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 동네 생각숲 상상바다 7
노유다 지음, 장선환 그림 / 해와나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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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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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작가는 재개발로 그 독특한 정취와 역사성이 사라져버린 '인사동 피맛골'을 그리워하는 글을 썼다. '역시 김훈 작가!'라고 감탄하며 문장문장을 새겨 읽었던 이유는 나 역시  밋밋한 회색 빌딩으로 구겨 들어가기 이전의 피맛골을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 『햇볕동네』가, 마찬가지로 재개발이란 명목 아래 사라져가는 도시 공간을 향한 그리움과 추억을 담은 책인 줄 처음엔 모르고 읽기 시작했다. 이 책에는 '시베리아호랑이의 매서운 피가 흐르고' 있다고 믿는 당찬 토종 고양이 '탕'이와 '시인'이 등장한다. 동화는 '탕'이의 줄곧 관점에서 서술된다. 버려진 '탕'이를 거둬 돌봐준 '시인'은 어린이와 시와 고양이를 사랑하는 '여자사람'이다. 그녀의 이름은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 그저 아현동 옥탑방에 살지만, 곧 철거될 지역이라 어쩔 도리 없이 "방을 빼라"에 굴복하게 되리라는 짐작을 하게할 뿐.  

'탕'이는 여자사람 '시인'처럼 아현동의 이 달동네를 좋아한다. 새벽이면 골목에 오래된 목욕탕에서 풍기는 냄새가, 낮에는 집 밖 빨래줄에 널어 말린 빨래에서 비누 냄새가 나는 동네이다. 가파른 계단이 위험할법도 한데, 아이들이 잘 놀았다. 하지만 이제 이 동네에서는 아이들도, 시장 과일 가게도 사라져간다. 동네 사람들은 쓰레기만 남기고 하나 둘 이사 나갔다. 처음엔, "다 늙어서 뭔 이사야? 이 집에서 우리 애들 낳고 키우며 저 장독들 채우는 재미로 살았어. 재개발되면 어디 가서 사나? 장독은 또 어디다가 갖다 두나?"며 재개발을 반대하던 '시인'네 주인 할머니 역시, "집 팔아 더 잘 살자"는 큰 아들 내외와 살겠다며 '시인'에게 방 빼라 한다. 시인의 목소리는 『햇볕동네』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가 얼마나 이 동네와, 이 동네의 생명들 - 아이, 강아지와 고양이, 풀꽃과 풍경-을 사랑하는지는 문장문장에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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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인데 책 전체가 한 편의 아름다운 '시 詩'처럼 느껴진다. 장성환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은 어쩜 이리 『햇볕동네』의 전체적 분위기와 정서를 잘 나타내주고 있는지, 마치 동일인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듯 하다. 또한 실로 글쓴이 노유다 작가는 철거 이전의 아현동 주민이었다고 하니, 어쩌면 『햇볕동네』의 여자사람, '시인'이 노유다 본인인지도 모르겠다. 비록 아현동은 그 동네는 사라지고 높은 아파트촌만 남았지만, 노유다 작가의 아름다운 글로 그 동네의 기억, 향취가 남았으니 노유다 작가는 큰 일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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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독자들은 『햇볕동네』의 하이라이트 파트에서 왜 고양이 '탕'이가 집주인의 개 흰둥이와 물어 뜯으며 싸웠는지, 왜 시인이 "탕아. 이 바보 녀석아. 우리끼리 할퀴고 싸워서 뭐 하냐."했는지 잘 모르겠지.  그래, 약자끼리 싸우는 판을 만들고 싸움을 유도하는데 말려들면 억울하지. 더 큰 구조를 보아야하지만, 보았든 무슨 수가 있을까....갑자기 우울해지지만, 그래도 이 책의 제목은 "달동네"가 아니라, 『햇볕동네』이다. 햇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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