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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노릇 아이 노릇 - 세계적 그림책 작가 고미 타로의 교육 이야기
고미 타로 글.그림, 김혜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어른 노릇,
아이노릇
그림책을 아끼다 보면, '고미
타로' 작가의 작품 한두 권은 집 서가에 꽂아 두게 마련이다. 단순하지만 흉내낼 수 없는 생명력이 느껴지는 그림을 1945년생 작가가 그렸다는 사실에 더욱 감탄한다. 단순명쾌함이 매력인 그의 그림책만큼이나 명쾌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어른노릇 아이노릇>은 2001년 첫 출간되었다. 200여 페이지밖에 되지 않은 이 책이 15년이 지난 요즘에도 일본의 교육
현장에서 필독서로 대접받는다 한다. 일본어 문외한이라 안타까웠는데, 2016년 한국의 미래인 출판에서 "문제아는 없다! 문제 어른이 있을 뿐!
그림책계의 장난꾸러기 고미 타로가 작정하고 던지는 죽비소리"라는 홍보문구와 함께 한국의 독자들에게 소개해주니,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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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멋 모르고 <어른노릇
아이노릇>을 '육아서, 교육 에세이'라는 장르로 한정짓고 읽기 시작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그 이상'의 보았다. 한 마디로 육아서를
표방한 사회비판 에세이라 하겠다. 고미 타로가 <어른노릇 아이노릇>을 쓰고 세간의 따듯한 평가만 받았을 것 같지 않은데, 이 책이
일본 사회를 향한 쓴소리를 가득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읽는 이야 일본 사회의 몰랐던 모습을 덕분에 상상하며 얻어 가는 것이 많아지지만, 고미
타로가 혹시 일본 독자에게서 쓴 소리도 많이 듣지 않았나 싶다. 행간에서 느껴지는 일본식 '타인 지향의 문화,'와 '이지메 문화' '획일주의
혹은 전체주의의 압력' '죽은 교육'등에 대한 고미 타로의 반감을 누군가는 껄끄러워할 것이 틀림 없기
떄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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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
타로는 독자로서의 어른에게 적당히 아부하지 않는다. 듣기 싫은 쓴 소리 과감히 던지는데, 부정하기도 어렵다. 그가 던지는 말은 상당부분 현실의
어른들의 부끄러운 모습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고미 타로는 어른들의 위선과 자기중심성을 꼬집고, 극단적으로 말해 어른은 아이에게 해로운 존재라고
말한다. 그런데 잘 읽어보면, 그가 단지 '어른 대 아이'라는 대립구도에서 어른들의 잘못을 꼬집는 것이 아니라, '일본 사회'라는
맥락에서 아이를 옭죄이는 문화를 비꼬는 것이다. 좀 더 이야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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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개인이 너무도 적은 우리 사회(일본)입니다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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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의 키워드는 '그렇게 하도록 되어 있다'입니다. 학부모회의를 할 떄도, 예방접종을 할 떄도,
동네 반상회를 할 떄도 '좀 이상한데? '왜 그렇지?' 하는 의문이 들어서 질문하면 담당자 대부분이 "그렇게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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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정신이 참으로 부족한 (일본) 사회입니다. 조금 시험해보는 일, 조금만 바꿔보는 정도의 시도에도
왠지 불안해하는 사회, 그리고 개인들입니다. (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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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때도 매국노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모두가 꾹 참고 견뎠습니다. 전쟁 때처럼 명령만 내리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인간을 만들려는 망령 같은 문화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니, 정말 세상 살기 싫어집니다. '모두가 함께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때문에, 용감하게 혼자 반론을 제기하기 무거운 문화 속에서 '개인'은 너무나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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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든 야구든, 전체적인 배치를 내려다보는 '눈'이 있습니다. 바로 '남의 눈'이라는 것입니다. 즉, 남들이 지켜본다는 말입니다. 남들 눈에
벗어나지 않기 위해 하고 싶지 일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고미 타로가
일본 사회에서 나고 자라 나이 들면서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잘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고미 타로가 일본 교육을, 아니 그 교육을 담당하는
선생님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른은 스스로 아이들과 '다른 존재,' 혹은 더 '성장한 존재'처럼 스스로 생각하지만, 자신의 가치와
세계관을 강요하고 아이들을 '착한 아이'로 길들이려한다는
점에서 아이에게 독이 되는 존개이기도 하다는 것이 고미 타로의 관점인 것 같다. 뼈 속 깊이 반골 기질의 권위에 저항하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그의 두 딸 역시 아빠를 닮아 자유롭게 키운 듯 하니, 그는 실로 말뿐 아닌 행동으로 신념을 사는 사람인가보다. <어른노릇,
아이노릇>을 교육현장의 교육전문가나 육아에 헌신하는 이들만 읽을 육아서라고 한정지으면 아깝다. 일본 사회 이야기라고 대강 읽으면 더욱
아깝다. 15년 전에 고미 타로가 던진 쓴 소리는 2016년, 한국 사회의 모습을 정확히 꿰뚫어 지적하는 듯 당신과 나에게도 틀림 없이 쓴
소리일 테니까 말이다. 귀한 말은 입에 쓴 법이다. 새겨듣는 몫은 당신의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