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문화를 품다 - 벽을 허무는 소통의 매개체 맥주와 함께 하는 세계 문화 견문록
무라카미 미쓰루 지음, 이현정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맥주 마시기 좋은 계절이 돌아왔다. 맥주의 3대 매력은 거품과 탄산과 역사. 맛있는 맥주를 한 모금 입에 머금고 있노라면 지금 내가 마시고 있는 맥주와 관련된 역사 이야기가 떠오르고 눈 앞에 지도가 펼쳐진다. 난 그 세계를 즐긴다.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단  메소포타미아 시절 맥주의 기원에서 시작해서 영국의 에일과 독일의 라거 맥주를 양 축으로 하여 유럽 지역의 맥주 제조사를 통사식으로 다뤄 준다. 즉 자연 발효, 상면 발효, 하면 발효의 역사와 관련 맥주를 설명해 주는 것이다. 이어서 수도원의 액체빵이니 맥주 순수령이니 영국 노동자의 포터 맥주이니 하는 흔한 맥주의 역사 이야기가 이어진다. 벨기에와 체코 등 특색있는 유럽의 맥주 또한 소개해 준다.

 

 

그런데 의외로 맥주의 원료인 보리나 밀, 홉 재배의 풍토, 기후는 다루지 않는다. 경수 연수 등 수질의 차이도 깊이 언급하지 않는다. 이 부분을 강조하는 독일 필자가 쓴 다른 맥주역사와 달리 좀 허술하다. 게다가 관련 유럽 역사 에피소드의 경우 틀린 부분이 종종 있다. 218, 219쪽의 카를과 후아나 등 합스부르크 왕가 서술 부분은 틀린 부분이 많다. 예카테리나 여제의 맥주 부분은 맥주 이야기만 쓰면 될 것을 그녀의 남자관계는 왜 거론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이렇게 술안주 용으로 역사 속 개인의 삶(특히 여성)이 소비되는 것이 싫다. 또 중간중간 중언부언하는 부분도 있었고 관련 역사 배경을 명확히 설명해 주지 못한다는 인상도 받았다. 예를 들어 한자 동맹, 한자 도시 설명하는 부분의 경우 처음에 한 번 자세히 짚어주고, 다음에 등장할 때에는 그냥 지나쳐도 될 것을 5번도 넘게 등장할 때마다 1,2줄에 걸쳐 계속 같은 설명을 미흡하게 해 주는 부분 같은 것은 읽기에 답답했다.

 

역사 서술 부분과 맥주 공장 견학기가 산만하게 섞여 있는 부분도 아쉽다. 책 뒤의 참고문헌을 보니 자신이 쓴 책 12권이 목록에 올라있다. 그래서 솔직히, 이 저자가 자신의 기존 책에서 여기저기 짜깁기해서 얼렁뚱땅 책을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든다. 여튼, 유럽의 맥주 역사를 제대로 정확한 지식과 함께 읽고 싶은 독자라면, 별로 이 책을 권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이 필자만의 장점도 있다. 이 분은 그냥 문화사가가 아니라 진짜 일본 산토리 사에서 맥주 제작을 했던 장인이다. 그래서인지 맥주 자체의 맛과 브랜드만 놓고 맥주를 논하는 다른 맥주 서적의 설명에서 더 깊이 들어가서 설명해 준다. 다른 책에서는 살짝 명칭 정도에다가 한 두줄 언급하고 지나가는 상면발효와 하면발효의 방식을 이 저자분은 전문 용어를 써가시며 깊이있게 설명해 주신다. 덕분에 궁금증이 많이 풀렸다.

 

또 맥주 후발주자이자 제국주의 후발주자였던 일본의 저자답게, 전세계 맥주의 제조와 전파, 수출수입 과정의 역사까지 서술해 주신다. 난 이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메이지유신 당시 앞선 프로이센의 군사기술을 배워오라고 독일에 보내진 일본의 유학생들 중 어떤 사람은 맥주 제조기술까지 배웠다니, 다른 책에서는 절대 못 읽을 내용이다.

 

그리고 현재 맥주 산업을 분석하고 앞으로의 전망을 도표를 이용해서 보여주고 있는 부분도 흥미로웠다. 2008년 현재 세계 1위 맥주 생산국은 중국이며 2009년 세계 제1위의 브랜드는 중국의 "설화"맥주이다. 맥주라고 하면 독일어권과 미국만 떠올리는 우리에게 좀 뜻밖이지 않은가. 이어서 산업화정도와 인구구성, 문화 성향 등과  맥주 생산과 소비의 관계를 설명해 주는 부분은 다른 책에서는 거의 읽어보지 못한 내용이어서 좋았다. 저자의 이력이 책 집필 과정에 드러나는 방식을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책의 마지막에는 부록으로 우리나라 맥주 산업사가 실려 있다. 이는 저자의 허락을 받고 출판사에서 넣은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책의 어디를 보아도 이 파트를 집필한 사람에 대한 정보가 없다. 그냥 편집부 집필인지 아니면 외부 필자가 쓰셨는지 알 수 없다. 이 부분, 지식노동자에 대해 공정한 처사가 아닌 것 같다.

 

 

 

 

- 세계 1위 맥주 생산국, 중국의 맥주. 쉐화(雪花) 맥주만 없네요. 그래도 건배, 만두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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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5-05-04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이미 읽으셨군요. 전 이제 수도원 견학 부분 읽는데 가벼운 맥주 (시음) 엣세이인줄 알았는데 기대보다 역사 이야기라 만족하며 읽고 있어요. ^^

자유도비 2015-05-04 22:42   좋아요 1 | URL
만두 언니를 위해, 세계 1위 맥주 생산국인 중국 맥주 사진 추가했어요.

저자분이 산토리 맥주 공장 출신 장인이셔서 그런지, 맥주 만드는 과정 설명은 다른 맥주문화사 책들보다 자세해서 좋았어요. 아, 이제 바야흐로 맥주 마시며 책 읽기 좋은 계절이 왔네요!

유부만두 2015-05-04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머리말에 언급되는 모리 오가이는 얼마전 읽은 ˝도련님의 시대˝2권 무희 편 주인공 (&나쁜넘) 이에요!

유부만두 2015-05-04 22:44   좋아요 0 | URL
독일 여자가 일본까지 찾아오지요. 하지만 집안의 반대....

자유도비 2015-05-04 22:50   좋아요 0 | URL
오, 흥미롭네요. 모리 오가이가 독일 유학시절 사귄 독일 여자가 찾아왔단 말이죠?
뭔가 <나비부인>패러디 같은, 그런데 사실이란 말이죠?,,, 흠.

유부만두 2015-05-04 22:51   좋아요 0 | URL
네! 독일에서 연인관계였어요. 그녀의 짧은 일본체류 기간중 만난 일본 근대 인물들이 몇몇 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