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타로 맛보는 후룩후룩 이탈리아 역사 이케가미 슌이치 유럽사 시리즈
이케가미 슌이치 지음, 김경원 옮김, 김중석 그림 / 돌베개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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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분은 누구신가? 정말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다. 이 분의 저서를 한 권 읽었다가 감동받아 6권을 연달아 읽었다.  이렇게 친근하게 쉽게 대중 역사서를 쓰는 능력을 훔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일부 일본 교수들의 섬나라 우물안 개구리같은 왜곡된 시선도 없다. 현재 60대이신데 여성사 관련 쪽 편견도 없다.

 

돌베개에서 나온 이 저자분의 시리즈, 이탈리아사, 프랑스사, 영국사, 독일사 4권 시리즈 전체를 놓고 비교해 말하겠다. 이 시리즈는 각각 파스타, 과자, 왕, 숲이란 주제를 놓고 각국사를 한번 돌린다. 발간 순서대로 점점 깊어지는 느낌이다. 이번 리뷰에 쓰는 <파스타로 맛보는 후룩후룩 이탈리아 역사>는 음식문화사에 이탈리아 통사를 조금 곁들인 느낌이다.

 

그리 중요하지는 않지만, 굳이 내용을 요약해 본다면 이렇다. 이탈리아의 국민 음식인 파스타는 원래는 가난한  이탈리아 민중이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주식이 아니었다. 밀값이 비쌌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저자는  슬쩍 오랫동안 수많은 이민족들의 침입을 받아 왔고, 외세에 지배당한 고대, 중세 역사를 넣는다. 그래서 비잔틴 제국을 거쳐 이슬람의 지배를 받던 남쪽은 아랍 세계로부터 건조 파스타를 받아들여 발전시켰고, 경질밀을 재배하기에 부적합한 북쪽은 일찍부터 생파스타가 발달했다. 중세, 근대의 도시 국가와 해양 진출 발전을 말하면서는 나폴리같이 무역의 거점이 되는 항구 도시들에서는 생파스타와 건조 파스타가 다양하게 발전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저자, 영리하다. 15세기 후반 스페인, 포르투갈이 신항로를 개척한다. 이들이 들여온 고추, 토마토, 호박 등 신대륙의 식재료로 파스타는 다채로워지며 점점 오늘날의 모습과 비슷해진다.  양 시칠리아의 농민은 아라곤에 이어 합스부르크, 부르봉 스페인의 지배를 받으며 지주에게 착취당한다. 16~17세기에 대대적으로 발생한 흉작과 역병, 더욱 심해지는 열강과 지주의 횡포로  농민들은 가축 사료로나 쓰이던 감자, 옥수수 등도 식재료로 활용했고, 이는 파스타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잔치 등 특별한 날에만 먹는 귀한 음식이었다. 한편, 귀족과 부르주아 계급도 파스타를 즐겼다. 이들은 라비올리같이 화려한 만두 파스타를 즐겼다. 농민들과 달리 파스타는 배불리 먹는 주 요리가 아니라 코스에 나오는 요리 중 하나였다. 이렇게 이탈리아의 파스타는 다른 계급에 의해 각각 다르게 발전한다. 19세기 후반, 드디어 통일 이탈리아가 성립한다. 이때 국민 통합을 이룬 것은 파스타였다. 나폴리 해방 당시 가리발디 장군이 “마케로니야말로 이탈리아에 통일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외칠 정도로. 한편 이탈리아 요리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르투시는 최초로 각 지역의 파스타를 한 권의 요리책에 정리한다. 표준 이탈리아어를 사용함으로써 문화적으로 이탈리아 통일에 기여했다. 각 지방의 고유한 파스타들은 사라지거나 획일화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캄파닐리스모(이탈리아 향토주의)를 대표하는 지역 명물로 발전했다. 통일 되었지만 이탈리아 경제상황은 열악해서 가난한 농민들은 대거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이에 파스타도 미국 진출을 하게 된다. 그러나 미국은 이민자를 차별하면서 그들의 음식인 파스타를 멸시하고 음식 지도를 했다. 무솔리니 정권은 빵, 파스타, 올리브 유를 장려하여 현재 이탈리아 음식 문화 기본틀을 만들었다. 현재 파스타는 이탈리아 국민을 결집시키는 국민 음식이고 모성의 상징이다,,, 뭐 이렇게 대충 이탈리아 통사와 파스타의 역사가 맞물려 서술된다.

 

한편 파스타는 ‘어머니의 손맛’이라는 미명 아래 가톨릭, 부르주아, 파시즘 체제 하에서 여성을 집안에 가두고 여성의 사회 진출을 막는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는데, 이 부분에서 저자는 확실히 쐐기를 박는다. 역시, 유럽 중세사 전공자로서 <마녀와 성녀>를 쓰신 분다워서 혼자 킥킥 웃었다.

 

파스타를 엄마의 상징으로 내세우는 이탈리아의 뿌리 깊은 관념에도 혹시 감추어진 뒷면이 있지 않을까요? 근대 초기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고 공적 영역에서 활동할 권리나 자유를 주장하기 시작한 시대에 여성을 가정의 틀 안에 가두어 버리는 이미지는 좀 시대착오적인 것 아닐까요?

가톨릭 교회에서는 중세부터 한결같이 여성을 차별해 왔지요. (중략) 그런 고로 여성은 교회가 권장하는 바에 따라 자연히 가정에 틀어박혀 주인어른인 아버지나 남편에게 복종하고 그들을 섬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프랑스 혁명 후에도 가톨릭의 보수성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 본문 202 ~ 203쪽에서 인용

 

이상이 1장에서 6장까지 내용이다. 1장 앞에 '글머리'라는 꼭지가 있는데 거기에서는 일본 파스타의 역사를 별도로 서술한다. 파스타를 먹은 역사니까 당연히 에도시대부터 서술하겠군, 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 일본에 국수가 처음 전래된 가마쿠라 시대부터 시작한다. 이 부분도 흥미롭다.

 

전체적으로 파스타 관련 음식문화사 70%, 이탈리아 통사 30% 정도 구성이다. 그러다보니 깊이 있는 역사 기초 지식 설명은 없다. 친근한 파스타 이야기이지만 독자 개인의 배경 지식에 따라 이 책이 친근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바로 '밀라노의 스포르차 가문은 ~ ' 이렇게 시작하곤 한다. 반면 기본 이탈리아 통사 다 알고,음식문화사도 다 아는, 예를 들어 콜롬버스의 교환 같은 내용 다 아는 분에게는 시시할 수도 있겠다.

 

역사서 읽기 좋아하는 분들께 강추. 내용의 난이도를 떠나서, 이 부분에서 이 내용을 이렇게 풀어갔구나, 하는 고수의 노하우를 분석하며 읽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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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가까운 일본 이만큼 가까운 시리즈
강태웅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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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서에서 일본 통사를 어떻게 풀어내고 있는지 배우려고 찾아 읽은 책이다. 대중역사서는 아니다. 전체 5장 중 1장만 일본 역사인데 각 꼭지를 배분한 기획, 목차가 좋다.  '~ 습니다.'체, '~ 요 ' 체 문체를 써서 50쪽 안에 간결하게 일본 역사를 잘 설명하고 있다. 분량상 연대순 사건 나열에 그치기 쉬운데 인과 관계와 행간의 의미를 잘 설명하고 있다.

 

일본의 건국 신화는 <고지키>와 <니혼쇼키>라는 책에 나옵니다. 두 책이 쓰인 8세기 초는 한반도에서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하고, 일본도 당나라의 침입을 걱정하던 시기입니다. 외부 세력의 침입에 대비해서 내부 단결이 중용시되었고, 이를 위해 건국 신화부터 역사를 정리할 필요가 대두되었지요. 신화가 역사냐고요? 당시 통치자인 천황을 신성한 존재로 삼으려고 신화와 역사를 연결한 것입니다.

- 70쪽에서 인용

 

이어 2부~ 5부까지는 각각 지리, 정치, 경제, 문화, 한일관계를 다룬다. 흥미로운 전통 풍습이나 문화뿐만 아니라 일본이 21세기 들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우리에게 민감한 문제인 재일 교포, 영토 분쟁, 역사 교과서 문제 등까지 다룬다. 급히 일본 여행을 앞둔 사람에게 필요한 일본을 이해하는 거의 모든 기본 정보를 담고 있다. 예상 독자 연령대도 폭넓을 정도로 책은 쉽고도 간결하다. 깊이도 갖추고 있다.


책 완성도도 꼼꼼하다. 일본의 지리 부분에서 자연재해를 다룬 87쪽에는 메기 그림이 있다. 그림 아래에 이런 설명이 있다.  '메기가 지진을 일으키면 경기가 부흥된다는 내용을 담은 에도 시대 그림. 당시 서민들은 이런 그림에서 위안을 얻었다.' 진짜 깨알같은 정보다.

 

지리부분에서는 교과서가 바뀔 때마다 오키나와 주민들과 일본 정부가 대립한다는 내용이 있다. 전쟁 때 오키나와 주민이 희생되었건만, 책임문제에 대한 언급 없이 희생이 컸다는 것만 강조하기 때문이란다. 여기에 저자는 이렇게 논평한다.  

 

역사 교과서 문제는 일본과 한국,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일본 내부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 114쪽에서 인용

 

정보도 많고 시선도 정확하다. 이 책이 오래오래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흥미로운 도판도 많이 실려 있다.

여튼, 급히 일본사 전체 빨리 읽으실 분은 이 책의 1장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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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외편집자
츠즈키 쿄이치 지음, 김혜원 옮김 / 컴인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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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생인 저자는 현재 60대 나이인데 프리랜서 편집자로 여전히 활약하고 있다. 출판사 사옥 책상에 안주하지 않고 직접 기획을 하고 취재를 하고 편집을 한다. 시장 조사에 연연하지 않고 뛰어들고 부딪혀서 책을 엮어 낸다. 카메라를 메고 오토바이를 타고 취재하러 떠난다. 들이는 시간과 비용에 비해 받는 원고료나 인세는 큰 이득이 없지만,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이 없으니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고 한다. 설문조사 같은 것은 평균치이며 자신은 다수 아닌 소수를 위한 기획을 한다고 말한다. 검색해서 자료가 많으면 이미 누가 했다는 말이니 자신이 나설 의미가 없다고 하시는데,,, 보통 패기가 아니다. 책 첫 머리에서 대뜸 '출판 불황의 이유는 편집자다.' 라고  말하시니, 원.

 

책은 편집 노하우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아웃사이더 프리랜서 편집자로서 갖는 긍지나 자세를 말하는 책이다. 일본 출판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것, 그리고 종이 매체에서 웹으로, 메일 매거진 직거래 미디어를 만들어 내는 등, 저자가 출판 시장 변화를 미리 내다보고 주도해가는 과정을 따라 읽는 것도 흥미로웠다.

 

이제 내년이면 예순이 된다. 젊었을 때 출판사에 들어갔더라면 지금쯤 임원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취재를 요청하는 전화를 간단히 거절당하고, 자식뻘 되는 어린 아티스트들에게 존댓말로 인터뷰를 하고, 먼 곳까지 취재하러 갈 교통비가 걱정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편집자를 시작했던 40년 전의 상황과 똑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달라진 점도 있다. 그때보다 체력은 떨어지고 수입은 줄어드는데 고생은 더 늘었다.

그래도 좋다. 매월 입금되는 돈보다도 매일 느껴지는 두근거림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편집자로 사는 사소한 행복은 출신 학교나 경력, 직함, 연령, 수입과는 상관없이 호기심과 체력과 인간성만 있으면 결과물이 나온다는 점에 있다. 이런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 7쪽에서 인용

 

옮겨두고 싶은 문장이 많다.

 

미술이든 문학이든 음악이든 다른 사람의 평가에 의지하지 말고 자신이 직접 문을 두드리고 열어봐야 경험이 쌓인다. 그렇게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다 보면 머지않아 주변의 의견에 흔들리지 않게 되고, ‘좋다고 느낀 자신의 감각을 확신할 수 있는 날이 온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남의 이야기에 휘둘리지 않게 자신을 다져가는 과정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 22쪽에서 인용

 

인터뷰에 노하우란 없다. 대화는 각자가 만들어온 호기심과 경험치가 만나는 지점에서 불꽃이 일어나고 불이 붙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다양한 일에 흥미를 가지고 많은 사람을 만나는 방법 외에 지름길은 없다.

- 192쪽에서 인용

 

최근 들어서 프로란 대신 해 주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예를 들면 사람은 누구나 무엇을 위해 하고 있는 걸까’,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매일 그런 생각만 끝없이 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을 대신해 철학자는 평생동안 고민하고 생각을 정리해서 책으로 낸다. 그러면 사람들은 대가를 지불하고 책을 읽는다. 이처럼 누군가를 대신 해서 깊이 생각하는 사람, 먼 곳까지 가보는 사람, 맛을 연구하는 사람이 프로인 것이다. 프로는 누군가를 대신해서 일을 한 대가로 보수를 받는다. 메일 매거진을 시작하면서 프로의 일과 그 대가의 상관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 222 ~ 223쪽에서 인용

 

등등, 도움되는 내용이 많았다. 다 읽고 나니, 결국 프로가 되는 지름길은 없다. 중요한 것은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오래오래 끈질기게 해 내는 자세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분의 말을 믿자. 호기심과 체력, 인간성만 있으면 된다. 아, 마지막이 제일 힘드네. 여튼 책 동네 관련한 업에 있는 분들께 강추한다.

 

기타,  <로드사이드 재팬 진기한 일본기행>의 성공이 신기한데, 여기에는  에도 시대 17세기부터 기행문을 간행하는 전통있는 일본의 문화적 배경이 뒷받침된 것 같다. 이어서 <진기한 세계 기행>편을 연재하게 된 것은 일본 경제 호황 덕도 본 것 같다. 경제가 호황이어야 기업들이 잡지에 광고를 많이 하고, 그래야 잡지에서 취재비를 내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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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제가 엄마 마음에 들 날이 올까요? - 엄마보다 더 아픈, 상처받은 딸들을 위한 심리치유서
캐릴 맥브라이드 지음, 이현정 옮김 / 오리진하우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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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보고 충동적으로 골랐는데, 기대 외로 이 책 참 좋다. 저자는 어느 스님처럼 그래도 낳아주고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해라,,,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섣불리 용서해야 니 맘이 편해진다,,, 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냥 엄마가 타고난 나르시스트인 것이다. 엄마는 딸을 사랑하지 않는다. 할 생각도 없다. 저자는 딱 잘라 말한다. 엄마는 절대 안 바뀌니 당신이 바뀌어야 산다,라고.  나르시스트 엄마의 유형과 사례 등등 분석도 많지만 이 책에 관심을 갖고 리뷰를 검색해보실 분들이 가장 궁금해할 내용은 해결책일 것이니 해결 쪽 내용을 길게 쓰겠다.

 

당신이 엄마를 바꾸는 게 불가능하다는 말이니 애초에 마음을 접어라. 엄마는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 엄마 사전에 변화란 말은 없다. 그러니 이제는 엄마와 관계를 유지해야 할지 아니면 끊어야 할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특히 엄마 때문에 받는 정신적 상처가 클 경우에 말이다. 

 - 243쪽에서 인용

 

저자가 권하는 해결책은 '가벼운 관계 맺기'다. 딸인 당신이 연락을 더 적게 해서 모녀 관계에 변화를 꾀하는 것. 절대 심리적으로 가까워지려고 하지 않으면서 심각하지 않고, 죄책감을 갖지도 말고 선을 넘지 않는 가벼운 관계를 유지하하라는 것. 이 방법은 엄마와 완전히 의절하고 싶어하지는 않지만 엄마에게서 사랑을 받을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한 여성들에게는 좋은 대안이 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엄마에게 할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확하게 제시하여 사람들이 당신에게 침범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라고 권한다.

 

보통 선량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기분이 상할까봐 경계선 긋기를 주저하지만 사실 그것은 버림받는데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나르시스트들은 사람들을 자기에게 잘 하면 좋은 사람 아니면 나쁜 사람으로 단순히 구분 짓기 때문에 맘에 들지 앟으면 간단하게 관계를 끊고 돌아서곤 하며 생각외로 큰 상처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단호한 어조로 못 박으라고 저자는 말한다. 엄마가 딸인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당신의 행동에 어떤 느낌을 받든 그건 엄마의 문제일 뿐이니까. 엄마의 감정을 딸이 모두 책임질 의무는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태도를 끝까지 관철시키는 것이다. 절대 물러서지 말고 언성 높여 싸우지도 말고 엄마에게 정중하고 부드러운 어조로 선을 그으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예를 들자면 아래의 대화 방법이 있다. 딸이 본인의 이혼 소식을 전하자 딸의 마음을 돌보기는 커녕 이기적으로 자기 입장만 내세우는 반응을 보이는 나르시스트 엄마의 경우,

 

엄마 : 세상에 이혼이라니! 대체 결혼생활을 뭘 어떻게 한 거야? 어디 창피해서 가족들에게 말을 꺼낼 수가 있어야지!

당신 : 엄마, 제 삶은 제가 결정해요. 지금 가장 마음 아픈 사람은 바로 저라고요. 그런데 엄마는 위로는 커녕 나무라기만 하니 더 마음이 아프네요.

- 253쪽에서 인용

 

일단 경계선을 긋고 나면 어떤 상황이 닥쳐도 당황하지 않게 된다고 한다. 특히나 엄마가 사생활에 사사건건 참견하려는 경우 이 방법이 효과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를 적대적으로 대하지는 말라고 덧붙인다. 선을 설정해 놓고 엄마가 그걸 무시하면 그 상황에서 단지 빠져나오고 감정 대립 없이 예의를 지키면서 자신이 그은 선을 지켜내도록 하라고 권한다. 화를 내거나 방어적으로 행동하지 말고 필요한 것만 요구하고 딸인 자신의 감정도 바로바로 그 자리에서 알리라고. 언쟁하지도 말고 엄마가 받아들일 때까지 계속해서 그 선에 대해 말하는 방법을 쓰라고 한다.

 

물론 엄마의 과거 학대나 폭언 등의 잘못을 용서해 주어야 내 감정도 자유를 얻기는 하다. 저자는 엄마가 본인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잘못을 인정하며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경우에만 용서해주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엄마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를 원망하는 마음을 뽑아버려 스스로 희생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 더 중요한 목표라고 저자는 말한다.

 

나르시스트 엄마 아래에서 학대받고 자란 딸들이 처하는 더 큰 문제가 있다. 자신의 엄마 자격을 고민하게 되는 것. 저자는 이 책에서 말한다. 그런 사람 되지 않으려 노력하면 된다고. 말보다 행동과 태도에 부정적인 믿음과 태도가 고스란히 나타나기 때문에 단순히 폭력적 언행을 자제하는 것보다 아이들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느낌이 전달되지 않는 것을 더 조심하라고 조언한다. 저자는 본인이 나쁜 엄마가 될 것 같다고 너무 자책 말라고 위로한 후, 감정 조절이 안 된다고 당신이 나쁜 사람인 것은 아니며, 단지  어린 시절 안 좋은 기억이 있었다는 것뿐이니 행동과 감정을 스스로 조절하는 법을 배우라고 저자는 권한다.

 

치유는 평생에 걸쳐 일어난다는 점을 잊지 마라. 순식간에 상처가 씻은 듯이 낫는 마법은 없다. 그러니 부끄러워하지도 또 수치심을 느끼지도 마라. 자신을 "희생자"로 보는 데서 벗어나 강하고 독립적이며 사랑이 가득한 성인으로 거듭나라. 이것이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 할 자아다.

- 274쪽에서 인용

 

이렇듯 이 책에는 나르시스트 엄마 밑에서 자라서 감정적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딸들을 위한 현실적인 조언들이 실려 있다. 유용했다. 약 기운이 돈다.  나 자신을 희생자로 만들지 말고, 강하고 독립적이며 사랑이 가득한 성인으로 자라도록 애써 봐야겠다.

 

읽어가다가 계속 놀라웠다. 나는 그동안 유교의 영향으로 남아선호 남존여비사상(잠시 분노하고 지나간다. 뭐 좋은 거라고 '사상'이라는 이름 붙이나 모르겠다. 강간'문화'에는 그렇게 경기하는 사람들이!!!)이 창궐하여 한국만 유독 모녀 관계가 어려운가,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나보다. 서양에서도 이렇게나 망한 모녀 관계가 많다니. 뭐 심리학이라는 학문의 역사를 보면 서양  저자가 쓴 책이 많은 것이 당연한건가 싶기도 하다만 아무래도 이건 보편적인 가부장제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딱 패턴이 어머니 본인이 부모, 남편, 사회로부터 여성 약자로서 받은 억압과 스트레스를 더 약자 여성인 자신의 딸에게 화풀이하는 악순환이다. 그 강력한 증거가 이 책에도 나와 있다. 대부분의 아들들은 자기 엄마가 이렇게나 이상한 사람인줄 모르며 엄마와 이런 관계의 문제를 거의 겪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역시 여성 혐오 문화 아닐까. 아놔, 대대로 후진 패턴이 반복되며 서로가 불행하게 되는 이 문제를 어찌 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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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 - 옛이야기 속 집 떠난 소년들이 말하는 나 자신으로 살기 아우름 3
신동흔 지음 / 샘터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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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를 막론하고 옛날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집을 떠난다. 자신의 운명을 찾아 과감히 떠난 아이들은 세속적인 성공은 물론, 자아의 성장과 독립도 이루게 된다. 


여우 누이, 아버지의 유물, 구렁덩덩신선비, 세상에서 제일 큰 참깨나무, 바리데기, 삼공본풀이, 장화홍련전, 심청전, 장자못 전설, 지하국 대적 퇴치 설화 등 저자는 우리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여기에 서양 이야기를 더한다. 작가가 있는 그림동화나 페로동화라고는 하지만 구전되던 설화를 채록하여 저자가 가필한 작품들이기에 옛날 이야기라고 해도 무방한 이야기들이다. 백설공주, 신데렐라, 빨간 모자, 헨젤과 그레텔, 브레멘 음악대, 잭과 콩나무, 장화 신은 고양이, 황금 거위, 흰눈이와 빨간장미 등을 다룬다.

 

저자는 길 떠나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숨겨진 의미를 다정하게 설명해 준다. 머문자보다 떠난자가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본인의 의지로 모험을 떠난 것이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버려진 바리 공주, 팔려간 심청이, 숲에 던져진 백설공주처럼 피치못한 상황에 처해도 스스로 떠난 아이들처럼 살 궁리를 하고 움직여야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스스로 궁전에 다녀 온 신데렐라처럼 앉아서 운명을 받아들이는 대신 다른 길을 찾아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장화와 홍련이를 보라. 방에서 서로 끌어앉고 울기만 하다가 계모의 음모에 휘말려 죽는다. 둘은 귀신에 되어서야 움직여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러니 산 사람은 떠나고 움직여야 살 방법을 찾을 수 있는 법. 어떤 상황일지라도 창의적 사고와 도전적 태도가 중요하다.

 

이렇게 쓰고 나니, '떠나면 살고 머무르면 죽는다'가 이 책의 주제가 아닐까 싶다만, 또 그렇지만은 않다. 가다가 목표를 수정하여 자신이 선택한 곳에 과감히 머무를 수 있는 것도 용기있는 선택이다. 브레멘에 가기 전 숲 속 작은집에 머무른 네 마리 동물의 경우를 보라. 악단 단원이 되겠다는 원래 꿈도 포기했지만 상관없다.

 

브레멘이란 어디 특정하게 정해진 곳이 아니라 이렇게 자기 식으로 찾아내고 만들어 내는 곳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요. 인생의 행복이란 것이 원래 그런 것 아닐까요?

- 140쪽에서 인용.

    

구비설화라는 것이 너무 동화로만 알려져 있어서 식상한 권선징악 주제에 체제수호적 성격이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 책에는 그런 점이 없어 더 좋았다. 그림동화집에 나오는 <땅속 나라 난쟁이>의 주인공인  한스는 난쟁이의 요구를 거절하고 버릇을 고쳐준다. 무조건 착하게 굴지 않고 바보 같은 우직함으로고 그름을 가리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행운을 얻는다. <흰눈이와 빨간 장미>의 주인공 소녀들은 배은망덕한 난쟁이가 화를 내도 신경 끄고 쿨하게 자기 볼일을 본다. 문제는 상대에게 있는데 괜히 자신들이 상처 받을 필요가 없기에. 멋진 캐릭터들이다.  내가 몰라서, 덜 읽어서 그렇지 사실 옛이야기는 그리 고리타분하지 않다는 것을 또 깨닫는다.

 

우리나라 구비문학 쪽 읽다보면 신동흠 선생님을 계속 만나게 된다. 제자도 아니고 일면식도 없지만 선생님께 많은 빚을 졌다. 감사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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