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 (Mass Market Paperback, International Edition)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영문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Random House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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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마키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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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하체 비율 꽤 좋고 군살하나 없는 구리빛 몸이 작가의 뒷태?'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2009 [2007]) 표지 위 남성이 정말 무라카미 하루키일까 순간 궁금했다. 하지만 서문을 읽으며 그런 의심이 이내 부끄러워졌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2016[2015])를 읽었던지라 알고는 있었지만, 하루키는 직업정신의 연장에서 프로페셔널하게, 진지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꾸준히" 달려왔으니까. 그 진정성이 신체화된, 구리빛 몸을 의심한다는 것은 하루키의 정신성을 부러워한 나머지 의심으로써 폄훼하려는 불순한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하루키가 2005년에 쓰기 시작하여 2006년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이 단행본을 3분의 1쯤 읽다 말고, 충동적으로 밖으로 나왔다. 러닝화의 줄을 팽팽히 당겨 묶고는, 청량한 가을 하늘 아래서 1시간 가량 뛰었다.  풀코스 30~35?km쯤에서인가 진행차량에 실려 청소된 후, 정형외과 신세를 졌던 막가파인 나로서는, 하루키가 페이지 곳곳에서 암시하는 '러너runner'들만의 연대감을 말한다는 자체가 우습지만, 달리면서 하루키의 문장을 몸으로 곱씹었다. 하루키는 이렇게 적었다. 달리면서 어떤 생각을 하느냐고 묻는 사람은 대체로 오랜 시간, 달려본 경험이 없는 이라고. 하루키는 "달려가면서 그저 달리려 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원친적으로는 공백 속을 달리고 있다. 거꾸로 말해 공백을 획득하기 위해 달리고 있다. "(36)고 말한다.  나에게도 달리기는 비어있는 상태로의 리셋이자 교감의 행위이다. 나의 날숨이 초록생명의 들숨이 된다는 개체 차원 이상의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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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를로 퐁티의 현상학을 전공하는 친구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를 읽는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하루키에게 달리기는 육체성과 정신성의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통합적 의례이다.  "글을 쓴다는 것 자체는 두뇌 노동이다. 그러나 한 권의 정리된 책을 완성하는 일은 오히려 육체노동에 가깝다…(중략) … 소설가는 '이야기'라고 하는 의상을 몸에 감싼 채 온몸으로 사고하고, 그 작업은 작가에 대해서 육체능력을 남김없이 쓸 것 - 대부분의 경우 혹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125) 친구에게 아래의 문장을 꼭 들려주고 싶은데, (하루키 자신의 근육은)  "전형적인 '장거리형' 근육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중랙) …그런 근육의 특성은 그대로 내 정신적인 특성과 결부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인간의 정신은 육체의 특성에 좌우되는 것이 아닐까? 또는 반대로 정신의 특성이 육체의 형성에도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정신과 육체는 서로 밀접하게 영향을 주며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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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직업적 소설가로서의 연장인 자신의 육체성을 집요한 장인 정신으로 가다듬는다. 뛰어난 재능을 단거리 레이스에 몰아서 소진하고 요절하는 일부 예술과와 달리, 재능을 고루 안배하며 오래 가기 위한 정신의 근력을 기르는 데 마라톤(심지어는 100km 울트라런까지!)를 활용한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집요하며, 천성적으로 남이 시키는 일은 중간만 하고 자신의 마음이 가는 일에 끝장 몰입하는 그에게 딱 맞는 선택이다. 물론 '물만 먹어도 찌는 체질'로서 몸무게와 건강 관리를 도모한다는 보다 현실적 유용성도 있는 달리기이지만.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를 읽으면서, 비록 작가가 자신을 드러내기 꺼리는 성향이여도  자신을 궁금해하는 독자에게 솔직하면서도 안전하게 문을 열어두는 전략을 취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결국 달리기를 통해서, 자기 자신, 글 쓰는 행위, 소설가로서의 직업 정신, 나아가 그만의 방식으로 불특정 다수의 독자와 교감하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하루키처럼 말할 특정한 무엇이 없는 이들은 무엇을 통해 자신을 드러낼 것인가? 나만의 컨텐츠는 무엇인가?라는 실용적 질문이 엉뚱하게도, 이 책을 읽고 나서 갑자기 나에게 화두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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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하는 것 -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어지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 나간다. 그러나 탄력을 받은 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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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10년이라고 해도, 멍하게 사는 10년보다는 확실한 목적을 지니고 생동감 있게 사는 10년 쪽이, 당연한 일이지만 훨씬 바람직하고, 달리는 것은 확실히 그러한 목적을 도와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주어진 개인이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글 쓰는 것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의견에는 아마도 많은 러너가 찬성해줄 것으로 믿는다."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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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읽기.

작가에 반해서 또 같은 작가 책을 찾아내고,

한정보급판 저렴해서 주문하고.

이웃님들 블로그 구경하다 추천받아서 들여오고.


황따라 그 때 그 때 다른 책 펼치며 함께 읽는 중.


우선 <황제내경>부터 완료하고, 연휴기간 동안 차근차근 독파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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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im Rashid 세계 3대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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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문의: 02) 3143-4360 

장소: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1층

전시 기간 6.30 ~ 10. 7 (토)

도슨트: 평일 11시 30분, 1시, 3시, 5시

홈페이지: https://karimrashid2017.modoo.at/


 

6월 30일 오픈했으니, 벌써 거의 석 달이 다 되가도록 "카림 라시드 展"에 가보지 못했다. 솔직히 기회가 있었는데도 딱히 내키지 않았다고 해야할까? 그런데 전시 막바지에 다녀와서는 '진작 와볼걸....'하고 후회가 되더라는. 디잔인의 영역, 미래, 디자인과 인간 삶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는 주요 효과 외에도, 나는 지난 수년간 이처럼 매혹적이고 강렬하게 나르시스트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공간에 가본 적이 없었다.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카림 라시드의 얼굴! 그가 이 세상에 고인돌처럼 영원히 새겨놓고 싶어하는 그만의 문양 icon에 더해 '이보다 더 찬란할 수 없는' 꽃핑크의 향연이라니! 여기도 핑크, 저기도 핑크! 하물며 여러 영상에서 등장하는 그는 거의 모두 핑크 & 화이트의 의상을 소화하더라!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1층은 카림 라시드의 제국화 되었다. 나는 관람료 내고 들어온 손님이긴 한데 주눅 꽤나 든다.

 

*

이런 대범함은 소위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금수저 이상의 출신에게서 볼 수 있으리라 상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어린 시절 그의 사진은 영국, 캐나다, 알제리 등등 다국에서 찍혀있다. 아버지가 추상화가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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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림 라시드가 예술의 전당에 기증한다는 작품. 이야!  자작나무로 만든 이 멋진 공간에 들어서면 음악이 나무 머리통 안에 흐르고 , 사람 머리통도 덩달아 신나진다. 개인적 상상이지만, 이런 나무조형물을 큰 기관마다 배치하면 자잘한 분쟁은 훨씬 줄을 것 같다. 사색하고 음악듣는데 분노에너지는 당연히 낮아지리라! 우리 집에도 하나 있었으면.....거실 오분의 일은 족히 차지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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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영어 선생님 - 북한 고위층 아들들과 보낸 아주 특별한 북한 체류기
수키 김 지음, 홍권희 옮김 / 디오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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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out You, There is No Us

 

이 책에서 나의 목표는, 바깥 세상이 북한 주민의 고통에 대해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되고 그로 인해 변화를 낳는 것을 돕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것을 하게 한다는 희망 아래 북한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다." (11쪽, 아! 영어 원문을 궁금하게 만드는 번역문입니다! )


 

수키 김, Suki Kim. 아몬드 모양의 눈동자가 40대 중반이라는 나이의 무게를 잊게 가벼운 반짝임으로 나를 응시했다. 매혹적인 외모에 단번에 호감이 생겼다. 사실 작가에 대해 전혀 모른 채, 유니언신학대학 교수 현경의 최신작, 『서울, 뉴욕, 킬리만자로 그리고 뉴욕』에서 '수키 킴'을 언급했기에 읽기 시작했는데, 그녀의 단단한 턱선에 먼저 매료되다니! 

*

본문 어딘가에선가도 일본 모델과 똑 닮았다는 이유로 모델 제의를 많이 받았다는 어머니의 외모를 언급했는데, 수키 김이 과장하지 않았을 거다. TED 강연을 비롯해 그녀와 등장하는 여러 인터뷰를 샅샅이 뒤져보니 심지어 말투까지도 매력적이다.

https://www.ted.com/talks/suki_kim_this_is_what_it_s_like_to_go_undercover_in_north_korea?utm_campaign=tedspread--b&utm_medium=referral&utm_source=tedcomshare

 

10세 때 미국으로 이민간 한국계 미국인인 수키 김은 첫 장편소설 『통역사 (The Interpreter)』(2003)로 많은 문학상과 풀브라이트 펠로우쉽 등을 휩쓸었다고 한다. 여러 대륙, 여러 나라를 다녀 본 행운아이자 열정적이고 솔직한 성품의 프로페셔널이라는 것을 『평양의 영어 선생님』행간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그녀는 한국어와 영어 이중언어사용자이면서 외모가 "한국"스러운 미국인이기에 '평양과기대'에서 북한 대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칠 기회도 얻었다. 아니 그 기회를 노리고 자원했다. 말하자면 잠입 저널리즘 (undercover journalism)으로 북한 사회를 들여다보는 대담한 시도이다. 실로 그녀는 서문에서 2014년 출간된 이 책으로 인해 위험에 빠졌을지도 모르는 북한 내 동료영어교사와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하면서도, 협박성 e메일에 대해서는 "언론의 도덕적 가이드라인 운운하며 북한의 지침에 따른 북한식 진실 보도를 북한이 허가해줄 때까지 기다리며 관망만했던 우리 모두의 손에 묻어 있다 (11)"고 기자이자 작가로서의 사명감을 밝힌다.

그들이 감시를 의식해 소리 내지 않고 입 모양으로 말했다는 단어는 "slaves" 였다!!!!!
수키 김이 최초로 북한에 방문한 해는 2002년이었다. "Harper's Magazine"의 취재원이었다. 이후 2011년에는 영어교사 자격으로 평양과학기술대학(평양과기대)의 북한에 몇 달간 체류했다. 그녀는 삼엄한 감시를 받는 와중에 직업정신을 발휘해서 매일의 대화와 사건을 세세히 기록하고 USB에 숨겨두었다. 이후, 안전하게 미국으로 돌아와 그 자료를 보충할 외부 자료를 더 찾고 탈북자들을 만나 인터뷰하며 개인의 회고록 이상의 글을 쓰고자 했다. 그녀의 책과 종종 비교된다는 신은미의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다녀오다』는 읽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적어도『평양의 영어 선생님』 은 귀한 자료(극소수의 허가받은 외국인밖에 접근할 수 없었던 북한의 내부, 북한 젊은이들의 생각)를 도매금에 팔아넘기는 싸구려 글이 아니다. 진정성을 뭐라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수키 김의 글에서는 진정성, 그리고 따뜻함이 느껴진다. "북한을 구제하자!"는 가진 나라의 온정주의가 아닌, 형제와 부모를 전쟁통에 잃고 이산가족이 된 가족의 일원으로서의 안타까움과 절절함이 기저에 깔려 있기에. '눈물'이나 '울다'라는 표현이 자주 나오기도 한다. 사실 70년대생인 그녀에게서는 묘하게도 그 이전 세대(아마도 그녀 가족사의 영향이겠지만)의 정서와, '분단 이전의 하나인 국가로서의 한국'에 대한 노스텔지어까지 느껴진다.
*
요새 연일 미치광이 "rocket man"으로 국제사회에서 희화화되는 북이 설마 전쟁을 일으키겠느냐 생각이었지만, 『평양의 영어 선생님』을 읽으면서 생각이 좀 달라졌다. 영문학을 전공해서인지 작가는 언어에 무척 민감했는데, 북한에서는 공영방송에서도 '대가리통'이니 '패거리'니 '조준발사사격' 등 전투적 언어를 밥 먹듯 쓰고 일상에서도 젊은이들이 호전적인 언어를 쓴다고 기억했다. 마치 준 전시상황인 양. 무엇보다 문제는 오랫도록 움직일 자유, 생각하고 말할 자유를 차단당하고 정보조차도 주어진 대로만 주입받는데 익숙해진 북한 주민들(사실 수키 김이 주로 상호작용한 평양과기대 학생들은 금수저 중의 금수저 엘리트 청년들이기에 북한 주민이라는 일반범주를 대표할 수 없겠지만) 은 변화를 추구하기엔 과하게 길들었다. 이 책의 원제인 "Without you, There is No Us"가 뜻하듯, '수령님이 아니고서는 아무것도 아닌 우리'식, 광기의 집단주의에 빠져 있다면 어쩌면 광기가 물리적인 힘으로 표출되는 것도 가능한 시나리오일 듯하다. 북한 사회를 "horrific"하다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비유한 그녀의 안위가 걱정되어서 나는 Google에 "Suki Kim 2017"이라고 검색하기도 했다. May Peace be with you! May peace be with two Koreas, on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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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7-09-29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래전에 번역본이 나오기 전에 구입해서 읽었기 때문에 원문이 궁금하다고 하신 부분을 찾아보았더니 제가 가진 책 (2014년 출간)에는 나와있지 않네요. 이 책을 읽으며 그녀의 신변이 다소 걱정되었을 정도로 매우 자세하게 그곳 학생들의 일상을 적어내려갔지요.
그러고보니 그녀의 근황이 궁금해지기도 해요. 이전작 <통역사>도 참 좋았어요.
 
[전자책] 평양의 영어 선생님
수키 김 지음, 홍권희 옮김 / 디오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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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out You, There is No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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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나의 목표는, 바깥 세상이 북한 주민의 고통에 대해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되고 그로 인해 변화를 낳는 것을 돕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것을 하게 한다는 희망 아래 북한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다." (11쪽, 아! 영어 원문을 궁금하게 만드는 번역문입니다! )


 

수키 김, Suki Kim. 아몬드 모양의 눈동자가 40대 중반이라는 나이의 무게를 잊게 가벼운 반짝임으로 나를 응시했다. 매혹적인 외모에 단번에 호감이 생겼다. 사실 작가에 대해 전혀 모른 채, 유니언신학대학 교수 현경의 최신작, 『서울, 뉴욕, 킬리만자로 그리고 뉴욕』에서 '수키 킴'을 언급했기에 읽기 시작했는데, 그녀의 단단한 턱선에 먼저 매료되다니! 

*

본문 어딘가에선가도 일본 모델과 똑 닮았다는 이유로 모델 제의를 많이 받았다는 어머니의 외모를 언급했는데, 수키 김이 과장하지 않았을 거다. TED 강연을 비롯해 그녀와 등장하는 여러 인터뷰를 샅샅이 뒤져보니 심지어 말투까지도 매력적이다.

https://www.ted.com/talks/suki_kim_this_is_what_it_s_like_to_go_undercover_in_north_korea?utm_campaign=tedspread--b&utm_medium=referral&utm_source=tedcom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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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 때 미국으로 이민간 한국계 미국인인 수키 김은 첫 장편소설 『통역사 (The Interpreter)』(2003)로 많은 문학상과 풀브라이트 펠로우쉽 등을 휩쓸었다고 한다. 여러 대륙, 여러 나라를 다녀 본 행운아이자 열정적이고 솔직한 성품의 프로페셔널이라는 것을 『평양의 영어 선생님』행간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그녀는 한국어와 영어 이중언어사용자이면서 외모가 "한국"스러운 미국인이기에 '평양과기대'에서 북한 대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칠 기회도 얻었다. 아니 그 기회를 노리고 자원했다. 말하자면 잠입 저널리즘 (undercover journalism)으로 북한 사회를 들여다보는 대담한 시도이다. 실로 그녀는 서문에서 2014년 출간된 이 책으로 인해 위험에 빠졌을지도 모르는 북한 내 동료영어교사와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하면서도, 협박성 e메일에 대해서는 "언론의 도덕적 가이드라인 운운하며 북한의 지침에 따른 북한식 진실 보도를 북한이 허가해줄 때까지 기다리며 관망만했던 우리 모두의 손에 묻어 있다 (11)"고 기자이자 작가로서의 사명감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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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감시를 의식해 소리 내지 않고 입 모양으로 말했다는 단어는 "slaves" 였다!!!!!
수키 김이 최초로 북한에 방문한 해는 2002년이었다. "Harper's Magazine"의 취재원이었다. 이후 2011년에는 영어교사 자격으로 평양과학기술대학(평양과기대)의 북한에 몇 달간 체류했다. 그녀는 삼엄한 감시를 받는 와중에 직업정신을 발휘해서 매일의 대화와 사건을 세세히 기록하고 USB에 숨겨두었다. 이후, 안전하게 미국으로 돌아와 그 자료를 보충할 외부 자료를 더 찾고 탈북자들을 만나 인터뷰하며 개인의 회고록 이상의 글을 쓰고자 했다. 그녀의 책과 종종 비교된다는 신은미의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다녀오다』는 읽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적어도『평양의 영어 선생님』 은 귀한 자료(극소수의 허가받은 외국인밖에 접근할 수 없었던 북한의 내부, 북한 젊은이들의 생각)를 도매금에 팔아넘기는 싸구려 글이 아니다. 진정성을 뭐라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수키 김의 글에서는 진정성, 그리고 따뜻함이 느껴진다. "북한을 구제하자!"는 가진 나라의 온정주의가 아닌, 형제와 부모를 전쟁통에 잃고 이산가족이 된 가족의 일원으로서의 안타까움과 절절함이 기저에 깔려 있기에. '눈물'이나 '울다'라는 표현이 자주 나오기도 한다. 사실 70년대생인 그녀에게서는 묘하게도 그 이전 세대(아마도 그녀 가족사의 영향이겠지만)의 정서와, '분단 이전의 하나인 국가로서의 한국'에 대한 노스텔지어까지 느껴진다.
*
요새 연일 미치광이 "rocket man"으로 국제사회에서 희화화되는 북이 설마 전쟁을 일으키겠느냐 생각이었지만, 『평양의 영어 선생님』을 읽으면서 생각이 좀 달라졌다. 영문학을 전공해서인지 작가는 언어에 무척 민감했는데, 북한에서는 공영방송에서도 '대가리통'이니 '패거리'니 '조준발사사격' 등 전투적 언어를 밥 먹듯 쓰고 일상에서도 젊은이들이 호전적인 언어를 쓴다고 기억했다. 마치 준 전시상황인 양. 무엇보다 문제는 오랫도록 움직일 자유, 생각하고 말할 자유를 차단당하고 정보조차도 주어진 대로만 주입받는데 익숙해진 북한 주민들(사실 수키 김이 주로 상호작용한 평양과기대 학생들은 금수저 중의 금수저 엘리트 청년들이기에 북한 주민이라는 일반범주를 대표할 수 없겠지만) 은 변화를 추구하기엔 과하게 길들었다. 이 책의 원제인 "Without you, There is No Us"가 뜻하듯, '수령님이 아니고서는 아무것도 아닌 우리'식, 광기의 집단주의에 빠져 있다면 어쩌면 광기가 물리적인 힘으로 표출되는 것도 가능한 시나리오일 듯하다. 북한 사회를 "horrific"하다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비유한 그녀의 안위가 걱정되어서 나는 Google에 "Suki Kim 2017"이라고 검색하기도 했다. May Peace be with you! May peace be with two Koreas, on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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