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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서로 읽지 않았지만 예스 검색이 안 되어 외서에 리뷰 썼음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 엥겔스 지음, 세계, 1988년.
말하자면, 이 책은 전설이다. 이 책을 인용하고 언급한 책은 많은데 현재 절판이기 때문이다.
웬만한 도서관에도 이 책은 없다. 검색해보면 이 책으로 세미나하는 모임도 많은데, 다들 어디에서 구해 읽으시는지 모르겠다. 설마, 다른
분들은 원서로 읽는 것일까?
산업혁명기 여성 노동자의 삶에 대한 내 글을 쓰면서, 이 책의 내용을 인용하고 싶었다.
그런데, 책을 구할 도리가 없다. 다른 책에서 인용된 부분을 재인용해도 되지만, 그건 사기다! 내가 읽지도 않고 읽은 척 쓸 수는 없다. 게다가
재인용하는 그 책에서 잘못된 맥락으로 인용했을 수도 있다. 단 한 문장이라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전체 한 권 다 읽은 후에라야만 안심하고
인용할 수 있다. 글을 쉽게 쓸 생각은 말야야 한다. (여기까지 쓰고, 스스로 내 자세에 감동받아 코 한 번 푼다. )
맘 먹었으니 읽기는 읽어야할텐데, 원서 주문하고 읽는 시간 계산해 보니, 한 달은 걸리겠다.
한 달이면 담당 에디터님을 뒷목 잡고 쓰러지게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자, 시간이 없다. 26년 전에 나온 번역본 책을 찾자!
서울시 도서관을 검색해보니, 전체 22군데 중 이 책이 딱 한 곳, 정독 도서관에 있었다.
1시간 멀미하며 찾아가보니, 오래 되고 한 권밖에 없는 책이라 서고에 있었고, 대출 불가 대상 서적이었다. 할 수 없이 열람실에 앉아 다 읽고,
내 글에 인용할 부분 챙겨서 돌아 왔다.
어라? 일기 아니고 리뷰인데, 다른 이야기가 더 많네. 그런데 내용은 뭐 쓸게 없다. 다
구체적 사례 모음이어서 요약이 안 된다. 일단 목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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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봄도 아니고, 무려 홉스보움 선생의 서문이 붙은 책. 나와 같이 늙어가는 책.
네 편이나 되는 엄청난 서문을 읽어나가면, 본격적 내용이 나온다. 1845년, 24세의 엥겔스
선생이 영국 북부를 중심으로 답사하고 다른 이의 보고서를 종합하여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를 정밀히 보고한 책이다. 보고보다 고발에 가깝다.
젊은 엥겔스 선생은 산업 혁명 시기, 기계의 발명과 개선이 노동자들을 어떤 상황으로 몰아갔는지, 그 역사적 맥락을 서술한 후 노동자 계급을 더
비참하게 만드는 원인을 고찰한다. 도시 문제, 아일랜드 이주 노동자 문제도 같이 다룬다. 이후는 면직공업을 중점으로 하여 각 분야 노동자들의
상태를 보고한다. 세세한 수치 보고가 매우 인상적이다. 이 책이 1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인용되는 데에는 이유가 다 있는 거였다.
젊은 엥겔스 선생은 스스로 그림까지 그려가며 열정적으로 현실을 고발한다. 여성, 아동 노동
현실 서술 부분에 각별히 주의하며 읽었다. 각 장마다 마지막에 가면 긍정적으로 노동계급의 각성, 봉기와 낙관적 미래를 말하고 있는데,,,, 이건
글쎄다.
사실 읽으면서 <전태일 평전>을 비롯, 내가 그동안 읽은 우리 현대사와 너무도 같은
내용이어서 책이 술술 읽혔다. 이 상태가 160여년 전 영국 노동자들의 상태인 것 같지 않다. 난 산업 혁명이 이 시기만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국에서, 일본에서, 우리나라에서, 중국에서, 베트남에서,,,, 여전히 산업 혁명은 세계 각지에서 진행 중이며, 노동계급의 상태는
기본적으로 동서고금 어디나 다 같다고 생각한다. 지배계급 역시. 예를 들어, 아래 인용부분. 19세기 중반 영국이나 21세기 초 대한민국이나
오십보 백보다.
특히 부르조아지에게는 법률이 신성한 것인데, 그 까닭은 그들 자신이 법률을 만들고, 그것을
승인하고, 그것에 의해 보호를 받으며 그것으로부터 혜택을 받기 때문이다. 부르조아지는 설사 몇몇 특정한 법률이 그들의 이익을 손상시킬지라도 전체
법률은 그들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 본문 271쪽 '노동운동'에서 인용
더우기 공장노예들은 중세의 농노들이 영주에게 초야권을 빼앗겼던 것보다 훨씬 심하게 순결을
유린당한다. 또한 이러한 측면에서 공장주들은 그들에게 고용된 소녀들의 인격과 용모에 대해 전일적 지배를 행사한다. 십중팔구 해고의 위혐은 별로
순결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은 소녀들의 반항을 억압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만약 공장주들이 아주 타락한 사람이라면(보고서는 이런 경우를
몇가지 언급하고 있다) 공장의 여성들은 모두 공장주의 처첩과 마찬가지가 된다. 모든 공장주들이 그렇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소녀들의 지위는
변함이 없다.
- 188쪽 '주요 직물 산업의 공장 노동자'에서 인용
위 문단, 내가 읽은 다른 책에서는 단정적으로 '엥겔스의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에 의하면, 산업혁명기 공장주는 초야권을 가졌다'는 식으로 서술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 부분을 확인하고자 책 전체를 다 읽었는데,
책에는 위와 같이 나와 있었다. 이 책을 확인하지 않고 내 글에 인용했더라면 큰 실수할 뻔했다. 천만다행이다.
여튼, 두고두고 인용할 부분, 근거로 사용할 예 등이 많아서 한 권 집에 두고 싶은데,,,,
어쩌나.
*** 혹시 이 글 보시는 분 중에서 이 책 갖고 계시는 분은, 연락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