요한 일이라고 너무 집착하고 애쓰지 마. 그런 건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아. 인생은 그저 흐르는 거야. 그냥 힘을 빼고 흐름에 몸을 실어. 춤을 출 때처럼. 우린 그래서 모두 츰을 잘 추지. 여긴 쿠바야!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어. 그냥 파도에, 리듬에, 인생의 시간에 몸을 실어. 긴 걸레로 거실을 닦던 베로니키가 갑자기 걸레를 팽개치고 신나는 노래를 부르며 살집을 출렁대며 춤을 추었다. (p. 77)

 

하지만 쿠바도 사람 사는 곳이었고, 쉽게 맺어진 관계는 쉽게 비틀어졌으며,가난에 익숙한 사람과 가난이 불편한 사람은 진심이 닿지 않았다.

그동안 여행중에 5성급 호텔에 머문 적도 있었는데 뷔페 식당에 그런 과일들이 나왔었다. 그런데 파인애플은 너무 작고 시었고, 멜론은 푹 무른 늙은 오이처럼 전혀 달지 않았다. 열대과일에 대한 나의 기대는 그때부터 깨졌다. 그런데 이젠 오렌지마저도.

"아, 오렌지 오랜만에 먹으니 너무 맛있고 시원하다. 아 행복해! 정말 맛있지? 모니카, 응? 쿠바 과일이 최고라니까."

그녀는 세상을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 지금 그녀가 맛나게 먹는 초록 오렌지가 그녀에겐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오렌지다. 나는 세상의 많은 과일을 맛보았고, 비교할 수 있는 혀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혀를 장착하고 현재 이 나라에 살고 있는 나는 불행하다. (p. 67)

 

쿠바에서의 시간들은 무엇이었을까? 2년이 지난 후 서재를 정리하며 쿠바에서의 시간을 베로니카의 눈물을 떠올리는 모니카는 마음이 불편하다. 그동안 쿠바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도 쓰지 못했다. 그런데 무심코 펼친 책 속에서 모니카는 발견한다. 베로니카의 눈물이 무엉이었는지...

[낭만적 삶은 박물관에나] 에서는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이번엔 파리다.

누구나 파리를 낭만의 도시로 생각해버린다. 파리는 낭만의 상징이고, 또 파리의 상징은 에펠탑이니까. 쯧! 에펠탑 밑에만 있으면 무조건 낭만적이 되는 줄 아나. 그런데 상징이란 무서운 거다. 에펠탑이 눈에 보임으로써 비로소 파리에 있는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게 되니 말이다. 그것도 왠 뜬금없는 낭만적 존재감? (p. 112)

재이는 이런저런 일로 근근이 생활을 꾸려야 한다. 모든 것이 생존모드다. 8년전 파리에서 시작은 그렇지 않았는데...

지금은 키스하는 연인들 사진을 찍는 중이다. 파리에서 키스를 부를 만한 장소가 어디 있을까 검색하다가 '낭만적 삶의 박물관' 이라는 곳을 알게 된다.

낭만적 삶의 박물관이라니. 도대체 낭만의 삶이란 뭐야? 그 박물관에는 낭만적 삶을 죄다 수집해서 진열하고 있는 걸까.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낭만주의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세기의 낭만적 커플이었던 작곡가 쇼팽과 작가 조르주 상드의 유품들을 모아놓은 곳으로 더 유명했다. (p. 120)

쇼팽과 조르주 상드의 손을 본떠 조각한 작품을 보니 처음 파리에 왔을 때 그 조각작품처럼 기다랗고 하얀 손을 가졌던 남자가 생각난다. 그리고 키스의 사처도. 낭만의 도시 파리에서 낭만을 파괴당했던 기억.

재이는 아파트를 나와 강변도로를 걸어 미라보 다리로 향했다. 가을이 깊어가는지 바닥에 떨어져 뒤구는 플라타너스 낙엽이 꼭 썩은 손처럼 보였다. 우울하게 안개비가 내리는 전형적인 파리 날씨다. 재이는 진봉에게 이렇게 물어볼 작정이다. 아직도 로맨티시스트야? (p. 141)

낭만은 무슨 얼어죽을. 낭만이 밥먹여주냐 하며 재이는 살았지만, 재이의 이야기를 읽으며 '낭만적 삶의 박물관' 에 가보고 싶어지는 걸 보면, 파리에 낭만이 있기는 있는 것 같기도. ㅎㅎ

[파라다이스 빔을 만나는 시간] 은 한 여자의 독백이다. 대학때 만나 선배를 형이라 부르던 그대로 부부가 되어 늙어서도 형이라 부르는 부부의 모습이 생경하면서도 신선했다. 남편이 암으로 세상을 뜨고 아내는 함께 가려했던 쿠바에 혼자 여행을 떠난다. 남편이 남긴 유품을 누군가에게 주기 위해.

그 겨울은 어찌나 눈도 자주 오고 추웠던지. 봄엔 꽃무늬 조각보, 여름엔 초록 조각보 였던 땅의 풍경이 군데군데 눈 녹아 더럽고 때 탄 무명 조각보처럼 보이는 게 안타까웠어요. (p. 147)

크리스마스에도 눈이 내리지 않는 겨울이 없는 곳, 쿠바에서 수현이 알게 된 진실은 한국땅에서 봤던 더럽고 때 탄 무명 조각보 같은 것이었다.

파라다이스 빔이라고요? 내게 그 말을 가르쳐준 건 당신이었어요. 마시란 해변의 낙조를 바라보며 형이 묻곤 했잖아요. 좋아? 응, 좋아! 내가 대답했고, 얼마만큼? 천국처럼? 형이 또 물었죠. 내가 금방 대답을 못하면 당신이 말했죠. 생에서 만나는 이런 빛나는 순간을 파라다이스 빔 이라고 한대. 수현아.(p.182)

쿠바에서 돌아온 후 강민수 없는 한수현은 잘 지내고 있다. 지금은.

혼자라도 행복하다 가 아니라 혼자라서 더 행복하다고 깨닫고 있다. 지금은.

그리고 이제 뒤늦게라고 유품을 전달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파라다이스 빔을 알려주었던 그 사람에게.

[플로리다 프로젝트] 는 대를 잇는 모녀의 불행을 다루면서도 왠지 그렇게 불행하지만은 않은 느낌적인 느낌을 준다.

돈 많은 일해과 비교당하는 가난한 모녀의 신세. 여행을 하고 싶지만 돈이 없어 눈치만 보며 주눅 든 엄마를 볼 때마다 조롱당하는 기분. 가난이 익숙해서 두렵지는 않지만... 그건 냄새나는 낡은 신발 같은 것. 어쩔 수 없이 신고 다니긴 하지만 당장이라도 벗어버리고 쾌적하고 디자인도 예쁜 새 신발을 신고 싶은 욕망. 서은은 자신 안에서 자라는 욕망의 싹을 냉정하게 자를 수 없었다. 오늘도 새벽이 되도록 노트북 앞에 앉아서 커서만 바라보았다. (p. 218)

친구의 부탁으로 우연히 가게된 미국세미나. 미국에 간 김에 하기로 한 여행. 서연(딸) 과 현주(엄마) 는 서로 다른 생각으로 여행지에서 서걱거리지만 곧 알게 된다. 같은 상처를 갖게 됐다는 것. 서연의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진실을 알게 된 현주의 선택이 어두운 현실을 밝혀주는 것인지 현실성 없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도 응원하고 싶다. 서연은 미투를 하게 될런지.

[카이로스의 머리카락] 에서 말하는 카이로스는 아마도 기회나 특별한 시간을 의미하는 고대그리스의 신을 말하는 듯 하다. 기회의 머리카락이라... 기회를 움켜 잡았다는 것일까 잡지 못했다는 것일까.

로크룸섬의 누드비치를 지날 때였다. 갯바위에 누워 선탠을 하거나 돌아다니는 벌거숭이들이 언뜻 군집 원숭이들처럼 보였다. 일행들은 누드 남녀들을 찍으려고 모두 뱃전으로 몰려 난리법석을 떨었다. 찍은 사진들을 서로 비교해보며 노골적으로 품평을 하는 나이 든 남녀들의 모습이야말로 노골적으로 옷을 입은 원숭이들처럼 보였다. (p. 240)

결혼25주년을 기념하며 12박13일의 발칸 9개국 여행이라는 패키지 여행을 간 부부는 함께 여행간 사람들의 면면 들을 통해 여행의 피곤함과 여행의 신선함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그중에서도 부부끼리 온 3커플의 관계는 비슷한 연배에서 나눌법한 대화들로 자신들이 어떤 기회를 잡아오며 살았는지 되뇌이게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내가 좋았던 부분은 이 커플이 사는 법이었다.

'따로 또 같이' 이것이 그들 부부의 공존 스타일이다. 돈독하게 우정을 나누는 오랜 친구처럼, 신뢰를 쌓은 사업 동반자처럼, 애증과 연민이 공존하는 모자처럼 그들의 삶은 공동운명체로서 그럭저럭 굴러가는 듯 했다. 그 거리감이 깨질때, 오히려 더 가까워질수록 문제가 생긴다. 여행이 위험한 건 그런 이유일 것이다. (p. 265)

그래서 여행은 아무나하고 같이 가면 안된다. ㅎㅎ

[내가 누구인지 묻지 마] 은 이 소설집에서 가장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었다. 앞선 작품들은 다 여행과 관련된 것이었는데, 장소도 다 외국이었는데, 이 작품만 그렇지 않아서 개인적으로 다른 소설집을 낼때 묶었어야 더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굳이 인생을 여행으로 비유하자면 못 엮을 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이 작품은 영 어울리지 않았다.

한 번도 실패해보지 않은 인생에서, 그는 실패에서 일어서는 방법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희망은 헛되어 보이고, 그건 차라리 고문이었다. 불안과 공포가 엄습했다. (p. 293)

한번도 실패해보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겠나 싶으면서도 그런 인생들이 있다. 그런 인생들은 단 한번의 실패에 바로 무너져 내린다. 그들에게 그런 인생은 여행같은 것이었을까? 마음먹으면 떠날수 있는?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의 말에서 편안하게 속을 드러내는 작가도 있고 넘치는 의욕을 내뿜는 작가도 있는 반면 작가의 말 쓰는 것을 몹시 싫어하는 작가들이 있다. 이 소설집의 저자는 후자 쪽이다.

작가가 제일 쓰기 싫은 글이 책 말미에 붙은 '작가의 말' 이다. 작품으로 말하면 되었지, 사족이란 생각 때문이다. 소설이라는 우주에서 한세상을 생생하게 살았던 이야기를 인간 세상으로 내보내며, 나는 책의 운명을 속으로만 잠깐 빌어줄 뿐이다. 책도 인생처럼 나름대로 생로병사를 겪을 거고, 비문을 새기는 건 어쩌면 독자들의 몫이기에. (p. 330)

하지만 나는 '작가들의 말' 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작가가 이 작품을 쓸때 어떤 생각으로 어떤 마음으로 어떤 계기로 쓰게 됐는지 알고 싶고 궁금하다. 내가 읽은 느낌과 작가의 마음이 같을 수 없다. 같아지려고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더욱 온전히 느끼기 위해 나는 때로 작가의 말이 필요하다. 작품속에서 내가 읽어내지 못했던 작가의 생각을 콕 집어 이야기해주기를 원한다. 하지만 소설가들은 작가들은 너무 많은 것을 독자의 몫으로 넘기곤 한다.

표지속 여인은 누구였을까

쿠바의 베로니카도 모니카도 아니고, 파리의 재이도 아니고, 영종도의 수현도 아니고, 플로리다의 서연이나 현주도 아니고, 발칸반도의 이복순도 아니고, 원룸의 이름없는 여자도 아닌것 같은데, 저 여인은 누구란 말인가.

여하튼 저 여인은 여행을 떠나는 자가 아니라 돌아온 자다. 선글라스를 낀 뒷모습에서 저 여인이 정면에 마주하고 있는 것은 현실이다. 여행지가 아니라. 내가 느끼기엔 그렇다. 누군가는 이 책을 보고 여행이 떠나고 싶어졌다고 했지만, 나는 반대였다. 그렇게 나는다시돌아온, 꽤 괜찮은 작가를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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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달님만이
장아미 지음 / 황금가지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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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을 좋아해서 온라인으로 소설을 본 적이 없다보니 몰랐는데, 브릿G라는 온라인 소설 플랫폼이 있다고 한다. 브릿G에 연재됐던 인기작들이 출판되고 있는데, 얼마전 '피어클리벤의 금화' 라는 판타지 소설을 정말 재밌게 봤었다. 같은 출판사 같은 플랫폼 에서 나온 이 소설은 한국형 판타지를 표방하고 있어서 어떤 책일지 기대가 됐다. 전래동화 느낌이 나는 표지에서 판타지라니~?

처음 접하는 신세계였다. 전래동화적 요소들로 이렇게 판타지소설을 쓸 수도 있구나 싶은 것이 놀라웠다.

몰락한 집안, 한 마을의 수령(사또), 인신공양, 무당, 호랑이, 용 등 익숙한 배경과 소재들로, 정말 지극히 한국적인 요소들로 판타지소설이 쓰여지다니.

게다가 재미있었다.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아무래도 재미 아니겠는가.

영화속에서 주인공은 죽지 않을걸 알면서도 주인공에게 총알이 빗발치거나 사고가 나면 가슴이 조마조마하듯이 이 소설속에서도 등장인물이 낯설지 않고 어떻게 흘러갈지 짐작이 가면서도 빠져들어 읽게 된다. 그렇게 첫장부터 끝장까지 한번에 쑤욱 읽고나니 간만에 소설이 주는 개운한 재미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얼마만에 느끼는 해피엔딩의 개운함인지 ㅎㅎㅎ

작은 섬마을에 자매가 유배된다. 갑작스런 집안의 몰락에서 겨우 살아남은 어린 자매는 서로를 의지하며 작은 섬마을에서 겨우겨우 삶을 이어간다.

어느날 마을에 기괴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진다. 마을의 무당은 범신께 제물을 올려야 한다며 굿을 하고, 마을의 수령은 호랑이를 잡으러 산으로 떠난다.

수령은 행방불명 된채 마을에서 네번째로 뽑인 제물이 바로 자매의 언니인 희현. 그러나 희현에게는 아기가 있었고 동생 모현에게 자신을 대신해 줄것을 부탁한다. 모현은 홀홀단신 이므로 그 부탁을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제물로 검은산에 오르게 된다. 그렇게 산에 올랐던 모현은 다음날 행방불명 됐다던 수령의 등에 업힌채 마을로 돌아오게 되는데...

물웅덩이에 비친 달그림자가 바닥에 떨어뜨려 산산조각이 난 면경처럼 불길하게 흩어졌다. (p. 9)

범상해 아까운 줄 몰랐던 하루하루가 앞치마에 담은 달걀처럼 모현에게 더없는 온기로 다가왔다. (p. 11)

 

동화의 향기가 전혀 나지 않는 것은 작가의 문체덕분이다. 한문장한문장 고심해서 썼다는 느낌이 드는 정결한 문장들이었고, 시대에 맞는 고어들을 골라 쓰려고 노력한 흔적들이 두드러졌다.

"그대였어. 그대를 찾기 위한 여정이었지. 잘 왔다. 소녀야. 이로써 예언은 이루어졌으니" (p. 25)

판타지의 핵심 소재는 '예언' 아니겠는가. 초반에 등장한 예언은 누구에게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 마지막까지 운명적인 사랑으로 잘 연결된다.

무당이 주장한 것과 같이 제수는 바쳐져야 했다. 인간제물, 그네들은 마땅히 여자여야 했다. 어리거나 보호자가 없거나 집안의 위세가 덜하면 덜할수록 좋았다. 당산나무 앞에 꿇어 앉혀진 여자들 가운데 천이가 처음으로 골라낸 이는 과붓집 둘째 딸이었다. 그 어미는 자기 딸은 절대 내어놓을 수 없다며 눈물로 호소했지만 무섬증에 반쯤 돌아버린 이웃들은 기어코 아이를 끌어내 그집, 우리에 가두었다. (p. 37)

천이는 그들의 입이었다. 목소리였다. 그 무렵 천이는 수령도 없는 마을에서 공포를 무기 삼아 힘 있고 부유한 사내들을 쥐락펴락하는 힘으로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있었다. (p. 38)

 

무당 천이는 소설 속에서 악의 축이다. 그런데 천이가 하는 말과 행동들을 보다보면 현실속 어디선가 본듯한 느낌이 든다. 사회의 부조리를 대변하는 인물로서 천이는 늘 존재해왔던 인간유형이다. 천이에게 휩쓸리는 마을주민들의 행태도 익숙하다. 거짓된 믿음에 홀려 단체행동을 하는 우매한 무리로서의 마을주민들 또한 지금도 어딜가든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한참동안 행방불명이었던 수령은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외모는 같으나 성품이 반대로 바뀐듯 딴사람인듯 돌아왔다. 천박하고 몰상식한 성격이 아니라 진중하고 이해깊은 사람으로 돌아온 수령은 모현의 울타리가 되어준다. 그러는 사이 돌아온 범의 신부인 모현을 둘러싸고 마을내 혼란이 거듭된다.

짚신을 신고 초립을 매만지며 김 의원이 뒤숭숭한 심정을 다스렸다. 권세가 하늘을 찌를 지경인 무당과 살아 돌아온 수령, 두 권력 간의 대립과 불화를 헤아리는 그의 속셈이 복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저 소녀의 처분을 두고 벌어질 설왕설레가 마을에 어떤 소용돌이를 일으킬지 그로서는 도무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p. 64)

선과 악의 두 권력 축에서 혼란스러운 사람들은 상황에 드러나 있는 그 이면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선으로 보이면서 악인것 같고 악으로 보이면서 선인것 같은 혼란속에서 갈팡질팡하는 것은 결국 누군가에게 이용당할 빌미를 주게 된다. 이또한 낯설지 않은 설정임에도 글씨로는 옛날 이야기를 읽고 있는 기분의 소설을 보면서 지금의 현실세계를 느끼는 오묘함이 이 소설의 매력중 한가지이기도 하다.

우리 아기, 이렇게 울지 않아서 어쩌나. 그 마음에 못다 흘린 눈물이 차올라서 어째. 아파도 아프다 말할 줄 모르고 슬퍼도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릴 줄 모르니. 걱정이구나. 네가 이렇게 씩씩해서. 이토록 무심하게 굴어서. (p. 128)

천이의 고백, 그 배후의 진실을 단박에 들여다볼 만큼 희현은 영리한 사람이었다. 검은산으로 끌려 올라간 소녀들, 앳된 그 얼굴들이 희현의 눈앞에 하나씩 떠올랐다. 족두리를 쓰고 초록 원삼을 입은 채로 어깨너머로 자신을 더듬어보던 동생의 모습까지. (p. 204)

 

희현 과 모현 자매의 대비되는 상황들은 예상하듯이 안타깝다. 그 어쩔수 없음 또한 익히 알면서도 안타깝다. 운명이란 것이 확실히 존재하는 소설속에서 운명의 선택을 받지 못한 인생들은 하나같이 다 마음쓰리다. 그러나 소설이건 현실이건 주연과 조연과 엓트라들은 늘 구분되어 있는 것을...

삶이 무겁고 시간이 버겁고 사람이 힘겨울때 소설이 주는 위안은 소설의 종류만큼 다양하다. 내 경우 이 소설처럼 주제가 가볍고 기승전결 확실하고, 맺고 끊음이 분명하며 마무리는 해피엔딩인 소설을 읽었을 때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한여름 푹푹찌는 더위에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처럼, 여전히 더운 여름일지라도 소나기를 맞는 동안은 더위를 잊는 것처럼, 소나기를 맞는 동안 생각했던 빗줄기들은 소나기가 그치면 언제 그랬냐 싶게 까맣게 잊을지라도, 소나기가 주었던 개운함은 새로운 에너지로 남아있게 된다. 내 안 어딘가에.

근래 읽었던 책들에 대해 좀 지쳤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찬바람으로 집안을 환기시킨듯 개운해졌다. 다시 열심히 책을 읽어야 겠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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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나 2019-12-30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어요~
 
법정스님 인생응원가 - 스승의 글과 말씀으로 명상한 이야기
정찬주 지음, 정윤경 그림 / 다연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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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글과 말씀으로 명상한 이야기

정찬주 명상록

 

 

표지 안쪽에 작가 소개글에 실린 저자의 사진에서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저자 얼굴 보다 저자가 앉아있는 의자다. 나무의자. 눈에 익은 그 의자는 법정스님 의자로 많이 알려져 있는 그 모양 그 의자다.

띠지에 큼직하게 실린 사진에서 환하게 웃고계신 법정스님 웃음에 끌려 책을 열고 보니, 정찬주 명상록 이라고 씌여있다. 이 책은 작가 정찬주가 스승으로 생각했던 법정스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써내려간 에세이였다.

저자는 국어교사로 교단에 섰다가 십수 년간 샘터사 편집자로 법정스님 책들을 만들면서 스님과 각별한 재가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세속에 물들지 말라' 는 뜻의 무염이라는 법명도 법정스님께 받았다고 한다. 퇴직후 계당산 산자락에 산방 이불재를 짓고 명상과 글쓰기에 전념하며 살고 있어서인지,여러 스님들과 인연이 깊어서인지, 산사에서 어느 스님이 써내려간 것인듯 자연과 불교의 향기가 짙게 배어있는 문장들이었다.

매 글마다 시작은 저자의 생각을 담은 '마중물' 글로 시작한 후, 법정스님의 말씀들을 비슷한 내용인 것으로 몇가지 묶고, '갈무리' 글로 저자의 생각을 마무리짓고 있다. 저자의 일상과 법정스님의 말씀 사이사이 여백의 미가 넘치는 그림들도 잔잔하다.

잔잔하게 읽다가 가끔 머리를 퉁 치는 듯한 법정스님의 문장을 발견할 때마다 반갑다.

동양의 전통적인 생각 속에서는 커다란 산이라도 하나의 생명체로 여겼다. 그래서 등산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입산. 산에 들어간다고 했지 산에 오른다는 말을 감히 하지 않았다. (p. 20)

그런가? 입산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은 있는데... 일상에서 등산이라는 단어가 너무 흔하게 쓰이다 보니 미처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등산 이라는 말이 참 건방진 단어였구나...

나눔이란 누군가에게 끝없는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다. (p. 25)

나눔이란 내가 가진 것을 베풀어 주는 것이 아니라 원래 내 것이 아니었던 것을 함께 나누어 쓰는 것이라는 관점도 새로웠다. 역시 무소유

무소유는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만 갖는 것이다.

삶을 소유물로 생각하기에 우리는 그 소멸을 두려워한다.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p. 30)

삶도 인생도 내것이 아니다. 지금 이순간 이때 내가 존재하는 것일뿐

고독할 수는 있어도 고립되어서는 안 된다. 고독에는 관계까 따르지만 고립에는 관계가 따르지 않는다. 모든 살아 있는 존재는 관계 속에서 형성되어간다. (p. 78)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삶,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삶. 모든 생명을 존중하는 삶 그러한 삶은 관계로 연결된다.

사랑방 현판용 글씨는 스승이신 법정스님의 친필이다. 그런데 사랑방 현판에는 붉은 낙관이 없다. 스님께서는 현판용 글씨에 낙관을 찍는 것은 자기 글씨를 자랑하는 거와 같다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낙관을 찍었어야 가치가 더 생길 거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스님의 글씨를 볼 때마다 흐트러졌던 내 질서를 바로 잡기 때문이다. 작가로서 허명을 경계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낙관이 없기 때문에 더욱 보배가 된 스님의 글씨다. (p. 82)

현판 글씨에도 낙관이 없는데 생전 말씀에 낙관이 찍혔겠는가. 저자는 법정스님의 말씀을 자신의 글보다 더 많이 옮기고 있지만, 따로 출처는 적지 않는다. 물론 이것은 당신의 출판물을 더이상 출판하지 말라는 유언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생전에 무소유 한권 사둘껄 싶은 생각이 또 들면서 아쉽다...

이제 나이도 들 만큼 들었으니 그만 쉬라는 이웃의 권고를 듣고 디오게네스는 이와 같이 말한다. "내가 경기장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을 때, 결승점이 가까워졌다고 해서 그만 멈추어야 하겠는가?" (p. 138)

법정스님이 디오게네스 말을 전하시다니 wow 역시 멋지시다. ㅎㅎ

행복의 척도는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가에 있지 않다. 불필요한 것을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에 있다. 홀가분한 마음, 여기에 행복의 척도가 있다. (p. 151)

이렇게 홀가분해 진다는 것이 참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행여나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수행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도대체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누가 깨닫는다고 했는가? 깨닫겠다고 하는 사람이 문제다. 깨달으려고 해서 깨달음에 이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깨달음은 보름달처럼 떠오르는 것이고 꽃향기처럼 풍겨오는 것. 그러니 깨닫기 위해서 정진한다는 말은 옳지 않다. (p. 160)

지식은 밖에서 오고 지혜는 안에서 온다고 하셨다. 깨달음은 깨달아야하 하는 사람에게 깨우쳐지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살다보면 열심히 공부하다보면 열심히 명상하다보면 어느날 갑자기 솟아오르는 것이다. 달처럼. 꽃처럼. 이미 있었지만 몰랐다가 만월이 만개하고 나서야 눈에 들어오듯이. 차오르고 나서야 깨달음이 오는 것이다.

사람 마음의 바탕은 선도 악도 아니다. 선과 악은 연(緣)에 따라 일어난다. 착한 인연을 만나면 마음이 착해지고, 나쁜 인연을 만나면 마음이 악해진다. 그러니 우리들의 관계와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가. 안개 속에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옷이 젖듯이. (p. 179)

그렇다. 좋은 인연. 친구가 참 중요한 것인데...

저자는 법정스님의 말씀으로부터 사는 내내 큰 응원의 힘을 얻었나 보다. 지금도 여전히.

그 말씀들을 생각하며 쓴 자신의 글도 누군가에게 응원이 되기를 바랬을까...

흐름이 자연스러운 책은 아니었다. 마중물 과 갈무리 에 풀어낸 저자의 일상과 생각은 법정스님의 말씀과 연결이 되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법정스님의 말씀도 중복이 되기도 했고 끊기기도 했다. 그림도 책과 크게 어우러지는 느낌은 아니었다. 이런 부분들의 자연스러움은 혜민스님책이 참 괜찮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스님의 말씀들이 워낙 울림이 있으니 그림만 좀 괜찮았어도 훨씬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읽는 말씀들은 여전히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중간중간 읽기를 멈추고 생각하게 하는 시간을 주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부분적으로나마 다시 법정스님 말씀들을 접하게 되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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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지도 죽지도 않았다 - 파란만장, 근대 여성의 삶을 바꾼 공간
김소연 지음 / 효형출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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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 근대 여성의 삶을 바꾼 공간

그들이 자신으로 살기까지 그리고 그 자신이 이름이 되기까지

 

오래전 신여성에 관한 글을 읽다가 눈에 번쩍 들어온 구절이 있다. "미치거나 죽거나"

글쓴이는 신여성의 운명을 그렇게 단칼로 표현했다. 나혜석, 김원주, 김명순, 윤심덕... 100여 년 전 신여성의 대명사로 통한 그들은 여성의 인격과 개성을 화두로 자유연애와 여성 해방을 주장했다. 그리하여 결국 '미치거나 죽거나' 했던 그들. 그때 나는 의문이 들었다. 다른 신여성은 어땠을까? 이를테면 그들을 자유주의 신여성이라고 할 때 사회주의 신여성 허정숙, 주세죽이나 개신교 민족주의 신여성 김마리아, 김필례는? 의문은 다른 의문으로 이어졌다. 그 시대가 어떤 시대였던가. 나라가 무너지고 전통적인 경제 기반과 신분 질서가 흔들렸던 시대가 아니었던가. 전통적인 경제 기반과 신분 질서가 흔들렸던 시대가 아니었던가. 혼돈과 혼란의 시대에 이쪽은 신여성, 저쪽은 구여성으로 흑백처럼 선명한 구분이 가능했을까... 그러다 한참을 잊고 살았다. 시간이 흘러 '건축과 젠더' 에 관한 글을 제안받고 나서 불현듯 떠오른 것이 다시금, '미치거나 죽거나' 홀린듯 나는 원래 의도와 달리 옆길로 새고 말았다. (프롤로그 中)

 

저자의 소개글이 짧아서 잘 모르겠지만, 저자는 건축과 철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글을 청탁받고 예전에 가졌던 의문이 떠올라 자료를 찾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옆길로 샛다고 말했지만 이 책은 나름 '공간' 과 '건축' 을 기초로 두고 그 위에 당시 여성의 삶을 소설형식을 빌어 재구성한 책이었다. 소설인듯 아닌듯 술술 읽혀지는 내용속에 등장하는 여성마다 생애가 하도 사연이 많아서 삶 자체가 그냥 소설같기도 했다.

space #1 이화학당 woman #1 메리 스크랜턴 - 사람대접을 받게 해주고 싶어요

1885년 스크랜턴 가족과 아펜젤러 부부는 뉴욕을 출발하여 조선을 향한다. 여성 해외 선교회가 조선 여성을 주목하게 되면서 처음 출발한 선교단 이었다. 여성을 중심에 둔 선교를 목적으로 했던 스크랜턴은 여학교를 세웠으나 학생을 모집할 수 없었다. 이런저런 시도끝에 고종에게서 이화학당 이라는 여학교 이름을 하사받은 이후에야 학생이 늘기 시작했고 이후 걸출한 여성 선각자를 다수 배출하게 된다. 하란사, 여메례, 박에스더 등 여성운동과 여성의학에 있어서 굵직한 인물들이 후처, 청상과부, 버려진 딸에서 교육자, 의사 등 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space #2 보구여관 woman #2 로제타 셔우드 홀 & 박에스더 - 여성이 여성에게 의술을 전한다

조혼 풍습때문에 여학생을 구하기 어려웠던 여학교에 비해서 여성의료원은 초기 오해를 딛고 이용자가 급격히 늘었다. 여성의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교단에서 파견된 여성의사 로제타를 돕던 이화학당 학생 김점동은 이화학당 구내에 준비된 여성전용 병원인 보구여관에서 여의사의 꿈을 키웠다. 당시의 병원은 전도의 중심이 되는 곳이었다. 병원에 오기 전에는 신앙이 없던 사람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입원했다가 퇴원할 때는 신앙인이 되어 돌아갔다. 작은 병원을 통해 신자가 많아지면 그 병원을 헐고 큰 서양식 병원과 예배당을 세우는 의료 선교였다. 김점동에서 박에스더가 되기까지 미국에서 아이도 잃고 남편도 잃고 병까지 얻어가며 마침내 의사가 되었고, 한국 최초의 여의사이자 후배 여성들에게 롤모델이 되었다.

space #3 상동교회 woman #3 차마리사 - 살되, 네 생명을 살아라

1893년 남대문 시약소 예배처소는 상동교회로 승격되었지만 초기 신자들은 모두 남성이었다. 이화학당을 후임 여선교사에게 물려준 스크랜턴이 적극적으로 활동하여 남대문 시병원을 세우고 여성 교육을 실시하였다. 매일여학교와 전도부인 양성학원도 만들었다. 상동교회는 당시 최대규모의 신자가 예배 볼 수 있는 교회건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청상과부가 되어 힘들게 살았던 한 여성이 상동교회를 나가며 여성운동가 차미리사로 새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가난한 여성에게 복음을, 포로된 여성에게 해방을, 억눌린 여성에게 자유를, 고통 받는 여성에게 평안을' 차미리사는 청상과부 섭섭이의 삶을 살았기에 신여성보다 구여성에게 관심을 가졌다. 조선의 모든 섭섭이들이 교육으로 눈을 뜨고 자립할 직업을 가져 자신의 삶을 살기를 바랐다. 어렵게 유학하며 목격했던 외국생활에서 인종차별과 선교사의 우월의식과 차별적 언사를 본 경험은 주체성과 자립정신을 강조한 여성운동을 앞장서 이끌게 했다.

space #4 세브란스병원 간호부 양성소 woman #4 정종명 - 조선 여자의 지위 향상과 단결을 주장하오

보구여관은 감리교, 세브란스병원은 장로교로 교파는 달랐지만 전문성과 넓은 경험을 위하여 수업과 임상 실험, 수술실 등을 공유했는데, 1903년 보구여관이 간호원 양성소를 설립한 후 1906년 세브란스병원도 간호부 양성소를 개설하였다. 1회 졸업생은 김배세 단 한명이었는데, 한국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의 동생이었다. 1917년 정종명이 간호부 양성소에 입학했을 때 아들하나를 둔 지독하게 가난한 스물두살의 청상과부였다. 3.1운동때 간호부 양성소 학생이었던 정종명은 투옥되어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사회운동의 의지는 강해져갔다. 졸업후 산파 면허를 딴 후 본격적으로 사회운동에 뛰어들어 1920년대 사회주의 여성운동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말로는 알려지지 않는다.

space #5 조선일보 & 동아일보 woman #5 최은희 & 허정숙 - 당당해야 삶이 바뀐다

이광수의 추천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여기자로 조선일보에 발탁된 최은희 여성의 교육과 권리 등에 대한 다수의 기사를 썼으나 1930년대 이후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 되고 지식인들이 친일의 행보를 선택할때 사회활동을 접고 잠적한다. 동아일보에 발탁되기 전부터 유명했던 여성 논객 허정숙은 자유연애로 인한 이슈메이커였으나 개의치 않고 혁명가의 길을 걸어갔다.

space #6 조지아백화점 & 화신백화점 woman #6 송계월 & 임형선 - 내 밥벌이는 내 손으로

북촌에는 한국인 사업가의 백화점 화신백화점이 남촌에는 일본인 사업가의 조지아백화점을 비롯한 여러개의 백화점이 들어섰다. 백화점은 휘황찬란한 신천지였고 그 안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고학력에 외모가 출중해야 했지만, 그렇게 일하는 현실은 엘리베이터걸 데파트걸 로서 성희롱과 노동력 착취에 시달리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직업을 갖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당시의 많은 여성들에겐 꿈의 직장이었다. 데파트걸에서 신여성 이라는 잡지의 기자가 된 송계월은 여성해방이론을 활발하게 모색하고 전개해 나갔다. 학업에 대한 열정은 넘쳤으나 가난에 발목이잡혔을때 사람은 기술이 있어야 한다며 선생님이 소개시켜준 곳이 화신백화점 내 미용부였다. 기술은 역시 밥벌이를 가능케 했다.

space #7 평원고무공장 & 대동방적공장 woman #7 강주룡 & 강경애 - 죽을 각오로 싸운다

1931년 5월 평양에 있는 평원고무공장 여공 강주룡은 을밀대 용마루로 올라갔다. 열악한 환경의 여공들의 처우를 알리고 임금 삭감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벌인 첫 고공농성은 '체공녀 강주룡' 이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대서특필되었다.1934년 8월부터 동아일보에 연재한 소설 인간문제는 강경애가 자신의 험난했던 경험들을 토대로 쓸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당시 작가들이 지식인은 노동현장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지도자와 선구자의 이미지로 그린데 반해 강경애의 소설속 지식인은 전향자였다. 현실속에서 볼수 있었던. 죽을 각오로 싸웠음에도 강주룡의 외침은 통하지 않았고 강경애의 소설은 주목받지 못했다.

소설이 뚝 끊겼다 싶게 맺어진 마무리 뒤에 '그후, 그 장소, 그 사람' 이라는 글로 각각의 장소들과 주인공들이 이후에 어떤 변화를 거쳤는지 짧게 요약해 준다. 그런데 이 요약은 소설처럼 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운이 있다. 아마도 앞서 읽은 파란만장한 삶들이 마지막마저 해피엔딩은 없어서였을까...

이 책은 100여 년 전 전통 사회가 강요했던 삶을 떨치고 일어난 여성들과 그들에게 새 삶을 열어준 장소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다룬 여학교, 여성 병원, 간호원 양성소, 교회, 신문사, 백화점, 공장 등은 집안에 갇혀 있던 여성을 사회적인 존재로 나아가게 했던 공간이다. 이제는 남녀공학이 대부분이며 교회든 어디든 남녀를 구분하는 출입문이나 가림막은 없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벽과 천장은 여전히 존재한다. 차이가 있다면 예저에는 두꺼운 콘크리트처럼 실체가 보였지만, 지금은 투명한 유리처럼 실체가 잘 안 보인다는 것. 그래서인지 여성이 장벽을 돌파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과거 여성들이 스스로 남성화하여 전투력을 높였다면, 요즘은 여성성을 부정하지 않고 '나답게' 를 외치며 연대한다. 이에 대한 반발로 만만치 않다. 그러나 진보는 언제나 반동을 동반하기 마련이고, 이 모든 것은 변화의 과정이다. 하루아침에 뒤집어지는 혁명보다 더 어려운 것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일상을 바구는 것이다. 그래서 변화는 오랜 시간과 인내를 필요로 한다. 변화를 원한다면 설령 잠시 멈추더라도 포기는 하지 말자. 하루하루 포기하지 않으면 한 달을 포기하지 않게 되고 그리하여 일년, 십년... 그렇게 포기하지 않는 삶이 된다. 인생이란 원래 숱한 실패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결국은 너나 차별 없이 서로 존중하며 인간답게 살자는 문제가 아닌가. (에필로그 中)

공간에서의 여성 점유율은 어쩌면 여권 확대와 연관이 깊다고 생각한다. 어떤 공간에 갇혀 있느냐 나오느냐 부터 자기만의 공간이 생기기까지 여성의 활동에서 공간의 의미는 남성보다 뭔가가 더 있는 느낌이다. 백년 전에 두드러진 여성들이 걸어간 길을 뒤따라 간 여성들은 얼마나 됐을까... 그들은 미치지도 죽지도 않고 살아냈을까... 지금은 과연 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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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읽는 아리아 - 스물세 편의 오페라로 본 예술의 본질
손수연 지음 / 북랩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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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게만 느껴지는 예술, 오페라

그 속에 담긴 이야기와 명화로 한층 더 가까워지다

 

 

단 한번도 오페라를 본 적도 없고, 오페라에 대한 상식도 전혀 없는 내게 오페라는 예술 중에서도 가장 멀게 느껴지는 예술이다.

그림보는 것도 좋아하고 음악듣는 것도 좋아하며 발레의 움직임에도 경탄하지만 오페라는 영 접해볼 기회가 없었다.

그런 멀고먼 오페라를, 들어도 어차피 무슨말인지 하나도 못알아듣는 언어로 노래되는 오페라를 그림으로 읽는다니 시도해볼만하다고 여겨졌다.

저자는 오페라 전문가다. 오페라에 대한 음악평론을 주로 하며, 성악을 전공했고 문학박사 학위를 따서인지 오페라속의 서사에 대해 관심이 많은 듯 하다. 그래서 아리아 한 곡과 명화 한 점을 두고 그 안에 담겨있는 여러 가지 이야기와 감성을 엮어 풀어낸 글을 잡지에 연재하기 시작했고, 그 칼럼들을 묶은 것이 이 책이 되었다.

아리아 한 곡과 명화 한 점을 엮었다고 해서 오페라와 관련된 그림들인 것은 아니다. 오페라를 바탕에 두고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저자가 서로 다른 예술 사이에서 공통의 접점을 찾아 함께 떠오르는 생각들을 풀어낸 것이므로 어쩌면 지극히 사적인 감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오페라에 대해 알 수 있다면 읽어봄직한 에세이들이 아니겠나 싶다.

오페라는 어렵다. 드라마와 음악, 무용, 무대미술, 의상 등이 포함되는 종합예술인데, 비슷한 종합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뮤지컬처럼 쉽게 접할 수는 없는 예술이다. 다만 아리아 라는 단어는 친숙하다. 오페라 안에서 주요 등장인물이 부르는 서정적인 독주성악곡인 아리아는 아리아 자체만으로 유명해진 곡들도 꽤 있다. 그 한 곡의 아리아에 대해 그림과 함께 보는 시도는 아리아를 들어볼까 싶은 관심을 유도한다. 그러한 관심이 오페라까지 연결된다면야 좋겠지만 거기까지는;;;

스물 세편의 글에 스물 세 개의 오페라가 소개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림은 스물 세점이 등장한다.

오페라의 개요를 설명하고 아리아의 분위기를 묘사하며 왜 이 아리아에서 이 그림이 떠올랐는지 저자의 생각을 읽은 후 마지막 부분의 그림을 보면 앞서 읽었던 글들을 음미하게 된다. 때로는 저자의 감상에 공감하기도 하고 때로는 의아해하기도 하면서 여건이 된다면 그 아리아를 들으며 그림을 보는 시도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리고 짧고 굵은 메시지로 마무리하는 하나의 문장까지, 매 글마다 일관성 있는 체계가 정돈된 느낌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읽기 편했다.

오페라의 줄거리를 읽는 것도 재밌었고, 전문가만이 쓸 수 있는 성악가의 특징을 말해주는 것도 신기했고, 그림과 연결되는 감성도 신선했다. 작고 얇은 책 한권이 오페라를 가깝게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한 맛이 있는 책이었다. 한국어로 노래해주는 오페라 공연이 있으면 한번쯤 보러 가고싶은 호기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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