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기 9 - 대산세계문학총서 029 대산세계문학총서 29
오승은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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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권에 이르러, 취경 일행은 이제 천축국 변방에 이른다. 부처님이 계신 서천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요괴는 우굴거린다. 손오공은 매우 침착해져서 점점 함부로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다.

 

앞의 8권에서 구해준 여자는 요괴의 본성을 드러내고 삼장을 납치한다. 알고보니 탁탑이천왕과 나타태자를 아버지와 오라버니로 섬기고 있는 쥐 요정이었다.  이렇게 부처님이나 보살, 천상 존재들과 관련이 있는 요괴들은 한편으로 보면 중앙 권력자들과 사적 관계로 결탁해 부정을 저지르는 지방 지배자들인 것도 같다. 손오공이 요괴와의 관계를 들이대며 추궁하자 쩔쩔매는 신적 존재들을 보라. 

 

손행자는 고래고래 악을 썼으나, 요괴는 아예 못 들은 척 달아나기에 바쁘다. 그러나 아슬아슬하게 뒤쫓겨 거의 따라잡힐 지경에 처하자, 그녀는 왼발에 신고 있던 꽃신 한 짝을 벗어들더니 선기 한 모금 불어넣고 주어를 외우면서 외마디 호통을 쳤다.

변해라!“

주술에 걸린 꽃신 한 짝은 눈 깜짝할 사이에 요괴의 모습으로 둔갑하더니 여전히 두자루 칼로 쌍검무를 추어가며 손행자에게 맞서 싸우고, 그녀 자신은 번득하는 찰나에 일진청풍으로 화하여 어디론가 사라졌다.

- 본문 44쪽에서 인용

 

 

이어 멸법국왕을 삭발해 개심하게 만드는 에피소드가 유머러스하게 서술된다. 역시 리디큘러스 마법은 폭력보다 세다. 이제 인도로 들어 섰다. 이곳은 천축 변방에 속한 외곽 고을로서, 지명을 봉선군이라 부르오. (232)’  봉선군에 온 손오공 일행은 하늘을 모독하여 가뭄이 든 봉선군이 죄업을 뉘우칠 방도를 알려준다. 이 부분에서 가뭄과 기근을 겪는 백성들의 고통을 묘사한 대목을 자세히 읽었다. 아무리 인도 변방이 공간적 배경이라해도, 분명 이는 명말 사회를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유한 백성은 그나마 여축해놓은 식량으로 간신히 살아갈 수 있으되, 빈궁한 백성들은 하루하루 연명하기 어렵다. 좁쌀 한 말에 백 금의 값어치요, 땔나무 한 단에 닷 냥 값이나 주어야 살 수 있다. 열 살짜리 계집아이를 쌀 석 되와 맞바꾸며, 다섯 살짜리 사내아이는 아무나 데려가는 대로 맡겨두는 실정이다. 성내 백성들은 국법이 두려워 죄를 저지르지 못하고 의복과 물건을 전당포에 잡혀 겨우 목숨을 부지하나, 시골에서는 관청의 위엄을 능멸하고 노략질을 하거나 심지어는 사람을 잡아먹으며 연명하고 있다.

- 본문 23쪽에서 인용

 

일행은 천축국 옥화현에 이른다. 삼장은 법회를 열고,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은 옥화친왕 세 왕자를 각각 제자로 받아들여 무예를 가르친다.  그 과정에서 손오공들의 병기를 훔쳐간 호구동 사자 요괴들을 퇴치한다. 역시 확실히 인도로 들어왔구나. 사자가 등장하니 말이다.  각 여정에서 등장하는 요괴들은 확실히 각 지역에 서식하는 동물이나 자연 환경을 반영하고 있다.

 

이제 마지막 10권 남았다. 100장으로 구성된 장회소설인 <서유기>는 장터에서 구연되던 특징을 갖고 있다. 그래서 각 회의 마지막은 다음 회를 안내하는 문장으로 끝난다. '과연 이번에 나아가는 길에 또 어떤 우여곡절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지, 다음 회에서 풀어보기로 하자. (125쪽)'는 식으로. 자, 이제 마지막 10권에선 또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마지막 책을 집어들기가 아쉬우면서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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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 6 대산세계문학총서 26
오승은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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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권은 참 아기자기하게 재미있다. 유머가 넘치고, 요괴뿐만 아니라 사람의 삶을 성찰하게 하는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좋은 문장 하나 건지기도 했다.

 

금두동 마왕은 워낙 강력해서 손오공의 힘으로 감당이 안 된다. 손오공은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 보지만 불과 물의 공격으로도 마왕을 꺾을 수가 없다. 원래 주인인 태상노군이 와야만 마왕은 잡힌다. 마왕은 원래 태상노군 외양간의 청우, 푸른 소였다. 집 나간 소, 이건 집 나간 마음을 의미하는 것일까? 십우도(十牛圖)에 나오는 심우(尋牛) 이야기일까? 취경일행이 아직 중앙아시아 지역에 있어서인지, 9권에 대거 등장하는 인동의 소 요괴들과 성격이 좀 다른 것 같다.  

 

태상노군은 금강탁에 숨 한 모금을 훅 불어넣어 괴물의 콧구멍을 꿰뚫은 다음, 도포에 둘렀던 허리띠를 끌러 가지고 금강탁에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 손으로 잡아끄니 고삐가 되었다. 지금도 쇠코뚜레를 만들어 쓰는 풍습이 남아 있어 '빈랑(賓郞)'이라는 명칭으로 부르는데, 이때부터 생겨난 관습이라고 한다.

- 본문 83~ 84쪽에서 인용

 

위 인용부분처럼, 서유기 이야기와 현실 관습의 유래를 연결하는 서술도 재미있다.

 

어린이용 축약본에 빠지지않고 등장하는 삼장과 저팔계의 임신 에피소드도 이번 6권에 있다. 자모하 강물을 마시고 잉태한 삼장과 저팔계. 손오공은 낙태천의 물을 떠 와서 마시게 하는 방법으로 둘을 낙태시킨다. 물론 낙태천을 지키는 요괴와 대결해 이겨서 물을 얻는다. 여기서 잠깐. 살생을 금하는 불교 수도자들이 왜 낙태를 하지? 이거 이해 안 된다. 여튼 이 지역은 여자들만 사는 여인국이었다. 그래서 잉태를 하려면 물을 마시는 것이었다. 여인국이라, 또 삼장이 여난을 겪을 것이 뻔하다.  맛있는 고기 때문에 요괴들에게, 잘 생긴 외모 때문에 인간 여자들에게 시달리는 삼장은 서량여국의 여왕과 결혼할뻔하다 간신히 탈출한다.

 

그러나 탈출하는 순간, 삼장은 여왕보다 무서운 여괴에게 납치당해 또 신방에 들게 된다. 이 내용이 55회인데 제목은 '색마는 음탕한 수단으로 당나라 삼장 법사를 농락하고, 삼장은 성정을 지켜 원양을 깨뜨리지 않다." 이다. 여기에서 역자분은 원양을 '동정'이라 풀이하셨다. 어? 원양이 그냥 동정인가? 지금까지 정액으로 생각하고 읽었는데. 이번 6권의 "내 원양(元陽)을 상실하여 불가의 덕행을 망치고 진정(眞精)을 쏟아낸다면,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드는 몸을 타락시키게 될 것 아니냐?(134쪽)" "나의 진양(眞陽)은 지극한 보배요. 내 어찌 경솔하게 그대처럼 분 바른 해골바가지에게 넘겨주리오?(169쪽)" 이런 서술을 보면 그런 것도 같다. 하지만 다른 책에는 '원양이 한 방울도 새어 나가지 않은' 이런 서술도 있는데. 도대체 원양이 뭘까? (맨날 서유기 리뷰 쓸 때마다 원양 타령하니까 내가 좀 변태같지만, 이 글을 읽는 친구분들은 나의 학구적 탐구심을 이해해주시리라 믿는다. ^^ )

 

워워, 돌아가자. 알고보니 이 색녀요괴는 전갈요정이었다. 그래서 무기도 독침이다. 아마도 취경 일행이 지나가는 중앙아시아 사막의 위험을 의인화한 것 같다. 이 부분에서 재미있는 것은, 이 전갈요괴를 물리치는 묘일성관은 커다란 수탉이라는 것. 지네와 닭은 천적이라는 설명이 본문에 나온다. 이렇게 <서유기>에는 중국 민간 설화와 풍습, 속담이 많이 담겨 있다.

 

"당신, 아주 벽창호로군! 이런 속담도 못 들어봤소? '굵다란 버들가지로는 키를 엮어 쓰고, 가느다란 버들가지로는 열 되들이 됫박을 엮어 쓰니, 도구의 쓰임새는 저마다 달라도 똑같은 버드나무요, 이 세상에 제 아무리 추접스레 생겼어도 사내는 사내'라고 했소이다."

- 본문 131쪽에서 인용

 

위 인용부분은, 삼장법사만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자 저팔계가 속담을 인용하여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는 대목이다. 이렇게 곳곳에 중국 속담이 나온다. 재미있다.  

 

취경 일행 사이의 최고의 갈등도 이번 6권에 있다. 손오공이 요괴도 아닌 인간, 산적떼를 때려죽이자 삼장은 손오공을 추방한다. 쩨쩨하게 죽은 시체 앞에서 불경 드리면서 삼장은 '저승가서 나를 고소하지 마라, 너희를 죽인 것은 손오공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에 실망한 손오공은 삼장 일행을 버리고 떠나 관음보살에게 의탁한다. 하지만 역시 손오공이 떠나자마자 일행에게 위기가 닥친다. 사오정이 손오공을 모시러 본거지로 가 보니 가짜 손오공이 가짜 삼장, 가짜 저팔계, 가짜 사오정을 만들고 경을 가지러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시리즈 완역본을 읽기 전에는, 이 에피소드가 <옹고집전>의 진옹 가옹 이야기처럼 단순 재미를 위한 것인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다. 58회의 제목은 '마음이 둘로 갈리니 건곤을 크게 어지럽히고, 한 몸으로는 참된 적멸을 수행하기 어렵다.' 이다. 두 명의 손오공은 두 마음이었던 것이다. 취경여행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다 때려치고 싶은 마음. 이렇게 두 마음. '사람에게 두 마음이 있으면 재앙이 생겨서(271쪽)'라는 대목도 있으니 더욱 그렇다. 또 석가여래는 두 손오공이 재판해 달라고 싸우면서 오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 저기 보아라, 두 마음이 서로 다투면서 달려오고 있지 않느냐?(274쪽)' 아, 그래서 손오공이 심원(心猿)이었구나. 시련을 겪고 납에서 황금으로 되는 마음.

 

가짜 손오공을 밝혀 퇴치한 후, 삼장은 다시 손오공을 받아들인다. 일행은 화염산에 이르러 서쪽 길이 막힌다. 손오공은 불을 끄기 위해 나찰녀의 파초선을 빌리러 간다. 나찰녀는 우마왕의 본처이고 옥면공주는 우마왕의 첩이다. 우마왕은 현재 옥면공주와 살고 있다. 손오공은 이 삼각관계 사이를 사인,코사인,탄젠트로 바삐 오가며 열심히 거짓말을 해서 파초선을 손에 넣는다. 그런데, 이들의 삼각관계에서 흥미로운 것이 하나 있느니,

 

"그곳에는 애당초 만년호왕이란 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 여우 임금이 죽을 때 딸을 하나 남겨두었습니다. 딸의 이름은 옥면공주라고 부릅니다. 이 공주는 백만장자의 재산을 가지고 있느나 그것을 관리해줄 사람이 없어 이곳저곳 수소문하던 끝에, 이 년 전 우마왕을 찾아갔다가 신통력이 굉장한 것을 눈여겨 보고 자기 집으로 모셔다가 남편으로 삼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마왕은 나찰녀를 버리고 오랫동안 돌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 본문 317쪽에서 인용

 

"내 부모가 돌아가시고 의지할 데 없어서 네놈을 모셔다가 보호나 받고 살아가려 하지 않았더냐! 세상에서 네놈을 제법 호걸 노릇하는 놈이라고 하기에 그런 줄 알고 믿었더니만, 이제 봤더니 여편네나 무서워하는 졸장부였구나!"

- 본문 325쪽에서 인용

 

당시 여성들의 입장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뭇 남성들의 먹잇감이 되는 미혼 상속녀. 자신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할수없이 첩살이를 선택하는. 아아, 요괴도 여성으로 태어나면 시대적 한계 때문에 살기 힘들었구나야!

 

아무튼, 6권 최대의 소득은 이 문장이다.

"저기 보아라, 두 마음이 서로 다투면서 달려오고 있지 않느냐?"

서유기, 나의 취경여행을 마치면 서로 다투면서 달려가던 내 두 마음이 편해질까. 글쎄. 그저 읽고 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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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이야기 이산의 책 19
수잔 휫필드 지음, 김석희 옮김 / 이산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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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리뷰 안 쓰려고 했다. 혼자만 숨겨두고 몰래 읽고, 내 글에 인용하면서 잘난척 하고 싶었다. 과민성 대장증세가 있는 나는 이 책을 읽어가면서 아랫배가 아팠다. 왜냐고? 이런 글을 쓰는 저자에게 질투가 나서!

 

아아, 이 책 멋지다. 오랫만에 지하철에서 책을 읽으면서 몰입했다. 나는 8세기의 둔황 문서를 넋놓고 보고 있다가 내려야할 역을 지나칠까봐 얼른 21세기로 돌아와야했다. 내가 문자로 만나 흠뻑 빠진 이 세계는 현실인가, 꿈인가. 내 입 속에는 모래가 서걱거리는데. 역사서인듯 소설인듯 이렇게 디테일도 강하고 문장도 멋지다니!

 

영국 역사학자인 저자의 전공은 둔황학이다. 저자는 11세기 이전 둔황 문서를 통해 사마르칸트, 티베트, 위구르, 중국, 카슈미르, 쿠차, 둔황 등 실크로드 각지에서 살던 위인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그려낸다. 이들은 전쟁 등 큰 사건에 휘말리기도 하면서 개인사와 거대역사가 씨실 날실로 직조되는 과정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원제인 <Llfe Along the Silk Road>그대로, 시공간을 초월한 보편적인 인간 삶에대해 은근 성찰하게 해 준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인생에 달관한 인생 선배를 만나 이야기 듣고 한뼘 성장한 기분이 들 정도이다.

 

이하는 출판사의 책 소개글에서 가져온 목차다. 책의 내용을 요약하느니 이편이 나을듯.


1. 사마르칸트와 당나라 수도 장안을 오가며 장사하는 상인 나나이반다크(730-751)
2. (적군의 장수인) 고선지 장군의 무용담을 후배 병사들에게 이야기해 주는 티베트 병사 세그 라톤(747-790)
3. 중국에 팔 조랑말 떼를 몰고 다니는 목부(牧夫)였으나 티베트와의 전쟁에 징집되었다가 전사한 위구르인 쿰투그(790-792)
4. 정략결혼의 제물이 되어 투르크(돌궐) 카간에게 시집가는 당나라 목종(穆宗)의 누이 태화공주(821-843)
5. 중국 우타이(五臺) 산으로 순례여행을 떠나 천신만고 끝에 장안에 도착하는 카슈미르의 승려 춧다(855-870)
6. 기생이 되어 군대를 따라 전전하다가 장안에서 생활하던 중 그만 황차오(黃巢)의 난에 휘말려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고향 쿠차로 돌아간 금발의 기생 라리슈카(839-890)
7. 어린 나이에 불가에 귀의하여 승방 주지로 생을 마감하는 둔황의 비구니 먀오푸(880-961)
8. 독실한 불교신자이며, 묵묵히 인생의 고통을 감내하는 둔황의 과부 아룽(888-947)
9. 역법(曆法)에 조예가 깊고 불심이 돈독해 뭇사람들로부터 칭송을 얻은 둔황의 관리 자이펑다(883-966)
10. 둔황 석굴을 장식하는 데 평생을 바친 화가 둥바오더(965)

 

한참 <서유기>에 빠져있다보니 자연스레 현장이 지나간 길에 관심이 가서 찾아 읽은 책인데, 예상 외로 기존 역사서에 없는 미시사를 읽은 것 같다. <서유기>와 <대당서역기>에 언뜻 언급된 중앙아시아 지역의 풍습 중에 이 책에 자세히 나와있는 내용이 꽤 많으니 말이다. 심지어, <서유기>가 환상소설이기에 허구일 거라고 생각한 내용까지 이 책에 사실로 나와 있어서 깜짝 놀랐다. 예를 들어, <서유기> 제 8권에 보면 비구국에 간 손오공이 도사로 변신해서 간을 달라는 비구국 국왕 앞에서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는 대목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 실제로 실크로드를 떠도는 유랑극단의 차력사나 도사들이 눈속임으로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 보이는 쇼를 공연했다고 한다. 또 삼장을 태우는 용마 같은 경우도 근거가 있다. 용과 암말이 관계해서 태어난 용마에 대한 전설이 실크로드에 흔하다고 한다. 어쩜 생각보다 <서유기>는 사실적인 소설일 수도 있겠다.  

 

이런 세세한 사실을 저자는 어떻게 알고 썼냐고? 당근 출토된 문서다. 둔황 막고굴을 제외하고도 모래에 묻힌 옛 도시나 요새의 방에서 발견한 문서들이다. 그동안 실크로드 관련 책들을 읽으면서 나는 왜 이렇게 방에 문서들이 쌓여 있었는지가 궁금했는데 이 책에서 답을 찾았다. 이하, 이 글을 읽는 친구분들도 이 책의 특징을 맛보시라고 길게 인용한다.

 

세그 라톤은 관측소나 봉화대에 파견 근무하지 않을 때는 미란 요새 동쪽 끝에 마련된 숙소에서 지냈다. 한 평도 채 안 되는 작은 방이지만, 그는 여기서 식사도 하고 잠도 잤다. 이 전초기지에는 쓰레기나 하수를 처리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 그걸 어디로 가져가겠는가? 병사들은 방구석에 그냥 던져두었다가, 방이 너무 지저분하고 악취가 나서 도저히 숙소로 쓸 수 없는 지경이 되면 그 방을 변소로 이용했다. 이윽고 인간의 배설물과 그 밖의 온갖 쓰레기로 가득 차면 그 방을 버리고, 성벽 안쪽을 따라 방들을 새로 지어서 숙소로 사용했다. 오물로 채워진 방들의 틈새로 잠식해 들어온 모래는 사막의 건조한 기후화 함께 악취를 억제하는 역할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쓰레기가 썩는 것을 막아 주는 보존제 구실도 했다. 이는 1천년 뒤에 그곳을 발굴한 고고학자들에게는 고맙기도 하고 달갑지 않기도 한 상황이었다.

- 본문 86쪽에서 인용

 

이렇게 이 책은 열 명의 사람들의 열전 식 구성에서 인생을 읽을 수도, 당시의 생활문화사를 읽을 수도 있는 멋진 책이다. 문장도 격조있고 품위있다. 강추.

 

번역은 안록산을 안루산이라 하는등, 현지 중국발음으로 인명과 지명을 표기했다. 중원을 중위안이라 하기도 한다. 이건 좀 심하다.  (그런데 이 출판사의 다른 중국사 책들을 봐도 다 현재 중국어발음으로 표기하고 있으니 원칙은 있는 것 같다. 표기가 오락가락하지는 않는다. ) 책 뒤편에 참고 문헌과 화보 출처, 동시대 지배자 연표까지 잘 실려 있다. (샤를마뉴와 하룬 알 라시드, 당 현종이 거의 동시대 인물이라니, 하고 즐겁게 읽게 해 주시는 센스!) 중간중간에도 본문 내용과 관련있는 둔황 벽화 사진이 실려 있다. 성의있게 잘 만든 책이다. 여튼,  이산 출판사의 책은 다 신뢰가 간다.

 

책을 다 읽고 리뷰까지 썼지만 여전히 아랫배가 아프다. 이번에는 아프다기보다 설렌다. 내 아랫배에는 대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궁도 있다. 그러기에 이 책처럼 멋진 책을 낳고 싶어서 지금 나는 몹시 설렌다. 일단은, 이 책의 기를 쏙쏙 흡수해 버리겠다. 원양이 따로 있나.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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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5-02-25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읽어야짓! ㅎㅎ

껌정드레스 2015-02-27 11:03   좋아요 0 | URL
라리슈카 이야기, 참 좋았어요. 저에겐 배울 점이 많은 유익한 독서였어요.
아아, <이 언니를 보라> 쓰기 전에 이 책을 읽었다면!
 
서유기 8 대산세계문학총서 28
오승은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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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태세 마왕은 늑대 괴물이었다. 이번에도 관음보살이 제압한다. 이어 손오공 일행은 반사동에서는 일곱 미녀 요괴와 황화관 도사를, 사타동에서는 늙은 마귀를 물리친다. 비구국에서는 희생당할뻔한 천 명의 아이들을 구해준다. 원양을 기르고자 배필을 구하려 하는 색녀가 삼장을 납치해가자 구하러 가는 것으로 8권이 끝난다.

 

사실 제천대성은 하늘도 겁낼 만큼 무서운 영웅호걸이기는 하지만, 당나라 스님을 따르게 되면서부터 속이 많이 트였다. 그는 요사스런 마귀가 슬픈 목소리로 애걸복걸 빌어가며 자기를 떠받드는 것을 보니, 차마 더 이상 괴롭히고 싶은 생각이 줄어들고 착한 마음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그래서 용서해주기로 마음먹고 이렇게 다짐을 받았다.

"요괴야 내가 네놈을 용서해주면, 어떻게 우리 사부님을 모시고 이 산을 넘어가게 해드릴 작정이냐?"

- 207쪽에서 인용

 

위의 인용문단에서 볼 수 있듯, 7권에 이어 손오공의 변화가 두드러지게 보인다. 그리고 손오공이 부처와 보살의 힘을 빌리는 대목이 점점 빈번해진다. 아아, 이렇게 주제의식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은, 이제 여정의 끝이 보이기 때문인 건가.

 

환상소설이지만 은근 원전 <대당서역기>를 반영한 대목이 곳곳에 보인다. 삼장이 방문하는 나라의 국왕에게 자기 소개하는 대목에서 '대당나라(299쪽)'를 말하는 것을 보니 실제로 현장이 천축국에서 고국을 '마하지나'라고 소개한 것이 생각났다. 또 여정에서 뒤로 갈수록 서역인의 외모를 한 사람들을 등장시키는 것도 사실적이다.

 

아참, 8권이나 읽어서야 발견한 사실이 있다. 황화관 도사인 백안마군은 차에 독이 들은 대추를 넣어 손오공 일행을 죽이려 든다. 알고보니 그는 겨드랑이 양 쪽에 1천 개의 눈알이 달린 다목괴, 지네정령이었다. 여기서 잠깐, 독지네니까 독을 사용하는 거 아닌가? 어이쿠, 지금까지 읽어오면서 요괴의 본모습과 살생시 사용하는 방법이나 무기를 연관지어 읽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다시 1권으로 돌아가서 읽을 수도 없고. 아, 아쉽다.

 

해골바가지는 산더미처럼 쌓이고, 뼈다귀는 숲을 이루었다.

사람의 머리카락으로 담요를 짰는가 하면, 벗겨낸 가죽과 살덩어리는 썩어 문드러져 시궁창에 수렁이 되었다.

- 167쪽에서 인용

 

위는 요괴 소굴을 묘사한 대목이다. 아우슈비츠의 머리카락 담요가 생각났다. 아놔, 요괴가 환상소설에나 있으면 좋으련만. 이건 너무 사실적이잖아.

 

갑자기 우울해지니, 한 문단 더 인용한다.

 

"저 당나라 화상은 동신(童身)으로 수행을 쌓은 놈이라, 그 몸에서 원양(元陽)이 한방울도 빠져나가지 않았으니, 저놈을 잡아서 나하고 몸을 섞기만 하면 태을금선이 되는 것즘 문제가 안 될 터인데, 뜻밖에도 저 밉살맞은 원숭이 녀석이 내 술책을 꿰뚫어 보고 화상을 구해 갈 줄이야! "

- 359쪽에서 인용

 

뭐 중요하지는 않지만, '원양'의 뜻에 관심가지시는 친구분들이 계신 것 같아서. 그런데 삼장은 등신 아니고 동신임. 걍, 학구적 의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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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법사
샐리 하비 리긴스 지음, 신소연.김민구 옮김, 이주형 감수 / 민음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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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뉴욕 타임즈 기자가 쓴 대당서역기>에 실망해서인지 이 책을 집어 들면서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러나 읽어 갈수록 이 책만의 개성이 느껴진다. 사실 원전 <대당서역기>에 나온 현장의 취경 루트나 세세한 설명은 중국인 학자가 쓴 <현장 서유기>만 못하다. 그런데 현장의 위업에 반하거나 주눅들린 상태가 아닌, 드라이한 서술이며 서구 지식인의 한계가 아니라 장점이 보이는 서술이 꽤 읽기 흥미롭다. (현장과 논쟁 배틀하는 쪽을 외도, 이단이라 표기하지 않고 힌두교 자이나교의 한 부파, 하는 식으로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등등의 점에서 현장에게 반한 상태가 아니라고 이 리뷰에 썼음)

 

책은 현장법사의 취경 여행과 귀국 후 번역 작업을 연대 순으로 설명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거기에 불교 교리 관련 설명이나 수행법, 당시 국제 정세, 불교 예술 등등 현장이란 인간을 이해하는 인프라에 해당하는 배경 지식을 깔아준다. 중앙 아시아와 인도 제 국가들에 대한 객관적 설명은 <대당서역기>를, 현장의 개인적 업적은 <자은전>을 기본으로 다룬다. 지도, 건축물 평면도, 불교 예술품 사진 등 도판도 충실하고 현지인명과 지명도 현지발음과 중국한자표기를 병기한다. 물론, 실라바드라를 계현법사라고 하는 식으로 우리식 한자발음으로 표기한다. 원칙이 있는 편집이다. 읽다가 표지를 넘겨 출판사를 다시 확인할 정도로 맘에 들었다. 뭐, 단순 오타가 있긴 하다만.

 

특히 이 책의 저자는 불교 예술품 관련 설명이 장기. 아래 인용 문단을 보시라. 그동안 나는 현장법사가 왜, 어떻게 인도 등 여행지의 설화를 채집, 기록했는지가 궁금했는데 이 책 덕분에 풀렸다.

 

탁실라 인근에는 부처가 전생에 자신의 목을 잘라 머리를 보시한 이야기를 기념하는 스투파가 있었다. 현장은 이 지역의 특정 유적을 본생담의 무대와 결부시키는 것에 상당한 열의를 보였다. 그리고 이러한 본생담은 돈황 석굴 등 중국과 인도 도처에 벽화로 그려지거나 돌로 조각되었으므로, 현장도 시각적으로 묘사된 본생담을 목격했을 가능성이 있다.

- 본문 97쪽에서 인용

 

간다라 부조에 나타난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고 이해하려면 불교의 문헌 기록의 전통을 알아야 한다. 현장의 기록은 설화로 가득한데, 불교 설화는 종종 불교미술의 주제로 애용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장의 서술은 설화의 배경 무대가 되는 곳의 지리적 위치를 확인해 줄 뿐만 아니라 설화가 갖는 의미를 파악하게 한다. 특히 대인도 제국에서 이러한 설화가 기원한 장소를 찾는다는 것은 중요하게 여겨져 왔다. 불교미술은 종종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체였는데, 역사적인 부처뿐만 아니라 과거불의 생애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가 사원의 상방을 장식한다. 승려들은 미술이 설화에 생명을 주고 설화가 미술에 생명을 준다는 것을 알았으며, 사람들은 그 양자로부터 신앙을 배운다.

- 본문 288쪽에서 인용

 

그외, 현장은 아더 왕 같은 중세 기사 문학의 영웅처럼 불교 서사시의 영웅이다(37쪽)라거나, 인도의 카니슈카 왕을 인도의 클로비스 왕이라고 표현(95쪽)하거나, 불전 부조를 예배하는 것을 가톨릭 신자들이 사순절 둥 십자가의 길을 따라 기도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본문 101쪽)고 서술하는 것 등등, 서구인 독자를 대상으로 와닿게 설명하려는 저자의 모든 시도가 다 재미있다. 덕분에 동서양 역사와 문화를 넘나들며 지적 자극을 받게 된다.

 

이 책에서는 중국인이 쓴<현장 서유기>와 다른 서구인의 시선이, <뉴욕 타임즈 기자가 쓴 대당서역기>와 다른 불교 전공자의 시선이 곳곳에 느껴진다. 충실히 정보를 전달하면서도 격조있고 임팩트 있는 문체다. 아무래도 내 입장이 뭐 그런지라, 내용 이해보다 글 쓰는 입장에서 주의깊게 본 책이다. 배울 점도 많고 재미도 있었다.

 

참, 요전에 설화 속 현장을 모세와 비교해서 쓰고 혼자 대발견한 것마냥 좋아했는데, 이분이 이 책에 이미 써 놓으셨더라. 이 부분은 읽으면서 좀 허무했다.  

 

참참, 북인도를 수세기동안 지배해왔던 많은 군주들이 이방인이었고, 이들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라도 어떤 종파를 지지할지 결정해야만 했다(113쪽)는 대목을 보니, 교리논쟁배틀이 군주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당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책에 더 깊은 내용은 없었다. 아는 분, 알려 주십사.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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