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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리 존스의 전설 ㅣ 산하세계문학 11
야코브 베겔리우스 지음, 박종대 옮김 / 산하 / 2016년 10월
평점 :
책을 읽고 나면, 작가를 '조금이나마' 알았다는 생각에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사그라지는 편인데 <샐리 존스의
전설 (원제:Legendem om Sally Jones)>의 작가인 야코브 베겔리우스(Jakob Wegelius)에 대해서는 달랐다.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책 읽고 난 후, 도리어 강렬해졌다. 그의 홈페이지(http://www.jakobwegelius.com/를 방문해보니, ' 1966년 스웨덴 태생'
수준의 소개가 전부였다. 그런데도 저절로 그려진다. 야코브 베겔리우스가 인간 존엄성을 추구하며 문학과 역사, 철학에 정통한 휴머니스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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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최고 문학상인 아우구스트 상을 받은 <샐리 존스의 전설>은 어린이 책으로는 드물게, 어른 독자를 위해
작가가 500여 쪽 분량으로 길이를 늘여 다시 썼다 한다. 그 정도로, 세대를 넘어 큰 감동을 주는 책이겠다.
처음엔, 단순히 모험 이야기로 알고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작가는 한 고릴라의 삶에 빗대어 인간 역사의 착취, 차별과 억압, 동시에 인간 존엄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최고였다!
21세기의 고릴라는 '그놈의 스마트 폰'
에 필요하다는 콜탄 때문에 서식지를 빼앗기고 죽어 나가는 가련한 존재이건만,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100여 년 전에도 마찬가지로 인간
때문에 고달프게 살았다. 주인공 새끼 고릴라는 벨기에 군인의 습격을 받아 고릴라 무리에게서 강제로 떨어져 밀렵꾼들에게 팔렸다. 고릴라를 사람
아기로 위장한 인간 때문에 이 가련한 존재에게는 '샐리 존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동물을 사랑한다"는 여자가 샐리 존스를 수렁에서 구출해서
잘 돌봐주었다. 주로 숨바꼭질 놀이를 유도했는데, 샐리 존스는 점점 어려워지는 찾기 놀이의 진짜 목적을 몰랐다. 그 목적을 위해, 샐리 존스는
철저히 도구로써 이용당하는데도 몰랐다. 독자도 몰랐다. 알고 보니 그것은 도둑질이었는데, 교활한 여인은 샐리 존스를 훈련해서 귀금속을 감쪽같이
훔친 것이다.
인간 때문에 고릴라 동족에게서 강제로
떨어져서 노예처럼 팔린 이후, 또 배신을 당했다. 재판부는 샐리 존스를 동물원에 넘겼다. 비탄에 빠진 샐리는 거기서 다시 유랑 서커스단에 팔리는
신세가 된다. 탈출해서 배에 올랐지만, 운 나쁘게도 선장에게 들켰다. 원숭이 종류를 끔찍이 싫어하는 냉혈한이었다. 배 밖으로 당장 내던져질 뻔한
샐리는 다행히 일등 기관사의 중재로 목숨을 부지한다. 샐리가 겪는 고난에 끝이 보이지 않아, 인간으로서의 독자가 인간을 대신하여 사과하고파 지는
순간, 이번에는 자연재해이다. 샐리 존스가 탄 배는 태풍을 만나 가라앉아버렸으니.
노예처럼 팔리고,
감금당하고, 관람 당하고, 배신과 이용당하고, 착취당하고.....이 정도 가혹한 운명이라면, 웬만한 인간이어도 생을 포기하고 싶어질지도
모르지만, 샐리 존스는 묵묵히 운명에 순응하면서도 나름의 방식으로 근본을 지킨다. 자신을 믿어주는 이에 대한 신의, 스스로에 대한 존엄. 참
마음을 진하게 울린다.
야코브 베겔리우스는 샐리
존스의 전설을 광대한 공간적 배경을 바탕으로 펼쳐 놓았다. 아프리카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터키 이스탄불, 싱가폴, 보르네오 섬,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을 거쳐 다시 아프리카에서 막을 내린다. 광활한 서사시 같은 이 모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억압과 착취를 당했을지언정,
'생은 계속된다. 역사는 계속된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이 가을에 읽은, 아름다운 걸작이다. <샐리 존슨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