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심리상담으로 유명한 저자라고 한다. 내면아이 심리를 다룬<심리학이 어린 시절을 말하다>에 이어 읽었다.
이래저래 힘든 세상이다. 그런데 여자들이 더 우울증에 잘 걸린다. 똑같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한민국에 살면서 유독 여자가 더 우울한 이유는
뭘까? 사회조건은 같은데 여자들에게 특히 더 가중되는 스트레스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멀쩡하게 낮에 직장에서 웃으며 일 잘 하던 여성도 밤에 집에서는 우울에 시달린다. 끔찍한 자기 비하를 하며 울기도 한다. 왜
이럴까? 직장과 가정, 결혼, 사랑, 가족, 인간 관계 모든 것을 잘 해내라는 주위의 기대, 잘 해내야만 한다는 자신의 기대가 압력이 되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는 과거와 달리 여성의 사회 진출을 당연시한다. 그러나 과거 여성들의 의무였던 전통적 역할도 여전히 당연시한다. 모든 것을
잘 해내기 위해 여성이 어떤 대가를 치뤄야만 하고 어떤 부담을 혼자 져야만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기에 여자는 외적인 성공을 얻지
못하거나 개인적으로 힘들 때마다 자신의 책임을 과하게 떠앉고 노오력 부족을 자책하게 된다. 불합리한 상황에 반항적 비판적 태도를 표현하면 다른
사람의 호의와 인정, 사랑을 잃을까봐 두려워 나 자신보다 타인과의 관계를 더 중시하게 되고,,,, 결국 우울해지며, 우울해질 때마다 더
노오오력하여 자기 자신을 더 혹사시키고 괴롭히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 악순환이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우울증에 걸린 여성이 남성보다 높은 이유는 전통적으로 여성은 정서적 안정과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라고.
물론 도움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불균형. 항상 주는 사람은 여자이고 받는 사람은 타인인 경우가 많다. 결국 여자는 자기 스트레스 위에
다른 사람의 고통까지 짊어지게 된다.
성호르몬 탓이라고? 산후 우울증이나 생리전 증후군 같이 호르몬에 영향받는 우울증도 있다.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산후우울증이나 생리전
증후군도 사회적 환경,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 따라 증상과 심각도 다르다고 한다. 여성이 갱년기를 보내면서 겪는 여러 증상들도 그 사회 조건에
따라 경중이 다르다. 즉, 그 사회가 나이든 여성을 어떻게 대우하는 문화를 가졌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밑줄 쫙! (예스의 언니들, 옆 문장
보셨어요?) 여성 호르몬 변화가 우울증 발병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여성이 살아온 환경과 인간 관계, 일상 생활의
스트레스가 더 큰 발병 요인이다. (아놔! 그동안 성호르몬을 내세워 여성차별하던 후진 인간들, 너희들 이제 어쩔? )
여성이 호르몬 변화 때문에 저절로 생물학적으로 약한 존재가 되는 일은 없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여성의 몸은 우울증에 걸린 원인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퍼즐로 치면 조각 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 147쪽
저자는 실험 예도 인용한다. 여자는 스트레스 상황이 닥치면 자신에게 더 불리한 방향으로 해석, 행동한다고. 그리고 자책한다고. 이를
'학습된 무기력'이라 한다. 여자라서, 이미 결혼하고 나이 들어 무능한 것이 아니라 이런 기분나쁜 무기력한 느낌 역시 사회에서 학습되는 것,
그리고 남자에 비해 여자가 이런 강제 학습을 당하는 경험이 훨씬 많다는 것! 결국 여자에게는 성호르몬 보다 관계의 방식과 질이 정신건강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여자의 우울증에 관해 말할 때 바로 이 사회적 요소는 대부분 뒷전으로 밀려난다. 거듭 말하지만 우울증은 생물학적, 심리적 요소
외에 어떤 특별한 생활환경(스트레스 경험 혹은 관계를 통한 경험)에 개개인의 약점(유년기에 경험한 외상, 호르몬 기복)이 더해졌을 때에야 비로소
생겨난다. (중략)
여자가 우울해지는 이유는 호르몬이나 유전자, 혹은 여자 특유의 성향 탓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서 겪는 불화가 더
큰 원인이 된다.
- 174쪽
저자는 말한다. 여자는 살면서 너무 많은 것을 자신에게 기대하고, 타인에게 기대당한다고. 직장에서의 능력 외에 친절, 상냥, 타인을
보살피고 희생하는 것 등등. 그러다 자신에 대한 높은 기대와 타인에게 보이는 관용적 태도가 부딪혀 우울증이 생긴다고. 그렇다면 여자는 왜 이렇게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에 휘둘리는 것일까? 여자가 관계를 중시하는 이유는 여자에게 정신적 결함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발달 심리학에서는 남녀는
유년기부터 현격한 차이가 있어서 여아는 관계를 중시하고 타인의 마음을 읽고 배려하려 든다지만,,, 개뿔, 이건 태생이나 성염색체의
문제가 아니다. 발달과정에서 생기는 요구사항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사회화 과정의 차이이며 부모의 교육 태도의 차이다. 겨우 2살 아이도 말은
못하지만 벌써 성차에 따른 역할 기대를 체득하게 되니 말이다.
따라서 몇몇 학자들이 우울증의 원인으로 내세우는 여성 특유의 성향은 애당초 학습된 것이지 여성의 본능에서 유래된 것은 아니다
- 218 - 219쪽
여아가 성장하면 더 위험한 시기가 온다. 사춘기, 여자에게는 '입마개'가 씌워진다. (이는 내 말이 아니라 '소녀들의 사춘기가
위험하다'라는 본문 꼭지 제목임) 게다가 연애하고 결혼하면 첩첩산중이다. 남친, 남편이라는 이름의 '벽' (이건 내 표현 ㅋㅋ)이 버티고 있다.
말이 안 통한다. 여자는 남자에게서 관계결핍을 느끼게 된다. 최악의 경우 부당대우와 폭언 폭행등 학대를 받아도 여전히 사회적으로 학습당한 대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자 혼자만 이해하고 혼자만 참고 노오오력하다가,,,, 우울의 늪에 빠진다.
상대방이 과시하는 권력에 저항하지 않고 상대방의 태도와 의견에 동조함으로써 그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도록 놔두면, 관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커다란 이점을 가져다 준다. 즉 이 사람은 변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전혀 없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놀랍게도 자주 양보하고 용서하는
경향이 있는 배우자와의 관계가 지속되면, 시간이 갈수록 그의 공격적인 성향이 더욱 증가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배당하는 사람은 상대를 끝없이
이해하고 용서하고도 점점 더 불행해지는 셈이다.
- 80쪽
결국, 여성인 내가 우울한 이유는 나에게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나 자신이 건강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너무 오랫동안 건강하지 못한
조건에 산 것이다. 불청객 '껌정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찾아왔지만 (이 표현은 심리학에서 우울증을 말함. 융이 제일 먼저 말했다고 함. -_-
) 그녀의 방문이 갖는 의미도 있다. 우울은 내가 다른 사람과 맺고 있는 관계의 문제를 알려 준다. 그동안 불평등한 관계에서 끝없고 무의미한
노오오오력을 하며, 타인의 이기주의와 무관심, 무리한 요구에 순응하여 혹사시켰던 자신의 마음을 바로 보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유약한 여성 특유의 응석, 배부른 투정, 정도로 여성 우울증을 가볍게 말하는 인간들이 많다보니, 이 책을 읽는 내내 속이 시원했다. 그러나
책을 다 읽어가니 또 답답해진다. 그럼 어떻게 이 지독한 우울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까? 하루 아침에 주위 사람이나 남자를 바꿀 수도 없고
성차별적 사회 구조를 바꿀 수도 없지 않나? 저자는 말한다. 개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부터 바꾸라고. 일단 운동이 좋다. 자신의 몸을
통제함으로써 마음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될 수 있으니. (헉, 발레 2년째 하고 있는데 자신감은 안 생기는데요,,, ㅠㅠ )
그리고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사람과 대화하라고. 물론 남자친구나 남편보다 여자 친구와. (이 지점에서 벨 훅스가 <사랑은
사치일까>에서 결국 여성 파트너에게 정착한 내용이 생각났다. 그 책의 원제는 < companion >, '동반자'임 )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중시하고 남들에게 끌려 다니지 말 것. 절대 단념 말고 다른 사람이 우리를 존중하게 하고 올바른 대화방법을 찾도록 요구해야
한다는 것. 상냥한 소녀 역을 그만두고 자신의 요구를 들여다 보고 말하고 행동하라고 저자는 처방한다. (요구하고 요구해서 남자는 안 바꾸고
수선해서 쓰더라도 당근 대통령은 바꿔야겠지.)
좋은 독서 경험이었다. 정희진 선생님께서 강연하실 때, 여성혐오 성차별 발언하는 남자들에게 어떻게 대항해야 하냐는 질문에 "모든 분야의
개론을 다 읽고, 객관적 사실과 전문 용어를 사용해서 말로 죽여 놓으세요."라고 말씀하신 이유를 알겠다. ( 아아, 나는 우울하다고 징징거릴
시간에 더 공부해야 한다! )
아참, 독일 그림동화인 <룸펠슈틸츠헨>을 실마리 삼아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그 부분은 그리 와 닿지 않았다. 아버지의 실언
때문에 부당한 의무를 지고 개고생하는 딸의 이야기라면 우리에겐 그 막강한 <심청전>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