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인생응원가 - 스승의 글과 말씀으로 명상한 이야기
정찬주 지음, 정윤경 그림 / 다연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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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글과 말씀으로 명상한 이야기

정찬주 명상록

 

 

표지 안쪽에 작가 소개글에 실린 저자의 사진에서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저자 얼굴 보다 저자가 앉아있는 의자다. 나무의자. 눈에 익은 그 의자는 법정스님 의자로 많이 알려져 있는 그 모양 그 의자다.

띠지에 큼직하게 실린 사진에서 환하게 웃고계신 법정스님 웃음에 끌려 책을 열고 보니, 정찬주 명상록 이라고 씌여있다. 이 책은 작가 정찬주가 스승으로 생각했던 법정스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써내려간 에세이였다.

저자는 국어교사로 교단에 섰다가 십수 년간 샘터사 편집자로 법정스님 책들을 만들면서 스님과 각별한 재가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세속에 물들지 말라' 는 뜻의 무염이라는 법명도 법정스님께 받았다고 한다. 퇴직후 계당산 산자락에 산방 이불재를 짓고 명상과 글쓰기에 전념하며 살고 있어서인지,여러 스님들과 인연이 깊어서인지, 산사에서 어느 스님이 써내려간 것인듯 자연과 불교의 향기가 짙게 배어있는 문장들이었다.

매 글마다 시작은 저자의 생각을 담은 '마중물' 글로 시작한 후, 법정스님의 말씀들을 비슷한 내용인 것으로 몇가지 묶고, '갈무리' 글로 저자의 생각을 마무리짓고 있다. 저자의 일상과 법정스님의 말씀 사이사이 여백의 미가 넘치는 그림들도 잔잔하다.

잔잔하게 읽다가 가끔 머리를 퉁 치는 듯한 법정스님의 문장을 발견할 때마다 반갑다.

동양의 전통적인 생각 속에서는 커다란 산이라도 하나의 생명체로 여겼다. 그래서 등산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입산. 산에 들어간다고 했지 산에 오른다는 말을 감히 하지 않았다. (p. 20)

그런가? 입산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은 있는데... 일상에서 등산이라는 단어가 너무 흔하게 쓰이다 보니 미처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등산 이라는 말이 참 건방진 단어였구나...

나눔이란 누군가에게 끝없는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다. (p. 25)

나눔이란 내가 가진 것을 베풀어 주는 것이 아니라 원래 내 것이 아니었던 것을 함께 나누어 쓰는 것이라는 관점도 새로웠다. 역시 무소유

무소유는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만 갖는 것이다.

삶을 소유물로 생각하기에 우리는 그 소멸을 두려워한다.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p. 30)

삶도 인생도 내것이 아니다. 지금 이순간 이때 내가 존재하는 것일뿐

고독할 수는 있어도 고립되어서는 안 된다. 고독에는 관계까 따르지만 고립에는 관계가 따르지 않는다. 모든 살아 있는 존재는 관계 속에서 형성되어간다. (p. 78)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삶,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삶. 모든 생명을 존중하는 삶 그러한 삶은 관계로 연결된다.

사랑방 현판용 글씨는 스승이신 법정스님의 친필이다. 그런데 사랑방 현판에는 붉은 낙관이 없다. 스님께서는 현판용 글씨에 낙관을 찍는 것은 자기 글씨를 자랑하는 거와 같다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낙관을 찍었어야 가치가 더 생길 거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스님의 글씨를 볼 때마다 흐트러졌던 내 질서를 바로 잡기 때문이다. 작가로서 허명을 경계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낙관이 없기 때문에 더욱 보배가 된 스님의 글씨다. (p. 82)

현판 글씨에도 낙관이 없는데 생전 말씀에 낙관이 찍혔겠는가. 저자는 법정스님의 말씀을 자신의 글보다 더 많이 옮기고 있지만, 따로 출처는 적지 않는다. 물론 이것은 당신의 출판물을 더이상 출판하지 말라는 유언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생전에 무소유 한권 사둘껄 싶은 생각이 또 들면서 아쉽다...

이제 나이도 들 만큼 들었으니 그만 쉬라는 이웃의 권고를 듣고 디오게네스는 이와 같이 말한다. "내가 경기장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을 때, 결승점이 가까워졌다고 해서 그만 멈추어야 하겠는가?" (p. 138)

법정스님이 디오게네스 말을 전하시다니 wow 역시 멋지시다. ㅎㅎ

행복의 척도는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가에 있지 않다. 불필요한 것을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에 있다. 홀가분한 마음, 여기에 행복의 척도가 있다. (p. 151)

이렇게 홀가분해 진다는 것이 참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행여나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수행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도대체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누가 깨닫는다고 했는가? 깨닫겠다고 하는 사람이 문제다. 깨달으려고 해서 깨달음에 이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깨달음은 보름달처럼 떠오르는 것이고 꽃향기처럼 풍겨오는 것. 그러니 깨닫기 위해서 정진한다는 말은 옳지 않다. (p. 160)

지식은 밖에서 오고 지혜는 안에서 온다고 하셨다. 깨달음은 깨달아야하 하는 사람에게 깨우쳐지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살다보면 열심히 공부하다보면 열심히 명상하다보면 어느날 갑자기 솟아오르는 것이다. 달처럼. 꽃처럼. 이미 있었지만 몰랐다가 만월이 만개하고 나서야 눈에 들어오듯이. 차오르고 나서야 깨달음이 오는 것이다.

사람 마음의 바탕은 선도 악도 아니다. 선과 악은 연(緣)에 따라 일어난다. 착한 인연을 만나면 마음이 착해지고, 나쁜 인연을 만나면 마음이 악해진다. 그러니 우리들의 관계와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가. 안개 속에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옷이 젖듯이. (p. 179)

그렇다. 좋은 인연. 친구가 참 중요한 것인데...

저자는 법정스님의 말씀으로부터 사는 내내 큰 응원의 힘을 얻었나 보다. 지금도 여전히.

그 말씀들을 생각하며 쓴 자신의 글도 누군가에게 응원이 되기를 바랬을까...

흐름이 자연스러운 책은 아니었다. 마중물 과 갈무리 에 풀어낸 저자의 일상과 생각은 법정스님의 말씀과 연결이 되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법정스님의 말씀도 중복이 되기도 했고 끊기기도 했다. 그림도 책과 크게 어우러지는 느낌은 아니었다. 이런 부분들의 자연스러움은 혜민스님책이 참 괜찮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스님의 말씀들이 워낙 울림이 있으니 그림만 좀 괜찮았어도 훨씬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읽는 말씀들은 여전히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중간중간 읽기를 멈추고 생각하게 하는 시간을 주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부분적으로나마 다시 법정스님 말씀들을 접하게 되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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