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대한 사료 제시를 통해 정통
종교와 민간 신앙 간 관계를 파헤친 역작이다. 1,2,3권 다 읽고 리뷰는 3권에 한꺼번에 남긴다.
정통 종교는 늘 민간 신앙을
미신으로 간주하고 미신을 부추기는 자들을 탄압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중세 가톨릭 교회는 민중들의 신앙에 편승하여 세를 불린 측면이 있었다. 예를
들어 성찬례의 빵이 퇴마 의식에 사용되는 것을 묵인했다는 사실 등등.
어차피 사람들이 마술에 의존하고 있으니 마술을 배척하기보다는 교회의 통제하에 두는 편이 더
유리하지 않은가.
- 114쪽에서
인용
문제는 종교개혁
이후다. 프로테스탄티즘 측은 가톨릭 교회의 교회 마술과 민간 마술을 함께 공격하기 시작했다. 가톨릭 교회가 천년 넘도록 쌓아올린
신자 보호 수단들, 예를 들어 퇴마의례 등은 설 곳을 잃었다. 이에 평신도들은 기존 교회의 보호막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악마나 주술에 맞서
싸워야만 하는 불안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가족이나 가축의 급작스런 발병, 기근이나 전염병, 홍수 등등 말이다.
16~17세기 영국 역시 그랬다. 특히 영국의 경우, 헨리 8세의 국교회 수립 이후 기존
가톨릭 교회의 구빈제도가 무너지면서 빈민, 과부, 노인 등 소외계층을 배려했던 공동체 시스템 역시 무너졌다. 이웃 사랑을 포기한 주민들은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다 소외된 자들의 저주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음식 구걸하러 온 가난한 노파를 문간에서 내쫓은 직후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그녀가 자신이나 가족, 가축에게 주술을 걸었다고 고발해 버리게 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비이성적인 마녀 사냥의 배경이 형성되었다.,,, 등등, 저자는
근대초 영국을 배경으로 역사 같지도 않은 별별 황당한 기록에서 명쾌한 흐름을 잡아낸다.
다른 역사서 읽다가 참고 문헌 주석에 자주 등장하기에 찾아 읽은 책이다. 주경철 선생님 저서
등 다른 마녀 관련 서적에서 마녀 사냥의 요인 중 하나로 소개하는, '거부된 자선 모델 설(이웃을 돌보지 못한 죄책감이 마녀를 만들어낸다)'는 내용은 이 시리즈의
3권에 있으니 급하신 분들은 3권부터 읽으면 된다.
읽는 내내 이런 대단한 책을 쓴 저자는 물론, 팔리지도 않을 책을 내준 출판사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이 퐁퐁 샘솟았다. 절판되면 중고서점에서 비싸게 거래될 책이 분명하니, 관심있는 독자분은 어여 사서 쟁여놓으시라. 제목이 주는 느낌처럼
허무맹랑한 마녀 관련 소품이 아니라 묵직한 역사 대물이다.
강추.
*** 이 책 외에 마녀 관련해서 내가 읽은 책들 중 흥미로운 지점을 보여주는 책을 더
소개해본다면
<캘리번과 마녀> 자본주의 성립 과정, 특히 인클로저가 여성 억압과 마녀 사냥으로
이어진 과정 잘 서술
<유럽의 마녀 사냥> 유럽 사법 체계의 변천이 마녀 사냥에 미친 영향 서술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 유럽 민간 신앙과 엘리트 신앙의 관계를 잘 보여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