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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 2 ㅣ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2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십자군에 대해 알고 싶어져서 아래의 책 5권을 연달아 읽었다. 한 권만 읽고는 그 책의 장단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것 같아서 다 읽은 후
비교하며 한꺼번에 간단히 리뷰 남긴다.
십자군 전쟁 : 그것은 신의 뜻이었다! / W. B. 바틀릿 지음 / 한길 히스토리아
십자군 : 기사와 영웅들의 장대한 로망스 / 토마스 F. 매든 지음 / 루비박스
십자군 이야기 2 / 시오노 나나미 지음 /
문학동네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 아민 말루프 지음 / 아침이슬
살라딘 : 십자군에 맞선 이슬람의 위대한 술탄 / 스탠리 레인 폴 지음 / 갈라파고스
이 중, <십자군 이야기 2>는 가장 편파적 시각으로 서술된 책이다. 1편을 읽다가 지나친 영웅
사관이 못마땅해서 도중에 덮어 버렸다. 계속 사 읽을 생각이 없었는데 발리앙 이블린을 가장 많이 묘사한 책이 이 책이어서 할 수 없이 주문해
읽었다. 역시나, 이번 책에서도 서술의 단점들이 우수수 보인다.
2편은 1차 십자군의 성공에 따른 예루살렘 왕국과 주변 십자군 국가들의 성립과 수호, 에데사 함락으로 촉발된 서구의 2차 십자군, 살라딘의
등장과 하틴전투, 원래대로 예루살렘이 이슬람에 속하기까지의 과정이 그려진다. 1차 십자군 성공 후 그 지역에 정착한 자들이 성과를 유지하기 위해
하는 노력, 그를 이해 못하고 종교적 타락으로 생각하는 신출내기 십자군 유입자들과 정착자들 사이의 갈등, 경제적 이권을 둘러싼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의 현실, 각 종교 기사단에 대한 해설이 자세한 장점이 있다.
생생한 인물 묘사로는 위의 5권 중 최고이다. 문제는 그 묘사 과정에서 일차 사료를 편파적으로 사용한다는 점. 그리고 저자의 특성인
'힘있고 재능있는 남성에게 반한 상태'에서의 예찬식 서술이다. 예를 들어 보자. 258쪽, 문둥이 왕 보두앵 4세의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서술한
장면에서 보면, 대비인 아녜스의 국정 개입을 막고자, 즉위후 왕이 친어머니인 그녀를 왕궁에서 추방했다는 일화가 나온다. 하지만 다른 사료에는
왕이 모후 추방 후,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소년다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곧 그녀를 다시 불러 들였다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시오노는 추방
부분만 언급하며 보두앵 4새의 능력을 예찬한다. 또 313쪽, 하틴 전투에서 포로로 잡힌 샤티용을 살라딘이 처단하는 장면은 정말이지 기가
막힌다. 이 부분은 좀 길게 인용하겠다.
하틴 전투는 이미 7월 4일 오후에 끝났다. 그런데도 살라딘의 천막 앞으로 끌려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갈증을 호소하듯 입으로 크게
숨을 쉬고 있었다.
그것을 본 살라딘은 찬물을 가져 오게 해 먼저 왕인 뤼지냥에게 권했다. 그러나 뤼지냥은 마시지 않고 옆에 서 있던 샤티용에게 잔을
건넸다.
이를 본 살라딘은 버럭 화를 냈다. 너 같은 놈한테 줄 물은 없다고 외치며, 살라딘은 샤티용을 포로 대열에서 쓸어내 칼로
베어버렸다. 곧바로 달려온 술탄의 근위병이 샤티용의 머리를 잘랐다.
- 본문 313쪽에서 인용
이 대목을 보면, 아무리 곧 처형할 적장이라도 물 한 모금의 관용을 베풀지 않고 버럭 화를 내며 베어버린 살라딘이 잔인하고 비인간적으로
느껴진다. 그까짓 물 한 모금? 그런데 당시 이슬람 관습에서는, 포로에게 먹을 것이나 마실 것을 제공하는 것은 그를 살려준다는 무언의
약속이었다. 살라딘은 뤼지냥은 살려줄 생각이었지만 여러 차례 무장하지도 않은 순례단을 공격하던 샤티용까지는 살려줄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다.
그런데 뤼지냥이 살라딘이 내려 준 잔을 무심코 샤티용에게 돌리자, 살라딘은 자신이 샤티용까지 살려줄 의도라고 주위에서 오해할까봐 격한 액션을
취한 것이다. 결코, 이 부분의 격렬함은 살라딘의 인성과 상관없다. 이 사건을 다룬 다른 책의 저자들은 이 이슬람 관습이 다 설명한다. 시오노의
이 책에만 이 설명이 빠졌다. 저자는 왜 그랬을까? 이 정도는 일반 독자들이 다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해서였을까? 이 사료는 접하지 못한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이 책 224쪽부터 12쪽에 걸쳐 아랍 측 원사료도 길게 인용한 것으로 보아, 저자가 이 사실을 안 접했을 리가
없다. 나는 십자군 측 유럽 측에 호의적으로 서술하는 저자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의 의도에 맞춰 그 부분 설명은 생략하고 서술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시오노 저자의 이런 면을 경계한다. 자신의 의도와 시각에 맞게 그 사료만 인용하고 그 사실만 설명하는 점.
대중역사서를 읽으면서 주의할 점이 바로 이 점이다. 역사서에 있는 내용이 다 사실이고 옳은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저자의 의미 부여가 다
정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비전문가 취미 독서가인 우리는 각 사건의 세세한 내용을 모르니 그것을 어떻게 파악하냐고? 오, 노노!
그건 인용 사료에 대한 전문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책 전체를 다 읽고 난 후, 일관되게 느껴지는 저자의 '포즈'에서 파악하는 것이다.
여튼, 로마인 이야기이건 십자군 이야기이건, '이야기'에 해당하는 일본어는 '物語 : 모노가타리'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소설 장르이다.
즉, 개연성 있는 뻥이다. 시오노 나나미를 읽을 때에 이 단어의 의미를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