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완전한 내가 고맙다 - 상처받은 나를 치유하는 고전의 지혜
강경희 지음 / 동아일보사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나는 불완전한 내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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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왜, 무엇 때문이었냐?'고 물어보기 어렵겠다. <나는 불완전한 내가 고맙다>의 저자 강경희는 분명 젊은 시절 남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얌전하지 않은 우울과 번뇌의 시절을 보낸 듯하다.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의 탄식이 우울과 함께 자리했 (241)"다는 그녀의 20대, 왜 그리 행복하지 않았는지 물어보기는 민망하다. 사실은 좀이 쑤시게 궁금한데 말이다. '우울'을 10년 화두로 안고 가던 그녀의 강의실에서 한 20대 대학생이 "위로받고 싶어요."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그녀는 화답했다. 그녀 자신이 중국에서 치열하게 공부했고, 그녀가 어려울 때 위안의 카우치가 되어주었던 중국 고전문학을 통해서. 즉 <나는 불완전한 내가 고맙다>는 표면적으로는 중국 고전문학의 입문서이지만, 깊숙히 읽다 보면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스스로 치유할 용기를 북돋워 주는 고마운 명상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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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희는 소동파 蘇東坡, 사기 事記, 장자, 공자, 시경 詩經, 주역 등을 읽다 보니, "어느새 위로를 받고 아픔이 치유되었다. 행복하지 않다는 느낌이 더 이상 나를 불행하게 만들지 않았다 (6)"라면서 '나를 치유하는 고전 읽기'의 놀랄만한 치유력을 강조한다. 나아가 혼자서만 편해지지 않고, 그 치유력을 타인과 나누고자 자판을 두드렸다. 한 마디로 "흰 종이 위에 검을 글씨로" 썼다. 마치 사마천이 "죽느냐, 궁형의 치욕 속에서 평생 사느냐?"의 결단을 두고, "비루하게 죽어버리면 후세에 문채(文彩)가 다 드러나지 않을 것이 한스러워 (164)," 삶의 연장을 결단하고 붓을 들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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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스스로 "순서와 관계없이 읽어도 괜찮다 (7)"라고 권할만큼 <나는 불완전한 내가 고맙다>의 8장은 각각 독립된 주제로 이뤄져있다. 그런데도 유독, 소동파와 사마천에 저자의 공감이 더 깊이 느껴지는 건 나만의 감각일까? 혹은 강경희가 10년 우울과 허무감의 터널에서 헤어나오는 데 가장 빛을 많이 던져준 이들이 실로 소동파와 사마천일까?

강경희는 소동파(1036 ~ 1101)에게서는 고통을 긍정하는 힘을 보았다. 흔히 우리는 고통을 극복의 대상화하지만 사마천은 "고통의 뒷몃을 볼 줄 아는 안목"과 "고통이 주는 선물을 향유할 능력(40)"으로 고통을 동의하고 성장했다. 인품의 깊이가 대단한 소동파는 깊은 관조와 긍정으로 유배생활에서 "수인 囚人"이 아닌 "유람객 (27)"이 되어 "현실의 누추함을 몰아"낼 수 있었다. 

사마천은 썼다. 남겼다. 흔적을 남겼다. 마치 오자서와 계포가 굴욕의 시간을 더 큰 뜻을 품고 굴욕으로 여기지 않고 건너온 뒤 족적을 남겼듯, 사마천은 썼다. 강경희도 쓰기 시작한다. 아울러 독자더러 쓰라고 권한다. 꼭 출판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말하는 것은 치유의 첫걸음이며, "글쓰기야말로 말하기 보다 더 확실하고 효과적인 방법 (201)"이기 때문이다. 이 때 치유는 종교학자 정진홍교수가 일깨워주듯 "치료의 주체는 타인이지만 치유의 주체는 자기일 수 에  없 (198)"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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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강경희 작가는 그녀의 강의실에서, 혹은 그녀가 좋아하는 차를 함께 마시며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 하얀 종이에 검은 글씨로 옮겨진 그녀의 깊이에 이미 반했으므로. 그녀가 인용했듯, "글(文)이란 그 사람의 인품이 그녀낸 무늬(文)"(18)라면 그녀의 무늬는 소박하지만 질리지 않는 아름다움의 무늬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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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완전한 내가 고맙다>에 저자가 두 번이나 인용한 장자의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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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가 작으면 큰 것을 담을 수 없고,

두레박줄이 짧으면 깊은 우물의 물을 길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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