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함의 상징, 아이들과 폭탄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종종 총칼의 희생자로 묘사되어 어른들의 동정과 부끄러움을
유발할지언정 자발적으로 총칼을 집어 드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무기의 아이들>에서는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폭력을 추구하고,
폭력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더 충격적입니다. 아이들은 여느 세상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세상에 삽니다. '무기의 땅'이라는 그 공간은 온통
무기 투성이입니다. 학교 교육을 받는 대신, 아이들은 무기 사용법을 익히고 폭탄을 가지고 놉니다. 부모님 역시, 아이들의 사격술이 늘어갈수록
흐뭇해하며 모의 사격 놀이를 장려합니다. 여섯 살 난 꼬마 독자의 시선에도 이런 세상은 어이가 없어 보이나 봅니다. 책을 읽으면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합니다.
'무기의 땅' 아이들은 낮에 폭탄으로 만들어진 축구공을 차고 노는 것으로 모자라는지, 밤에도 입에서 불을 뿜어내는 곰
인형을 안고 잡니다. 교육의 힘을 다시금 무섭게 느낍니다. '전 국민의 군인화'를 추구하는 '무기의 땅'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은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인간병기로 커나가니까요. 생각도, 행동도, 감정도 부지불식간 통제당하여 군인과 다를 바 없이 자랍니다. 어린시절부터 폭력에 하도
길들어서 폭력성에 무감각합니다.
강심장인 '무기의 땅' 어린이들을 괴롭히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대상도 형체도 없기에 어떻게 다뤄야 할지도 모르겠는 그
적은 바로 꿈이었습니다. 온통 초록인 '초록의 땅' 꿈이었습니다. 아이들은 꿈속에 나오는 꼬마들이 자꾸 자신들을 초록의 땅으로 불러대는 것 같아
불안해하고, 어른들은 아이들의 꿈을 억압하기 위해 다양한 약을 먹입니다. 소용없었습니다. 초록 땅의 꿈은 아이들을 자꾸 찾아왔습니다. 결국,
직접 그 초록의 땅을 찾아가서 꿈속의 아이들을 혼내주기로 한 무기의 땅 아이들. 탱크를 타고, 총과 총알로 무장하고는 남쪽으로 행진합니다.
남쪽, 초록의 땅에서 적을 찾아내 혼쭐내려던 무기의 땅 아이들은 '적'을 찾지
못했습니다. 뭔가 증오하고 파괴할 대상이 필요했는데, 아예 '적'이란 존재하지조차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초록 땅에서 '적'을 찾아다니는 사이
자연스레 자연의 아름다움과 평화에 길듭니다. 아이들은 더는 '적'을 찾거나 총과 총알을 쓸 필요조차 없어졌습니다. <무기의 땅
아이들>을 그린 마야 카스텔리츠는 전쟁의 폭력성, 비인간성을 상징하는 회색은 차차 거두어가는 대신 평화를 상징하는 초록과 파스텔톤으로
페이지를 가득 채웁니다. 어린 독자들에게 시각적으로, 직관적으로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합니다. '증오하고, 싸우는 세상은 자연스러운 게 아니다.
초록의 평화가 자연스러움이다.'
*
<무기의 땅 아이들>을 읽고, 비교적 책장을 가벼운 마음으로 넘기는
독자라면, 그는 '무기의 땅'을 단지 상상 속 공간으로 한정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작가 브라네 모제티치는 <무기의 땅
아이들>을 실제 전쟁의 참혹함을 일상으로 무디게 받아들이는 아이들이 존재함을 통감하며 썼을 거예요. 그래서, 읽고 나서도 마음이
무거워지네요. 아무리 평화를 이상으로 추구하고, 염원할지언정 2016년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아이가 전쟁의 무고한 피해자로 생을
마감하는지요. 혹은 성찰할 사이도 없이 인간 병기로 길러지는지. 어떻게 해야 달라질 수 있을지.
비록 한 줄로 답은 내릴 수 없지만, 평화를 희구하는 기도를 하고 평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끌어내게 해준다는 점에서 <무기의 땅 아이들> 참 고마운 그림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