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혔던 지적 욕구의 활로를 뻥
뚫어주듯 차원이 다른 이야기를 풀어내는 고장원은 계급사회, 차별과 폭력, 우주쓰레기 등 환경 문제, 우주적 차원에서의 제국주의 문제, 대재앙
서사의 네러티브 분석, 세계화의 양면성, 다른존재와의 조우가 제기하는 윤리적 문제 등 다양한 이슈를 모두 10개의 챕터로 엮어냈다. 이라고는 하지만, 사회과학과 인문학에서 익숙하게 들어온 화두들을 녹여서 미래 사회를 이야기하기에 한 마디로 통섭적 시야의
인문과학서라는 인상이다. 그의 지향과 세계관은, 세카이계 세계관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부분에서 역으로 유추할 수 있었는데,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회공동체에 관한 언급이나 묘사가 거의 없으며 작품을 관통하는 묵시록적 재앙의 원인을 설명해줄 국제기구나
국가 내지 이러한 기구의 대표자를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한마디로 세카이계 계열의 대재앙 러브스토리는 타자와의 현실적인 관계 설정 없이 홀로
감정적 마스터베이션에 만족하려는 성향이 짙다보니 인간과 사회 그리고 양자 간의 관계에 관한 성숙된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다 (227). 현실계에서 이탈한 환상적 시공간에 안주하며 이기적인 신화를 새로 쓰려는 세카이계 작품들의 정서는 아무리
그럴듯한 세기말의 분위기를 연출한들 일본 정부와 지베엘리트의 과거 책임을 방기하는 몰역사적
태도와 따로 ˗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228)."
위 인용문에서도 알 수 있듯, 고장원 작가는 인간 개체의
안위확보나 호기심 충족의 차원을 훨씬 넘어서 국가 아니 나아가 초국가 혹은 그 이상의 우주적 연대 혹은 공생을 꿈꾸고 이야기한다. 막연히
몽상가처럼 책임감 없이 눈 감고 환상화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 유전공학, 우주공학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최신 연구및 이론들을 끌어와
꼭꼭 씹어 이야기해주기에 독자의 끈끈했던 눈에서 점액이 벗겨져나간다. 이렇게 닫혔던 눈을 개안시켜준다는 데 어찌 놓칠 수 있으리. 450여
페이지의 밀도 높은 글을 어찌 짧은 한 편의 리뷰에 압축하기 어렵다. 직접 읽어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