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가지 그림자 : 해방 1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E L 제임스 지음, 박은서 옮김 / 시공사 / 2012년 9월
평점 :
일시품절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해방 1편이다. 전체로 보면 5권째에 해당하는 책이다. 왜 1권부터 읽지 않냐고 묻지 마시라. 도서관에 예약 대기 걸어놨는데 가장 먼저 알람 문자 온 것이 이번 책이었을뿐이다. 왜 요새 자꾸 그레이에 집착하냐고 묻지도 마시라. <성과 사랑이란 색안경을 쓰고 읽는 문학 속 역사> 혹은 <여성을 위한 19금 세계사>같은 앙큼분홍분홍한 책을 쓰고 싶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나는, 단지 대중적으로 성공한 사랑 이야기에 관심이 많을 뿐이다.(라고 믿어주세요)

 

나는 로미오와 줄리엣이든 춘향전이든, 한 시대를 대표하는 사랑 이야기에는 분명 본질적인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 모든 성공한 사랑 이야기는 약자의 저항을 담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그레이, 이 소설은 도대체 왜 이렇게 성공한 것일까? 여성 독자들이 열광할만한 무언가가 이 책에 있기에? 그 이유로 내가 대강 생각한 것이 있다. 하지만 영화만 보고 짐작한 것이기에 아무래도 전체 소설을 내 눈으로 다 확인해 봐야 할 것 같다. 그런 학구적 이유로 나는 이 소설을 읽게 된 것이다. (라고 부디 믿어주세요)

 

이번 책에서 아나스타샤와 크리스천 그레이는 결혼한다. 꿈같은 신혼 여행을 보내지만 화재, 미행 추적, 가택 칩입, 납치 기도 등 둘의 안전을 위혐하는 일이 연이어 발생한다. 아나에게 집착하고 통제하려드는 크리스천 때문에 둘은 자주 다툰다. 다투면 서로 벌주며 몸으로 화해한다. 더 짜릿한 자극을 얻기 위해 일부러 싸우고 화내는 것 같기도 하다. 신변 안전을 위협하는 추격 차량을 피해 과속으로 달리다 주차장에 숨어 따돌리고 겨우 한숨 돌리는 장면인데 바로 차 안에서 관계하는 것을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둘 앞에 닥치는 모든 위기는 섹스를 거쳐 결국 둘의 사랑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아나의 사랑 덕분에 그레이는 점차 과거의 그림자에서 벗어난다.

 

"나도 사랑해요 크리스천."

눈을 떠 보았더니 그가 나를 보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건 그의 사랑이었다. 오락실의 부드러운 불빛 아래 대담하게 환히 빛나는 사랑. 그의 악몽은 이제 다 잊혀진 듯했다. 분출을 향하여 내 몸이 점차 고조된다고 느꼈을 때, 이게 내가 원했던 것임을 깨달았다. 이 결합, 우리 사랑의 증명.

"나를 위해 느껴봐, 아나."

- 본문 389쪽에서 인용

 

'그는 다시 한번 키스하며 내 명품 속옷의 얇고 고운 레이스 위로 엄지 손가락을 부드럽게 돌렸다(158쪽)'는 식으로 그레이의 재력을 덩달아 누리는 아나의 모습이 너무 자주 웃길 정도로 묘사되기는 하다. 하지만 이 소설이 성공한 것은 단지 여성들의 결혼을 통한 신분상승과 부에 대한 동경때문만은 아니다. 대놓고 여성의 성적 욕망을 표현한 것, 그건 조금 들어간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사랑의 힘에대한 전통적이고 오래된 믿음이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여자가 자신의 진심만으로 한 남자를 바꿀 수 있다는 (헛된) 믿음의 확인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약자 중의 약자가 자신의 미약한 힘으로 강자들의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소망이다. 그런데, 뜻이야 좋다만 이런 소망은 한 여자의 일생에 현실적으로 매우 위험하다. 이 소설이야 당연 해피엔딩이겠지만.

 

뭐, 진짜 궁금한 이야기가 리뷰에 없어서 서운하신가? 알려 드리겠다. 이 소설의 성관계 묘사는 본게임보다 장면과 분위기, 과정 묘사가 더 길다. 와인을 마시고, 머리 핀 풀어주고 단추 하나 하나 풀러서 옷을 벗기는 길고 긴 문장이 잔뜩이다. 침실 쿠션 색깔이나 인테리어 묘사 부분도 만만찮다. 아마 그래서 이 소설이 내용이 없고 지루하다는 평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바로 그런 점이 '먹힌다'. 여성의 심리를 제대로 파악하여 여성 독자의 감정을 서서히 고조시켜 주므로. 얼핏 보기에 쓸데없어 보이는 그 기나긴 과정 묘사가 여성 독자에게는 일종의 전희이므로. 또 여성의 몸을 가진 작가가 쓴 소설이어서 여성 몸 아래쪽 근육의 움직임을 세세히 표현해주어 여성의 반응을 리얼하게 표현하는 점도 색다르다. 그러나 아나의 몸에 손가락을 넣기 전에 그레이가 손을 씻는 장면은 한번도 서술되지 않는다. 이점은 맘에 안든다. 그레이, 너 여자에 대한 기본 예의가 없어. 나에게 혼나야겠구나. 오늘 밤 아나가 잠들면 빨간 방 말고 껌정 방으로 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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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5-04-03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역시 껌정님!

껌정드레스 2015-04-03 10:40   좋아요 0 | URL
그레이는 오지 않고, 그레이가 탄 헬리콥터가 제 머리위로 떨어지는 악몽만 꾸었답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