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아이를 낳으라고 강요받는
여성들, S-less 부부들…… 이런 사람을 위해『소멸세계 消滅世界』 라는 '유토피아'를 만들었단다. 이 세계에서 S는 인간을 저차원에
머무르게 하는 불결하고 고리타분한 '교미'로 폄하된다. 특히 부부간의 S는 근친상간(incest taboo)이자 충분한 이혼 사유가 될 만큼
심각한 범죄로 간주한다. 리차드 도킨스가 듣는다면 웃고 가겠지만, 자식을 통하여 자기 유전자를 불멸하게 하려는 인간 종(種)의 욕망 역시
철저하게 제거되었다. 아이는 인공수정으로만 정해진 날짜, 정해진 난자 정자로 태어난다. 모든 이는 모든 아이의 '엄마'이고, 역으로 모든 아이는
모든 성인의 '아가'가 된다. 모성본능은 사회적 신화(motherhood ideology)라고 주장하는 '입장과 맥을 같이 한다. 이
'평행세계'에서는 남성의 자궁선망(womb envy)조차 생명공학의 발달로 해결했는데, 주인공 '아마네(雨音)'의 둘째 남편 역시 인공자궁을
통해 수정체를 키워서 아이를 출산했다. '아마네'는 이름처럼 비(雨) 내리는 여름날 태어났는데, 엄마아빠의 교미를 통해 수정되었다. 이는 영화
(1997)에서 주인공 빈센트(Vincent)로 상징되는 '태양의 아이'를 연상시킨다. 인공수정 대신
'불결한' 방식으로 자신을 잉태한 엄마에게 애증을 품은 아마네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저항한다. S가 소멸하는 세계에서 최후의 '아담과
이브'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S로 대변되는 '자연스러움'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몸의 감각, 본능을 따른다. '가족 시스템'을 부정하고 '에덴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사회적 실험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남편과 합의하여 자신들만의 유전자로 낳은 아이를 갖기로 결의한다. 인공수정 중에
정자난자를 바꿔치기하는 모험도 강행했다. 그러나 막상 '에덴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사회에서 살다 보니, 아마네의 남편은 옛 개념의 가족주의나
모성, 성본능 등이 추잡하게 느끼는지, 전복을 포기한다. 그는 대신 출산과 육아를 철저히 국가가 통제하는 사회에서 인간 아닌 인간으로 길들기를
선택한다. 이를 두고 아마네는 "이제 다 틀렸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도, 남편도, 이
세상을 너무 많이 먹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정상적인 '인간'이 되어버렸다. 정상이라는 것만큼 소름 끼치는 광기는 없다. 이미 지쳐있는데도
이렇게 올바르다니." (256) 라고 한탄한다. 그러나 아마네 역시 변해간다. 생명공학과 기반한 생명정치를 거부하며
옛 방식의 사랑, 옛 가족 개념을 고수하려는 자신의 친 엄마를 감금해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