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로베르트 제탈러 지음, 오공훈 옮김 / 그러나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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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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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집중해야 하는 책을 잠시 멀리해도 된다는 변명거리를 주기 위해 집어든 소설, < 한평생>. 제목 외에는 아무런 정보 없이 읽기 시작했다. 평생 산과 가까이 자연인으로 노동의 숭고함을 실천하며 살았던 주인공처럼 참 내향적이고 과묵한 책이다. 드라마틱한 전개도, 사건도, 흔한 로맨스조차 살짝 다루고 지나가는데도 '참 잘 읽었다' 싶다. 다 읽고 나서, 옮긴이의 후기를 보니 작가 로베르트 제탈러의 <한평생>은 2016년 맨 부커 인터내셔널 상의 최종 후보작에 올랐던 검증받은 작품이다. 한국인에게는 한강의 <채식주의자>로 기억될 2016 맨 부커 상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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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는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섞어 비벼낸 작품에서 탁월한 기량을 발휘해왓다고 옮긴이가 소개하는데, < 한평생>에서 역시 산악 지역 휴양지 개발 과정이 허구와 잘 어우러져 묘사된다. 작가가 오스트리아 빈 태생인데, 소설의 주요 공간적 배경인 산악 지역 역시 오스트리아 서부 티롤 산악 지역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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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죽음이다. 죽어가는 노인, 노인의 죽음에 대한 묘사, 죽음에 대한 주인공의 태도, "죽음은 차가운 여인"이라는 염소지기 노인의 말에, 젊은 주인공은 "하지만 제 등에서 돌아가시면 안 돼요!"라고 말한다. 부모 없는 에거는 어려서부터 모진 학대를 당해 다리골절을 입고 절름발이가 되었으나, 평생을 묵묵히 숭고한 노동으로 연명한다. 비록 다리길이도 짝짝이도 다리뼈도 이상하게 휘었지만 산 하나만큼은 기막히게 잘 타서, 스키 휴양지로 개발하려는 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일 역시 기막하게 잘한다. 젊어서는 그 일로 먹고 살았다. 늙어서는 도시 사람들에게 '산림체험(?), 산 안내'를 해주고 받는 돈으로 먹고 살았다. 하지만 욕심부리지 않아서 소박하게 먹고, 단순하게 살았다. 종교 수행자도 아니건만 에거의 삶은 금욕 그 자체였다. 아내 마리를, 산사태로 갑작스레 떠나보내고 난 이후 어떤 사랑에 빠지지도 않았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그저 고독하게 마리를 그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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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역시 죽음이다. 이번에는 츨생 증명서상 일흔아홉의 노인이 된 에거의 죽음. <한평생>에는 다양한 양상의 죽음과 죽음에 대한 태도가 등장하는데, 에거의 죽음은 천천히 그리는 인물화 같이 천천히 온다. 시인이 아름다운 풍경을 관조하듯 관조하며 천천히 온다. 겸허히 수용한다. 작가는 이렇게 그의 마지막을 묘사한다.

 

에거는 심장 쪽에서 날카로운 통증을 느꼈고, 자신의 상반신이 서서히 앞으로 쓰러지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한쪽 뺨이 탁자 표면에 닿았다. 에거는 그런 자세로 쓰러진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자신의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렸다. 심장 뛰는 소리가 멈추자, 고요함에 귀를 기울였다. 참을성 있게 심장이 다시 뛰기를 기다렸다. 더 이상, 심장이 뛰지 않자, 그는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였고 죽었다. (149쪽)

이렇게 이야기가 끝이었다면 <한평생>은 에거의 고독한 한평생을 몰래 들여다보는 이야기로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에거의 죽음을 묘사한 후, 다시 6개월 전으로 거슬러 간다. 노인 에거의 정신이 혼미해져서 가끔 치매 기운을 보이는 와중, 에거는 9월에 눈송이를 맞았다. 자신을 부르러 온 죽음의 여인으로 착각했던 에거는 "아직은 아냐."라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겸허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며 나이드는 와중에도, 생이 찬란해 미칠것 같은 순간 한 번 없이 거진 80년을 살아오면서, 그 느리고 외로운 생을 더 연장하고 싶어함이 한 마디에 내포되어 있다. 노인이 된 에거는 우연히 빙하에서 발견된 노인 시신과 마주하는데, 그 노인은 바로 소설의 첫 페이지에 등장한 염소지기이다. 염소지기는 산에서 죽었고, 산악 지방의 차가움 때문에 40여년 동안 냉동 미이라가 되었던 것이다. 젊은 날의 에거 등에서 죽어가던 노인의 미이라를, 이제 그 노인만큼 늙어버린 에거가 마주본다. "에거가 몰두한 생각은 하나 더 있었다. 얼어붙은 염소지기가 마치 시간의 창을 통하기라도 하듯 에거를 응시하고 있다는 상상이었다. 하늘을 향한 그의 얼굴 표정에는 무언가 젊은 기운이 어려 있었다. 에거가 오두막에서 죽을병에 걸린 염소지기를 발견해 나무지게에 지고 골짜기로 내려갔던 당시, 하네스는 마흔 살이나 쉰 살쯤 되었던 것 같다. 이제 에거는 일흔 살을 훌쩍 넘겼고, 자신이 젊다는 느낌은 절대 들지 않았다. 산에서의̋ 삶과 노동으로 인해 그에게는 진한 흔적이 남게 됐다. (13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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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이 부분이 클라이막스로 느껴졌다. 40년전 눈 앞에서 홀연히 사라져버린, 죽어가는 노인의 미라를 이제 그보다 더 늙은 남자가 되어 다시 만나는 부분. 압축된 40년은 소설 속 '한 문장'이요, 한 순간이다. 허망하기까지 하다. 그 세월, 반평생의 세월이. 다만 노인의 미라에게서 느껴지는 '젊다는 느낌' 앞에서, 이제는 폭삭 늙어버린 주인공이 여전히 떳떳할 수 있음은, 그가 순간순간 진실로 최선을 다했기에.

비록 자식도, 그 흔해 빠진 집한채의 재산도, 뭐 하나 남기지 못했기에 세속적 명예 창구는 텅텅 비었겠지만 에거의 삶은 숭고했다. 노동했고, 진실했다. 그래서 세속적 창구가 비었어도 떳떳하고 죽음 앞에서 비굴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내가 얻은 교훈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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