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족의 왕 아틸라 역사 명저 시리즈 10
패트릭 하워스 지음, 김훈 옮김 / 가람기획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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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이던가, <박물관은 살아 있다>란 영화를 조카들 데리고 가서 보았다.  전시되어 있던 밀랍 인형들이 살아 움직이며 주인공과 더불어 소동을 일으키는 장면에서 유목민의 복장을 한 어떤 사람이 눈에 띄었다. 설정 상, 아틸라인 것이 확실했다. 게다가 야간 경비직에 있는 주인공이 무료한 밤에 읽는 책이 바로 이 책 <훈족의 왕 아틸라>였기도 했으니.

 

이 책의 주인공인 아틸라는 아마 징기스칸과 더불어 유럽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동양계 군주가 아닐까싶다. 그러나 아틸라는, 서양 신문에 의해 밀레니엄을 대표하는 인물로 꼽히고, 고국에서 신적 추앙을 받으며 제대로 업적이 자국 역사에 기록된 징기스칸에 비해, 너무 터무니없이 편견으로 가득찬 평가를 받고 타국 역사책에 실려 있는 인물이다. 저자인 패트릭 하워스 역시 그 점을 의식해서인지, 첫 장부터 "크게 중상당해온 민족"이라는 소제목 아래 이야기를 시작한다. 마음에 든다.

 

지난 1500년 동안 서구 사람들은 편견에 가득 차 있고 아주 적대적인 자료들을 통해 훈 족에 관한 지식을 얻었다. 라틴 어나 그리스 어로 된 그 같은 자료를 남긴 최초의 학자들은 로마 제국의 시민이었다. 그들은 야만인 훈 족을 경멸어린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그들의 뒤를 이은 기독교 계통의 연대기 저자들은 훈 족을 이교도 무리로, 아틸라를 하느님이 죄를 지은 사람들을 징벌하기 위해 지상에 내려보낸 도구로 보았다. 최근 들어서는 아틸라와 훈 족에 대한 새로운 자료들이 주로 고고학적인 유물의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  - 본문 10쪽에서

 

저자는 훈족이 실제의 모습 이상으로 유럽사에서 유럽인의 시각에 의해 중상당해 왔음을 밝히며 훈족의 역사를 서술한다. 근래에 고고학적 발굴 작업의 성과로 이 시각이 많이 고쳐지고 있다고 한다. 훈족이 서진하고, 이에 위협을 느낀 게르만족이 이동하면서 로마 제국이 무너지고 중세가 끝난다, 라는 기본적 세계사의 서술만 보면 훈족이란 찬란한 고대 로마제국의 문명을 무너뜨린 야만족일 뿐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발굴된 유골을 보면 실제 순수 몽골로이드의 유전자를 가진 훈족은 1/4밖에 되지 않으며 크게 묶어 로마인들이 훈족이라 칭했던 그들 무리의 민족 구성은 보다 복잡했다. 유럽인과 같은 외모를 가진 화이트 훈족도 있었다고 하니 말이다. 그리고 훈족은 지배지역의 농경민족들을 그대로 땅을 경작하게 하기도 했으며 그들 지배하의 기독교 교도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누리게 했다. 물론 그들이 피지배인들을 지배계급 무사로서 칼로 다스린 것은 사실이지만, 고대, 중세의 다른 지배계급과 지배민족들에 비해 특별히 더 가혹한 지배를 했다는 증거는 없다.

 

이어서 저자는 아틸라의 탄생과 가족사, 그의 8년이란 짧은 치세 기간동안에 이룩한 정복 사업들에 대해 서술한다. 그의 콘스탄티노플 위협 부분에서는 로마 제국의 역사가 짧게 서술되기도 한다. 호사가들이 좋아하는, 서로마제국의 공주 호노리아에게 청혼받은 일화가 그의 서로마제국 침략을 앞당겼던 이야기가, 452년 카탈루냐 전투 이후 롬바르디아 지역의 도시들을 함락시켜 (결과적으로) 베네치아 공화국 탄생에 일조한 역사가 이어진다. 또 서구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교황과의 만남도 아틸라는 별 감흥없어 했다는 일화도 등장한다. 서구인들만 아틸라를 신의 채찍이니 뭐니 의미부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후 "니벨룽겐의 노래"를 비롯, 서구인들의 드라마나 오페라에 수없이 아틸라가 등장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그의 결혼식 이야기가 나온다. 게르만계 여성 일디코를 새 신부로 맞이한 첫날밤에 그는 급사하고, 이후 그의 아들들 대에 제국은 해체된다.

 

이후 아틸라는 긴 세월 동안 문학과 예술 작품들을 통해 그의 모습을 후세에 전하게 된다. 아마, 그 정도로 그란 인간 자체와 훈족의 침략이 인상적이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실제로 로마 측 지식인의 기록이 아니라 일반 민중들의 구비 설화를 바탕으로 기록된 '에다'나 '니벨룽겐의 노래'를 보면 그의 모습은 그렇게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등지의 드라마에서 그의 모습은 대개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근대에 와서 아틸라는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아틸라>에 등장, 당시 이탈리아 통일 운동을 위한 애국심 고취용으로 이용된다. 또한 기독교도의 승리를 상징하는 의도로 프란츠 리스트의 <훈 족의 전쟁>에도 이용된다. 게다가 보불전쟁시기나 1차대전 시기의 프랑스인들은 독일의 위협을 훈족의 침략에 빗대 선전 선동하는 문구를 사용하기도 했다.  

 

물론 그가 무시무시한 정복자이기는 했지만 당시의 전쟁 관행에 비추어볼 때 전시의 약탈과 학살은 아틸라 만의 만행은 아니었다. 훈 족의 침략 역시 당시 민족 대이동 시기의 유럽사에 비추어 아주 특이한 그들만의 침략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후 유럽사와 유럽인들의 심리에 아틸라의 모습은 부정적으로 남게 된다. 천 오백여 년이나 전의 역사적 경험인데도 말이다. 유럽인들에게는 유전자에 그 때의 공포가 새겨져서 대대 손손 전하게 된 것일까? 아니면 끝없이 그 때의 공포를 상기시켜 야만과 문명, 동양과 서양, 기독권과 비기독권을 대립시켜서 유럽인들 스스로 챙길 이익들이 많았던 것일까? 게다가 웃기는 것은, 동양의 작은 나라 몽골로이드 인종인 우리는, 왜 고대 로마제국의 입장에 서서 게르만족을, 훈족을 야만족이라고 덩달아 평하는 것일까?  

 

나는 이런 생각에 와 닿으면 엄청나게 혼자 달리게 된다. 나는 도대체 왜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면서 마냥 역사책을 읽어대는 것일까? 이 저자는 왜 이 책을 썼을까? 대중 역사서의 시각과 서술은 어떠해야 하는가? 등등,,,  (게다가 나에게 여건이 허락된다면) 내가 역사 에세이 책을 쓴다면 과연 서술할 때에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 에까지 나의 생각이 나의 지능과 재능을 앞질러 달려가 버리는 거다. 맙, 소, 사!

 

그래도 말하고 싶다. 이 책, 참 재미있다고. 거칠게 읽고 거칠게 말한다. 고대 훈족과 게르만족, 로마 제국의 부족명칭이나 전투 장소 지명 같은 것은 읽고 나서 다 잊어도 좋다. 단 하나, 우리가 그동안 훈족을 얼마나 편견을 가지고 남의 시각으로 봐 왔는지, 그 점만 기억하면 된다고. 비단 훈족의 역사만 그렇게 봐 왔으랴. 그러므로 대중 역사서를 읽으면서 얻는 소득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세계관의 재정립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계속 말하고 싶다. 연도 암기나 사건 순서, 위인 인명 외우기에 시달려 역사서를 멀리한 당신, 역사는 순 암기 투성이고 지루하다는 거, 그거 역사를 보는 시각을 자신들의 이익에 유리하게 만들어 우리에게 강요하는 강자들의 음모론 같은 것이니 속지 말라고. 이 책을 읽으며 고대 종족의 역사가 지금 현실에 뭐가 대수냐, 하지도 말라. 머나먼 옛적 사람들에 대한 편견으로 굳어진 세계관은 현재 당신의 세계관도 지배한다. 결국, 제대로 알지 못한 역사를 통해 형성된 세계관은 당신을 강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이익 편에 서서 사고하게 만들고, 지금 당신 옆의 고통받는 사람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든다. 조심, 또 조심.

 

아마도 저자는 이런 말을 하고 싶어서 이 책을 쓰지 않았을까. (그리고, 나는 그런 시각으로 서술된 책을 쓰고 싶다! 맙, 소, 사! 그만 써 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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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바오출판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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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애틋하게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사랑한다는 말을 못 하겠고, 참으로 감동 받으며 읽은 책에는 리뷰를 선뜻 못 쓰겠다. 내 맘 속에 아껴둔 존재에 대해 내 부족한 언어로 표현하기가 어렵기도 하고, 표현하는 순간 나의 진지한 감정이 남들에게 유치한 감상으로 보여져 버릴까봐 겁나기도 해서이다. 그래도 이따금은 세상에 대해 크게 외치고 싶다. 나 이 사람을 읽고 사랑하고 있노라고. 내 친구인 당신들도 이 사람의 매력을 인정하라고. 

 

나는 역사 관련 서적 읽는 것이 좋다. 특히 자신의 앞 시대를 냉철히 고찰하며 자신의 당 시대를 열정적으로 살아간 역사 저술가들의 책을 읽는 것이 좋다. 예를 들자면 사마 천. 그는 궁형의 치욕을 견디고 살아남아 <사기>를 썼다. 또, 프랑스 아날 학파의 대표적 학자이며<봉건 사회>의 저자인 마르크 블로흐. 그는 강단에만 머무르지 않고 2차대전 당시 레지스탕스에 자원하여 활동하다가 독일군에게 총살당했다. 그리고 지금 이야기하는 슈테판 츠바이크. 그는 나치의 탄압을 피해 망명하던 도중 시대의 폭력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했다. 이런 저자들이 쓴 역사서를 읽으면 배경으로 나온 시대만 보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통해 자신의 시대를 말해주는 저자들의 낮은 목소리가 행간에서 들린다. 소름이 돋아 미칠 것만 같다.

 

나의 슈테판. 독자들은 그를 <베르사유의 장미 마리 앙트와네트>의 전기 작가라든가, <광기와 우연의 역사>의 대중적 역사 에세이 작가라든가, <모르는 여인의 편지>의 문학가로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안타깝다. 내가 보기에 그의 진면모를 읽을 수 있는 책은 이 책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나 <에라스무스>, <아메리고>인데 말이다. 물론 그의 다른 책들에서도 섬세한 심리 파악 문체라든가 인간 사회에 대한 통찰력 등 그의 매력은 충분히 넘쳐 난다. 하지만 과거 한 시대의 폭력에 외롭게 저항하거나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갔던 사람의 이야기를 생생히 들려주어서 자신이 살고 있는 현 시대의 폭력까지 고발해 버리는 그의 양심과 지성을, 겉으로는 고요해 보이지만 분노로 거세게 뛰고 있는 그의 심장의 박동을 느끼기에는 위의 3종의 책이 최고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책이 다루는 시대는 서양의 16세기이다. 루터와 칼뱅이 활약하던 종교개혁의 시기이자 헨리8세와 프랑수아1세와 카를5세, 슐레이만 대제란 걸출한 군주들이 등장했던 유럽 격동의 시기이다. 게다가 지네 말로는 대항해시대인 서구 세력의 침략이 한창 진행되던 시대. 정말 작가들이 쓸 거리도 독자들이 읽을 거리도 많은 시대이다. 더불어 아직 미숙한 내가 보기에 한 가지 가장 중요한 점은, 이 시기가 바로 현대까지 이어지는 세계사와 세계관의 주요 기틀이 거의 다 짜인 시기라는 점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다루는 종교개혁만 해도 그렇다. 나는 신학적으로는 모른다. 그래서 종교개혁을 근대적 정신을 지닌 개인의 탄생과 기존 권위의 부정이라는 면에서 본다. 그런데, 신교도들의 이후 역사를 보면 이상한 점이 보인다. 자신들이 카톨릭에 의해 박해받던 시절에 내세우던 주장과 달리, 자신들이 권력을 잡은 이후에는 자신들과 다른 종교적 해석을 하거나 신앙과 상관없는 정치적인 면에서 신의 이름을 내걸고 반대자들을 박해하는 모습이 너무도 많이 보인다는 점이다. 사실 다른 해석을 할 권리를 들고 기존 교회에 저항했기에 그들의 명칭이 프로테스탄트인 것인데, 그렇다면 그러한 프로테스탄트 내에서는 이단이란 개념조차 성립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런데 프로테스탄트 내에서 이단에 대한 공개 화형식이 일어났다. 제네바에서 신정정치를 구현한 칼뱅에 의해서, 역시나 신의 이름을 내걸고.  

 

1509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칼뱅은 신학과 인문학 연구에 몰두하다가 종교 개혁적 입장을 지지하는 연설을 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 스위스 바젤로 망명한다. 그 곳에서 그는 <기독교 강요>를 저술하여 종교 개혁의 대표적 신학자로 인정받는다. 이후 옛 동료 파렐의 강요로 제네바의 종교 개혁에 참여하게 된 칼뱅은 설교자 자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엄격한 종교 제도들을 도입하여 시의회와 갈등을 빚고 파면당하나 카톨릭 세력의 위협을 느낀 제네바 측이 다시 삼고초려하여 그를 모셔간 이후로 제네바를 "개신교의 로마"로 만들고자 엄격한 신정정치를 펼친다. 문제는, 칼뱅은 자신과 다른 종교적 해석이나, 신앙과 상관없는 부분에 대한 다른 의견을 못 받아들이는, 지나치게 독선적 성격의 소유자였다는 점. 곧 엄격한 법 집행으로 제네바의 거리에서는 웃음이 사라지고 오직 종교경찰의 감시의 눈초리만 번득이게 된다. 심지어 어린이에게도 사형이 집행된다.

 

1553년, 칼뱅은 삼위일체설을 부인하고 칼뱅의 권위에 도전했던 스페인 출신의 세르베투스를 부당하게 대하여 이단으로 단정, 화형에 처해 버린다. 이에 칼뱅은 전 유럽 지성들의 비판을 받는다. 칼뱅이 무서워 각자의 서재 안에서 문을 닫아 걸고 한 비판을. 이에 맞서 공개적으로 칼뱅의 오류를 지적한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인 카스텔리오이다. 카스텔리오는 <칼뱅의 글에 반대함>에서 말한다. "한 인간을 불태워 죽인 일은 이념을 지킨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을 살해한 것이다! "라고. 그후 카스텔리오는 칼뱅의 스파이들에 의해 일거수 일투족 감시당한다. 치사하고 비열한 허위 고발과 중상모략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러나 카스텔리오는 자기 의사를 표현하여 반박할 권리조차 빼앗긴다. 뛰어난 전략가인 칼뱅은 자신이 다스리는 제네바 시와 카스텔리오가 있는 바젤 시의 외교 문제로 이 문제를 이끌어가서 문인에게서 글을 쓸 권리를 빼앗아 버린 것이다. 카스텔리오의 책이 인쇄되어 출간되기까지 이후 백 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칼뱅 측의 지속적이고 야비한 공격에 카스텔리오는 온화하게 "기독교도에게는 사랑의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실천하자.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우리의 적들의 입을 다물게 하자. 당신은 당신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다른 사람도 자신들의 의견을 그렇게 생각한다. "라고 기독교적인 관용 정신으로 맞선다. 점점 궁지에 몰려 가던 카스텔리오는 48세의 나이로 운명한다. 그의 친구의 말처럼 "하나님의 도움으로 적들의 발톱에서 빠져 나간" 것이다. 아마, 그가 조금 더 오래 살았더라면 세르베투스처럼 이단으로 몰려 화형당했을 지도 모른다. 

 

이런 카스텔리오의 관용정신은 17세기 로크가 <관용에 대한 서한>을 쓰기 이전에, 18세기 볼테르가 <관용론>을 집필하기 이전에, 19세기 말 에밀 졸라가 <나는 고발한다>라는 공개서한으로 드레퓌스를 옹호하기 이전에 몇 세기나 앞서서 등장한 것이다. 그것도 극도의 대립과 증오로 혼란스러웠던 16세기 종교개혁의 와중에 말이다. 그러나 카스텔리오의 투쟁과 원고는 잊혀졌다. 그의 책은 사상의 자유를 가장 신성한 기본법으로 요구한 유럽 최초의 문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칼뱅의 승리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이에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도덕적인 노력도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영원한 이상을 위해 너무 일찍 나타났던 사람들, 그래서 패배한 사람들도 패배함으로써 자신들의 의미를 실현했다. (중략) 언제나 승리자들의 기념비만을 바라보는 세상을 향해서, 수백만의 존재를 망가뜨리고 그 무덤 위에 자신들의 허망한 왕국을 세운 사람들이 인류의 진짜 영웅이 아니라, 폭력을 쓰지 않고 폭력을 당한 사람들이 진짜 영웅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해야 한다.   

- 본문 23쪽 

 

바로 위와 같은 대목에서, 나는 본다. 칼뱅의 독재와 독선에 맞선 카스텔리오의 단단하고 날카로운 펜을. 또한 나는 본다. 나치 독일의 폭력에 맞서는 저자 슈테판 츠바이크의 역시 단단하고도 날카로운 펜을. 그래서 이 책을 읽다보면 폭력의 시대에 저항하는 두 명의 사랑스런 인문주의자 남자들이 그려져서 심장이 마구 뛴다. 갈비뼈가 아플 정도이다. 뿐만이랴, 내가 무식해서 미처 모르는 그 어떤 카스텔리오가, 그 어떤 슈테판이 더 있었을지,,,,  아, 이런 감상적 문장이 나올까봐 내가 이 책의 리뷰를 오랫동안 못 썼던 것이다!

 

나의 슈테판이 쓴 책들을 읽다보면 이상한 현상이 생긴다. 처음에는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등장 인물의 전기적 정보와 관련된 부분에 줄을 치며 읽는다. 그런데 갈수록 주요 내용과 상관없이 슈테판의 멋진 논평이 드러난 문장에 감탄하며 줄을 치게 된다. 그래서, 책을 다 읽은 후에 리뷰를 쓰고자 다시 책을 후루룩 넘겨 줄친 부분만 읽으면, 책의 내용을 요약하기에는 하나도 도움이 안 되지만 너무도 반짝이는 문장들을 눈부시게 만나게 된다. 그래서 지금 나는 이 리뷰를 마무리짓기 위해 도대체 어떤 문장을 인용해야 할 지 난감하다. 그래도, 이 책의 주제와 이 저자의 매력을 한 칼에 보여주는 문장을 고른다면, 아래와 같다.

 

일시적으로 이 이념이 말을 못하게 막으면, 그것은 모든 억압이 미치지 못하는 가장 깊은 양심의 공간 속으로 도망쳐 들어간다. 그래서 권력자들이 자유정신의 입을 틀어막고서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새로운 인간이 태어나는 것과 더불어 새로운 양심이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나 누군가는 인류와 인간성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위한 싸움을 떠맡아야 한다는 정신적인 의무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제든 모든 칼뱅에 맞서 어떤 카스텔리오가 다시 나타나서 폭력의 모든 폭행에 맞서 사상의 독자성을 옹호하게 될 것이다.   

- 본문 288쪽에서  

 

그러나 결코 저자 슈테판 츠바이크는 카스텔리오를 영웅적으로 묘사하고자 칼뱅을 근거없이 비방하지는 않았다. 그가 이 책을 집필하고자 자료를 찾던 1935년에 쓴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지금 나는 카스텔리오에게 완전히 빠져들고 말았기 때문에 칼뱅에 대해서 공정한 태도를 취하고, 그에 대한 적대감을 갖지 않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가 카스텔리오에게 부당한 행동을 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에게 부당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만 합니다." 또한 이 책 본문 280쪽에서도 저자는 이렇게 분명히 말하고 있다. "칼뱅이 요구했던 것과 역사의 발전 속에서 칼뱅주의가 이룬 것을 동일시하는 것은 큰 잘못일 것이다. " 바로 이 점이 내가 슈테판 츠바이크를 "나의 슈테판"이라고 부르는 많은 이유 중 하나이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저서들은 나치 독일 시절에 금서로 지정되었으며, 2차대전 종전 후 재간행된 이 책은 기독교 칼뱅파 쪽으로부터 신학적, 정치적으로 심한 공격을 받았다. 카스텔리오가 겪은 일과 비슷한 일이 그에게도 일어난 것이다. 이에 카스텔리오와 슈테판 츠바이크를 다 지켜본, 두 남자를 다 사랑하는 나는 마지막으로 이 문장을 쓴다. 어느 시대든, 이념이나 종교 자체보다 광신의 자세가 더 문제인 것이다, 라는 문장을.

 

*** 사족 : 혹시 이 글이 불편하실 분들을 위해 이미 칼뱅의 추종자들은 1903년에 세르베투스가 화형당한 제네바의 그 자리에 기념비를 세워 칼뱅의 오류를 인정한 바가 있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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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77
안드레아 아로마티코 지음 / 시공사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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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과 현자의 돌에 대한 보다 전문적이고 깊은 자료가 필요해서 찾다 보니, 아니나 다를까, 또 시공사 디스커버리 시리즈밖에 없다. 그럼 그동안 내가 알고 있었던 연금술 관련 배경 지식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읽었던 것일까? 블로그 하기 전의 독서 다이어리를 뒤져보니 단행본이 아니라 일반적 오컬티즘과 역사서에서 여기저기 주워 읽었던 흔적들이 나온다. <마법사의 책>이나 <대중의 미망과 광기>, <신비주의>, <지식의 증류>등등,,, 역시, 짧게라도 읽고 기록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은 시공사 시리즈답게 도판이 훌륭하다. 이 말은 시공사 디스커버리 시리즈를 쓸 때마다 늘 하던 말이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특히나 의미심장한 평이다. 왜냐하면 연금술의 실험 과정은 상당히 우의적인 단어와 삽화로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용은 일반적인 상식 수준의 서술밖에 없어서 아쉬웠다. 실험과정을 기독교 교리에 빗대 설명한 부분이 없는 부분도 아쉽다. 결정적으로, 부제에 '현자의 돌'이 적혀있지만 현자의 돌에 대한 부분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좀 낚인 기분도 든다. 하지만 저자가 신비주의적으로 서술하고 있지 않은 점도 괜찮다. 

 

그동안 나는 여기저기에서 연금술 관련한 이야기들을 주워 읽으면서, '연금술은 황금 만들기 자체보다 대우주와 소우주간의 연관성 등 자연의 비밀을 밝히고, 보다 완벽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에 대한 철학적 의미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를 뒷받침해주는 서술이 있어서 반가웠다. 써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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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역사 - 상 영국의 역사
나종일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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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대한교과서(현 미래엔)의 세계각국사 시리즈를 (아무도 시키지 않았건만) 의무감을 가지고 머리카락 쥐어뜯어가며 광적으로 읽어댄 적이 있었다. 세계사 통사로 전체 얼개 파악한 후에, 말하자면 각개 격파를 시도한 셈이었는데 그 빽빽한 활자들이며 흑백 사진들에 질려 한동안 각국사를 읽지 않게 되는 후유증이 남았다. (앙드레 모로아나 케임브리지 시리즈, 아틀라스 시리즈나 간간 손댔음). 머릿속에 지식은 남았지만 즐거운 독서의 기억은 없다. 힘든 연애의 추억같은 힘든 독서의 추억만 남았다.

 

그 과거의 질린 경험 때문에 이번에 다시 영국사를 읽을 때에는 교보 문고에 가서 서양사 코너를 훑어 보며 실제 책을 보고 꼼꼼하게 골랐다. 가벼운 이야기류의 책들에게는 코웃음을 날려 주고, 옥스퍼드 영국사에는 식겁한 후, 이 책을 골랐는데, 다 읽고 난 지금 매우 만족스럽다. 사십년 묵은 노안에 걸맞게 활자도 시원하고, 지도도 정확히 필요한 위치에 있다. 도판과 사진이 흑백인 점은 뭐 그다지 흠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편집을 좀더 세련되게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책은 제목 그대로 영국사를 다룬다. 상권인 이 책은 원시 켈트족 시절부터 크롬웰 시대 명예혁명까지 다룬다. 책이 상,하 2권으로 나눠져 있어서 튜더 시대 이전 고, 중세사를 깊이 읽을 수 있는 점이 특히 좋았다. 다른 1권짜리 얇은 역사서들은 거의 튜더 시대 이전 서술의 분량이 너무 적은 데 비해서 이 책은 튜더 이전 시대, 즉 원시 시대와 로마 지배하의 브리튼, 앵글로 색슨과 노르만 정복 시대, 앙주 왕조, 프랑스와 전쟁을 보낸 13-14세기와 랭커스터가와 요크가 등에 대한  서술 분량이 250쪽에 달한다. 그래서 내가 이번에 관심을 가진 고중세사 부분을 다른 책에 비해 깊이 읽을 수 있었다.

 

그밖에, 영국의 프랑스를 중심으로한 대륙에 대한 끊임없는 간섭과 전쟁, 그로인한 전비 마련을 위한 의회 소집 등을 읽으며 영국식 의회 민주주의가 어떻게 성립하고 발전해나갔는지, 의회와 군주의 갈등이 역시 어떻게 현재 영국의 정치 제도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서술이 특히 재미있었다. 정치 사상과 같이 언급해주신 점도 읽기 편했다.

 

관심있는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역사서를 주로 읽다가 이렇게 통사를 한 번 읽어주면 그 관심 시기 앞 뒤의 배경 등을 보면서 전혀 상관없이 보였던 사건들의 맥락이 이어져 시야가 트이는 경험을 하곤 한다. 이렇게, 이 책은 교과서같은 좀 읽기 지루한 통사서도 종종 읽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다. 다른 이야기류, 검증되지 않은 야담까지 서술하고 도판만 화려한 영국사들에 비하면 월등히 가치있는 책이다. 워밍업이 좀 되었으니, 하권까지 떼고 나면 나를 식겁하게 만든 옥스퍼드 영국사에 도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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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통일 이탈리아사 - 케임브리지 세계사 강좌 2
크리스토퍼 듀건 지음, 김정하 옮김 / 개마고원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몇 권 읽은 이탈리아사 중에 가장 마음에 든다.  이탈리아사이지만 저자는 다른 책과 달리 고대 로마제국 부분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지 않는다. 제목 그대로 이탈리아 통일 운동 - 리소르지멘토 - 시기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런데 다른 각국사 통사류들처럼 모든 과정을 다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전체 이탈리아사를 관통하는 몇 가지 논점들을 놓고 집중적으로 통일 이후 현대까지의 이탈리아사를 말해 준다. 멋진 시선이다! 게다가 처음부터 이탈리아의 정체성과 지리적 특수성을 먼저 논하고 시작하지 않는가!

 

특히 남북 지역 갈등이나 현 이탈리아가 지닌 사회 경제적 문제점들의 근원을 지리적 역사적으로 밝혀주는 부분에서는 나도 몰래 '햐, 햐~'하고 감탄하며 읽었다. 또 다른 책들이 나폴레옹 전쟁 이후 이탈리아의 민족적 각성 부분을 너무도 단선적으로 서술하는데 비해 이 책은 각 지역별로 계급별로 나눠서 분석해 주는 것도 멋졌다. 예를 들자면 나폴레옹 시기 통일 중앙 정부의 경험을 통한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각성은 나폴레옹 행정부에 참여했던 귀족이나 중간급 지주 계급 엘리트들이나 경험했다는 것, 또 남부 칼라브리아의 가난한 농민들은 "공화국이 되어도 세금을 많이 걷는다면 공화국은 필요없다"라고 생각했다는 것. 너무 멋져서 질투까지 나는 시선이다. 이분의 역사 서술이 참 마음에 들어 더 찾아 보니 <파시즘과 마피아>라는 책이 있는데, 번역본은 없다. 아쉽다.

 

자, 다시 책으로 돌아가자. 고대 로마제국 멸망 이후 이탈리아에는 통일된 이탈리아라는 국가 개념이 없었다. 도시 국가의 코무네라는 자치기구는 혈족 위주로 운영되었기에 권력 다툼시 가문의 이익만을 위해 도시에 외세를 끌여들이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세계제국 개념을 갖고 있던 신성로마제국은 로마가 있는 이탈리아반도를 늘 지배하려고 했고 여기에 프랑스 세력은 좌시하지만은 않았기에 이탈리아는 외세의 각축장을 이루었다. 중세를 거쳐 지리적 이점을 살려 지중해무역에 나선 도시 국가들이 번영을 누려 르네상스의 찬란함을 이루기도 했지만, 근대까지 이탈리아 북부는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에, 남부는 에스파냐의 지배와 간섭을 받는 역사가 이어진다. 19세기 초 나폴레옹의 침략을 받으며 싹트기 시작한 통일 이탈리아에 대한 열망은 이후 1848년 프랑스의 2월 혁명의 영향으로 이탈리아에서는 마치니의 청년 이탈리아 당을 중심으로 리소르지멘토란 통일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된다. 헌법에 의한 통치와 외세 배격 독립, 통일을 내건 이러한 운동은 왕국과 공화국, 교황국에 대한 의견 차이를 보이기도 했지만, 사보이 왕국의 카보우르 수상과 '붉은 셔츠 의용군단'의 가리발디 장군이 활약, 1861년 드디어 이탈리아왕국이 성립된다. 이후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세력을 몰아내고 로마 주변의 교황령을 점령하여 1870년에 드디어 통일전쟁을 마친다. 그러나 지역적 계급적 분열과 미흡한 민족적 정체성은 민족의 위대성을 외치는 파시스트당의 무솔리니의 독재를 허용했고,  2차대전을 겪은 후인 1946년에야 군주제를 폐지하여 드디어 마치니의 염원이었던 이탈리아 공화국이 탄생한다. 그러나 분리 독립 문제가 제기될 정도로 심한 남북 경제 격차로 인한 지역 갈등과 마피아, 조직 범죄, 언론 재벌 등 현재 이탈리아가 안고 있는 문제는 여전히 버겁다. 이 책은 이러한 현대 이탈리아의 제반 문제들이 어디에서 기원했는가를 역사적으로 살펴보기 딱 좋은 책이다.

 

위와 같은 기본 지식의 습득 외에, 어떤 한 시기의 한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려면 그 시기만이 아니라 앞뒤시기를 다 살펴보아야 한다는 생각, 이 책을 읽으면서 더욱 굳혔다. (아! 그래서 한 줄 쓰기위해 한 권 읽어야하니 시간은 엄청 걸린다. 힘들어 죽겠다.  -_- ) 그리고 이런 저자의 '독자의 개안을 가져오는' 시선은 객관적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저자의 농익은 세계관에서 비롯한다는 생각도 굳혔다. 행복했던 독서 경험이다.

 

이상한 점 :

36쪽에서 '펠라그라'가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문둥병의 고유명칭이라는 옮긴이 주는 뭔가?

71쪽에서 12세기 인물인 프리드리히 2세 이야기에 17세기의 30년 전쟁은 왜 끼어서 서술하셨지?

프라하 창문 투척사건이후 보헤미아의 왕으로 추대된 팔츠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와 헷갈리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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