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미술사 - ‘정설’을 깨뜨리고 다시 읽는 그림 이야기
박재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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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의 모든 작품은 선택되고, 때로 오해되었다가, 마침내 되돌아온다

"최초" "원조" "천재"의 신화 너머 섬세하고 입체적인 '두번째 해석'

역사를 좋아해서 역사책을 몰아읽어대던 때가 있었다. 서양사를 파고들다보면 자연스레 접하게 되는 영역이 미술사다. 고대그리스시대부터 예술은 서양사와 그 결을 함께 해온터라 미술사조가 분명했던 건 그만큼 그 시대의 역사에서 예술이 그 색깔로 존재감을 뚜렷이 드러냈다는 의미다. 따라서 그 미술사조가 왜 대표적이 되었나 배경을 찾아보면 역사적 사건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서로 돌고도는 관계가 역사와 미술사였다.

여하튼 그렇게 역사를 읽다보면 자연스레 미술사도 꽤 많이 알게 되는 터라 역사책이 부담스러울때 가볍게 읽게 되는 책이 미술사책이 되기도 했다.눈이 즐겁기도 하고.

왠만한 미술사책들을 읽고나면 사실 미술사도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처럼 큰줄기만 기억하게 되곤 하는데 그럴때 소소하고 세밀한 재미를 주는 책을 곁들이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바로 이 책과 같은 책을 읽어야 할 때랄까.

이 이야기들은 모두 사실일까? 반드시 사실이어야만 의미가 있는 걸까? <두번째 미술사>는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했다. (p. 4) 예술을 둘러싼 수많은 '왜?'를 놓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예술가들의 많은 일화가 사실은 후대에 덧씌워진 이야기들이었다는 점이다. (p. 5) 누가 역사에 남고 누가 사라지는가는 단순히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와 사회가 어떤 이야기를 선택해 기억하는가에 달려 있다. (p. 6) 우리가 왜 특정 이야기를 더 진실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지 그 바탕에 놓인 문화적 욕망과 기억의 힘도 함께 탐구하고자 했다. 결국 이 책은 미술사 자체를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바라보려는 작은 시도이기도 하다. (p. 7)

-프롤로그 中-

우리가 아는 역사는 승자의 역사라고 하지 않나, 미술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아는 과거의 이야기들은 결국 앞선 이들이 남기고자 했던 기록들이기에 우리는 그 기록들 너머 버려졌던 기록들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균형이 맞을 테니까. 그리고 이 감춰진 이야기들이 실은 더 재미있다. 팩트임에도 카더라처럼 알게되는 묘미랄까.

차례를 보면 크게 7개의 질문아래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묶여져 있다. 거장의 신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예술가는 어떻게 브랜드가 되는가, 누가 기억되고 누가 잊히는가, 무엇을 그리고 무엇을 그리지 않는가, 예술가의 뒤에는 누가 있는가, 작품 제목은 왜 문제가 되는가, 미술관은 어떻게 명작을 만드는가. 어떤 질문이 가장 끌리는가? 그 쳅터부터 읽기시작해도 좋을 것이다. 이 책은 시대순서적으로 쓰인 史가 아니라 두번째 미술사니까 말이다.

이미지는 상당 부분 고갱 스스로가 만들어낸 '자기 신화'였으며, 실제 타히티에서의 삶은 훨씬 더 복잡하고 모순적이었다. (p. 34) 식민지 현실 속에서 자신만의 이상을 끊임없이 조작하고 설계해야 했던 예술가(p. 36) 고갱 자신이 타히티 생활을 의도적으로 낭만화 했다(...) 실제 타히티 여성들은 이미 기독교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유럽식 복장을 갖춰 입고 있었고, (...) 고갱이 화폭에 담은 풍경과 인물상들은 결국 존재하지 않았던 원시성을 상상으로 보완한 결과였다. (p. 37) 그는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타히티의 현실을 왜곡했고, 상상 속 원시 낙원의 신화를 창조해냈다. (p. 39)

예술작품에 대한 선호도는 개인의 취향일 테지만 역사적으로 인정받는 명화의 영역에는 어느정도 대중적 공감이 있어야 할텐데, 나는 미술사를 읽으며 가장 공감할 수 없던 명화가 고갱의 작품들이었다. 고갱의 자만심도 거슬렸고. 그가 어느정도 자의적이자 의도적 낭만화를 그렸다는 것은 알았는데 이 책을 읽으며 의도적이라기 보다 거의 사기꾼적으로 자기신화를 만들어냈다는 것을 확인하니 역시 싶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기신화창조가 성공했다는 점이 씁쓸했다. 영웅은 시대가 만들어낸다고 하지않나, 명화도 그러하다, 그 시대에 통할 것 같은 자기신화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영웅이 되고 천재화가가 된다. 우리도 최근 겪지 않았나? 만들어진 신화에 속아넘어간 댓가는 엄청나다는 것을.

1857년 살롱전에 출품한 <이삭줍기>는 노동계급을 내세웠다는 이유로 보수적인 평단의 혹평을 받았지만, 같은 해 그리기 시작한 <만종>은 종교적인 정서를 담은 덕분인지 한층 부드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p. 74) 밀레가 1857년에서 1859년 사이에 완성한 이 작품은 처음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고, 1860년 벨기에 화가 빅토르 드 파펠뢰에게 단돈 1,000프랑에 팔렸다. (p. 75)

주목받지 못하던 그림이 경매에서 미국인에게 넘어가면서 프랑스의 국민작품이 되었다. 당시의 애국심을 건드렸던 이 그림이 프랑스 자산가에 의해 프랑스로 돌아오면서 명실상부한 프랑스 대표 그림이 되었다. 명화는 물론 기본적으로 잘 그려진 그림이어야 하겠으나 대부분 이렇게 당대의 감정을 건드려야 하는 것이다. 이래서 명화는 역사와 땔래야 땔수 없는 것이다. 시대가 만들어내는 신화창조의 결과물이 되기도 하니 그 시대가 무엇을 왜 원하는가는 역사가 알려주므로.

프랑스 법에 따라 기관주문 8점, 개인 주문 4점을 포함한 총12점을 원본으로 간주한다. (...) 1999년 삼성문화재단이 일곱 번째 에디션을 들여오며 한국에서도 <지옥의 문>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는데, 재단은 로댕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기 위한 로댕 갤러리를 별도로 마련한 바 있다. (p. 82)

하지만 지금은 볼 수 없다. 갤러리 이름도 바뀌었고 작품은 어느 수장고엔가 고이 모셔져 있다. 내가 미술사를 진즉 읽었더라면 상설 전시할때 볼 수 있었을텐데... 이젠 죽기전에 한번 볼수 있을지 알수가 없다. 아쉬운 일이다. 여튼 이 옛날에 이런 선구안으로 한국의 예술품 보유 수준을 높여 놓은 것은 대단한 일이다.

드 라 투르의 재발견은 단순히 작가 한 명을 발굴하는 일이 아니라, 미술사 자체가 어떤 '기억'을 선택하고 또 어떤 '망각'을 가정하느냐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예술이 잊히고 다시 소환된다는 건 그 시대의 취향과 문화정치, 철학이 맞물린 복합적인 사건이다. (p. 93) 예술사 안에서 '누구의 목소리가 기록되고, 누구의 존재가 지워졌는가'를 되묻는 일이기도 하다. (p. 95)

드 라 투르 라는 이름이 생소할 것이다. 하지만 그림을 보면 아하! 무릎을 탁 치게 될 것이다. 어디선가 한번쯤은 봤을 법한 유명한 촛불 그림이니까. 그림 제목은 <등불 아래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이다.

정말 칸딘스키 혼자 힘으로 추상미술이 시작된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추상회화의 탄생에는 여러 숨은 주역들이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은 20세기 초 스웨덴의 여성 화가 힐마 아프클린트다. (p. 114)

'최초' 나 '원조' 가 붙은 것들에 우리는 아주 큰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더한다. 하지만 알고보면 '최초'가 최초가 아니고 '원조'가 원조가 아닐 수 있다. 추상미술의 시발점으로 칸딘스키가 거론되지만 그보다 100년 전에 이미 그런 추상미술을 그려낸 화가가 있었다. 그런데 왜 '최초'나 '원조'가 될 수 없었을까? 추상미술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시대적 여건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모든 '최초'와 '원조'에 한번쯤 의심을 가져봐야 한다. 정말 처음이라고? 맛집도 그렇지 않은가, '원조'라고 붙은 곳 치고 진짜 원조가 잘 없는. 창조의 영역인 예술에서도 모든 새로운 것이 갑자기 한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법은 없다. 모든 창조는 다 앞선 이들의 경험이 바탕되었기에 가능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1세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다는 이야기는 오랜 세월 예술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으로 회자되어 왔다. (p. 160) 하지만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그럴싸한 허구'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역사 연구에 따르면 다빈치가 사망한 1519년 5월2일 당시 프랑수아1세는 루아르 계곡에 머물고 있지 않았다. 파리 근처 생제르망에서 둘째 아들 앙리의 탄생을 축하하는 궁정 연회에 참석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바사리의 기록에는 사실과 어긋나는 부분이 많다. (p. 162)

미술사를 읽다보면 만나게 되는 이름이 '바사리'인데 그가 미술사의 기초를 서술해놓았기 때문일테지만 그가 쓴 미술사는 역사라기 보다 창작에 가까웠다. 그가 선별해놓은 명화의 기준과 천재의 이야기들이 다 팩트일 수는 없지만 바사리가 쓴 미술사의 영향력은 지금도 막강하다. 최초나 원조의 힘이 이런 거니까. 하지만 허구를 허구라 굳이 밝히지 않는 선택을 하는 지금도 그 이유는 시대의 '선택'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늘 생각해 봐야 한다. 이 시대의 선택이 왜 이런가에 대하여.

벨기에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트의 1929년 작에 적힌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문구 중 하나다. 작품의 진짜 제목은 프랑스어로 <이미지의 배반>이다. (p. 204)

작품의 제목은 몰라도 저 문구는 아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아니 사실 그림의 제목이 저 문구인줄 아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사실 저 문구는 넌센스에 가깝다. 그림이니 진짜 파이프일수는 없다.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생각한다. 파이프인데 왜 아니라고 하지?하면서. 사실 최초나 원조라는 수식어는 이럴때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개념미술의 아이디어를 이렇게 대중화한 화가가 또 없지 않나 싶어서.

제목과 대중의 인식에 대한 넌센스적 그림의 대표 경우가 또 있다. 뭉크의 <절규>다. 이 그림의 제목사실 절규가 아니었다. <자연의 비명> 이지. 그림속 인물이 내지르는 절규라는 것과 자연에서 들리는 비명때문에 귀를 막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은 너무도 다른 해법 아닌가? 하지만 대중이 선택하는 제목에는 다 그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처럼 예술은 시대를 반영한다. 어떤 식으로든.

미술관의 벽이 항상 하얀색이었던 건 아니다. 지금의 전시 방식은 비교적 최근에 형성된 전시 문화의 결과물이다. 원래부터 그랬던 건 없다. 19세기까지의 미술관의 전시실은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다. 벽면은 붉은색이나 초록색 벨벳 천으로 덮여 있었고, 샹들리에나 금빛 몰딩 같은 장식도 많았다. (p. 251)

전시장의 인테리어에 그리 관심을 두지 않게 되곤 하지만, 사실 이 '배경'에는 상당한 공을 들여야 한다. 작품을 더 빛나 보이게 하기 위해선 그 배경이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배경에 그림이 걸리느냐에 따라 그 그림이 다르게 보일 수 있다. 19세기 전시장의 이 화려한 배경을 염두에 두고 그림의 색채를 선택하는 화가들도 많았다. 배경이 흰색이었다면 다른 명화가 탄생했을 수도. '어떤 공간이 무엇을 이상적인 에술로 간주하느냐는 기준은 결국 그 공간의 미학과 정치가 결정한다. (p. 255)' 우리가 예술작품을 관람할때 우리는 의도된 연출에 따른 해석을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니 그 의도를 파악해보는 것은 관람의 새로운 재미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살면서 예술 작품 하나 벽에 걸고 살게 될 일이 과연 한번이나 있을수 있나 싶지만 그래서 예술품은 내게 너무 먼 사치품이겠거니 하고 살게 되기 마련이지만 소유하지 않아도 예술전시 관람은 더 쉬워졌으므로 우리는 예술세계에 한발 더 내디뎌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예술품은 그저 한 예술가의 작품을 너머 그 시대의 메세지를 담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대의 문화적 욕망 읽기라는 측면에서 미술사를 읽어보고 전시관람도 해보고 그런 경험이 쉬워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누리며 살 수 있기를 바래본다.아마 이 책이 그러한 경험을 더 쉽게 도와줄 것 같기도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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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2-07 0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익한 미술교양도서라고 판단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