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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제가 엄마 마음에 들 날이 올까요? - 엄마보다 더 아픈, 상처받은 딸들을 위한 심리치유서
캐릴 맥브라이드 지음, 이현정 옮김 / 오리진하우스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제목 보고 충동적으로 골랐는데, 기대 외로 이 책 참 좋다. 저자는 어느 스님처럼 그래도 낳아주고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해라,,,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섣불리 용서해야 니 맘이 편해진다,,, 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냥 엄마가 타고난 나르시스트인 것이다. 엄마는 딸을 사랑하지 않는다. 할 생각도 없다. 저자는 딱 잘라 말한다. 엄마는 절대 안 바뀌니 당신이 바뀌어야 산다,라고. 나르시스트 엄마의 유형과 사례 등등 분석도 많지만 이 책에 관심을 갖고 리뷰를 검색해보실 분들이 가장 궁금해할 내용은 해결책일 것이니 해결 쪽 내용을 길게 쓰겠다.
당신이 엄마를 바꾸는 게 불가능하다는 말이니 애초에 마음을 접어라. 엄마는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 엄마 사전에 변화란 말은 없다. 그러니 이제는 엄마와 관계를 유지해야 할지 아니면 끊어야 할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특히 엄마 때문에 받는 정신적 상처가 클 경우에 말이다.
- 243쪽에서 인용
저자가 권하는 해결책은 '가벼운 관계 맺기'다. 딸인 당신이 연락을 더 적게 해서 모녀 관계에 변화를 꾀하는 것. 절대 심리적으로 가까워지려고 하지 않으면서 심각하지 않고, 죄책감을 갖지도 말고 선을 넘지 않는 가벼운 관계를 유지하하라는 것. 이 방법은 엄마와 완전히 의절하고 싶어하지는 않지만 엄마에게서 사랑을 받을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한 여성들에게는 좋은 대안이 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엄마에게 할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확하게 제시하여 사람들이 당신에게 침범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라고 권한다.
보통 선량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기분이 상할까봐 경계선 긋기를 주저하지만 사실 그것은 버림받는데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나르시스트들은 사람들을 자기에게 잘 하면 좋은 사람 아니면 나쁜 사람으로 단순히 구분 짓기 때문에 맘에 들지 앟으면 간단하게 관계를 끊고 돌아서곤 하며 생각외로 큰 상처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단호한 어조로 못 박으라고 저자는 말한다. 엄마가 딸인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당신의 행동에 어떤 느낌을 받든 그건 엄마의 문제일 뿐이니까. 엄마의 감정을 딸이 모두 책임질 의무는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태도를 끝까지 관철시키는 것이다. 절대 물러서지 말고 언성 높여 싸우지도 말고 엄마에게 정중하고 부드러운 어조로 선을 그으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예를 들자면 아래의 대화 방법이 있다. 딸이 본인의 이혼 소식을 전하자 딸의 마음을 돌보기는 커녕 이기적으로 자기 입장만 내세우는 반응을 보이는 나르시스트 엄마의 경우,
엄마 : 세상에 이혼이라니! 대체 결혼생활을 뭘 어떻게 한 거야? 어디 창피해서 가족들에게 말을 꺼낼 수가 있어야지!
당신 : 엄마, 제 삶은 제가 결정해요. 지금 가장 마음 아픈 사람은 바로 저라고요. 그런데 엄마는 위로는 커녕 나무라기만 하니 더 마음이 아프네요.
- 253쪽에서 인용
일단 경계선을 긋고 나면 어떤 상황이 닥쳐도 당황하지 않게 된다고 한다. 특히나 엄마가 사생활에 사사건건 참견하려는 경우 이 방법이 효과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를 적대적으로 대하지는 말라고 덧붙인다. 선을 설정해 놓고 엄마가 그걸 무시하면 그 상황에서 단지 빠져나오고 감정 대립 없이 예의를 지키면서 자신이 그은 선을 지켜내도록 하라고 권한다. 화를 내거나 방어적으로 행동하지 말고 필요한 것만 요구하고 딸인 자신의 감정도 바로바로 그 자리에서 알리라고. 언쟁하지도 말고 엄마가 받아들일 때까지 계속해서 그 선에 대해 말하는 방법을 쓰라고 한다.
물론 엄마의 과거 학대나 폭언 등의 잘못을 용서해 주어야 내 감정도 자유를 얻기는 하다. 저자는 엄마가 본인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잘못을 인정하며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경우에만 용서해주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엄마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를 원망하는 마음을 뽑아버려 스스로 희생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 더 중요한 목표라고 저자는 말한다.
나르시스트 엄마 아래에서 학대받고 자란 딸들이 처하는 더 큰 문제가 있다. 자신의 엄마 자격을 고민하게 되는 것. 저자는 이 책에서 말한다. 그런 사람 되지 않으려 노력하면 된다고. 말보다 행동과 태도에 부정적인 믿음과 태도가 고스란히 나타나기 때문에 단순히 폭력적 언행을 자제하는 것보다 아이들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느낌이 전달되지 않는 것을 더 조심하라고 조언한다. 저자는 본인이 나쁜 엄마가 될 것 같다고 너무 자책 말라고 위로한 후, 감정 조절이 안 된다고 당신이 나쁜 사람인 것은 아니며, 단지 어린 시절 안 좋은 기억이 있었다는 것뿐이니 행동과 감정을 스스로 조절하는 법을 배우라고 저자는 권한다.
치유는 평생에 걸쳐 일어난다는 점을 잊지 마라. 순식간에 상처가 씻은 듯이 낫는 마법은 없다. 그러니 부끄러워하지도 또 수치심을 느끼지도 마라. 자신을 "희생자"로 보는 데서 벗어나 강하고 독립적이며 사랑이 가득한 성인으로 거듭나라. 이것이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 할 자아다.
- 274쪽에서 인용
이렇듯 이 책에는 나르시스트 엄마 밑에서 자라서 감정적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딸들을 위한 현실적인 조언들이 실려 있다. 유용했다. 약 기운이 돈다. 나 자신을 희생자로 만들지 말고, 강하고 독립적이며 사랑이 가득한 성인으로 자라도록 애써 봐야겠다.
읽어가다가 계속 놀라웠다. 나는 그동안 유교의 영향으로 남아선호 남존여비사상(잠시 분노하고 지나간다. 뭐 좋은 거라고 '사상'이라는 이름 붙이나 모르겠다. 강간'문화'에는 그렇게 경기하는 사람들이!!!)이 창궐하여 한국만 유독 모녀 관계가 어려운가,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나보다. 서양에서도 이렇게나 망한 모녀 관계가 많다니. 뭐 심리학이라는 학문의 역사를 보면 서양 저자가 쓴 책이 많은 것이 당연한건가 싶기도 하다만 아무래도 이건 보편적인 가부장제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딱 패턴이 어머니 본인이 부모, 남편, 사회로부터 여성 약자로서 받은 억압과 스트레스를 더 약자 여성인 자신의 딸에게 화풀이하는 악순환이다. 그 강력한 증거가 이 책에도 나와 있다. 대부분의 아들들은 자기 엄마가 이렇게나 이상한 사람인줄 모르며 엄마와 이런 관계의 문제를 거의 겪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역시 여성 혐오 문화 아닐까. 아놔, 대대로 후진 패턴이 반복되며 서로가 불행하게 되는 이 문제를 어찌 하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