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의 역사 - 품격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설혜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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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왜 매너와 에티켓을 발명했는가?

아리스토텔레스부터 20세기 섹스 에티켓까지

품격있는 인간이 되기 위한 '매너'의 모든 것

영화 <킹스맨>을 안본 사람도 아는 명대사, 영화를 본 사람은 더더욱 명료하게 기억하는 명대사, 바로 Manners, Maketh, Man.

폭력과 살인이 난무하는 영화에서 킬러를 교육하며 이런 대사를 하는 것이 아이러니지만, 모든 사람은 제 나름의 품격이 그 사람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일견 통하는것 같기도 한 이 명대사가 '매너'라는 것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했었고 매너란 무엇일까.. 궁금증을 남겼었는데 그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책이 나왔다. <매너의 역사>

동양의 예의범절 전통이 서양에서보다 훨씬 더 유구하고 정교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이 책은 서양, 특히 영국에 초점을 맞추어 매너의 역사를 고찰한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전공인 영국사에 한정할 수밖에 없는 나의 부족한 역량 탓이다. 하지만 이유를 한 가지 더 찾자면 영국의 제국주의가 영국식 예의 규범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매너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p. 7)

저자 서문 [책을 펴내며] 中

매너라고 하면 동양에 예의라는 것이 있듯 서양엔 매너라는 것이 있지 라고 생각하게 되기도 하지만 예의범절과 매너라는 것은 뭔가 좀 다른 것 같다. '신사'라는 말 앞에 왠지 '영국'이라는 글자가 숨겨져 있는 것처럼 느껴지듯 ('신사'라고 쓰고 '영국신사'라고 이해한달까) '매너'라는 말 앞에도 왠지 '영국'이라는 글자가 숨겨져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영국사 전공자의 매너의 역사는 저자서문부터 느낌이 좋았다. 게다가 '두어 해 전부터 우리 사회에서는 갑자기 예의, 무례, 배려, 불관용, 매너, 품격, 천박 같은 단어들이 엄청나게 회자되기 시작했다. (p. 6)' 라는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중 하나였다는 문장을 읽으며 더욱 공감했다. 무례의 시대가 되어서야 매너에 관심을 갖게 되었구나 싶어서... 혹은 사회의 무례를 더이상 참을 수 없어져서 매너의 역사를 찾아보게 되었구나 싶어서...

학계에서 매너를 도외시했던 이유는 또 있었다. 매너가 이른바 '역사 발전의 단계별 변화'와 완벽하게 조응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예법서가 다루어 온 중요한 규칙들은 사회경제적 변화와 발맞추어 변화하기보다는 상당 부분 그대로 유지되는 경향을 보였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온 역사학은 일반적으로 지속보다는 변화에 주목하기 때문에 매너처럼 지속력을 보여주는 주제는 매력적이지 않다. 따라서 매너에 관한 통찰력 있는 논의가 역사학자가 아닌 사회학자에게서 생산되었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p. 15)

저자에 의하면 '매너의 역사'는 역사학 중에서 홀대받는 분야였다고 한다. 아니 좀 무시되었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역사학자들은 역사연구에서 '사회경제적 변화에 발맞추어 변화하는' 역사를 찾아냈는지 모르지만 내가 역사를 읽으며 매번 느끼는 것은 인간의 역사는 늘 비슷했다는 점이었다. 그러니 '상당 부분 그대로 유지되는 경향'을 보여왔다는 매너의 역사 경향이 그리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그동안 '매너의 역사'가 체계적으로 연구되지 않았는지 몰라도 다행히 저자는 이 책을 체계적으로 쓴 것 같다. '매너에 관한 역사학의 성과는 여전히 미진하고 특정 시기에 집중되어 있다. 이런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이 책은 거칠게나마 고대 그리스·로마시대부터 20세기 말까지 긴 시간 전체를 아우르며 매너의 역사를 재구성한다.(p. 20)' 독자로서 참 감사할 따름이다.


서양역사에서 예절에 관한 담론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예의를 갖춰야 하는 이유를 철학적·도덕적·종교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의 바른 행동이 어떤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행위 지침서다. 전자는 예의범절을 독립적으로 고찰하기보다는 인간 혹은 사회에 대한 성찰과 분석을 통해 존재의 당위성을 논하는 것이고, 후자는 온전히 사람의 외형적 행동거지에 집중하는 일종의 매뉴얼이다. 그런데 학자들은 후자인 행동 매뉴얼을 가치가 떨어지는 것으로 여기며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다. 그 결과 예절의 철학적·도덕적 가치를 파고든 연구에 비해 예법의 실체적인 행태를 연구한 사례는 별로 찾아볼 수 없다. 나는 역사가들이 소홀하게 취급해 온 바로 그 행위 지침서를 주목하며, 그 장르야말로 진정한 예법서라고 생각한다. (p. 30)

저자의 이러한 접근이 이 책을 더욱 재미있게 만들었다. 역사서가 너무 학문적으로만 서술되면 지루해지기 쉬운데 이 책은 구체적 행위지침들에 주목하면서 그 시대 그런 행동들을 했을 사람들이 연상되어 친근하게 읽혀졌다. 그리고 조금 스포하자면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하는 행동들이나 사고방식들은 그리 많이 변하지 않았다.

전체 6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에서 1부는 고대와 중세의 매너를 다룬다. 여기서 핵심은 '키케로'이다. 모든 사람이 갖추어야 할 덕으로서의 매너에서 '계급성'을 부여한 매너를 최초로 언급하고 강조한 인물이 키케로였다. 그리스·로마사에서 그리스를 중요시하게 여기는 사회와 로마사를 중요시하게 여기는 사회는 그리스·로마라고 한묶음으로 묶기엔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또한번 느꼈다. 로마사를 계승하고 중요시하는 사회는 권위적이고 계급적이고 차별적이다라고나할까...

2부는 매너의 새로운 이상인 시빌리테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매너를 가르쳐야 할 교육의 범주에 넣은 것은 유의미하지만 아직 프랑스 예법의 영향이 큰 매너였다.

3부에서는 프랑스의 영향에서 벗어나 영국식 예절이 탄생하는 과정을 살펴본다. 이 변화는 영국식 경제적 성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만큼 '젠틀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4부에서는 그동안의 조금은 느즛한 매너를 대체해 엄격한 에티켓이 탄생하는 원인과 과정을 살펴본다. 산업화와 더불어 새로운 부르주아 집단이 성장하자 영국의 상류층은 신흥부자들이 침범할 수 없는 배타적인 '소사이어티'를 만들었다.

5부에서는 에티켓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해 간 양상을 살펴본다. 다양한 에티켓들이 등장하는데 쇼핑에티켓까지 나타날 정도다.

6부에서는 20세기 에티켓의 특징을 살펴본다. 계급적 구분이 희미해져 가는 상황에서 사회적 구별 짓기의 단위가 계급에서 개인으로 전환되는 변화가 일어난다. 다양한 생활 에티켓들이 등장하는데 아마도 가장 현실적이면서 재미있게 읽혀질 최신 매너모음 부분이겠다.

매너라고 부르든 에티켓이라고 부르든 여하튼 서양식 예의범절이라고 할 수 있는 이 행동지침들의 시작은 서양 역사의 시작인 고대그리스·로마에서부터 출발한다. 매너의 역사가 인간의 역사와 동시적이랄까. 인간사회의 시작에 인간행동지침들이 필요했던건 당연한 것일수도 있지만, 고대그리스·로마 시대에서의 매너론은 인간이 갖추어야 할 덕으로서의 철학적 소양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테오프라토스의 저서에서 확인되는 바, 그중에서도 눈여겨보게되는 부분은 이때부터 '이후 매너의 역사를 관통해 허세는 아주 경계해야 할 악덕의 지표로 꼽히게 된다. (p. 42)'는 점이다. '내면과 외양의 일치는 19세기 전까지 매너의 역사에서 예법의 절대적인 대전제였다. (...) 외적 행동이 내면적 덕과 상응한다는 오랜 믿음은 결코 생명력을 잃지 않았다. (p. 64)'

여기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리스 시대에는 예절이 계급을 구분하는 수단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매너는 단지 덕을 갖춘 좋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인간을 구별할 수 있는 표지였다. 하지만 이후 서양의 역사에서 매너는 계급적 구별 짓기의 강력한 수단으로 등장한다. 그 시작은 키케로였다. (p. 59)

키케로는 매너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첫번째는 그가 '데코룸'이라는 용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데코룸은 (...) 이후 '매너'와 동의어로 사용된다. (p. 60)

예법서의 전통에서 인간이 생리현상을 은폐해야 하는 철학적 근거를 제시한 최초이자 거의 유일한 인물이 키케로다. (p. 65)

키케로는 직업의 귀천을 논함으로써 이후 직업에 따른 차별이 생겨나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기도 했다. (p. 69)

키케로는 외국에서 물품을 수입해 대량으로 분배하는 도매상들에게는 찬사를 보내면서 소매업자들은 거짓말쟁이들이라며 천하게 여겨야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사회기준으로 말하자면 재벌옹호자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지배층들이 이 '매너'에 관심을 안 가질 수 있었겠는가?!

테오프라토스와 아리스토텔레스가 매너를 인간 모두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윤리의 관점에서 접근했다면 키케로는 데코룸에 계급성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사실 키케로는 누구라도 갖출 수 있는 미덕, 누구나 추구해야 할 행복을 위한 행동강령으로서의 매너가 아닌, 사회 엘리트가 갖춰야 할 자질로서의 매너를 처음으로 언급한 인물이다. 이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매너 담론에서 커다란 분기점을 형성하며 이후 매너가 계급적인 구별 짓기의 기제로 작동하게 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p. 68)

사실 '매너의 역사'는 '매너'라는 말 자체부터 문제가 있었다. 모든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윤리로서 제시된 행동지침들이 누군가를 특징짓기 위한 '매너'가 되면서 '차별'의 기준이 되어버렸다. 키케로 이후 매너의 역사가 아무리 다채롭고 시대적 흥미를 불러일으킨다해도 결국은 그 매너를 행하는 사람이 그 사람을 특별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차별적 기본전제를 알고 나면 왠지 씁쓸해진다. '매너가 사람들 만든다'는 명대사에 광분했던 우리는 결국 우월적 계급성을 갖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례보다는 '매너'라도 있는게 낫긴 하지만...

다시 아리스토텔레스로 돌아가자. 좋은 매너를 갖추는 일은 곧 행복에 대한 추구이자 삶의 즐거움의 하나다. 그것은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따뜻함과 인정, 그리고 이해를 소중히 여긴다는 감정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처럼 매너에는 자기에 대한 존중과 남에 대한 존중이 교차하고, 그 존중을 행동으로 주고받는 기쁨이 있다. 따라서 좋은 매너는 당연히 더 나은 관계를 만들고, 더 좋은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평화로움을 창조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그래서 훌륭한 매너를 보는 일은 즐겁고 행복하다. (p. 594)

저자의 '나가며' 글 中

어쩌면 우리는 고대시대 사람이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고민하고 나름의 결과들을 도출해낸 이후 계속 퇴행해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떻게든 구별짓고 차별짓기 위해 기준점들을 꼬고꼬아서 만들어온 것이 매너인것 같아서... 재미있게 읽은 이천년간 다채로운 매너의 변화사가 퇴행이라고 하면 좀 허무해질지도 모르지만 '행동이 사람을 만든다'는 관점에서 다시 핵심을 되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깨달음이기도 하다. 다시 아리스토텔레스로 돌아가도 좋겠지만 그렇지못하더라도 꼭 다시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행동이 사람을 만들고 사람이 사회를 만드니 '어떤 행동'을 하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ps. 역사적으로도 탄탄하고 서술내용도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아서 두꺼운 외형이 주는 부담감을 간단히 날려보내주는 재밌는 책이었다.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휘리릭 읽혀지고 역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많은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책날개를 보니 저자의 책들이 재미난 주제들로 다양했다. 그중 <지도 만드는 사람>이란 책이 눈에 들어온다. 다음에 저자의 책을 읽는다면 이 책을 꼭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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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 - 백성을 위한 나라 만들기 창비 한국사상선 1
정도전 지음, 이익주 편저 / 창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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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民)과 더불어 새롭게 시작하라!"

정도전, 유교 문명국 조선을 구현하다

창비에서 한국사상선 시리즈가 나온다고 했을때 일단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고전'이라 하면 으레 시대순으로 대표 사상가들이 착착착 떠올려지는 서양고전이 있고 정치사 철학사 등 세부적으로 구분된 사상사들도 즐비한데 한국의 고전이나 사상선 이라고 하면 딱히 생각나는게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고전과 사상사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전집처럼 구비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싶었는데 드디어 나오는 건가 싶기도 하고.

사상선 각권이 개별 사상가의 전체 저작에서 중요한 일부를 추릴 수밖에 없었듯 전체적으로도 총30권으로 기획되었기에 어쩔 수 없이 선별적이다. 시기도 조선시대부터로 제한했다. 그러다보니 신라의 원효나 최치원같이 여전히 사상가로서 생명을 지녔을뿐더러 어떤 의미로 한국적 사상의 원류에 해당하는 분들과 고려시대의 중요 사상가들이 제외되었다. 또 조선시대의 특성상 유교사상이 지나치게 큰 비중을 차지한 느낌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의 유학 자체가 송학 내지 신유학의 단순한 이식이 아니라 중국에서 실현된 바 없는 독특한 유교국가를 만들려는 세계사적 실험이었거니와, 이 시대의 사상가들이 각기 자기 나름으로 유·불·선 회통이라는 한반도 특유의 사상적 기획에 기여하고자 했음이 이 선집을 통해 드러나리라 믿는다. (p. 8)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 中

책을 시작하기에 앞서 '창비 한국사상선 간행의 말'에서 이 선집의 장점과 단점이 동시에 설명되어지는 듯 하다. 이 선집은 조선시대부터 시작하여 현대까지 다루고 있기에 일단 사상사라는 역사적 측면에서 그리 긴 시간대를 다루고 있지 못하므로 한국의 사상선이라고 아우르기엔 무리가 있다. 게다가 사상가들의 사상들도 주요부분 편집본이 실린 것이라 맥락적 흐름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를 만든 주축이라 할 수 있는 조선시대의 사상들이 대륙의 것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 아니라 의외로 한반도 만의 고유한 특성을 드러내어 현실에 맞게 수정된 것이라는 깨달음과 그 수정이 시대를 거듭하며 이어져 왔기에 한국의 사상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점을 살펴 볼 수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니 그 시작은 조선의 건국을 이끈 정도전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조선은 한국 역사에서 매우 드물게 전쟁을 거치지 않고 건국된 나라이다. 조선 건국은 고려 말 정치투쟁에서 개혁파가 승리를 거둠으로써 가능했으며, 이성계를 국왕으로 추대하는 역성혁명을 통해 완성되었다. 정도전은 고려 말 개혁파의 일원으로 활동했고 이성계를 추대하는 데 앞장서싿. 조선이 건국된 후에는 [조선경국전] [경제문감] [경제문감별집]을 연달아 저술해서 새 왕조의 국정 운영 방향을 제시했다. 조선 건국에 참여한 사람 가운데 이런 역할을 한 사람은 달리 없었다. 그래서 정도전에게는 '왕조의 설계자'라는 칭호가 누구보다도 잘 어울린다. (p. 13)

정도전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는 [서문]은 정도전의 사상을 소개하기에 앞서 그의 삶을 풀어낸다. 좋은 시작이다. 한 사람의 사상은 그 사람의 삶을 알아야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상사는 그 사상가의 개인의 삶을 먼저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고려말 혼돈의 시기 정치적 야망이 컸던 정도전의 삶에서 가장 눈여겨 보아야 할 부분은 의외로 그의 관직 이력이었다.

급제 후 이때까지 26년 동안 중서문하성 낭사와 어사대의 관직, 즉 대간의 경력이 전무하고 지방 수령 경험도 거의 없다. 또 행정 실무를 담당하는 상서6부의 관직도 1371년에 예부낭중을 지낸 것이 전부이다. 대신 유교 경전을 관리하는 전교시와 제사를 주관하는 전의시의 여러 관직을 역임했고, 그 밖의 대부분은 성균관의 박사·사예·좨주·대사성을 두루 거쳤다. 당시 관리 인사를 담당하는 이부·병부의 낭관과 언관인 대간이 청요직이라 불리며 선호되던 상황에서 비교적 한직으로 돌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력이 행정 실무보다 교육과 연구, 그리고 각종 제도의 연혁 등 고사에 밝게 했고, 그동안 쌓은 지식이 조선 건국 후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p. 19)

그랬다. 그는 누구보다 학문적 탄탄함을 갖춘 학자이자 정치가였다. 현실적 흐름을 읽을 줄 알았고 그 흐름에 적당한 이유를 고전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앞으로 보게 될 그가 쓴 책이며 왕에게 하는 조언이며 그의 주장들은 모두 옛고전문헌들 속 사례를 바탕으로 과거에 이러이러했으니 지금 이러이러하는게 옳다는 식이다. 그러니까 정도전은 고전 짜깁기의 절대강자 였다고나 할까. 그리고 무엇보다 시대를 바꾼 핵심사상은,

신하들이 민심의 소재를 들어 추대하자 이성계는 "예로부터 제왕이 일어나는 데는 천명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며 천명을 거론했다. 이후 정도전이 지은 태조의 즉위교서는 '천명은 결과적으로 민심의 향배를 통해 확인된다'고 하여 민심과 천명을 연결하는 논리를 제공했다. 왕조 교체의 정당성이 천명과 민심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천명은 민심을 통해 확인되므로, 결국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민심을 얻는 것이었다. (p. 26)

민본과 위민을 중요시하는 가치관은 지금도 여전하다. 과거 왕을 하늘과 연결시켰던 제왕의 운명은 이제 민심이라는 땅과 연결된 것이다. 비록 양반이라는 귀족계급에 의해서이긴 하나 절대왕의 운명을 백성의 손에 쥐여준 것은 프랑스시민혁명보다도 앞선 것이니 이렇게 보면 유럽보다 이 조그만 땅덩어리에서 혁명이 먼저 시작된 것일수도 있지 않나 싶다. 그러나 하늘 혹은 신이라는 천명도 확인불가능한 것처럼 수많은 백성의 마음도 확인불가능하긴 마찬가지였다. 결국 명분은 그 명분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이것이 민심이다 하고 이용하기 나름인지라 혁명다운 혁명일 수 없었던 것이 조선의 건국이라고 할수도 있을 것 같고. 그러니까 혁명이긴한데 혁명의 한계가 시작부터 이미 있었던 것이다.

왕조 국가에서 정치의 잘잘못에 대한 최종 책임은 당연히 최고 권력자인 국왕에게 있었고, 혁명이란 것도 사실은 잘못된 정치에 대한 국왕의 책임을 묻는 행위였다. 이러한 논리로 실제 혁명을 성사시켜 새 왕조를 개창했지만, 혁명은 빈번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었다. 이런 이유에서 정도전은 국왕에게 정치의 책임을 묻는 것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따라서 국왕 대신 총재가 권한을 행사하고, 그에 대한 책임 또한 총재가 지도록 한다면 혁명까지 가지 않고도 책임 정치가 가능할 것이었다. (p. 29,30)


정도전은 왕이 할일은 오로지 제대로 된 총재를 뽑는 것이지 왕이 정치를 직접 할 필요가 없다 했다. 고려시대 왕권 중심의 무책임한 정치에 넌더리를 냈던 지라 새국가의 정치는 왕의 정치력은 약화시키되 책임자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그것까지는 괜찮은 것 같은데 문제는 그 책임자가 정도전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도전의 모든 사상서들은 하나같이 자신을 총재로 뽑아야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들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

조선 건국에 공이 많았던 방원보다 나이 어린 방석이 정도전의 구상을 실현할 수 있는 후계 국왕으로 적합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도전의 생각이 혁명적이었던 만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사람도 많았다. 특히 국왕권을 제한하는 데 대해서 왕실 내부의 반대가 심했고, 결국 이방원이 정변을 일으켜 정도전을 죽이기에 이르렀다. 뒤어어 태조마저 왕위에서 물러남으로써 정도전이 꿈꾸고 태조가 동의했던 새로운 정치는 실험도 해보지 못한 채 끝이 났다. (p. 31)

그렇다. 정도전의 실험은 시작도 못하고 끝났다. 정도전이 조선의 기틀을 마련한 것처럼 역사를 배워왔지만 아니었다. '정도전이 꿈꾸고 태조가 동의했던 새로운 정치'는 조선의 시작이 아니었다. 조선은 건국과 동시에 왕조만 바뀐, 과거와 그닥 달라질 것 없는 똑같은 왕권 국가 였던 것이다. 그러니 그 뒤로도 왕조만 바뀌는 혁명아닌 혁명이 조선시대 내에 몇번이나 가능했던 것이다. 민심과 위민도 애초부터 시작된 적도 없었다.

아! 신하가 밝은 임금을 만나기가 진실로 어렵지만, 임금이 좋은 신하를 만나기도 역시 어렵다. 바야흐로 지금은 밝은 임금과 좋은 신하가 만나서 성의로써 서로 믿으며 유신의 정치를 함께 도모하니 천년, 백년 만에 한번 있는 융성한 시기이다. 이에 재상연표를 만드는 데 오직 시중만을 적는 것은 총재가 여러 관직을 겸하며, 임금의 직책은 재상 한 사람을 택하는 데 있고 그밖에 아래의 여러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p. 50)

이탈리아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있었다면 조선엔 정도전의 사상선들이 있었다. 그 모든 책들에서 정도전은 시종일관 주장한다. 왕은 총재를 임명만 하고 정치에 관여하지 않으며 총재가 모든 것을 다 하는데 그 총재는 정도전 자신이 가장 적합하다고. 그 증명으로 과거의 온갖 고전들 속 말씀들을 짜깁기해놓았는데 그것이 정도전의 사상선들이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가 등용되지 못했듯이 정도전도 총재가 되지 못했다.

이렇게 수많은 고전들을 편집하여 잘 짜깁기 해서 자신을 총재로 쓰는 국가를 만든 것이 조선이었다. 자신의 정치를 위해 나라까지 바꿔치기 한걸 보면 정도전이 대단한 인물이긴 하다. 만약 태조가 이방원을 누르고 정도전의 정치실험을 가능하게 해주었다면 조선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니 그전에 공양왕이 정도전을 총재로 임명했다면 조선은 아예 건국도 되지 못했을 텐데 그렇다면 고려말 이후의 시대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조선의 건국에 정도전의 비중을 따져보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물음표들이었다.

여하튼, 정도전의 사상이 '백성을 위한 나라 만들기'라는 구실 아래 결국은 자신이 총재가 되어 새로운 정치를 해보고싶은 야망을 위한 것이었다는 점을 배우게 되어 의미있는 독서시간이었다. 다른 사상선의 책들은 또 어떤 새로운 깨달음을 줄지 자못 기대가 된다.

ps. 창비의 한국사상선 간행을 응원하며 앞으로 한국사상선 보충과 고전에 대한 시리즈물을 계속 기획해주길 또 더 응원한다. 고마워요 창비!



#한국사상선 #창비 #정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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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애플 스트리트
제니 잭슨 지음, 이영아 옮김 / 소소의책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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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애플 스트리트에서 벌어지는 가족과 사랑, 그리고 관계의 문제를

경쾌하고 예리하게 그려낸 소설

미국에 정말 파인애플 스트리트 라는 주택가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소설 속 배경인 이 거리는 미국 부유층이 모여사는 고주택거리이다.

부동산 투자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스톡턴 가의 자매 달리와 조지애나, 그리고 결혼을 통해 그 집안으로 들어간 사샤, 이렇게 세 명의 여성이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소설은 진행된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케빈 콴, <로드>의 코맥 매카시 같은 유명 작가들을 담당했던 베테랑 편집자 제니 잭슨의 데뷔작인 이 소설은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딱 그 분위기다. 부유층 속에 섞여 들어가 가족이 된 평범한 사람의 좌충우돌 이야기.

그 이야기들의 첫 테이프를 끊는 사람은 사샤다. 세 명의 여성 화자 중 재벌이 아니라 유일하게 평범한 사람인 사샤.

이런 집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거짓말 같은 행운인지 감사한 마음이 드는 날도 있었다. 브루클린의 이 4층짜리 라임스톤 건물은 사샤가 예전에 살았던 방 한 칸짜리 아파트가 열 채는 들어올 수 있을 만큼 거대하고 격식 있는 호화 저택이었다. 하지만 타임캡슐 속에 갇힌 듯 나쁜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남편이 자랐고 한 번도 떠나지 않은 이 집에는 그의 추억과 어린 시절 이야기가 깃들어 있었지만, 주로 그의 가족이 남기고 간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다. (p. 15)

스톡턴 가는 부동산 재벌이니만큼 집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이 가족이 가장 사랑하여 오래 머문 저택을 삼남매 중 아들 코드가 결혼했을때 신혼부부에게 내어주고 부모는 다른 집으로 이사를 나갔다. 문제는 이 커다란 저택에 켜켜이 쌓인 물건들 그 무엇도 가져가지 않았다는 점인데 더 큰 문제는 버리지도 못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몸만 덜렁 들어온 셈인 사샤인 온갖 남겨진 물건에 치여 사는 삶이 그닥 호화롭고 여유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결코 이런 주거환경을 원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이 물건들의 주인인 스톡턴가 사람들은 그런 사샤를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했다. 코드는 자상한 남편이었다. 하지만 그의 가족들은...


이 일을 하면서 조지애나는 자신이 이제껏 본 것은 세상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관광 명소들, 부자들의 여흥을 위해 만들어진 호화로운 도시와 마을들, 그녀는 진짜 가난을 한 번도 목격하지 못했다. <콘데 나스트 트래블러>에 실릴 만한 괜찮은 식당 하나 없는 곳에서 사람들이 어떤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p. 46)

스톡턴가의 막내딸 조지애나는 개발도상국들의 빈약한 의료 시스템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초급 사원이었다. 여기서 보고 듣고 알게 되는 모든 것들이 조지애나에게는 너무도 생소했다. 사실 조지애나가 어쩌다 이곳에서 일하게 됐는지가 의문인데 소설은 거기까진 개연성을 만들어놓진 않았다.

달리는 맬컴이 계속 일하 수 있도록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렇다 해도 맬컴의 부모가 없었다면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김 가와 스톡턴 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김순자와 김영호는 1960년대 후반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했고 스톡턴 가는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건너왔다. 김씨 부부는 빈손으로 와서 자수성가했다. (...) 파피가 태어난 후 유모가 떠난 날, 순자가 그들의 아파트로 들어왔다. 그녀는 여섯 달 동안 소파에서 자며 밤마다 달리와 번갈아가며 파피를 돌보았다. (...) 파피와 해처는 달리의 자식인 동시에 순자의 아이들이기도 했다. 맨가슴과 젖 얼룩과 제왕절개 흉터 연고로 가득한 시간의 소용돌이 속에서 두 사람 사이의 격식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p. 58)

분위기는 딱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인데 시대가 변해서일까 등장하는 아시안이 중국인에서 한국인으로 바뀌었다. 물론 설정도 재벌에서 자수성가로 바뀌었지만. 여하튼 미국 대중소설에 아무렇지 등장할 만큼 한국인들이 미국내에 자리를 안정적으로 잡은 것 같기도 하다. 이민 세대가 그동안 구축해 놓은 이미지도 딱 저러할 것이다.

달리와 맬컴은 둘다 투자컨설팅일을 했지만 결혼 후 임신하면서 달리는 육아를 전담하는 가정주부를 선택했다. 맬컴은 최고의 남편이었고 직업도 안정적이었기에 외벌이어도 달리는 부족함 없이 행복했다. 게다가 자신의 부모와 달리 김 가의 부모는 헌신적으로 도와주었기에 더욱 만족스러운 결혼생활이었다. 그렇기에 결혼전 자신이 물려받을 신탁재산과 관련된 혼인계약서에 굳이 서명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도 한국계 혼혈 아기 갖고 싶어!' '이렇게 이국적인 외모를 가졌으니 얼마나 운 좋은 아이들이야' 이런 말을 들으면 달리는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파피와 해처가 그 여자들의 눈에 특이해 보인다는 사실, 열대지방에서 수입한 리치넛처럼 '이국적'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달리는 분통이 터졌다. 그런 일을 당할 때마다, 그동안 그녀를 둘러싼 세상이 얼마나 새하얬는지를 뼈저리게 실감했다. 그들은 브루클린에 살았지만 아파트 거주민은 백인뿐이었다. 친구들은 거의 백인이었고, 플로리다 클럽 회원은 전원 백인이었으며, 코드와 사샤의 결혼식 때 주위를 둘러보니 유색인은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p. 93)

달리는 결혼후에도 친정 가까이 살았다. 부유촌에서 나고 자라 결혼 후에도 머물렀으니 한국계 남편과 결혼한 것은 특이한 일일 수도 있었다. 달리는 맬컴을 사랑하고 결혼생활에도 만족했지만 결혼후에서야 백인사회의 편견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맬컴의 갑작스런 실직때에도 그런 편견이 작용했던게 아닐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녕, 커티스, 밌게 놀고 있어?"

"아니, 별로"

"왜 그래?"

"얼마나 개판인지 안 보여? 괜히 왔어"

"생일 파티가 얼마나 개판인지 안 보이냐고? 그래, 난 안 보이는데"

"사립학교에서 만난 부잣집 백인 애들이 자기 동네에 사는 이민자들을 조롱하는 코스튬을 입고 노는 게 재밌어? 넌 그게 괜찮아?"

"올리가르히 패션이야. 부자들을 조롱하는 거라고. 그리고 러시아인들은 백인이야"

"아까 말했다시피, 정말 재미있다면 네가 그런 질문을 할 필요도 없었겠지. 선글라스 멋지네"

"꺼져, 네가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래?"

"물론 잘 알지. 신탁기금으로 먹고사는 부동산 부잣집 딸, 온실 밖에도 세상이 존재한다는 걸 어렴풋하게만 아시는 상위1퍼센트 철부지" (p. 133)

조지애나는 늘상 놀던데로 놀았을 뿐인데 무엇이 문제였을까. 잘못된 사랑을 하고 있어서였을까. 자신이 일하는 곳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일은 조지애나가 살아온 모든 것과 거의 반대편의 것들이었다. 방산업체 재벌가의 아들인 커티스가 하는 말은 묘하게 조지애나의 신경을 긁었다. 그래서였을까, 나중에 커티스가 한 선택을 알게 된 후 조지애나의 삶도 많은 것이 바뀌게 된다. 재벌가의 자손이지만 스스로 벌지 않은 재산에 대한 커티스의 선택은 선구적인 면이 있었다.

사샤와 가까워지고 보니 달리는 그녀의 가족이 외부인에게 얼마나 부자연스럽게 비칠 수 있는지 이해되었고, 그들 작은 일족을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리는 사샤와 맬컴이 겉도는 느낌이 들 때마다 'NMF'라고 속삭이며 자기들끼리 작은 농담을 주고받는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한 손을 내밀기만 하면 사샤를 가족으로 품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한참 전에 할 수도 있었던 일이었다. (p. 172)

어쩌다보니 그 친밀한 가족에게 할 수 없던 비밀을 사샤에게 털어놓게 되었다. 달리도 조지애나도.

사샤가 이 자매에게 대해준 만큼 자매는 아직 사샤의 진가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야 사샤는 명백히 깨달았다. 그들이 그녀에게 비밀을 털어놓은 건 그녀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들에게는 별로 중요치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그들의 가족이 아니었다. 의미있는 판단을 내릴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들은 베개에 대고 비명을 지르듯 그녀에게 감정을 분출했을 뿐이다. (p. 227)'

하지만 사샤도 가만히 참고만 있지는 않았다.

"하긴 언제나 그렇죠, 안 그래요? 지긋지긋해 죽겠어요, 낡은 칫솔이랑 곰팡이 핀 바구니들 천지인 이 괴상한 그레이 가든에 내가 계속 붙어살 수 있는 걸 고마워하면서 벼룩이 들끓는 동양풍 양탄자에 키스라도 해야 하는 것처럼 구는 모두한테 질려버렸다고요. 그러고 또 어땠는 줄 알아요?" (p. 273)

시댁식구에게 꽃뱀취급 받는 사샤, 세상 물정 모르는 부잣집 막내딸 조지애나, 경단녀의 삶을 선택한 달리의 후회...

이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긴걸까? 이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책 속에서 확인하기로. ^^

ps. 손에 잡으면 오락영화를 보듯 쉬리릭 읽히는 이 소설은 시종일관 경쾌한 분위기에 걸맞게 해피엔딩이니 마음껏 즐기길.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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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삶과 운명 1~3 세트 - 전3권 창비세계문학
바실리 그로스만 지음, 최선 옮김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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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어둠을 심판하는 현대 러시아문학 최고의 걸작

죽음의 공포를 이기는 평범한 이들의 고귀한 친절과 강인한 희망

문학을 잘 알지 못해도 러시아문학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뭔가 크고 웅장하고 엄숙한 무언가...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같은 대문호들이 구축해놓은 이미지들일 테지만 그 대문호들 외에 소소한 문학작품들은 그리 알려진게 없다는 점에서 창비에서 새로나온 현대러시아문학작품이라는 이 <삶과 운명>에 관심이 갔다. 그리고 러시아가 다시 전쟁을 일으킨 시대에 러시아인이 경험한 전쟁이야기라...

1942~43년 독소전쟁 시기 한 물리학자 가족을 중심으로 전쟁과 전체주의라는 이중고에 처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파헤친 대작 <삶과 운명> 역시 1959년 집필을 마쳤으나 작품의 반스딸린주의 경향으로 인해 1989년 스위스에서 처음 출간되고 1989년 러시아 국내에서 출간되는 우여곡절을 거쳤다. 작가의 경험에 인류 최대의 참상 속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을 더해 현대적 문체로 형상화한 <삶과 운명>은 '2차대전판 톨스또이의 <전쟁과 평화>'라는 평을 받으며 영국과 러시아에서 라디오와 TV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책날개 작가소개 내용 中-

1권

책날개에 쓰여진 작가소개글에 의하면 바실리 세묘노비치 그로스만(1905~1964)는 우끄라이나의 유대인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나 모스끄바대학교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했으나 대학생시절부터 소설을 썼고 2차대전 중 유대인 학살로 어머니를 폭탄 폭발로 큰아들을 잃었다. 전쟁당시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소련 최초의 홀로코스트 보고서를 집필했고 그의 작품들은 평생 검열과 지난한 출간 과정을 겪었다.

대문호 선배?!들의 영향 때문인지 러시아문학 분위기가 원래 그런건지 현대문학인 이 작품도 3권에 달하는 대작인데 작품해설과 작가연보는 3권의 말미에 있으니 이 부분을 먼저 읽고 이 작품을 읽기 시작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잘 모르는 작가나 작품을 읽을 땐 이러한 정보들을 먼저 읽는 것이 도움이 되곤 했었기 때문이다.

미리 알아두면 참고될 것은 '<삶과 운명>이 그 자체로 충분히 한편의 소설로서 완결적이지만, 실상 이 소설은 1952년작 <정의로운 일을 위하여>의 속편이라는 점이다. (3권 p. 418)' 그래서인지 본문을 읽는 내내 주석으로 '앞소설'에선 이러이러한 내용이 있었다 라는 설명이 자주 나온다.

또한 소설의 많은 부분이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듯 하다. 작가연보를 보면 그렇다.'1905년 혁명에 열성적으로 참가했던 화공 엔지니어 아버지와 프랑스어 교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 개회한 유대인 지식인 가정에서 자라면서 아무런 전통적 유대인 교육을 받지 못함. 아버지는 사회민주당원으로 멘셰비끼에 합류함. (3권 p. 423) 친구이자 동료 작가 보리스 구베르의 아내 올가 미하일로브나와 사랑에 빠져 1935년 10월부터 동거를 시작, 1936년 5월에 결혼함. 193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작가로 전업. (p. 424) 9월15일 베르지체프에 머물던 어머니가 2만~3만명의 그곳 유대인들과 함께 대량학살에 희생됨. (p. 425) 1953년 1월 유대인 의사들이 체포된 후 유대인 지식인들이 스딸린에게 보호를 요청하는 공개서한에 서명함. 이는 실상 스딸린의 대규모 유대인 박해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될 것이었으나, 이를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서명한 데 대해 이후 그로스만은 무척 죄책감을 느꼈으며 이는 소설 <삶과 운명> 및 <모든 것은 흐른다>에 표현됨.(p. 426)' <모든 것은 흐른다>는 작가의 생전 마지막 작품이다.

대지 위에 안개가 자욱했다. 포장도로를 따라 늘어선 고압전선들은 자동차 헤드라이트의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비가 내린 것은 아니었지만 땅은 새벽녘의 습기로 축축했고, 붉은 신호들이 켜질 때마다 젖은 아스팔트 위에 불그레한 얼룩이 흐릿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p. 11)

1권

카메라로 줌인되듯 수용소 가는 길 풍경이 묘사되면서 시작하는 이 소설은 1942년 9월경에서 1943 3월경까지 약 6개월 가량 러시아 스딸린그라드와 인근에서 세계2차대전 독소전쟁 중 스탈린그라드전투를 주요 배경으로 한다.

읽는 내내 가장 헤깔리는 것은 이름들이었는데 창비 특유의 낯선 번역(예를 들어 톨스토이가 아니라 똘스또이로 번역)까지 더해지니 3권을 다 읽는 동안에도 결국 그 이름들과 가족관계는 다 파악하지 못했다;;;

대표적 인물들의 이름들과 관계를 예로 들자면,

물리학자 빅또르 파블로비치는 주로 시뜨룸이라고 불리고 때론 비쩬가 라던가 비쨔라고도 불린다. 여기에 별칭이 더 있었던 것 같긴한데;;;;

아내 류드밀라의 여동생 예브게리나 니꼴라예브나 는 주로 제냐 라고 불리고 전남편 니콜라이 그리고리예비치는 주로 끄리모프로 현연인 뾰뜨르 빠블로비치는 주로 노바코프로 불린다. 류드밀라의 아들은 주로 똘랴 라고 불리는데 세료자 샤뽀시니코프 가 원래 이름인것 같다. 똘랴는 류드밀라의 전남편 모스똡스코이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다. (모스똡스코이가 류드말라의 전남편인지 전아버지인지 사실 잘 모르겠다;;; 같은 이름을 대대로 쓰는 유럽식 네이밍이라;;; 여하튼 똘랴는 류드밀라와 전남편 사이의 아들이다) 그리고 이들을 부르는 별칭들이 아마 더 있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이름도 이런 식이다;;;;

이렇게 긴 이름들도 입에 잘 안붙는데 별칭들이 하도 여러개라 그사람이 그사람인지 헤깔리고 그 헤깔리는 이름들 속에 가족관계까지 얽혀 있으니 누가 누구의 아들이고 딸이고 동생이고 손녀이고 남편인지 잘 모르겠다;;; 책 앞부분에 가족관계도를 첨부해주었으면 좋았을 껄 싶은 심정이다. ㅠㅠ

여하튼 소설의 시작은 독일의 한 수용소다. 여기에 볼셰비키 모스똡스코이와 멘셰비키 체르네쪼프 그리고 똘스또이주의자이자 신부 이꼰니코프 모르시의 대화와 상황들로 전쟁 속 러시아 모습의 한 단면이 묘사된다. 원래는 정치범 수용 였으나 전쟁 후 형사범이며 이런저런 다양한 죄목들의 죄수들이 함께 수감되면서 정치범들은 모두에게 가장 만만한 약자들이 되었다. 그렇게 모여진 '수용소들은 새롭게 확장된 신유럽의 도시가 되었다. (p. 17)'

소문들은 늘 새빨간 거짓말이었고, 이것이 바로 수용소 인간들의 아편이었다. (p. 21)

이 무시무시한 독일 수용소에서 다시금 그는 확신과 자신감을 느끼고 있었으나, 딱 한가지 불안이 그를 짓누른 채 떠나지 않았다. 청년 시절의 명확하고 온전한 감각, 즉 동지들 사이에서는 동지가 되고 낯선 이들 사이에서는 낯선 이가 되는 감각을 도무지 되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p. 34)

그가 청년 시절 감옥에 있었을 때와 지금의 가장 큰 차이였다. 전에는 친구들이나 동지들과 있을 대면 모든 것이 친근하고 이해 가능했다. 적의 생각과 적의 시각은 그 하나하나가 낯설고 야만스럽게만 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낯선 이의 생각 속에서 갑자기 수십년 전 그에게 소중했던 것을 만나는가 하면, 어찌 된 영문인지 친구들의 생각이나 말에서 낯선 것이 보이곤 했다. (p. 34)

사실 소련 전쟁포로들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조국을 배반하느니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블라소프 군대로 들어갈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대화와 논쟁을 거듭할 수록 이들은 서로를 점점 더 이해할 수 없었고, 결국 상대에 대한 증오와 경멸에 가득 차서 입을 다물어버렸다. (p. 36)

이 벙어리 같은 웅얼거림과 눈먼 대화 속에, 공포와 희망과 고통으로 묶인 이들의 빽빽한 뒤섞임 속에, 같은 언어로 말하는 사람들 사이의 몰이해와 증오 속에, 20세기의 재앙들 중 하나가 비극적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p. 37)

1권

모스똡스코이는 철저한 공산주의자 였다. 뒤에 나올 끄리모프 또한 그렇다. 하지만 전쟁이 계속될 수록 공산주의자들은 자신의 조국이 자신들의 이상을 실현한 국가가 아니라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목숨바쳐 이룩했지만 국가는 그들을 버렸다. '종종 전쟁을 예술이라 부를 권리를 부여하는 근거는 바로 이러한 변환을 이해하는 데 있다. (p. 61)'

네게 다른 이야기도 들려주고 싶구나. 사실 나는 한번도 내가 유대인이라고 느껴본 적이 없어. 어릴 때부터 러시아 친구들 속에서 자랐고, 무엇보다 뿌시긴과 네끄라소프의 작품들을 사랑했거든. (p. 121) 하지만 지금, 이 끔찍한 나날에 대한 내 심장은 유대민족에 대한 모성애로 가득 차 있다. 예전에는 몰랐던 사랑이지. 이 사랑은 너, 소중한 내 아들을 향한 사랑을 상기시킨단다. (p. 122)

희망이란 거의 언제나 이성과 상관없는 부조리한 것이라는 사실을 난 여기서 알았다. 희망을 낳는 것은 본능이라는 사실도. (p. 124) 게토만큼 희망이 넘치는 곳은 어디에도 없을 거다. (p. 125)

1권

시뜨룸의 어머니는 우끄라이나에서 게토로 몰렸다가 결국 수용소 가스실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시뜨룸은 한번도 자신이 유대인이고 자신의 어머니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유년 시절에든 학창 시절에든 어머니가 이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모스끄바 대학에 다니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학생이나 교수나 세미나 강사도 이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다. (p. 132)' 하지만 독일점령지 수용소에서 죽은 유대인어머니는 소련에 사는 아들 시뜨룸에게 앞으로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주로 외부적으로.

류드밀라는 아들 똘랴의 편지를 받고 고생고생하여 병원에 서둘러 갔지만 묘지앞에서 이름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소피야 오시뽀브나는 삶과 생존의 차이를 알 것 같았다. 삶은 갑자기 중단되고 생존이 아주 천천히 지속되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토록 비참하고 하찮은 생존이었으나, 강요된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 온 영혼이 공포로 가득 차는 것 같았다. (p. 297)

인간의 집단학살이 행해지는 곳의 주민들도 말살될 노인, 어린이, 여자 들에 대한 피에 굶주린 증오에 사로잡혀 있지 않다. 따라서 인간의 집단학살 캠페인은 특별한 방법으로 준비해야 한다. 이 경우, 자기보존 감각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기서는 주민들의 혐오와 증오를 일깨워야 한다. 바로 이 혐오와 증오의 분위기 속에서 우끄라아니와 벨라루스의 유대인 말살이 준비되고 실행되었다. 바로 같은 땅에서, 한창때 스딸린은 군중의 격분을 동원하고 선동함으로써 부농이라는 계급을 말살하는 캠페인, 뜨로쯔끼-부하린주의 쓰레기들과 방해분자들을 박멸하는 캠페인을 실행했었다. 경험으로 확인된바, 이런 캠페인에서 주민의 대다수는 최면술에 걸린 듯 권력의 모든 지시에 복종하게 된다. 주민 집단 속에는 캠페인의 분위기를 만드는 소수가 있다. (p. 318)

1권

항상 이런 소수들이 문제였다. 항상 이런 소수들이 권력의 최상층을 점유하는 것이 문제였다.

이 소설은 긴 전쟁중 6개월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기를 배경으로 하지만 서사의 진행이 완전히 연대기적은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류드밀라는 1권 초기에 아들 뽈랴의 묘지에 다녀왔는데 1권의 말미에서 뽈랴는 '6동1호'에 참전중이다. 여하튼 똘랴는 만나이로 19세였다.

기계 조립공이 필요한데 남은 게 탁아소 예산분이면 난 기계 조립공들을 탁아소로 보내는 보모들로 기입해서 신청합니다. 중앙집권화가 아주 목을 졸라맨다니까요! 어떤 발명가가 공장장에게 제품 이백개가 아니라 천오 백 개를 한꺼번에 생산할 방법을 제안했더니 공장장은 그를 골칫거리로 여기고 쫓아내버렸어요. 계획에 맞춘 양만큼 생산하는 게 더 마음 편하니까. 만약 시장에서 30루블만 주면 살 수 있는 자재가 없어서 공장이 멈춘다 해도, 그는 2백만 루블의 손실을 입을지언정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을걸요. (p. 430)

1권

이 작품에서 순간적 충격을 주는 사건이 유대인학살이라면 작품 전반적으로 지속해서 충격을 주는 사건은 강제집단화 이다. 저자 자신의 성장배경도 그러하고 작품 속 주요 캐릭터들의 성장배경도 모두 지식인 층이다. 즉 강제집단화와 강제평등화가 불리하고 불편했던 입장의 사람들.

"명심해, 비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 그리고 닿게 돼 있어. 자칫하면 당신 자신과 나, 그리고 아이들까지 파멸하게 돼"

"나 당신에게 전부는 말 못해. 제발 아무한테도, 아무 말도 하면 안 돼. 빅또르, 우리는 무서운 시대를 살고 있어. 당신은 상상 못해. 명심해, 빅또르. 아무와도 한마디도 얘기하지 마......" (p. 445)

1권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말들이 너무 많은 사람들의 입 밖으로 나온 이후의 시대였다. 그 말들을 뒤늦게 모으고 있는 세력들이 있다는 건 나중에야 깨달았다. 빅또르도. 모스똡스코이도. 끄리모프도.

아직 몰랐을때 빅또르는 학자로서의 자존감이 하늘을 찔렀고 모스똡스코이는 수용소에서조차 공산당의 조직적 활동을 재개했으며 끄리모프는 웅변과 선동으로 공산당에 충성을 바쳤다. 그들은 모두 공산주의자 지식인이었으나 국가는 이미 공산주의의 탈을 쓴 민족주의로 변하고 있었다. 독일과의 전쟁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었다.

우리의 관료주의가 국가라는 몸에 난 혹이 아니라 관료주의 자체가 바로 국가라는 생각을 하면 끔찍할 뿐이오. 혹은 떼어버릴 수나 있지. 전시에 간부들과 수뇌부를 위해 죽을 마음을 먹는 사람은 아무도 없소. 그런 비열한 놈들이 청원에 '거절'이라 적고 과부를 집에서 내쫓는 거요. 하지만 독일인을 내쫓는 일은 강하고 진정한 인간만이 할 수 있소. (p. 114)

젊은 유대인 바보와 그의 제자인 늙은 러시아인이 폭력으로는 악을 막을 수 없다고 설파했지. 하지만 그 사람들이 살던 시절엔 파시즘이 없었어. (p. 354)

2권

솔직히 1권을 읽는 동안은 사람과 시간과 사건이 뒤섞이며 정리가 안되서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1권의 고비를 넘고나면 2권과 3권은 비교적 술술 읽힌다. 1권에서 언급됐던 것들의 상세버전 같았달까. 1권에서 사람도 시간도 사건도 여하튼 모든 다양한 것들이 펼쳐지고 2권에서 가속도가 붙다가 3권에서 급정지 한다. 죽음과 파멸 속으로.

붉은군대 병사에게 공산주의자가 구타당하는 모습을 보이다니! (p. 12) 저런 젊은이를 위해 위대한 혁명을 이루었는데. 자신이 직접 그 혁명에 참가했는데. (p. 13) 포위를 뚫고 사람들을 구출했던 그, '꼬미사르 동지'라 불리던 공산주의자인 그가 다른 공산주의자에게 심문을 받고 두들겨맞았으며, 어느 집단농장 출신의 젊은 병사가 그 모습을 혐오 섞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자유박탈'이라는 말의 엄청난 의미를 아직 인식할 수 없었다. 이제 그는 다른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고, 그의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바뀌어야 했다. 그는 자유를 박탈당했다. (p. 13)

3권

공산주의 국가라고 불리는 곳에서 진정한 공산주의자들은 하나둘 사라져가는 시대였다.

그들은 전쟁은 왔다 가지만 정치는 남는 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p. 59)

스딸린그라드의 승리가 전쟁의 결말을 결정했지만 승리한 국민과 승리한 국가 간의 말없는 다툼은 지속되었다. 이 다툼에 인간의 운명이, 인간의 자유가 달려 있었다. (p. 76)

세가지 거대한 사건이 삶과 인간관계에 대한 새로운 재인식의 주춧돌이었다. 이는 농촌의 집단화, 산업화 그리고 1937년 이었다. 이 사건들은 1917년 10월 혁명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인민 계층들에서 변동과 교체를 가져왔으며, 이러한 변동은 러시아 귀족계급, 산업 부르주아계급, 상인 부르주아 계급의 말살에 못지않은, 더 큰 숫자의 사람들의 육체적 말살을 동반했다. 스딸린이 주도한 이 세가지 사건은 새로운 소비에뜨 국가, 일국 사회주의 건설자들의 경제적·정치적 승리를 의미했다. 동시에 이 사건들은 10월 혁명의 논리적 결과이기도 했다. (...) 하지만 이 체제의 기반에는 국가민족주의적 성격이 자리하고 있었다. 전쟁은 전쟁 이전부터 이미 잠복하여 진행되던 현실의 재인식 과정을 가속화했고 민족의식의 발현 또한 가속화했으니, '러시아'라는 단어가 다시금 생생한 의미를 얻었다. (p. 87)

3권

정치는 한 사람에게 넘어갔고 국민은 국가에게 패했다. 운명은 삶을 지속시키되 자유는 사라지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듯 했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독일이 침공하지 않았다면 러시아는 어떤 모습이 됐을까... 어차피 뜨로쯔키를 죽이고 스딸린이 권력을 잡았으니 결국은 같은 모습이 됐으려나...

"빅또르 빠블로비치, 제발 부탁합니다. 저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부탁이에요. 자아비판 편지를 쓰세요. 틀림없이 도움이 될 겁니다. 생각 좀 해보세요. 지금 당신 앞에 엄청난... 뭐 겸손하게 말할 필요 있나요... 그야말로 위대한 작업이 놓여 있는 이때, 우리 과학의 생생한 힘이 희망을 품고 당신을 바라보는 이때, 이렇게 갑자기 모든 것을 파탄으로 몰아가다뇨. 제발 편지를 쓰세요. 과오를 인정하세요" (p. 96)

3권

러시아 과학계에 큰 파장을 던질만한 연구성과를 거두고 있는 빅또르 였으나 휘몰아치는 정치광풍에 쓰러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유대인이었으므로. 출신이 그의 과오였으므로.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사랑이 싹트니 시대가 기이해서인지 사랑도 기이한 상대에게 느꼈다. 제냐는 장군의 아내가 아니라 전남편 끄리모프의 옥중수발을 선택하고 빅또르는 절친의 아내이자 자신의 아내의 절친에게 고백을 하고.

제냐는 그럴 수 있다쳐도 솔직히 빅또르의 사랑은 이 작품속 옥에 티가 아닐까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거대한 작품에 이런 사랑을 집어넣은 것은 작가의 경험이자 인생의 선택이기도 했던 자신의 사랑에 대해 소설로나마 인정받고 싶었던 걸까...

그는 어머니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무의식적으로 마음을 바꾼 순간, 분명 어머니가 그의 곁에 계셨을 것이다. 마음을 바꾸기 일분 전만 해도 그는 연구소로 가 히스테리에 가까운 자아비판을 쏟아내기를 진심으로 원했었다. 이렇게 흔들림 없는 것으로 느껴지는 그의 최종적 결심이 이루어졌을 때, 그는 신에 대해서도 어머니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의 곁에 있었던 것이다. (p. 137)

알렉산드라 블라지미로브나는 한꺼번에 세통의 편지를 받았다. 두통은 딸들에게서, 한통은 손녀에게서 온 것이었다. 필체를 보고 누가 보낸 것인지 깨닫자마자, 알렉산드라 블라지미로브나는 그 안에 유쾌한 소식이라곤 전혀 없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아이들이 기쁨을 나누기 위해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는 경우는 없다는 걸 그녀는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셋 모두 그녀더러 와달라고 청했다. 류드밀라는 모스끄바로, 제냐는 꾸이비세프로, 베라는 레닌스끄로, 이 초대들을 통해 알렉산드라 블라지미로브나는 딸들과 손녀 모두 고달프게 지내고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p. 176)

3권

어머니가 평소에 어떤 삶을 사는지 자식들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심지어 그 어머니들이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이 됐을 때에도. 하지만 자신들이 불안하고 고달플때엔 어머니를 찾았다. 죽은 어머니든 살아있는 어머니든.

그런데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작가가 혈연을 중심으로 한 국가의 민족주의에 대해선 날을 세우면서도 어머니를 비롯한 혈연관계의 가족주의에 대해선 너무 추앙적인 것이 아닌가하는... 둘다 그닥 좋아뵈지는 않는데 말이다...

"있잖아, 귀여운 이모. 구세대 사람들한테는 뭔가를 믿는 게 필요한가봐. 끄리모프에게는 그게 레닌과 공산주의고, 아빠에게는 자유고, 할머니에게는 인민과 노동자들이지. 하지만 우리 신세대의 눈에는 그 모든 게 어리석어 보이거든. 도대체가 믿는다는 게 어리석단 말이야. 믿지 말고 살아야 해" (p. 221)

3권

시뜨룸과 류드밀라 사이의 딸 나쟈는 십대소녀이고 작품속에서 가장 어린 목소리를 담당한다.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믿는 구세대를 어리석다 말하며 믿음 자체에 대한 불신을 갖게 된 신세대가 세월이 흘러 구세대가 된 지금의 러시아에선 과연 신세대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그들의 목소리는 어디에 있나...

"안녕하십니까,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시뜨룸은 놀랐다. 자신이 정말 이 상상할 수 없는 말을 전화기에 대고 한 것인가, "안녕하십니까,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라고? (p. 239)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는 스딸린이다. 에혀 정말이지 이 작품속에서 이름들이란;;; 여하튼 위기의 순간 시뜨룸은 스딸린의 전화를 받는다. 과연 이들 가족 개개인의 삶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 책속에서 확인할 수 있기를.

죄인과 의인 모두 나약할 수 있다. 그들의 차이는, 보잘것없는 자는 좋은 행동을 한 뒤 평생 이를 자랑하는 반면, 올바른 사람은 좋은 일을 하면서도 스스로 이를 모르며 자신의 잘못은 오랫동안 기억하는 데 있다. (p. 358)

전쟁속 거대한 서사로 시작하는듯 했던 이 작품은 작가 개인의 잘못된 사랑과 잘못된 선택이 고스란히 투영된 소설속 시뜨룸의 사랑과 선택에 대한 자기변명으로 마무리된다. 다양한 인간 군상과 개개인의 사연들을 통해 전쟁이라는 폭력을 현실적으로 묘사했지만 주인공 시뜨룸에게 집중해본다면 시뜨룸=작가의 참회록이었달까. 그리고 삶은 여전히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했다. '모든 것이 고요하고 전쟁은 스딸린그라드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물러났지만, 그와 함께 돌아온 것은 평안이 아니었다. 고요와 함께 돌아온 것은 슬픔이었다. 공중에 독일 항공기들이 울어대고, 폭탄이 터지고, 삶이 화염과 공포와 희망으로 가득하던 시절이 오히려 수월했던 것만 같았다. (p. 375)'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온 마음으로 인지하고 이해하는 것은, 비록 그녀는 물론 그들 중 누구도 자신을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기는 해도, 그리고 무서운 시대에는 인간이 이미 자기 행복의 대장장이가 아님을, 사면하고 처형하고 영광으로 들어올리고 곤궁으로 처박고 수용소의 먼지로 변화시키는 권리가 세계의 운명에 맡겨져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알고 있기는 해도, 그럼에도 인간이라고 불리는 존재들을 변화시키는 권리는 세계의 운명, 역사의 치명적인 숙명, 국가의 분노, 전투의 영광과 치욕에 맡겨지지 않는다는 진실, 그들을 기다리는 것이 노동의 영광이든 고독이든 절망과 곤궁이든 수용소와 처형이든, 그들은 인간으로서 이를 겪어낼 것이고 인간으로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진실, 죽음을 당한 사람들은 인간으로서 죽을 수 있었다는 진실, 그리고 여기에, 세상에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있을, 왔다가 가버리는 모든 거대하고 비인간적인 것에 대한 그들의 영원하고 비통한 인간적 승리가 있다는 진실이다. (p. 390)

이 진실이 '삶과 운명'이 될 수 있도록 바라는 작가의 희망도 여실히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ps. 거의 다큐에 가깝게 읽혀지는 이 작품은 그렇기에 더욱 묵직하고 그렇기에 더욱 천천히 읽혀지는 소설이다. 전쟁이 삶을 폭발시켜 버린듯 파편적으로 나열되는 사람과 사건들은 시간의 연속성과 관계없이 조각난채 방치되어 있고 이를 묶어내기엔 나의 역량이 모자랐기에 이 거대서사를 완독하고서도 그닥 만족스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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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여행자를 위한 노르망디×역사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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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사의 핵심 고리이자 찬란한 예술가들을 품은

아름다운 지방 노르망디로 떠나는 여행

역사와 예술이 짙게 밴 노르망디의 시공간을 만나다

중세역사책들을 읽다가 주경철 교수의 책도 읽게 된 적이 있었는데 역사를 삶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솜씨가 무척 훌륭했다. 역사책이라기 보다는 일상적 이야기처럼 읽어지는 저자의 책들을 시간되는데로 좀더 읽어봐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신간이 나왔다. 게대가 여행과 역사의 조합이라니, 왠만하면 재미없을 수가 없는 조합이다. 이 조합에 저자의 글솜씨까지 더해졌다면!!!

이 책에서 노르망디 지방을 소개할 때는 단순히 멋진 관광지를 따라간다기보다는 역사의 현장을 찾아간다는 의미를 더하고자 했다. 말하자면 노르망디라는 '공간'을 이동해 간다기보다는 지난날 사람들의 삶의 자취가 녹아 있는 '시공간'으로 들어가 본다는 의미다. 그런 여행이 훨씬 더 진한 경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p. 6) 한 권의 책에 담기 위해 일종의 문화·역사 여행 내러티브를 만들어 보는 일 자체가 너무나도 즐거운 일이다. 기억을 재구성하는 일은 우리의 느낌을 더 강화하는 모양이다. (p. 8) -프롤로그 中-

역사나 여행관련 책 중에서 가끔 지도가 없는 책이 없다. 그러면 안된다. 역사이야기와 여행이야기에서 지도는 필수다. 저자가 역사가이니만큼 지도에 대한 센스가 좋았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책 앞부분에 접혀있는 지도를 펼치면 노르망디의 지도가 크게 펼쳐지고 매 글마다 그 장소가 어디인지 꼬박꼬박 지도에 표시해 놓았다. 이 정도 지도가 있어야 역사와 여행을 즐기는 기분이 제대로 난다. 역시 주경철 저자의 책은 믿고볼만하다.

책의 구성은 크게 6부로 이루어져 있다. 주제구분이라고 볼 수 있는데, 수도원 기행으로 노르망디의 역사와 여행의 맛을 한번에 알려주는 것을 시작으로 중세의 노르망디 역사 기행을 거쳐 노르망디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을 통해 근현대로 넘어온 후 노르망디 해안 도시 기행부터는 본격적인 도시탐방기이다. 노르망디는 세계대전 당시 격전지였던 만큼 5부를 통틀어 전쟁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마지막 6부에서의 미식 기행으로 이 책은 맛있게 마무리된다. 부록에서 각 기행별로 추천코스 정리해놓은 것을 보니 여행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이 책은 여행을 가고 싶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구나 싶었다.

1500년 전 몽생미셸은 그런 곳이었으리라. 오늘날의 화려한 건물은 찾을 수 없고 단지 버려진 바닷가, 밀물 때는 섬이 되었다가 썰물이 되면 다시 육지와 연결되는 세상 긑, 날것 그대로의 고독 속에 고립된 섬. 그곳에 거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아주 작은 교회 한 채에 불과했으리라. 그렇지만 세상은 변하는 법, 수 세기를 거치며 수도원 건물과 부속 건물, 성벽, 마을이 들어서면서 섬은 점차 웅장한 모습으로 바뀌어 갔다. (p. 20) 신통하게도 설화보다 실제 사실이 더 오래되었다. (p. 23)

책의 표지사진에 등장하는 곳이기도 하고 이 책의 첫 장소이기도 한 몽생미셸 수도원 이야기부터 단번에 빠져들었다. 과거의 이야기 그리고 변화되어온 과정 무엇보다 그 속에서 만들어진 이야기의 배경을 읽다보면 역사이건 여행이건 무엇이되었건 결국 그 모두가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그때 사람들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를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 인생샷 포인트까지 미리 알게되는 덤까지. ㅎㅎ. 예를 들어, 몽생미셸 수도원을 찾아가는 길 평원에서 까만 머리의 양들을 찾을 것! 같은 것들?! ㅎㅎㅎ.


5~6세기경 프랑스 북서부 지역에 기독교가 전파되었을 때, 새 종교를 수용한 곳은 우선 도시였다. 몇몇 도시에 전도사들이 먼저 들어오고 주교들이 자리 잡은 후 성당을 지었다. 이후 도시 외곽 지역과 시골로 기독교 신자는 도시 주민인 반면, 농민 대부분은 기독교 이전의 이교 신앙을 고수했다. 케르눈노스 같은 옛 켈트 신 숭배, 늑대인간 류의 민간 신앙, 혹은 샘이나 큰 나무에 살고 있는 정령들에 복을 비는 기복 신앙 등이 그런 종류다. 기독교를 수용한 사람 입장에서 보면 시골 사람들은 '이교도 pagani'다. '파가니pagani'는 라틴어 '파구스pagus'에서 나왔는데, 이 말은 '농민paysan'을 가리키는 동시에 '이교도paien'을 가리킨다. (영어 단어로는 peasant와 pagan이다) 말하자면 도시에서는 문명화와 기독교화가 이루어지는데, 시골에서는 예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고 여전히 과거의 촌스러운 이교 신앙을 지키고 있다는 식이다. 초기 기독교 성인의 놀라운 이적을 이야기하는 성인전에서 이전 종교는 흔히 용 같은 괴물로 등장하고, 성인이 이런 괴물을 처치하곤 한다. (p.48)

이 책을 읽게 된 계기가 노르망디의 역사가 궁금해서였고 저자의 본업이 역사가인만큼 이 책에서 내게 재밌는 부분들은 당연히 역사 이야기들이었다. 역사관련한 깨알상식들 배우는 재미가 쏠쏠했달까. 노르망디의 시작은 바이킹 시대부터다. 2부에서 펼쳐지는 본격적인 노르망디 역사 기행이야기들은 내게 이 책의 하일라이트였다.

노르만 정복 이후 잉글랜드의 주요 건물들은 윌리엄이 가지고 간 캉 지역 석회암으로 지었다. 대표적으로 런던탑은 윌리엄이 1070년대 지시하여 캉의 석재를 들여와 지었다. 그 외에 캔터베리 대성당, 웨스트민스터 사원 등도 부분적으로 캉의 석재를 써서 건축했다. (p. 112, 115)

노르망디의 역사 이야기들은 프랑스와 영국의 관계가 엎치락뒤치락 하는 이야기다. 이렇게 보면 역사는 결국 전쟁이야기인건가 싶어지기도...

'19세기 민족주의가 불타오르면서 프랑스 교회가 잔 다르크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신앙심과 애국주의가 연결되었다. 이런 노력이 20세기에 결실을 거두어 1920년 5월9일 교황 베네딕토 15세가 잔 다르크를 성인으로 축성했다. (p. 138) 이 신비의 소녀는 매 시대 모든 정파들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했다. (p. 143)'

만들어진 신화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역사도 결국 만들어진 이야기인건가 싶어지기도 하고...

가장 중심이 되는 성당은 흔히 루앙 성당이라고 칭하는 노트르담 성당이다. 노트르담 성당은 파리에만 있는 게 아니다. 노트르담이라는 말은 성모를 뜻하며, 따라서 성모를 모시는 성당이야 전국 곳곳에 있다. 다만 파리의 노트르담이 그중 제일 유명한 것은 사실이다. (p. 144)

애트르airte라는 말은 라틴어 아트리움atrium에서 나온 말이다. '아트리움'은 뜻과 어감이 좋아서인지 우리나라에서 카페 이름으로 많이 쓰인다. 원래 고대로마 건축물 중 안뜰을 가리키는데, 중세 교회의 안뜰은 다름 아닌 묘지였다. (p. 146)

신화가 되었건 정치가 되었건 여하튼 역사이야기는 재밌다. ㅎ

외젠 부댕, 라울 뒤피, 마르셀 뒤상처럼 노르망디에서 태어난 예술가들뿐 아니라 외지인 중에도 노르망디의 따스한 풍경에 이끌려 이곳에 머물며 작품 활동을 한 사람이 많다. 윌리엄 터너, 카미유 피사로, 알프레드 시슬레, 오귀스트 르누아르, 폴 고갱, 파블로 피카소부터 최근 노르망디에 정착한 데이비드 호크니까지 많은 작가들을 헤아리게 된다. (p. 149)

밀레는 (...) 노르망디 출신이고 그가 그린 농민들은 쉽게 말해 노르망디 농민들이다. (p. 193) 유명한 <만종>의 주인공은 그의 할머니로 알려져 있다. (...) 사실 이 그림에는 숨은 수수께끼가 있다. 현재 우리가 보는 그림에는 기도를 드리는 남녀 사이에 감자바구니가 있지만, 원래 밑그림에는 관으로 추정되는 작은 나무 상자가 있었다. 1932년 한 정신이상자가 칼로 이 그림을 찢는 사고가 일어난 것을 계기로 이런 사실이 알려졌다. (p. 194) 흥미로운 것은 에스파냐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이 그림을 좋아하여 패러디 작품을 만들기도 했는데, 이 그림의 감자바구니 아래 아기의 관이 느껴진다는 글을 썼다. (p. 196)

노르망디 기행에서 이렇듯 많은 예술가들을 이렇게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알게 될지 미처 몰랐다. 예술가들의 이야기는 늘 흥미롭다. 이 책을 통해 '루앙 미술관'에 대해 알게 됐는데 프랑스에 가게 된다면 루브르 보다도 루앙에 꼭 가봐야 겠구나 싶어졌다. 이곳 출신 예술가들은 화가들 뿐만이 아니었다.

옹플뢰르는 에릭 사티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가 태어난 집은 현재 메종 사티라는 이름의 기념관이 되었다. (p. 268) 그는 몽마르트 언덕의 카바레 '검은 고양이'에서 일자리를 얻어 연주하며 생활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사라방드>, <짐노페디>,<그노시엔>등이 이 시기의 작품이다. 세기말 몽마르트는 낭만적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 예컨대 세르게이 디아길레프가 세운 발레 뤼스가 발표한 발레 작품의 경우, 대본은 장 콕토가 쓰고 무대와 의상은 피카소가 맡았으며, 음악 담당은 에릭 사티였다. 그야말로 별들의 모임이다. (p. 269)

'짐노페디'는 사전에 없는 단어다. 문학을 즐겼던 사티는 플로베르의 소설 <살람보>와 고대 그리스 춤에서 영감을 얻어 <짐노페디>를 만들었다. 고대 그리스의 토기 암포라에 그리스 소년들이 나체로 춤을 추면서 디오니소스를 찬양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그 그림을 보고 만든 곡이라고 한다. (p. 272)

에릭 사티 관련 해서 수잔 발라동과의 이야기도 나오는데, 많은 화가들의 뮤즈였던 수잔 발라동의 이름이 낯설지 않았지만 피아노맨 에릭 사티와의 사랑 이야기는 또 새로운 것이었다.

19세기 사람들은 어떻게 해수욕을 했을까? 특히 여성들은...? 1865년 부댕이 그린 <도빌에서 해수욕 하는 시간>이라는 작품을 보자. 바닷가에 하얀 천막이 보인다. 일명 '해수욕 기계'다. 여성들이 이 안에 들어가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벗고 해수욕 복장으로 갈아입으면 말이 이 '기계'를 끌고 바다로 들어간다. 그러면 여성이 바다로 들어가 남자들 눈을 피해 해수욕을 즐긴다. 그후 다시 '기계'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은 후 바깥에 깃발을 꽂으면 말이 해안으로 끌고 온다. (p. 277, 279)

이 책의 재미 중 하나는 이렇듯 번외편 이야기들도 풍부하다는 점이다. 저자의 역량이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휴양지 도빌 해안가를 설명하며 그림이야기와 승마이야기까지 자연스럽게 풀어지는 그 이야기들 속에 빠져들다보면 어느새 정말 여행하는 기분이 된다. 이 책 한권으로 얼마나 다양한 여행경험을 하게 되던지. good~!

영화는 당시 상륙작전 상황을 나름 긴장감 넘치게 재연했다. 그렇지만 미군과 연합군을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십자군인 양 그렸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인간적인 미군과 악마 같은 독일군을 대비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도 사정은 비슷하다. 군인들은 영웅이기 이전에 그냥 인간이었다. 이들을 사악한 나치에 맞서 유럽을 해방시키겠다는 신념 가득한 용사로 그리면 안 된다. 군인들로서는 그런 신념은 거의 없고 단지 자신들의 임무를 끝마치고 빨리 귀국하고 싶어했다. 특히 6월10일부터 7월 25일까지 지속된 보카주 전투에서 지극히 힘든 상황을 겪을 때 자해, 탈영 사건이 많이 벌어졌고 그렇게까지는 아니지만 탈진해서 입원한 군인들도 많았다. 절도, 약탈, 강간 사건들이 빈발했으나, 헌병들은 용인하곤 했다. 신화는 이런 것들을 숨기려 하지만. (p. 336)

'군인들은 새벽5시부터 밤10시까지 전투를 벌였고 스트레스는 알코올과 섹스(강간)으로 풀었다. 미군과 시민 사이의 갈등이 커진 것도 불문가지다. (p. 328)' 신화는 옛날에만 있던 것이 아니다. 전쟁은 현대에만 참혹했던 것도 아니다. 인간들의 이야기 속엔 언제나 만들어진 신화와 참혹한 전쟁이 있다. 그 모든 것들이 합쳐져 역사가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역사를 읽고 여행한다. 사는 동안.

가장 멋진 여행은 길을 잃어버리는 것, 내가 그 고장의 풍경 속에 녹아 들어가는 것... (p. 394)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마련이다. 같은 곳을 여행해도 느끼는 것은 다 다르다. 누군가는 에트르타의 해안 절벽이 인생 최고의 멋진 명소일 수 있지만, 누군가는 그저 그런 해변 휴양지로 느낄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느끼는 여행지는 아마 없을 터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내용 역시 필자의 여행 보고서일 뿐이지만 노르망디를 여행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자신만의 멋진 여행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경험을 참고하면 좋지 않겠는가? 더욱 멋지게 길을 잃기 위해 오히려 약간의 사전 지식이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 (p. 395) -에필로그 中-

내가 먹는 것에 큰 흥미가 없는 편이라 마지막 이야기인 미식 기행에서 그리 큰 감흥을 얻진 못했지만 자세한 요리설명과 식당이름까지 알려주고 있으니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어찌되었든 여행도 하고 이렇게 책도 쓰고 저자가 참으로 부러울 따름이다. 부러운건 부러운거고 여하튼, 저자가 안내해주는 노르망디 여행은 참으로 훌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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