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마술, 그리고 마술의 쇠퇴 3 나남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365
키스 토마스 지음, 이종흡 옮김 / 나남출판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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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대한 사료 제시를 통해 정통 종교와 민간 신앙 간 관계를 파헤친 역작이다. 1,2,3권 다 읽고 리뷰는 3권에 한꺼번에 남긴다. 

 

정통 종교는 늘 민간 신앙을 미신으로 간주하고 미신을 부추기는 자들을 탄압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중세 가톨릭 교회는 민중들의 신앙에 편승하여 세를 불린 측면이 있었다. 예를 들어 성찬례의 빵이 퇴마 의식에 사용되는 것을 묵인했다는 사실 등등.

 

어차피 사람들이 마술에 의존하고 있으니 마술을 배척하기보다는 교회의 통제하에 두는 편이 더 유리하지 않은가.

- 114쪽에서 인용

    

문제는 종교개혁 이후다. 프로테스탄티즘 측은 가톨릭 교회의 교회 마술과 민간 마술을 함께 공격하기 시작했다. 가톨릭 교회가 천년 넘도록 쌓아올린 신자 보호 수단들, 예를 들어 퇴마의례 등은 설 곳을 잃었다. 이에 평신도들은 기존 교회의 보호막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악마나 주술에 맞서 싸워야만 하는 불안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가족이나 가축의 급작스런 발병, 기근이나 전염병, 홍수 등등 말이다.

 

16~17세기 영국 역시 그랬다. 특히 영국의 경우, 헨리 8세의 국교회 수립 이후 기존 가톨릭 교회의 구빈제도가 무너지면서 빈민, 과부, 노인 등 소외계층을 배려했던 공동체 시스템 역시 무너졌다. 이웃 사랑을 포기한 주민들은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다  소외된 자들의 저주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음식 구걸하러 온 가난한 노파를 문간에서 내쫓은 직후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그녀가 자신이나 가족, 가축에게 주술을 걸었다고 고발해 버리게 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비이성적인 마녀 사냥의 배경이 형성되었다.,,, 등등, 저자는 근대초 영국을 배경으로 역사 같지도 않은 별별 황당한 기록에서 명쾌한 흐름을 잡아낸다.

 

다른 역사서 읽다가 참고 문헌 주석에 자주 등장하기에 찾아 읽은 책이다. 주경철 선생님 저서 등 다른 마녀 관련 서적에서 마녀 사냥의 요인 중 하나로 소개하는, '거부된 자선 모델 설(이웃을 돌보지 못한 죄책감이 마녀를 만들어낸다)'는 내용은 이 시리즈의 3권에 있으니 급하신 분들은 3권부터 읽으면 된다.

 

읽는 내내 이런 대단한 책을 쓴 저자는 물론, 팔리지도 않을 책을 내준 출판사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이 퐁퐁 샘솟았다. 절판되면 중고서점에서 비싸게 거래될 책이 분명하니, 관심있는 독자분은 어여 사서 쟁여놓으시라. 제목이 주는 느낌처럼 허무맹랑한 마녀 관련 소품이 아니라 묵직한 역사 대물이다.

 

강추.

 

*** 이 책 외에 마녀 관련해서 내가 읽은 책들 중  흥미로운 지점을 보여주는 책을 더 소개해본다면

<캘리번과 마녀> 자본주의 성립 과정, 특히 인클로저가 여성 억압과 마녀 사냥으로 이어진 과정 잘 서술

<유럽의 마녀 사냥> 유럽 사법 체계의 변천이 마녀 사냥에 미친 영향 서술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 유럽 민간 신앙과 엘리트 신앙의 관계를 잘 보여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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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즈 2018-02-11 1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럽의 마술에 관한 인문학은 항상 마음을 끄는 소재입니다. 과학의 탄생을 얘기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이기도하고, 서양인들의 문화에 면면히 흐르는 기저를 확인할 수 있는 많지 않은 통로 이기도 합니다. 위 책의 역자인 이종흡 의 <마술, 과학, 인문학> 이나 다른 역서인 <코스모폴리스>에 그런 얘기들이 잘 나타나 있고, 그 책들에서 처음 그런 주장들을 접했을 때 지적인 즐거움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좀 방향은 다르지만 프랑수아 줄리앙의 비교문화적인 접근도 또 다른 통로의, 서양의 마술에 상응하는 동양의 문화를 탐구한 인문학이라고 생각됩니다. 껌정드레스님 새글 항상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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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도비 2018-02-12 11:13   좋아요 0 | URL
우와, 마일즈님! 저 어제 <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 검색하다가 마일즈님 서재 갔는데 오늘 이렇게 와서 댓글 주시다니, 신기합니다. ^^
말씀해주신 <마술, 과학, 인문학>과 <코스모폴리스> 목차 읽어보니 매우 흥미롭네요. 절판된 책이지만 도서관에 가서 찾아 읽어봐야겠어요.
제가 어느 쪽에 관심 가지고 더듬더듬 찾아 읽고 으다다다 허접 리뷰 써 놓고 보면, 항상 마일즈님은 한 발짝 먼저 읽고 도와 주시네요. 감사합니다.

마일즈 2018-02-20 2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이 책은 아직 못봤습니다.ㅎㅎ. <마술, 과학, 인문학>에서 참고 문헌으로만 보고, 이런 책이있구나 하고 있었는데, 번역됐다나 잘 됐네요. 곧 다가올 구정에, happy new (lunar) year! 입니다~~

자유도비 2018-02-13 00:01   좋아요 0 | URL
1,2권은 사례 나열 위주에요. 3권 가면 좀 더 재미있어지더라고요. 별 사악한 마법은 없는데 책 가격이 좀 사악해요. ㅋ
번번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