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소년 물구나무 세상보기
박완서 지음, 김명석 그림 / 어린이작가정신 / 201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인과 소년

20170208_082737_resized.jpg

작품에 대한 배경 설명을 읽고 나서야 이해가 갔다. '무슨 그림책에 이리 어려운 단어가 자주 등장하지?' 의아했는데, 알고보니 <노인과 소년>는 애초에 박완서 작가가 1970년대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쓴 48편의 짧은 소설을 모아 펴낸 소설집 <나의 아름다운  이웃>에 수록된 한 편이었다. 어째, '낙조의 시간,' '오랜 노독'이나 '표표히 들어서고 있었다' 등의 표현은 꼬마들에게는 어려운 표현이 아닌가 싶었다. 사전 정보 전혀 없이 읽었을 때, 나는 <노인과 소년>이 박완서 작가가 최근 한국 사회를 들끓게 하는 '블랙리스트' 정치에 대해 예술인으로서 항거하고자 작정하고 쓴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작품에서 묘사하는 '사람 살 만하지 않은, 정의가 위협받는 모습'은 2010년대 한국 사회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1970년대의 이야기가, 2010년대에 현재 시제로 읽어도 생생한 메시지를 전달한다면, 그만큼 작가적 선경지명이 탁월하다는 이야기일까? 아니면, 우리 사회가 그토록 암울하다는 뜻일까?

20170208_082751_resized.jpg
살 곳을 찾아 헤매던 한 노인과 한 아이가 새로운 고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원래 살던 땅에 몹쓸 전염병이 돌아, 이 두 사람만 남겨 놓고 사람의 흔적을 지웠다 했다. 노인은 마침내 정착할 곳을 찾았다는 기쁨에 앞장 서 걸어가는데, 아이는 발걸음을 옮기지 않는다. 소년에게 그 곳은 '살만한 곳'이 아닌, 고약한 냄새 풍기고 독이 흐르는 '몹쓸 곳'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세월이 가져다준 지혜가 있을지언정 노인의 무뎌진 코로는 감지하지 못했던 냄새와 맛을 아이의 순수한 본능은 알아챘다. 책, 즉 '참말'을 태워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더러운 냄새를 아이는 맡았다. 오염된 땅에서 오염된 물로 자란 농작물에서 사람들을 서서히 조금씩 죽여가는 독 맛을 아이는 느꼈다. 그래도 노인은 아이에게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어했다. 이 모든 불행은 자연의 설계가 아니라, 인간들 탓이라며. 그래도 생각을 거침없이 뱉어낼 인간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면 잘못을 바로잡을 희망이 있다며 아이를 다독여 새로운 고장으로 다가선다.
20170208_082808_resized.jpg
그러나, 그 기대마저 꺾을 수 밖에 없게 한 에피소드가 있었으니. '감자를 감자'라 말하고, '양파를 양파'라 말한 이들을 거짓말 했다고 가두고 벌하는 거꾸로 가는 사회에서 소년과 할아버지는 살 수 없었다. 아무리 자연이 파괴되어가고, 황금만능주의에 사로잡혀 책으로 대변되는 지혜를 멀리한다할지라도 인간이 하는 일, 인간이 바로잡을 수 있으리라 믿었던 할아버지가, '양파를 감자, 감자를 양파'라고 말해야 진실이라고 우기는 사회에서는 절망만 보았다. 그래도 소년과 노인은 계속 걷는다. 살 수 있는 곳, 머물 곳을 찾기 위해…….
20170208_082910_resized.jpg
박완서 작가의 <노인과 소년>은 1970년대 작품이지만, 2017년 한국 사회의 거울이자 미래의 묵시록 같은 작품이다. 작가의 혜안에 새삼 놀라게 한 작품이다. 아울러, 김명석 일러스트레이터의 독특한 그림도 놓치기 아까운 비주얼.

20170207_120641_HDR_resized.jpg

낮에 방문했던 공공기관 건물에서 대형 구조물, 아니 미술 작품 앞에서 한참을 서있다가 사진 한 장으로 남겨 두었다. 버리면 폐기물신세일 밤나무 조각조각을 다듬어서 이렇게나 매끈하고도 부드러운 '하나'로 다시 탄생시켰다 (작가님, 죄송 작가님의 이름을 기억못합니다). <노인과 소년>을 읽고 나니, 이 구조물 생각이 다시 났다. 어느 하나의 조각이 '내가 주춧돌일세!'하면서 특별 대접받길 원한다거나, 작은 조각들이 무시당해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형상이다. 부드러운 모양새, 빈틈이 많아 흐름이 가능한 구조, 작은 조각이라도 하나가 빠지면 왠지 불완전해질 것 같은 이 형상은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광장에서 부르짖는 '사람이 사람으로 대접받는, 공정한 사회.'를 표상하고 있지 않은가? 국정'농단'을 '농단'이라고 이야기하는 자가 코너로 몰린다면, <노인과 소년>에서 감자를 감자라고 말하면 거짓말이라고 엄벌을 받는 그 모습과 무엇이 다른가? 예술인으로서의 박완서 작가가 어쩌면, '블랙리스트' 정치에 이렇게 그림책으로 조용히 항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