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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허물없이 지내온 분이 지나가듯 한 마디 휙 던졌을 때의 거리감, 혹은 당혹감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한국에서 나이 50 넘어가면, 주소가 그 사람의 모든 걸 말해주는 거야. 다른 거 볼 필요도 없어!' 하긴,
두바이 수준은 아니겠지만 계층성이 자연스레 도시 공간, 주소에 새겨지는 한국 사회에서 이런
생각에 ‘속물성(?)’ 운운하는 자가 더 이중적일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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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보다는 더 ‘정치적으로 올바른’ 표현을 선호하는 저는, 좀 더 순진한 모양인지 낯선 이들을 속성
판단할 때는 비언어적 신호뿐 아니라 읽고 있는 책 제목을 선호하죠. 특히나 지하철에서 까페 등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미루어 짐작’할 때 책표지를 유용한 신호
삼는데, 저만 그런 것이 아닌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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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좀 많습니다』 에서 소개된 책 덕후 중에는 역으로, 남에게 ‘읽힐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꼭 책 표지를 뒤집어서 안팎을 바꿔놓는 이가 있더군요. 허연 속을 드러낸 책 표지
안쪽 면에는 아무 정보가 없을 테니, 낯선 이가 섵불리 자신을 판단하지 못하게 하려는 전략으로서는 꽤
괜찮은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책 표지 뒤집어 놓는” 이 분이 꽤나 까다로운 분이겠다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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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으로 타인을 훑어보려는 생각의 연장인지, 전
한 주를 계획할 때 읽고 싶은 책 목록을 만들고 드러내 보입니다. 영문잡지 수 년간 전시용으로 정기구독하며
비닐 포장만 뜯어 서가에 전시해두던 습성이 어디 안 가는지라, 이렇게 책 목록 작성해두고도 막상 몇
줄 못 읽기는 합니다. 그래도 읽을 책을 확보해야만(+자랑질해야만) 마음이 놓이는 이 병을 어찌해야 합니까?
10월 3째 주에는
온라인 서점의 블로거들에게서 추천 받은 책들로 목록을 꾸렸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갑자기 마음은
『힐빌리의
노래』를 향합니다. 이 책부터 읽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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