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 - 경성에서 서울까지, 시간을 건너는 미술 여행
우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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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숨결과 현대의 몸짓이 맞물리는 우리 그림 이야기

이 책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원인 저자가 <한겨레>토요판에 연재한 미술 칼럼 '우진영의 한국 근현대 미술 잇기'와 이후 웹진 <아르떼>로 지면을 옮겨 연재한 미술칼럼 '우진영의 한국 근현대 미술 산책' 글들을 보완해 만들어졌다.

원래 예술가가 되고 싶어 어린 시절 거의 모든 예술 분야의 사교육을 받았다는 저자는 나름 좋아했고 꽤 열심히 했지만 사춘기 무렵 '내게는 예술적 재능이 없다'를 깨닫고 미술사학도가 되었다고 한다.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전공한 저자에겐 '쓰고 싶다'는 강한 열망까지 있어 그림을 보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고 이렇게 책까지 나왔으니 요즘말로 성공한 덕후가 아닐까 싶다.

총5부로 구성된 이 책에선 매 글마다 두 명의 화가가 다루어 진다. 한명은 근대, 한명은 현대다. 한국 서양화의 역사는 길지 않기에 사실 근대와 현대가 구분이 되려나 싶기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거의 매글마다 덧붙여진 현대화가 작가들의 인터뷰에선 매번 비슷한 답변이 있었다. '한국의 근대 작가들을 많이 알지는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작가를 알게 되었다' 라고... 그러니 일반 독자로서 우리는 얼마나 생소한 작가들이겠는가, 고로 이참에 한국 서양화가들에 대해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근대 화가와 현대 화가를 묶은 기준은 오롯이 작가의 감상에 따른 결과물이다. 감상이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이라 독자가 보기엔 왜 이 두 화가를 엮었는지 공감이 안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또한 이 책을 감상하는 재미중 하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 책은 읽는다기보다는 감상한다는 마음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내겐 그러했다.

그림을 잘 모르는 나라서 더구나 한국의 서양화에 대해선 거의 무지하다할 정도인 나라서 이 책이 재미가 있으려나 싶기도 했는데, 왠걸 첫 글부터 호기심이 일었다. 근대 화가로 김주경의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풍경]과 현대 화가로 정영주의 [도시-사라지는 풍경531]을 다루었는데 이게 근대와 현대가 바뀐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두 그림에서 느껴지는 시대감이 영 달랐다.

글을 읽어나갈수록 드는 생각이, 근대로 구분된 화가의 그림들을 보면서 그 시대 우리나라에 이렇게 잘 그리는 서양화가들이 많았다고? 싶었다.

내가 서양화라고는 했지만 이게 맞는 표현이 아니긴 하다. 수묵화를 그린 화가들도 다수 등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수묵화도 전통적 방식으로 그려진 것은 아니라 서양화를 배운 사람들이 나름 서양화적 다른 방법을 고민하고 발전시키고 반영하며 그린 그림들이라 또 아주 틀린 표현이 아닌것 같기도 하다.

그림이라는 것이 그리는 사람도 주관적 해석을 해서 그리는 거고 보는 사람도 화가와 다른 주관적 해석을 해서 보는 것이다 보니 때론 화가의 해석을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전문가라고 할 저자도 어떤 그림에선 뭔지 모르겠고 혼란스럽다 하니 일반 독자는 오죽하랴. 하지만 저자는 '그냥 내 식대로 해석하지 뭐'라고 결론 내리고 감상을 넘어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사실 독자로서 따라가기 어려운 부분은 그림에 대한 감상 보다는 이런 저자의 상상의 영역이다. 게다가 저자가 열심히 쓴 문장들을 나름 투영해 볼 대상인 그림이 실려있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어서 대략난감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들어떠하고 저런들어떠하리, 새로운 것을 감상한다는 것 자체가 쉼의 시간을 주는데.

그러니 '미술사는 인문학의 꽃이다. 우진영은 그 명제를 글로 증명해냈다'며 표지에 거창하게 둘러댄 홍보문구처럼 책속에 인문학도 역사도 그닥 없다고 해서 욕할 것 없다. 한국의 근대와 현대에 이런 멋진 그림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만으로도 이 책을 감상할 이유는 충분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의 크기가 너무 작은 것은 좀 아쉬웠다. 하지만 이또한 괜찮다. 그림이 궁금해져야 미술관에 가서 직접 보고싶다는 열망이 생길 테니까.

언제부턴가 이런저런 외국미술관과 협약된 대규모 전시회들이 성황이라는 소식을 심심찮게 듣기도 하고 직접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앞으론 잘 모르는 작가더라도 소규모 전시더라도 부러 찾아가고 싶어질 것 같다. 한국에도 이런 멋진 작품들을 그려내는 화가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 말이다. 그러다 내가 열광할만한 애정하는 화가를 발굴하게 될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그나저나 미술관에 가본지 꽤 오래전인 것 같다. 이 책을 읽고나니 갑자기 너무나 미술관에 가보고 싶어진다. 어떤 그림이든 그림을 보고 일상을 잊고 온전히 그림에 대한 감상만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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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관계 레볼루션 - 기술 패권 시대, 변화하는 질서와 한국의 생존 전략
이희옥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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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정학(技政學)'시대, 살아남을 것인가 도태될 것인가

정치·외교·경제·기술 분야 최고의 전문가 4인이 제안하는

생존을 위한 한국의 선택

'기정학(技政學)'이라는 단어가 낯설어서 이 책에 눈길이 갔다. 미중 갈등이 한두해 된것도 아니고 이 두 강국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 책도 적지 않다. 하지만 서로 다른 분야들이 합심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책이 필요한 때다. 이 책이 그럴 수 있지 않을까. '경제 안보와 기술 패권을 연결하는 기정학(技政學)적 전략 아래, 한국에 '안미경미安美經美'라는 단일 선택을 요구하며 압박 강도를 점점 높이고 있'(p. 7)는 미국의 입장을 제대로 현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면 말이다.

2025년은 중국이 2014년에 야심 차게 입안한 정책인 '중국제도 2025' 10년 계획이 끝나는 해이기도 합니다. (p. 4) 트럼프 2기 정부는 한국이나 일본, 멕시코, 캐나다 같은 미국의 전통적인 우방국들에까지 고율의 관세 정책으로 일관하면서 세계는 빠르게 그리고 불화길하게 바뀌고 있습니다. (p. 6) 이러한 상황에서 미중 패권 전쟁 전개 양상은 결국 한국의 운명과 직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p. 8) 저희의 대담을 통해, 미중 기술 패권 전쟁에서 한국은 반드시 피해자가 될 것이라고 단정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p. 9)

들어가는 말 中

이 책은 성균관 대학교의 각 분야 전문가 4명의 교수 즉,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희옥, 경제학과 교수 김영한, 화학공학부/반도체융합공학과/미래에너지공학과 교수 권석준,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차태서 이렇게 4명이 모여 대담한 내용을 주제별로 정리한 책이다. 대담이다 보니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 대화체로 쓰여 있어서 마치 영상을 글자로 읽는듯 편하게 읽힌다. (조금만 상상력을 가미하여 4명에게 캐릭터와 목소리를 부여한다면 책을 읽는 어느 순간부터는 글자가 말로 들리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다. ㅎㅎㅎ)

4개의 챕터는 그 장의 중심 화두라고 할 수 있다. 1.미국, 무엇을 원하고 어디로 가는가 / 2.미중 경쟁,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3. 한국, 생존할 것인가 도태될 것인가 / 4.길 없는 길 위에서 살아남기 라는 큰주제들은 모두 시대가 던지고 대중이 궁금해하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기에 이 4명의 전문가들이 함께 이야기 나누며 답을 정리해 나가는 과정에 동참하다 보면 어느 순간 고개를 갸웃하게도 되고 어느 순간 깨우쳐지게도 되면서 조금은 희망을 찾게 되기도 한다. 지금 한국에게 가장 큰 고민은 트럼프 2기 정부라 할 것이다. 그러니 일단은 미국의 상황부터 제대로 알아봐야 한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초래한 소득 격차 같은 부작용, 그로 인해 노동 계급의 어떤 분노가 폭발한 것이 포퓰리즘 부상의 주요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것, 이것이 경제적 관점에 따른 설명이고요, 문화적 관점에서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유색 인종들의 이민이 늘었고 북미 지역, 또 서유럽에서는 소위 '다수-소수'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원래 다수였던 인종이 소수화되는 것, (...) 그에 대한 문화적인 불안, 인종적인 불안 같은 것을 백인들이 느끼고, 일종의 반격현상이 발생합니다. (...) 정치의 영역으로 폭발한 것이 미국에서는 '트럼프 현상'이고, 현재 MAGA의 전체적인 배경을 이루게 됩니다. (p. 21, 22)

지금 미국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MAGA 세력이나 그 배경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런데 이 MAGA가 정말 미국의 슬로건인가? 정말 트럼프의 논리인가? 하면 그게 또 단순하게 그렇다고만은 할수 없다고 한다. 미국이 중국에 날을 세운지 꽤 되었고 그에 따라 '신냉전'이라는 표현도 심심찮게 사용되지만 중국은 현상황을 그렇게 보고 있지 않다고도 하고.

지금까지 미중 신냉전, 미중 경쟁을 둘러싼 주된 담론은 보통 미국의 국력을 중국이 언제 따라잡을 것인지, 또는 따라잡지 못하는 것인지 등 미국과 중국 사이의 객관적 국력 격차에 굉장히 주목해 이루어져 왔죠. 그래서 미중 사이의 군사력이나 경제력을 비교하고, 만약 둘 사이의 격차가 사라지게 된다면 전쟁이 발생하는 것은 아닌지 등 미중 관계를 '투키디데스 함정'개념으로 많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국내 상황, 특히 트럼프 등장 이후 약 10년간의 상황을 봤을 때 오히려 투키디데스 함정보다는 '킨들버거 함정'을 주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p. 35)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아테네의 성장에 대한 스파르타의 두려움이 두 국가 간 경쟁을 촉발했다고 평가함으로써 신흥 강대국의 부상이 기존 패권국의 불안을 자극하면 결국 무력 충돌로 이어진다는 것이고, 킨들버거 함정은 1차 세계대전 이후 패권국의 지위를 얻게 된 미국이 보호 무역을 고수하며 패권국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결과 대공황이라는 세계적 혼란이 지속되었고 이것이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고 미국의 경제학자 킨들버거가 분석한 것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이 책에서 한 대담자는 이 킨들버거 함정을 현상황에 빗대며 '탈단극'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미국의 국력이 약해지거나 중국의 국력이 강해져서 생기는 문제보다는, 오히려 미국이란 나라의 '주관적 의지'가 빠르게 쇠퇴하며 생기는 문제가 더 클수도 있겠다(p. 36) 라면서.

과거 사례를 보더라도, 영국도 그랬고 그 이전 패권국도 그랬고 (패권)하강기에는 점차 약탈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거든요. 지금 미국도 점점 더 단기적 국익에 집중하고 동맹국들로부터 조금씩, 어떻게 보면 '조공'내지 '보호세'를 뜯어내려고 하는데, 이게 사실 과거 패권국에서도 어느 정도 보였던 모습이라는 겁니다. 즉 트럼프가 그렇게 특이한 사례는 아니라는 거죠. (p. 50)

읽다보면 미국의 상황은 당연하게도 단순하지가 않다. 트럼프를 선택한 미국인들의 선택이 이해가 안됐었지만 트럼프가 그렇게 특이한 사례가 아닌 것을 보면 가능했음직한 선택이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최근 미국의 경제 관련 지표들이 보이는 부정적인 흐름은 오로지 트럼프 자신이 만들어 낸 거거든요. (p. 53)'라는게 문제다. '예측 불가능한 형태의 협박으로 동맹국에 소위 '삥 뜯기' 전략을 취했을 때 가장 많은 정치적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걸 트럼프 스스로 알고 있 (p. 55)' 다는게 문제다. 이러한 트럼프가 중국에 대해 오판을 하고 있는 거라면? 지리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딱 사이에 끼어 있는 한국은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저런 질문에 대해 답을 정리하는 건 이 책에 대한 스포가 될 것 같아서 이쯤에서 호기심이 생긴다면 책을 직접 읽어보기를 권한다. 200여 페이지의 짧지만 굵은 내용들이 호로록 읽히면서도 묵직한 혜안을 밝혀줄 것이다.


세상을 어떤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느냐, 또 누가 창의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느냐가 더욱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p.205) '좋은 세상'은 계획만으로는 오지 않습니다. 상상과 꿈으로부터 나오죠. 이 꿈이 바로 문제 제기의 영역입니다. (p. 206)

세상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 세상이 망해 가고 있다 라는 말 한번쯤 안해본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정치의 ㅈ만 나와도 설레설레 고갯짓을 하게 되는 사람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좀더 살 만하게 만드는 것 또한 정치의 영역에서 일어난다. 정치의 어둠 속에서 벗어나면서 경제의 희망을 찾아보려고 하는 이때에 우리가 해야할 일중 하나는 질문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질문이 제대로 된 답을 찾게 한다. 한국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두 강대국의 관계에 대해 그 사이의 한국에 대해 질문을 가져보고 책속의 대담자가 되어 함께 이야기 나누듯 이 책을 읽어보자. 어쩌면 책 내용의 이해를 넘어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게 될 수 있을 지도 모르니.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겠다라는 식의 큰 꿈은 버린지 오래다. 하지만 질문하는 정도의 꿈은 지금도 가질 수 있지 않겠나. 더구나 그 질문이 세상을 좀더 살만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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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미술사 - ‘정설’을 깨뜨리고 다시 읽는 그림 이야기
박재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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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의 모든 작품은 선택되고, 때로 오해되었다가, 마침내 되돌아온다

"최초" "원조" "천재"의 신화 너머 섬세하고 입체적인 '두번째 해석'

역사를 좋아해서 역사책을 몰아읽어대던 때가 있었다. 서양사를 파고들다보면 자연스레 접하게 되는 영역이 미술사다. 고대그리스시대부터 예술은 서양사와 그 결을 함께 해온터라 미술사조가 분명했던 건 그만큼 그 시대의 역사에서 예술이 그 색깔로 존재감을 뚜렷이 드러냈다는 의미다. 따라서 그 미술사조가 왜 대표적이 되었나 배경을 찾아보면 역사적 사건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서로 돌고도는 관계가 역사와 미술사였다.

여하튼 그렇게 역사를 읽다보면 자연스레 미술사도 꽤 많이 알게 되는 터라 역사책이 부담스러울때 가볍게 읽게 되는 책이 미술사책이 되기도 했다.눈이 즐겁기도 하고.

왠만한 미술사책들을 읽고나면 사실 미술사도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처럼 큰줄기만 기억하게 되곤 하는데 그럴때 소소하고 세밀한 재미를 주는 책을 곁들이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바로 이 책과 같은 책을 읽어야 할 때랄까.

이 이야기들은 모두 사실일까? 반드시 사실이어야만 의미가 있는 걸까? <두번째 미술사>는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했다. (p. 4) 예술을 둘러싼 수많은 '왜?'를 놓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예술가들의 많은 일화가 사실은 후대에 덧씌워진 이야기들이었다는 점이다. (p. 5) 누가 역사에 남고 누가 사라지는가는 단순히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와 사회가 어떤 이야기를 선택해 기억하는가에 달려 있다. (p. 6) 우리가 왜 특정 이야기를 더 진실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지 그 바탕에 놓인 문화적 욕망과 기억의 힘도 함께 탐구하고자 했다. 결국 이 책은 미술사 자체를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바라보려는 작은 시도이기도 하다. (p. 7)

-프롤로그 中-

우리가 아는 역사는 승자의 역사라고 하지 않나, 미술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아는 과거의 이야기들은 결국 앞선 이들이 남기고자 했던 기록들이기에 우리는 그 기록들 너머 버려졌던 기록들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균형이 맞을 테니까. 그리고 이 감춰진 이야기들이 실은 더 재미있다. 팩트임에도 카더라처럼 알게되는 묘미랄까.

차례를 보면 크게 7개의 질문아래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묶여져 있다. 거장의 신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예술가는 어떻게 브랜드가 되는가, 누가 기억되고 누가 잊히는가, 무엇을 그리고 무엇을 그리지 않는가, 예술가의 뒤에는 누가 있는가, 작품 제목은 왜 문제가 되는가, 미술관은 어떻게 명작을 만드는가. 어떤 질문이 가장 끌리는가? 그 쳅터부터 읽기시작해도 좋을 것이다. 이 책은 시대순서적으로 쓰인 史가 아니라 두번째 미술사니까 말이다.

이미지는 상당 부분 고갱 스스로가 만들어낸 '자기 신화'였으며, 실제 타히티에서의 삶은 훨씬 더 복잡하고 모순적이었다. (p. 34) 식민지 현실 속에서 자신만의 이상을 끊임없이 조작하고 설계해야 했던 예술가(p. 36) 고갱 자신이 타히티 생활을 의도적으로 낭만화 했다(...) 실제 타히티 여성들은 이미 기독교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유럽식 복장을 갖춰 입고 있었고, (...) 고갱이 화폭에 담은 풍경과 인물상들은 결국 존재하지 않았던 원시성을 상상으로 보완한 결과였다. (p. 37) 그는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타히티의 현실을 왜곡했고, 상상 속 원시 낙원의 신화를 창조해냈다. (p. 39)

예술작품에 대한 선호도는 개인의 취향일 테지만 역사적으로 인정받는 명화의 영역에는 어느정도 대중적 공감이 있어야 할텐데, 나는 미술사를 읽으며 가장 공감할 수 없던 명화가 고갱의 작품들이었다. 고갱의 자만심도 거슬렸고. 그가 어느정도 자의적이자 의도적 낭만화를 그렸다는 것은 알았는데 이 책을 읽으며 의도적이라기 보다 거의 사기꾼적으로 자기신화를 만들어냈다는 것을 확인하니 역시 싶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기신화창조가 성공했다는 점이 씁쓸했다. 영웅은 시대가 만들어낸다고 하지않나, 명화도 그러하다, 그 시대에 통할 것 같은 자기신화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영웅이 되고 천재화가가 된다. 우리도 최근 겪지 않았나? 만들어진 신화에 속아넘어간 댓가는 엄청나다는 것을.

1857년 살롱전에 출품한 <이삭줍기>는 노동계급을 내세웠다는 이유로 보수적인 평단의 혹평을 받았지만, 같은 해 그리기 시작한 <만종>은 종교적인 정서를 담은 덕분인지 한층 부드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p. 74) 밀레가 1857년에서 1859년 사이에 완성한 이 작품은 처음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고, 1860년 벨기에 화가 빅토르 드 파펠뢰에게 단돈 1,000프랑에 팔렸다. (p. 75)

주목받지 못하던 그림이 경매에서 미국인에게 넘어가면서 프랑스의 국민작품이 되었다. 당시의 애국심을 건드렸던 이 그림이 프랑스 자산가에 의해 프랑스로 돌아오면서 명실상부한 프랑스 대표 그림이 되었다. 명화는 물론 기본적으로 잘 그려진 그림이어야 하겠으나 대부분 이렇게 당대의 감정을 건드려야 하는 것이다. 이래서 명화는 역사와 땔래야 땔수 없는 것이다. 시대가 만들어내는 신화창조의 결과물이 되기도 하니 그 시대가 무엇을 왜 원하는가는 역사가 알려주므로.

프랑스 법에 따라 기관주문 8점, 개인 주문 4점을 포함한 총12점을 원본으로 간주한다. (...) 1999년 삼성문화재단이 일곱 번째 에디션을 들여오며 한국에서도 <지옥의 문>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는데, 재단은 로댕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기 위한 로댕 갤러리를 별도로 마련한 바 있다. (p. 82)

하지만 지금은 볼 수 없다. 갤러리 이름도 바뀌었고 작품은 어느 수장고엔가 고이 모셔져 있다. 내가 미술사를 진즉 읽었더라면 상설 전시할때 볼 수 있었을텐데... 이젠 죽기전에 한번 볼수 있을지 알수가 없다. 아쉬운 일이다. 여튼 이 옛날에 이런 선구안으로 한국의 예술품 보유 수준을 높여 놓은 것은 대단한 일이다.

드 라 투르의 재발견은 단순히 작가 한 명을 발굴하는 일이 아니라, 미술사 자체가 어떤 '기억'을 선택하고 또 어떤 '망각'을 가정하느냐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예술이 잊히고 다시 소환된다는 건 그 시대의 취향과 문화정치, 철학이 맞물린 복합적인 사건이다. (p. 93) 예술사 안에서 '누구의 목소리가 기록되고, 누구의 존재가 지워졌는가'를 되묻는 일이기도 하다. (p. 95)

드 라 투르 라는 이름이 생소할 것이다. 하지만 그림을 보면 아하! 무릎을 탁 치게 될 것이다. 어디선가 한번쯤은 봤을 법한 유명한 촛불 그림이니까. 그림 제목은 <등불 아래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이다.

정말 칸딘스키 혼자 힘으로 추상미술이 시작된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추상회화의 탄생에는 여러 숨은 주역들이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은 20세기 초 스웨덴의 여성 화가 힐마 아프클린트다. (p. 114)

'최초' 나 '원조' 가 붙은 것들에 우리는 아주 큰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더한다. 하지만 알고보면 '최초'가 최초가 아니고 '원조'가 원조가 아닐 수 있다. 추상미술의 시발점으로 칸딘스키가 거론되지만 그보다 100년 전에 이미 그런 추상미술을 그려낸 화가가 있었다. 그런데 왜 '최초'나 '원조'가 될 수 없었을까? 추상미술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시대적 여건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모든 '최초'와 '원조'에 한번쯤 의심을 가져봐야 한다. 정말 처음이라고? 맛집도 그렇지 않은가, '원조'라고 붙은 곳 치고 진짜 원조가 잘 없는. 창조의 영역인 예술에서도 모든 새로운 것이 갑자기 한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법은 없다. 모든 창조는 다 앞선 이들의 경험이 바탕되었기에 가능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1세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다는 이야기는 오랜 세월 예술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으로 회자되어 왔다. (p. 160) 하지만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그럴싸한 허구'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역사 연구에 따르면 다빈치가 사망한 1519년 5월2일 당시 프랑수아1세는 루아르 계곡에 머물고 있지 않았다. 파리 근처 생제르망에서 둘째 아들 앙리의 탄생을 축하하는 궁정 연회에 참석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바사리의 기록에는 사실과 어긋나는 부분이 많다. (p. 162)

미술사를 읽다보면 만나게 되는 이름이 '바사리'인데 그가 미술사의 기초를 서술해놓았기 때문일테지만 그가 쓴 미술사는 역사라기 보다 창작에 가까웠다. 그가 선별해놓은 명화의 기준과 천재의 이야기들이 다 팩트일 수는 없지만 바사리가 쓴 미술사의 영향력은 지금도 막강하다. 최초나 원조의 힘이 이런 거니까. 하지만 허구를 허구라 굳이 밝히지 않는 선택을 하는 지금도 그 이유는 시대의 '선택'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늘 생각해 봐야 한다. 이 시대의 선택이 왜 이런가에 대하여.

벨기에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트의 1929년 작에 적힌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문구 중 하나다. 작품의 진짜 제목은 프랑스어로 <이미지의 배반>이다. (p. 204)

작품의 제목은 몰라도 저 문구는 아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아니 사실 그림의 제목이 저 문구인줄 아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사실 저 문구는 넌센스에 가깝다. 그림이니 진짜 파이프일수는 없다.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생각한다. 파이프인데 왜 아니라고 하지?하면서. 사실 최초나 원조라는 수식어는 이럴때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개념미술의 아이디어를 이렇게 대중화한 화가가 또 없지 않나 싶어서.

제목과 대중의 인식에 대한 넌센스적 그림의 대표 경우가 또 있다. 뭉크의 <절규>다. 이 그림의 제목사실 절규가 아니었다. <자연의 비명> 이지. 그림속 인물이 내지르는 절규라는 것과 자연에서 들리는 비명때문에 귀를 막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은 너무도 다른 해법 아닌가? 하지만 대중이 선택하는 제목에는 다 그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처럼 예술은 시대를 반영한다. 어떤 식으로든.

미술관의 벽이 항상 하얀색이었던 건 아니다. 지금의 전시 방식은 비교적 최근에 형성된 전시 문화의 결과물이다. 원래부터 그랬던 건 없다. 19세기까지의 미술관의 전시실은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다. 벽면은 붉은색이나 초록색 벨벳 천으로 덮여 있었고, 샹들리에나 금빛 몰딩 같은 장식도 많았다. (p. 251)

전시장의 인테리어에 그리 관심을 두지 않게 되곤 하지만, 사실 이 '배경'에는 상당한 공을 들여야 한다. 작품을 더 빛나 보이게 하기 위해선 그 배경이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배경에 그림이 걸리느냐에 따라 그 그림이 다르게 보일 수 있다. 19세기 전시장의 이 화려한 배경을 염두에 두고 그림의 색채를 선택하는 화가들도 많았다. 배경이 흰색이었다면 다른 명화가 탄생했을 수도. '어떤 공간이 무엇을 이상적인 에술로 간주하느냐는 기준은 결국 그 공간의 미학과 정치가 결정한다. (p. 255)' 우리가 예술작품을 관람할때 우리는 의도된 연출에 따른 해석을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니 그 의도를 파악해보는 것은 관람의 새로운 재미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살면서 예술 작품 하나 벽에 걸고 살게 될 일이 과연 한번이나 있을수 있나 싶지만 그래서 예술품은 내게 너무 먼 사치품이겠거니 하고 살게 되기 마련이지만 소유하지 않아도 예술전시 관람은 더 쉬워졌으므로 우리는 예술세계에 한발 더 내디뎌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예술품은 그저 한 예술가의 작품을 너머 그 시대의 메세지를 담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대의 문화적 욕망 읽기라는 측면에서 미술사를 읽어보고 전시관람도 해보고 그런 경험이 쉬워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누리며 살 수 있기를 바래본다.아마 이 책이 그러한 경험을 더 쉽게 도와줄 것 같기도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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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홍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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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 오랜만에 단숨에 읽히는 소설을 읽었다. -정지아(소설가)-

'말뚝'은 슬픔은 슬픔의 방식으로 겪을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편혜영(소설가)-

그저 같이 '엉엉'울어주기만 하면 될 뿐. 그 어려운 일을 이 소설이 해냈다. -이기호(소설가)-

우리는 불행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나는 작가에게서 한 가지 힌트를 건네받은 기분이 들었다. -강화길(소설가)-

김홍을 통해 우리는 이해할 수 없었던, 그러나 우리가 꼭 알아야 했던 진상과 친구가 된다. -박서련(소설가)-

정지아, 편혜영, 이기호, 강화길, 박서련, 이 어마어마한 작가들이 한목소리로 칭찬하는 소설은 과연 어떤 소설일까, 궁금했다. 이 어마어마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한두개 정도씩은 다 읽어보고 감탄했었기에 이들 모두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말뚝들>은 대체 어떤 작품일까.

서로에게 진 빚을 빛으로 기억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마음을 위하여

우리가 알아야할 슬픔의 연대기, 그 어려운 걸 해낸 <말뚝들>. 말뚝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로 존재했었다는 기억이 중요한 것이다...

불행에 대해 겸손해야 한다고 장은 생각한 일이 있다. 누구나 조금씩은 불행하고, 가장 불행한 사람조차 끊임없이 불행하지만은 않으므로 호들갑 떨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마침내 이루 말할 수 없는 불행이 찾아왔을 때 장은 불행이란 단어가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는 데 한참이나 모자람을 깨달았다. 지난달의 견해가 오만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대신 불행의 일부를 감경받는다면 반드시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장의 불행을 덜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장은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게 전부 내 것이라고? 이렇게나 크고 많은 것이? 이 정도 불행이면 모두가 함께 나눠야 공평하지 않은가? 비록 내가 누군가의 불행을 나눠 가진 적이 없더라도 말이야. 그의 불행은 온전히 그의 것이기만 했다. (p. 11)

장은 은행에서 여신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40대 초반의 미혼 남성이다. 평범한 성장사를 거쳐 나름 최대한의 노오력을 통해 기업대출담당 과장이라는 나름의 성취를 이루어냈지만 자신이 '회사에 매인 솔거 노비'(p.21)처지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두루 무난한 성격에 튀지 않는 태도가 몸에 배인 어디서나 흔히 볼법한 평범한 직장인 그자체였던 장에게 불행이 떠밀려 온 것은 차 유리에 끼워져 있던 메모 한장이 시작이었다.

'트렁크에 넣어뒀습니다.' (p. 31)

뉴스는 서해안에 떠내려온 말뚝들에 대한 것이었다. 전례 없는 일이라고 했다. 썰물에 몸의 일부를 드러낸 말뚝들의 긴 대열이 장의 머릿속에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 죽은 사람이 먼 바다로 나가 말뚝이 된다는 전설이 안내판에 적혀 있었다. 다큐멘터리에서 본 말뚝의 모습은 조금 으스스하기도 했다. 목질화된 몸통과 팔다리에 해조류와 패류가 붙어 있었다. 어쨌뜬 평범하게 묻히거나 태워지는 것보다 모양새가 근사해 보였다. 머리를 땅에 처박고 거꾸로 서 있는 동안 단단해진 몸 사이로 물고기가 돌아다니는 상상을 했다. (p. 25)

상관없을 것 같은 서사가 겹쳐지게 하는 것은 '말뚝들'이다. 말뚝들에 대한 뉴스 횟수가 잦아질수록 장의 불행도 점점 커지고 있었다.

트렁크에 넣어진 것은 장이었다.

'술래가 잡는 것이다.

술래를 잡는 것이 아니다.' (p. 48)

트렁크에 하루 넣어진 장은 그 순간부터 '술래'가 된 셈이었다. 장이 잡아야 할 것은 누구일까. 누가 그를 가두었다 풀려나게 했을까. 무엇보다도 왜?!


근데 아무리 들어도 사건이 묘한 데가 있어요. 강도 한 거 없죠? 몸값 요구한 거 없죠? 심지어 주먹으로 한 대 친 것조차 없어요. 아, 물론 치면 안 되죠. 쳐야 한다는 게아니라 납치 감금은 제압이 중요해서 빠따라도 치는 게 보통이거든요. 것도 하루 만에 문 열어주고 줄행랑쳤잖아요. 그래서 제가 아무래도 자세하게 질문드릴 수밖에 없는 겁니다. (p. 70)

장 본인 스스로가 생각해도 황당한 사건인데 그 사건을 전해듣는 사람은 또 얼마나 황당할까. 사건을 해결할 실마리도 찾기 힘든데 장에게는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는 불행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말뚝들도.

말뚝들의 머리는 털 오라기 하나 없이 반지르르했고 얼굴도 방금 세수한 것처럼 매끈했다. 그것들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뻘밭에 거꾸로 파묻혀 있었다. 공기는 물론 해수와도 접촉한 적 없는 피부가 일체의 부패 없이 미라가 돼 있었다. (...) 목 아래로는 사람의 몸이면서 동시에 두꺼운 통나무처럼 보였다. (p. 84)

박혀있던 말뚝들이 떠밀려 오기 시작했다. 어디서 온것인지 확인할 시간도 없이 점점 더 많이. 그러다 말뚝들은 갑자기 여기저기 출몰하기 시작했다.

'죽은 자들이 말뚝이 되어 돌아오는 것은 어떤 종류의 재난인가?' (p. 131)

"선생님, 저희 수갑도 없어요. 누구 잡으로 온 게 아니라서요. 지금 밖에 말뚝들 때문에 난리 난 거 아시죠? 관련해서 여쭤볼 게 있어 온 거예요. 잠깐만 협조 부탁드립니다"

"그게 저랑 무슨 관련이 있나요?"

"저희도 그걸 여쭤보려고 왔습니다." " 안 좋은 일을 당하셨다고요?" "그게 언제죠?"

"지난주 목요일요"

"다음 날이네요. 말뚝들이 나타난 바로 다음 날요"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뒷면에 이런게 적혀 있습니다" "혹시 이 명함 기억나십니까?"

"해변에 밀려든 순서대로 말뚝들에 번호를 붙여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이게 1번 말뚝의 입속에서 나왔고요" (p. 139, 140, 141 발췌)

납치사건은 오리무중에 빠지고 회사에서는 상사와의 마찰과 대출관련 외압으로 장의 입지는 몹시 위태로운 상태였다. 게다가 누명처럼 씌워진 불륜타이틀 까지... 그와중에 낯선 형사들이 찾아와 십수년 전 장의 명함을 내밀며 그것이 말뚝 그것도 1호 말뚝에서 나왔다니, 장은 그 말뚝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로비에 말뚝이 나타났다.

건물 1층 한가운데에 지금 말뚝이 서 있다.

바다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내 앞으로 말뚝이 왔다. (p. 158)

코가 매워졌다. 눈이 간질거렸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장의 눈에도 이유를 모르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홈쳐낼 틈도 없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울고 있기는 유리문 밖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저기요, 너무 이상해서 그런데 지금 왜 울어요?"

옆 사람이 울면서 장에게 물었다.

"모르겠어요. 그냥 눈물이 나요"

장이 울면서 대답했다. (p. 159)

말뚝이 수거되자 '모두의 눈물이 거짓말처럼 일시에 그쳤다.' (p. 159) 자신의 예전 명함도 그렇고 장은 뉴스에서 말뚝이 언급될때마다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실제로 보기까지 하고 나니 더욱. 그런데 그 말뚝 하나가 어느날 장의 집안 거실 한가운데에 나타났다.

말뚝은 전날 로비에서 마주친 것보다 더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것의 마음이 전해졌다. 원망이었다. 방향을 모를 원망이 중력처럼 무겁게 모든 것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p. 179)

누군가는 그랬다. '세상 모든 일이 이유가 있어 일어나는 게 아니잖아요. 어떤 건 그냥 사고예요.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게 세상의 모든 일이고요. 왜 특별히 장에게만큼은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네요' (p. 184) 라고. 행운은 잡으려 하면 오히려 잡히지 않고 오히려 별기대없이 살다보면 어느날 특별할 것도 없이 행운이 찾아올거라고. 그런가? 불행의 원인을 고뇌하던 장에게 이 말은 들은 순간도 불행스러웠을 테지만 독자로서 읽었을 때 나름 수긍되는 면이 없지 않았다. 게다가

정각을 기해 전국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됐다고 말하는 앵커의 목소리는 격앙돼 있었다.

이상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재난문자가 울리지 않았다. (p. 213)

순간 빵 터졌다.

와우 계엄령.

이 소설 현실감 쩌는데?! 싶어서.

그리고 생각해보니...

정말 그때 재난문자는 울리지 않았다.

불행은 그런 것이었다.

이 소설, 이거이거 우리 모두가 겪었던 불행을 이야기하고 있었네?!!!

'주머니에 넣어뒀습니다' (p. 240)

두번째 메모는 이제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거기에

'Deus ex machina' (p. 241)

데우스엑스마키나 라니. ㅍㅎㅎㅎ. 이 작가 ... 이거이거 그리스비극처럼 이 작품을 쓴거였구나?!

지금 시대에 비극이라고 하면 슬픈극인가보다 단순히 그렇게 생각하기 쉽지만 고대그리스 시대의 비극은 그저 슬프기만 한 극이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당대의 모든 문화적 요소를 총집합시킨 그리스비극은 슬픔을 포함해 모든 감정을 뛰어넘는 메세지가 있는 극이었다. 후반기에 극의 갑작스런 해결장치로 신적 등장을 사용하곤 했는데 이 소설에서 그 장치를 이렇게 사용하다니... 신박한걸?!!! 멋지다, 작가! ㅎ

여하튼, 개인적으로 빵 터지긴 했지만 이 소설의 내용에서 웃음이 나는 건 아니었다. 반대로 소설은 점점 더 진한 슬픔의 공감대를 탄탄히 구축하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존재들을 하나둘씩 상기시키며...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을 두어작품 읽어본 적 있는데 의미는 이해하지만 공감까지 되진 않았더랬다. 그러니 재미를 찾는 것은 더욱 어려웠고... 그런데 이 소설은, <말뚝들>은 의미와 재미 그리고 감동과 공감 그 모든 것을 해냈다.

우리가 함께 슬퍼해야 할 존재들에 대해 우리가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반드시 함께 슬퍼해야 한다. <말뚝들>이 그 연대의 시작을 어렵지 않게 특별하지 않게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말뚝들>이 내민 손을 많은 사람들이 꼭 잡아주길 바란다.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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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로 보다, 근현대사 - 한국 근현대사의 순간들이 기록된 현장을 찾아서 보다 역사
문재옥 지음 / 풀빛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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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사의 순간들이 기록된 현장을 찾아서

개항부터 촛불혁명까지, 격동의 근현대사 이야기기 담긴

14개의 답사 코스를 함께 걷는 역사 산책

예전엔 길치 방향치라는 자괴감에 지도 종류는 무조건 기피하게 되곤 했었는데, 역사를 좋아해서 이런저런 역사책을 읽다보니 지도가 필수라는 걸 깨달았다. 읽다보니 역사이해에 필요한 정도의 지도읽기는 즐겨하게 되기도 했다. 그러다 답사하듯 읽게되는 역사책은 더욱 반기게 되었는데... 이 책이 그랬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해설했던 내용을 중심으로 2023년에 <서대문형무소 도슨트>책을 출간했다. (p. 4) 이 책을 보고 풀빛출판사에서 감사하게도 연락을 주었다. 내게 근현대사 지식을 대중들에게 쉽게 전해 주는 책을 써 볼 것을 권했다. (p. 5)

대학다닐때 나의 역사지식과 사회지식을 쌓게 해주던 책들은 풀빛출판사 책들이 많았다. 대학앞 사회과학전문 서점도 사라지고 익숙했던 사회과학 출판사들의 이름도 잘 보이지 않는 시대에 이렇게 다시 풀빛의 책을 읽게되니 그또한 반가웠다. 아직 살아있구나 싶어서.

책의 구성이 굉장히 유익하게 되어 있었다. 답사때 실제로 들고다니면서 읽어도 좋을 만큼.

각 장마다 본문 내용에 해당하는 관련 연표가 한국사/세계사로 간략하게 실려 있고 이 챕터를 답사하며 생각할 지점들을 먼저 알려준 후 답사코스 지도까지 보여준 후 본문이 시작되니 준비가 아주 탄탄한 출발을 할 수 있게 해준다.

1863~2025 라는 근현대사와 관련된 장소들 중 중요사건들과 연결된 장소들을 골랐다보니 (지금의)서울을 중심으로 한 지역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니까, 장소로보는 근현대사라기 보다는 근현대사와 관련된 서울답사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의 근현대사는 침탈의 역사다. 그러니 개항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을터. 출발은 인천과 강화도이고 이후로는 내내 서울 곳곳의 투어다. 따라서 대부분의 장소들이 거의 가봤던 곳들이라 익숙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새로운 면면들이 보여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무엇보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보는 저자의 관점이 시원시원해서 좋았다.

'전 세계를 약탈했던 프랑스군의 도둑질은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p. 17)

'미국은 제너럴셔먼호의 잘못된 행동을 반성하기는커녕 조선에 책임을 묻겠다며 침략해 왔다.' (p. 21)

'금융 침탈은 단순한 물건 수출입보다 훨씬 강력하게 조선을 옥죄었다. 제일은행권은 조선을 찌른 일제의 가장 날카로운 칼이었다.' (p. 41)

일제가 미두 거래, 주식 거래, 금광 개발 등을 통해 일부 한국인이 벼락부자가 되도록 놔둔 것은 사람들에게 현실을 잊게 하는 마약 같은 효과를 주기 위함이었다. 이를 통해 식민 통치의 부당함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려는 목적이 있었다. 한탕주의의 만연은 일제가 한국인에게 뿌려 놓은 새로운 의식 문화였다. 근대화, 식민화는 한국인의 의 식까자도 변화시켰던 것이다. (p. 48)

역사는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꼭 알아야 하는 것이지만 역사를 읽다보면 변하지 않은 현실에 절로 개탄이 흘러나오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벼락부자...한탕주의... 지금은 과연 다른가? 이것을 조장하는 세력이 과연 지금은 없는가?

2016년 아관파천 120주년을 맞이해, 서울시는 러시아공사관에서 덕수궁에 이르는 길을 정비했고, 2018년 10월30일부터 일반에 정식으로 개방해 '고종의 길', 영어로는 'King's Road'라고 이름을 붙였다. 나는 길이 120미터에 이르는 이 길을 걸으면서 서울시가 굳이 'King's Road'로 소개하려는 이유에 공감하기 어려웠다. 러시아공사관에서 미국공사관 뒤를 통해 덕수궁에 도달하는 길은 큰 길이 아닌 좁은 골목길로, 떳떳한 길이 아닌 숨겨진 길이다. 힘이 부족해 자국의 수도 한복판에서 외국군의 위협을 피해야 했고, 도 다른 외국의 힘을 빌려야만 겨우 안전을 보장할 수 있었던 고종이 지나간 이 길을 '왕의 길'이라고 외국인들에게 소개하기가 난감했다. 물론 고난의 역사를 가진 우리가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 내고 이렇게 발전했다고 말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부끄러운 역사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King's Road'라는 명칭은 도리어 우리 역사를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 같다. 차라리 '고난의 길'로 부르는 편이 낫게싿는 생각이 든다. (p. 73)

궁궐에 가면 편전으로 가는 길에 표지석이 있고 중앙은 도톰하게 올라와 있다. '어도'라고 신하들은 이 가운뎃길을 걸으면 안되고 양 옆으로 가야 했다는 것을 궁궐구경을 한번이라도 하고 온 사람들은 대부분 알 것이다. 그런데 저 골목길을 굳이 King's Road 라고 한다라...

일제가 환구단의 핵심이자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공간인 원단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철도호텔을 지었는데 이는 환구단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들겠다는(p. 76, 77) 일제의 의도가 다분했다. 해방후 1967년에 조선호텔을 재건축하면서도 대한제국의 환구단은 복원되지 못했다. King's Road와 환구단에 대한 무시는 같은 역사관을 가진 위정자들의 의도때문이 아닐런지...

'2010년 서울시는 이곳에 녹천정 표석을 세우고자 했다. 하지만 녹천정은 역사적 의미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서울시가 '녹천정터'라는 표석을 세우려고 한 것은 이곳에서 벌어진 아픈 역사를 감추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한국과 일본 시민 단체에서 이곳이 경술국치의 현장임을 알리는 '통감관저터'표석을 먼저 세웠다.' (p. 87) 2010년의 서울시장이 지금의 서울시장이다. 서울시장의 현재진행중인 만행?!은 뒤에도 여러가지 등장한다.

조선신궁이 있던 자리에서 1955년 10월3일부터 다음해 8월 15일 광복절까지 큰 공사가 이뤄졌다. 높이가 23.5척(약7미터), 축대 포함 총81척(약25미터)인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동상이 건립되었다. 생존해 있던 이승만의 81살 생일에 맞춰 세워진 이승만 동상은 그를 세계적인 지도자라며 떠받들던 간신배들이 세운 부끄러운 역사의 한 장면이다. 북한의 김일성 동상이 1972년에 건립되기 시작했으니 이보다도 먼저 이승만 우상화가 시작된 것이다. 그들은 서울시를 우남시로 바꾸려고도 했다. 국민을 무시하고 권력만을 바라본 아부꾼들의 세상, 간신배들의 전성시대였다. 일제강점기를 보내며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고 반성도 하지 않은 결과 였따.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자, 그해 8월에 동상이 철거되었다. (p. 98)

윤봉길 의사의 의거에 대한 이승만의 반응이 매우 놀랍다. "그의 행동은 어리석은 짓이며, 일본의 선전 내용만 강화시켜 줄 뿐 한국의 독립을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p. 159)

이승만을 추앙하는 사람들은 다 그릇된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 역사를 다시 배워야 할 사람들...

3.1운동을 주도한 세력은 천도교다. 당시 천도교는 3대 교주 손병희를 중심으로 한 유능한 인재들과 중앙대성전 건립을 위해 모은 자금을 갖고 있었다. 천도교인들이 3.1운동을 준비하기 위해 활동한 곳이 서울의 북촌이다. (p. 130) 3.1운동에서 불교계의 활동도 중요했다. (p. 131)

역사적 사건에서 종교인들이 큰 역할을 할 때가 많다. 그 역할이 사회적 이익이냐 집단이기주의냐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지는데...

동학이 천도교가 민족종교가 한국에 뿌리내렸다면 이후의 역사가 달라도 한참 달라졌을 것 같은데... 안타까운 부분이다...

그는(여운형) 1947년 7월19일에 극우 청년들로부터 테러를 당해 사망했다. 그의 죽음을 사주한 배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가 죽음으로써 가장 이득을 본 사람이 범인일 것이다. (p. 133)

정조가 자주 찾았던 효창원은 조선 왕실의 가족묘다. 주변에는 무덤을 보호하기 위한 숲이 우거져 있었다. 일제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면서 한양도성과 가까운 이곳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일본인을 위한 공원과 행사장을 만들었다. (p. 156) 해방후 일제가 물러났을 때, 이곳은 사실상 공터나 다름없었다. 해방 직후에는 국립묘지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애국지사들을 모실 장소가 정해져 있지 않았다. (p. 156) 김구는 시민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효창공원에 애국지사의 묘소를 만들고자 했다. (p. 157) 김구가 좀더 오래 살아 있었다면, 효창공원은 순국선열의 묘역으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효창공원에 있는 김구 묘를 비롯한 순국선열의 묘를 이장시키려 했다. (...) 친일파가 득세했던 이승만 정권에게 순국선열의 묘가 서울 시내에 있다는 것이 눈에 거슬렸는지도 모른다. (p. 164) 이승만 정권은 1959년부터 약8천평 대지 위에 2만명의 관중을 수용하는 축구장을 짓기 시작했다. (p. 165) 이승만은 정권 유지를 위해 친일파 출신을 대거 등용했다. 이들이 친일 논란을 희석시키기 위해 강조한 것이 '반공'이데올로기다. (p. 166) 만주군관학교 출신인 박정희 대통령도 효창공원을 그냥 놔두지 않았다. (...)효창공원이 홀대를 받고 훼손되는 사이, 국군묘지인 현충원은 날로 커졌다. (p. 166) 국가유공자 묘역에는 친일파들이 다수 묻혀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비서장인 조경한은 '내가 죽으면 친일파가 묻혀 있는 현충원에 묻지 말고 동지들이 있는 효창공원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임시정부 요인을 위한 별도의 묘역이 만들어진 것은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부터다. (p. 167)

미국은 한반도에 그들의 입맛에 맞는 정부가 들어서기를 원했기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대한민국 정부로 전환되는 것을 막았다. 임시정부의 주석 김구와 부주석 김규식 등을 개인 정치가로 취급했다. 미국이 원한 대한민국의 지도자는 기독교 신자여야 하고 미국과 말이 통하는 사람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해방 정국에서 이런 조건에 부합한 사람이 이승만이었다. (p. 180)

이래서 대통령이 중요한 거다... 위정자의 역사관이 중요한 거다... 예나 지금이나 반공이데올로기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정치가는 친일파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무엇을 감추려고 다른 것을 그리 강조하겠는가... 성조기 흔드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일장기 흔드는 거나 성조기 흔드는 거나 남의 나라 국기 흔드는 것은 나라의 주인을 국민이 아닌 외국으로 갈아치운것 말고 무엇이겠는가... 일본도 미국도 어차피 다 자기네들 잇속 차리려 한국에 뿌리내린 침탈자들이긴 매한기지인 것을... 에혀...

2022년, 정부는 광화문광장을 세종대로 서편으로 붙여서 세종문화회관 및 정부 청사와 연결시켰다. 광장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시도였는데, 2009년에 광장을 만들 때부터 이렇게 만들었어야 했다. (p. 239)

2009년 광장을 만든 서울 시장이 앞서 말한 지금의 그 시장이다. 그리고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세우려고 난리다. 2024년에 100미터에 달하는 초댛형 태극기 계양대를 세우겠다고 발표했을 때 반대 여론이 들끓자 한발 물러나긴 했는데 그럼에도 광화문 광장에 국가상징공간을 조성하는 사업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입장(p.240)이라던데... 대체 왜 그러는 건지... 아무래도 역사를 잘못배운것 같은데 말이다....

1506년 연산군은 이렇게 말했다.

"임금이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뿐이다"

역사를 두려어하지 않는 자들만큼 못된 사람들도 없다. 부끄러움을 모르니 큰 범죄를 저지르고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른다. (p. 246)

하물며 연산군도 역사는 두려워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최근 역사도 두려워하지 않는 정치인들은 너무 많이 보고 있는 중이다. 이런 시대에 한국의 근현대사를 읽는 것은 더욱 암울한 기억속으로 파고드는 것이긴 했지만 어쩌면 어두운 시기라서 더욱 그 어두운 과거를 돌아보아야 할 때일지도 모르겠다. 부디 더 짙은 어둠 속에 파묻히지 않기를 희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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