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디는 '태양의 아이'로 타고난 듯, 밝고 꾸밈이 없다. 부모님을 아주 어려서 여의고 이모 손에서 자라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할아버지에게 인도된다. 알프스로 오던 첫날, 두꺼운 외투와 신발을 벗어 던지고 갓 짠 염소젖을 꿀꺽꿀꺽 들이켜는 하이디는 태양의 아이라 거침이
없다. 그 자신이 이미 사랑의 화신이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온기와 생명력을 나누어주고도 본인은 정작 모른다. 의식하고 '베푸는' 선행이 아니라,
그 존재감 자체로 사람들에게 빛이 되는 경우이기에. 하이디의 존재감으로 '피터네 할머니'는 음울한 노년의 어둠에서 빛을 찾았고, 고집스레 은둔
생활을 하던 하이디의 친할아버지도 마음을 연다. 부자집 딸이지만 다리를 쓰지 못해 온실 안 화초로 자라던 클라라 역시 하이디를 통해 생명의
활기를 열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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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화신, 하이디. 그러나 보살핌이 필요한 여덟 살, 아이이다. 타고난 생명력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빛을 주지만, 정작 자신은
고향 알프스와 할아버지가 그리워서 몽유병까지 걸려버린다. 그런 하이디를 클라라의 아버지는 좋은 약으로 치료하자고 하지만, 현명한 의사 선생님은
진정한 처방을 한 방에 내려준다. 그것은 바로, 하이디의 마음이 원하는 그것. 하이디의 내면이 부르는 그곳, 그 사람들. 마음의 병은 마음으로
치유한다. 하이디는 알프스로 돌아갔고, 다시 초록 풀처럼 싱그럽게 피어났다.
크레용 하우스 출판사에서는 한국의 어린 독자를 위해 <하이디>를 출간하면서 완역 대신, '뒷이야기'라는 타이틀의
15장에서 클라라와 하이디의 이야기를 압축해서 전한다. 하이디가 떠난 뒤, 건강이 나빠진 클라라가 다시 하이디를 만나러 알프스를 찾은 후의
이야기가 몇 페이지에 요약된다. 압축된 이야기를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자연의 치유력, 사람의 생명력. 근본이 가지는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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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 어린이들의 입에서도 '착하게만 살아서는 안 된다. 착하면 바보.'라는 뉘앙스의 세속적 처세를 종종 듣는다. 1970,
80년대, 한국 사회를 채색하던 집합적 차원의 '착한 아이 콤플렉스'와는 사뭇 다른 강령이다. 어느 것이 맞다 그르다를 판별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시대마다, 사회마다 이상화하는 어린이상, 인간상에는 변이가 있을테니. 그런데 그 변이조차 어쩔 수 없는 근본이 있다. '하이디'라는
상징적 존재가 보여주는 그 근본. 따뜻한 생명력이 넘쳐나는 존재는 타인의 삶까지도 밝히고 뎁혀준다. 타고나지 못했더라도, 우리는 그런 따뜻한
존재가 되도록 노력은 할 수 있지 않을까? 빛을 감아들이는 블랙홀같은 존재가 아니라 빛을 발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