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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공부 다시, 학교 - 지식은 어떻게 나의 것이 되는가
EBS 다큐프라임 <다시, 학교> 제작진 지음 / EBS BOOKS / 2020년 12월
평점 :
전 세계 교육 강국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변화
세계적 석학부터 현장 최고 전문가에 이르는 통찰
공부와 학교를 둘러싼 숱한 질문에 대한 놀라운 해답을 만나다
지식은 어떻게 나의 것이 되는가? 이 책은 이 거대한 질문의 답을 학교공부에서 찾는 과정을 담고 있다. 시험부터 수업법까지 수많은 교육상식, 그렇다 상!식! 이라고 알고 있던 많은 것들을 뒤집고 밝혀낸 학습의 메커니즘에 대해 심층 탐구한 이 프로젝트는 13개국, 5000명의 학생과 교사, 학부모 그리고 30명의 전문가를 만나며 16개월동안 진행한 대장정이었다.
도대체 지금 우리의 교육은 어떤 상황이며,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p. 6) 기존에 우리 교육에 가지고 있던 선입견, '우리는 공부를 너무 많이 시킨다'라는 건 사실과 달랐다. 사교육을 제외한 공교육의 교육시간은 다른 나라보다 결코 많지 않았고, 기초학력은 생각보다 많이 떨어져 있었다. (p. 7) 학생들이 체감하지 못하고, 교사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변화가 과연 변화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 대안을 찾기 위해 더 현장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그 현장에 대한 탐구로 찾아낸 결과가 응축된 것이다. 바로 '배움'에 대한 재정의이다. (p. 9)
공교육에 대해 만족한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항상 교육제도와 교육정책엔 문제가 많아 보였다. 그래서 자주 바뀌고 변화해 왔지만 그렇다고 나아진것 같지도 않다. 무엇이 문제인지도 제대로 파악해보지 않고 개선해온 교육정책들은 결과적으로 공교육의 효과를 약화시킨것으로 보인다. 그 사이 핵심을 놓친 것이 아닐까? 교육의 핵심은 '배움' 인데 말이다. 이 책은 학교에서 어떻게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원론적인 문제인식부터 환기시킨다. 그리고 기존의 얕은 인식에서 지적되온 문제점들이 정말 문제인건지 닫시 묻는다. 예를 들자면 '시험' 같은 것.
시험이 정말 나쁜가? 아이들은 시험을 통해 성장한다. 시험점수가 몇 점 이었느냐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확인함으로써 아이들은 배우고 자라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중략) 시험이 문제가 아니라 서열을 매김으로써 발생하는 차별이 문제인데, 이를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등수를 매기는 것이 교육적이지 못하고 객관식 문제가 충분히 앎을 측정할 수 없다고 시험을 보지 않겠다는 것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고 교육적이지 않다. 아는지 모르는지조차 정확히 확인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고 착각이다. 이를 충분히 확인하고 그에 대한 피드백을 적절히 제공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교육적인 자세이다. 부모와 교사가 시험의 효과를 정확하게 인지할 때 아이는 성장할 수 있고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공교육의 변화는 그런 수많은 착각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p. 10)
제도가 문제라기 보다는 적용방법이 문제였고 적용방법이 문제라기 보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이 책은 이러한 교육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그리고 생생하게 담아내려 노력하고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교육격차가 심화된 지금 더욱 중요하게 읽어봄직한 내용들이었다.
새 교육과정에서는 많은 양의 지식을 가르치는 교육을 지양한다. 대신 '학생이 주도하는 활동형 교육'이 강조된다. 또한 학생들이 느끼는 학업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배워야 할 교과내용과 수업시수도 줄었다. (중략) 그결과 한국은 세계 주요국 평균보다 100시간 가까이 적게 배운다. 기초 과목의 수업시수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이하가 되었다. (p. 18)
적게 배우는데 스스로 활동해야 할 것은 늘어났다.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 겉핥기로 지나간 교육진도는 결과적으로 무엇을 배웠는지 모르는 상태의 학생을 양산했고 기초학력 저하로 이어졌다. 아는게 없으니 수업은 점점 더 재미없어지고 학교교육이 교육적 효과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사이 사교육만 활성화되면서 교육격차는 엄청나게 벌어지고 있다. 활동형 학습, 학생주도 학습이 과연 좋다고 할 수 있을지 점점 회의스러워지는 현상태에서 이 책이 알려주는 내용들은 무척 반가운 것들이었다.
배우는 입장에서 활동형 수업이나 과제가 충분히 만족스러우려면 그저 주입식 강의에서 벗어나거나 연필과 종이로 문제를 푸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아이들은 공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서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부담은 덜 되면서 몰입도를 높일 수 있는 방식의 수업이나 과제를 더 많이 개발하면 되는 걸까. 문제의 핵심은 그것이 아니다. 아래 인터뷰에서 우리는 학력 격차에 따라 활동형 수업이나 과제에서 소외되는 학생들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당사자인 아이들도 똑같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교사들이 느끼는 학생 주도 활동형 수업에서 배울 수 있는 '지식의 한계'와 관련이 있다. (p. 27)
대입제도에서 학종관련 금수저 논란이 뜨거웠던 때가 있었다. 이와 비슷한 문제는 대입관련 학종에서만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시험이 없어지고 활동형 주업과 학생주도 수업 방식을 도입하면서 일상적인 학교수업에서조차 계층격차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었다. 강의식 교육이 주입식 교육과 동의어도 아닐 뿐더러 강의식 교육에서는 이렇게까지 드러나지 않던 문제점들이었다. 이런 격차문제가 아니어도 '배움' 그 자체에 대해서도 아이들은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활동을 통해 스스로 배운다는 믿음과는 배치되는 결과였다. 학업성취도에서도 세 집단은 큰 차이를 보였다. 교사의 개입이 없었던 활동형 수업집단이 나머지 수업집단에 비해 가장 낮은 성취도를 기록했다. (p. 31) 활동형 수업이 가장 신나고 재밌다고 느꼈지만 자기에게 유익하고 도움이 되는 수업은 강의형이라고 대답한 학생이 많았다는 것이다. (중략) 학생들은 강의형 수업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좋아하고 있었다. (p. 33) 성적하위집단일수록 아이들이 스스로 배우기를 기대하는 활동형 수업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p. 34)
학생중심 활동형 교육이 과연 학생을 생각하고 학생들을 위한 교육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연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어본적은 있는지? 스스로 배운다는 주장은 사실상 교육의 의무를 학생들에게 던져놓고 교육기관은 무책임하게 방관하는 것과 달라보이지 않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선진국 교육제도에서 배워왔다고 말하려나?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선진국에서 먼저 시도했던 그런 미래학교와 활동들은 처절한 실패를 맞고 문을 닫고 있었다. 그 나라들의 시도를 통해 배워야 할 우리는 그 실패의 길을 거의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중이다.
수학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수학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잊는다. 활동을 하는 것은 모두 좋은 의도에서 나온 것이지만 현재 나타나는 결과들은 좋지 않다. (p. 41)
당연히 암기만 강요하는 주입식 교육은 좋은 게 아닙니다. (중략) 지금까지 주입식 교육이 강의형으로 이뤄지다 보니 강의형 교육이 그 오명을 뒤집어쓴 것뿐이에요. 학습자의 이해수준에 맞춰 지식을 구조화해 전달하는 강의형 수업, 실감나는 사례와 끊임없는 피드백이 오가는 강의형 수업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과학적 근거가 없는 낙관론으로 학생 스스로 수업을 주도하라고 방임하는 건 우리가 경멸했던 주입식 교육에 대한 대안이 결코 될 수 없습니다. (p. 44)
학교 교육의 목적은 학생들이 독립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며,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라는 주장은 분명히 맞다. 그러나 독립성을 기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독립적으로 학습하도록 하는 것이라는 가정은 틀리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자기 주도적인 학습자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교사의 지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p. 45)
스스로 배운다는 것에 대한 오해와 환상으로 '공부'의 본질을 놓치게 된다면 그 결과는 고스란히 학생들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p. 46)
시험을 안 보고 학생들이 조를 짜서 ppt를 만들던 ucc를 만들던 하는 활동형 수업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기초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재미삼아 하는 활동들은 놀이수준에 그칠뿐 교육적 효과가 극히 미미하다는 말이다. 주입식이 나쁘다고 모든 강의형 수업이 나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이 됐든 간에 학생들을 누구하나 빠트리지 않고 아울러 기초지식을 함양시킬 수 있는 교육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배워야 하고 교사는 가르쳐야 한다. 이 기본을 흔들리게 만든 것은 문제가 크다.
더 많은 지식을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저장된 지식을 자주 꺼내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을 '인출'이라고 부른다. (p. 55) 아이들이 시험을 싫어하는 것은, 틀리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 두려움으로 시험을 피하지만, '진짜 공부'는 틀리고 실패하는 경험과 시간으로부터 시작된다. (p. 63)
'창의성은 타고나는 것이다' 라는 생각은 잘못된 겁니다. 그건 세상뿐만 아니라 인간의 발달에 대해서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 겁니다. (p. 83) '창의성이란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찾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지식'과 '몰입'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즉 지식이 있어야 문제를 발견할 수 있고 그 문제에 몰입할 줄 알아야 해결할 수 있다. (p. 85) 창의성은 수업을 통해 길러질 수 있다는 것이다. (p. 87) 우리가 창의성 교육이라고 하면 흔히 배우는 사람이 얼마나 잘 표현하는지를 중점적으로 보는 활동 중심 수업만 생각한다. 하지만 창의성은 배우는 사람이 주어진 것을 적용하는 과정을 통해서 더 잘 길러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p. 101)
활동형 학생주도형 수업에서 가장 크게 내세우는 점이 아마 창의성 발효 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상식임을 책에서 제시되는 다양한 증거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세계적 발명을 생각해봐도 이는 확인이 된다. 발명은 어느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앞선 선배들의 수많은 시행착오들이 쌓이고 쌓였을때 그 시행착오들을 통해 배운 후배가 발명을 해내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는 것 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발견이나 발명은 없는 법이다. 창의성도 마찬가지였다.
수학과 같이 어렵고 정보를 적극적으로 처리하는 집행 기능이 중요한 공부일수록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어야 재미와 의미를 발견할 수 있고 생각이 확장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공부의 효용성을 스스로 느끼게 되면 좀 불안하더라도 기꺼이 이겨내고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공부일수록 심리적 요소의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가. '학습'과 '교육'이란 이 부분의 관리까지 이루어져야 한다. (p. 144)
글을 읽고 쓸 수 있기에 '문맹'은 아니지만 지식과 정보가 담긴 글을 이해하는 '문해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실질적 문맹' 상태라는 것이다. 교육 방침으로 학생들의 사고력 확장을 위해 수학문제를 서술형으로 낸다고 하는데, 문해력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수리 능력이 있어도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 (p. 146)
정보화 시대 좋은 자료들이 온라인 도처에 널려 있지만 그 혜택은 문해력이 좋은 사람만 받을 수 있고,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생각보다 적다는 것이다. (p. 157)
'문해력을 키우는 것'은 학습능력의 핵심인 동시에 교육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시작점이자 지름길이다. 문해력을 통해 아이들은 배울 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을 갖추고 자기 수준에 맞는 공부를 할 수 있게 되며, 자기 삶과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된다. (p. 173)
수포자가 늘고 있는 것은 수학 자체가 어려운 학문이어서일수도 있고 오랜 시간을 들여 노력해야 할 수리능력이 부족해서일수도 있지만 문해력 또한 그 배경의 중요한 한 요소일 것이다. 어떤 특정한 이슈가 있을때 실검1위를 차지한 단어들을 보면 헛웃음이 나올 때가 많다. 세뱃돈과 세벳돈을 구분하지 못한다거나 일상에서 쓰이는 단어임에도 그 뜻을 몰라 검색어상위에 랭크된 것을 보면 문맹아닌 문맹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보화 시대면 무엇하나? 검색으로 다 나온다고 한들 무엇하나? 무엇이 정말 맞는 건지 구분할 수 없다면 말이다. 문해력이 키워지는 것은 성장과 발달단계에서 적절한 때가 있다. 그때에 맞춰 공교육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중요한 교육이 문해력이다.
00이는 사교육을 받지 않고 자기처럼 학교만 의지하는 학생들이 공교육만으로도 탄탄한 실력을 쌓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교사들 역시 변화의 거센 파도 앞에 서 있기는 마찬가지다. 미래에는 학교 교육이 '학생 중심 수업'으로 달라져야 한다는 강렬한 목소리에 공감하며 수업방식을 '학생중심'으로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을 위해 시작한 학생 중심 수업이 외려 부실한 교육을 낳고 있는 현실에 대해 교사들 역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p. 183)
교사의 역할이 줄어든 대신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배움을 만들어가야만 하는 교육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들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해 학업 부담이 늘어날 것을 지적하고 있었다. (p. 188)
학업성취도 세계1위를 자랑하던 핀란드의 성적이 흔들리고 있다. 전체 학업성쉬도는 물론 수학의 하락폭이 커 핀란드 내에서도 걱정이 많다. 더욱 중요한 건 교육 불평등 수치가 증가했다는 점이다. 핀란드는 한국과 함께 세계에서 가자 빠른 속도로 교육 불평등 수치가 증가하고 있는 나라다. (p. 191)
교육 선진국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던 나라가 핀란드 아니었던가, 그랬던 핀란드가, 한국보다 먼저 활동형 학생중심형 수업을 적극 도입했던 핀란드의 교육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뒤를 한국이 바짝 따라가고 있었다. 핀란드의 학부모들은 학생들의 학습저하에 대해 끊임없이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코로나사태 이후 한국의 교육현실도 학습저하와 학력격차가 어느 정도인지 극명하게 그 심각성이 드러났다.
핀란드나 우리의 학생 중심 수업이 놓치고 있는 점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크리스토둘루는 '무의미한 암기학습을 비판하는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이를 교사 주도 활동 전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확대 적용하는 것은 잘못된 과민반응'이라며 '무의미한 암기학습을 피할 수 있는 대책은 교사의 지도활동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암기가 아닌 방식으로 교사의 수업지도를 내실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p. 195)
'궁극적으로 기술 자체는 교육이 해야 하는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개인화될수록 더 맞춤화된 교육을 아이들이 받을 거라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아이들이 각자의 커리큘럼을 가지면서 자기만의 섬에 갇히게 되었어요. 아이들은 배워야 할 것을 컴퓨터로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고, 대화나 소통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잃어버렸죠. 게다가 흥미있는 분야만 배우게 되니까 아이들이 아주 협소한 분야만 알게 되었어요. 그렇게 되면 성인이 되어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할 때나 다양한 분야의 배경지식을 요구하는 분야에서 어려워질 게 분명했죠. (중략) 아이들이 영상을 보며 무언가를 배워나가긴 하겠지만 더 중요한 건 교실의 문화와 학습환경, 그리고 어른으로서 선생님이 교실 안에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아직 아이들이니까요. 선생님은 아이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어떠한 경험이 자기에게 도움이 될지 판단할 수 없으니까 어른에게 의존하며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p. 196)
현실을 감안하지 못하고 취지의 방향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채 그저 방법적으로만 활동형 학생중심형 수업으로 급하게 바꾼 결과 교실에서 교사의 자리는 축소되었고 그 불이익은 고스란히 학생들이 학업부담과 학력저하로 떠안게 되었다. 시대에도 어른이 필요하고 교실에도 어른이 필요한 법이다. 미국과 핀란드를 비롯한 여러 선진국들의 실패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한가지였다. 그 한가지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여 개선책을 실천하고 있는 사례가 영국에 있었다.
리치아카데미에서는 수업의 질적 수준을 교사의 개별 책임으로 맡겨두지 않고 교사 코칭을 통해 교수법을 통일한 뒤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p. 202)
교육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지식 중심 수업으로 방향을 바꾼 영국은 현재, 더하거나 덜함 없이 학생이라면 누구나 같은 배움을 얻길 바라고 있다. 또 이를 위해 교사와 학교, 국가가 한마음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리치 아카데미는 왜 우리가 공교육을 실시하는지, 공교육 시스템안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지를 다시금 묻게 한다. 교육은 결국 '기회'라는 것이다. 학생들이 포기하지 않고 낙오하지 않도록 기회를 줘서 성장하게 하는것, 그것이 교육의 소명이고, 교사의 소명이다. 그런 소명 위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의 효과는 사교육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리치아카데미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p. 204)
지식 중심 수업! 누구나 같은 배움! 그렇게 동일하게 얻어지는 기회!
지식 중심 수업이라고 해서 과거의 전통적인 방식인 교수 중심의 일방적인 지식 전달 수업이라고 볼 수는 없어요. 최근 강의식 수업이라고 해도 가급적이면 학습자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 다양한 활동지들을 제공하죠. 하지만 활동중심 수업에 비해서 다소 지식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지식 중심 수업'으로, 또 이에 비해서 훨씬 더 학습자의 주도성을 강조하면서 활동을 위주로 지식을 조금 더 약화시키고 학습자의 자율성이나 확산적 사고를 드러내어 활용했다는 점에서 '활동 중심 수업'으로, 이렇게 두 반의 특징을 구분지어 볼 수 있습니다. (p. 214) 결국 어느 한 가지 수업으로는 학생들에게 충분한 경험을 줄 수 없다. 역량과 지식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수업은 활동 중심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지식 중심이어야 하는가, 이제 이런 이분법을 지양해야 한다. (p. 219)
결국 중요한 건 정말 학생을 위핸 교육, 정말 학생이 알아야 할 배움 이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점이다. 어쨌든 지금의 형식적인 활동형 수업엔 문제가 있다. 수행평가도 진정 누구를 위해 무엇을 배우고자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만들어낸 결과물을 통해 배운 것이 없다면 그것을 대체 왜 해야 하는 건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이 쓸모없다고 느끼는 것도 '전이'가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다른 분야에 적용하고 새로운 지식과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활동' 과 '지식'의 문제로 되돌아온다. (p. 231)
전문지식과 전이를 가르치되 기능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가르쳐야 합니다. 다시 말하자만 지식은 중요하지만 그 지식이 실제로 활용될 수 있어야 하죠. 이게 바로 현대사회가 필요로 하는 교육입니다. (p. 232)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의 문제도 있지만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의 문제도 있습니다. 또한 학생의 경험도 고려해야 해요. 이 모든 것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결국 '무엇' 과 '어떻게' 의 문제입니다. 교육과정은 무엇인지 어떻게 가르치고 배우게 할지 깊이 고민해봐야 합니다. (p. 236)
암기식 주입식 교육이 나쁘다고 활동형 학생주도형 교육으로 바꿨다. 하지만 내실까지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불평등의 격차는 점점 더 크게 벌어지고 있고 교실은 점점 더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지 않은가? 방식만 바꾼다고 교육의 질이 달라지진 않는다. 이제야 말고 진짜 교육의 '질'에 대해 좀 제대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현재 제도 자체가 수업 중에 자는 것을 교사가 어떻게 할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손발이 묶여 있는데 싸우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그러다 보니 학교 현장이 지금 소극 행정이 만연된 시절처럼 되어가고 있어요. (p. 246)
학원에서 배우고 학교에선 잔다. 주요교과목만 공부하고 비주요과목은 내신도 신경쓰지 않는다. 수능에 중점을 둔 학생이라면 더더욱 학교교육은 의미없어진지 오래다. 교사들은 아이들이 자는 걸 눈앞에 보고도 수업을 해야 하고 그런 수업은 그나마 안자고 있던 학생까지 지치게 만든다. 악순환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가 변화하면 아이들도 변화한다' 는 것을 책속에서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희망을 찾아볼 수 있었다. 더불어 교육 자체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학교라는 '공간' 에도 중요성이 있음이 확인되고 있었다. 교육은 총체적인 것이다. 한 아이를 키워내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하물며 그 아이들이 모인 학교란 얼마나 중요한 곳인가.
이 책은 활동형 수업, 자기주도 학습, 시험과 평가, 창의성, 수포자, 학습불안, 문해력, 수업법, 학교공간 등 이 시대의 공부와 관련된 가장 민감한 9가지 주제를 다루며, 이러한 주제들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포괄함으로써 학습 메커니즘의 본질이 무엇이고 인간이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지혜가 생기기까지 지식은 반드시 필요하다. 학교란 다양한 기초지식을 모든 아이들이 습득할 수 있도록 교육을 제공하는 곳이다. 학교 교육에서 제대로 지식을 습득했을때 이 사회를 바르게 끌어갈 지혜로운 어른들이 탄탄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 공교육의 힘을 믿고 싶다.
우리는 왜 학교에 가는 걸까. 학교에서 배움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걸까. 학교는 아이들이 숨 쉬고, 성장하는 최소한의 교두보이다. 이곳에서 어떻게 배우고 성장하느냐가, 개인의 인생은 물론, 우리 사회의 미래 전체를 결정하지 않는가. 이 책을 출간하며 다시금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과 교사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다시, 학교> 제작진 일동 (p. 12) -프롤로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