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진 인생, 맛있는 문학 - 생을 요리하는 작가 18인과 함께 하는 영혼의 식사
유승준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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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진 인생, 맛있는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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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재미있다'

거의 일 년 넘게 서가에 꽂아만 두다가 다시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와 새벽까지 읽었다. <허기진 인생, 맛있는 문학>. 재작년에도 1/3은 족히 읽었지만, 마음 급한 일이 있었는지 활자가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한밤중 몰래 읽는 맛이 참맛이다. 리뷰도 '한밤중 몰래 일기' 스타일로 편하게 쓰련다.

<허기진 인생, 맛있는 문학>의 구체적인 내용 소개는 젖혀두고 우선 감동의 지점 두 가지부터 짚어야겠다. 먼저 무려 18인의 문인과 직접 만나 대화 나누고 '요리, 음식'을 화두로 그들의 문학 세계를 꿰뚫어 엮은 저자 유승준의 혜안과 사람됨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한국 문학계 당대 최고의 문인, 마흔을 바라보지만 소녀적 감성을 간직한 작가, 대학 강단에서 강의도 하고 작품활동도 하는 작가, 연령대와 성별은 물론이거니와 인터뷰 대응력과 문학의 철학이 다른 18인에게서 깊은 이야기를 끌어내는 유승준 저자의 노련함은 인격에서 나왔으리라.

두 번째. 나는 <허기진 인생, 맛있는 문학>을 읽고 부끄러워졌다. 소수의 소위 '성공한' 문학인이 아니고서는 오로지 창작활동만으로는 넉넉한 삶을 꾸리기 어려웠을 작가들이 왕성하고도 집요하게 계속 작품 활동하는 모습 앞에 부끄러웠다. 반성하지만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 습관의 굳은살, 자꾸 미래형을 살려고 한다.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심한데, 정작 그 강박이 굉장한 자아도취에서 나왔다. 행동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아니,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는다면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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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인의 인터뷰, 작가마다의 말솜씨, 문학입문계기와 문학계 입지, 문학에 대한 사명감 등에 변이가 큰대, 읽고 나서 가장 오래 기억나는 이가 바로 (혹은 역시나) 김훈 작가였다. '경기창작센터'에서 홀로 기거중인 그가 산책하러 나갔다가 주워왔다는 철가방은 이제 그의 서류가바방으로 쓰인다. 작가의 파일과 메모지가 들어 있는 철가방이라니, 혹시라도 경매에 내놓는다면 김훈 작가의 팬들이 날름 집어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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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이 하도 인상 깊어 좀 옮겨본다. 김훈 작가가 쓴 <칼의 노래>를 읽었다는 대한민국의 정치 지도자가 "자기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나라의 어려움을 헤쳐나가겠다고 이야기"했단다. 그런 정치가가 갸륵하기는커녕 김훈 작가는 "저 사람 참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건 이순신이니까 되는 거예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라고. 제 놈들이 나가면 백전백패예요. 그리고 일단 나라의 지도자라면 적들이 배 330척을 가지고 들어오는데 우리한테는 배 열세 척밖에 없는 그런 상황을 만들면 안 되는 거잖아요. 적어도 2백 척은 가지고 있어야죠. 적들이 배 330척을 가지고 쳐들어오는데 겨울 열세 척만 가지고 국민더러 나를 따르라 한다면 누가 따르겠어요? 너 혼자 가서 죽으라고 하겠지." (1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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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진 인생, 맛있는 문학>에 소개된 18인의 작가 중 가장 현학적인 어휘를 구사하며 대학 강의스러운 인터뷰를 진행한 이는 바로 김재명 작가. 자크 아탈리며 제러미 리프킨의 저서를 인용하고 고고학적 발견에서 소설의 모티브를 따온 그녀는 아름답게 지적이며, 물리적으로도 아름답다. 매혹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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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책은 '문학의 맛깔스러움'을 잊은 독자를 자연스레 문학의 식탁으로 초대하는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 읽고 나니 더 읽고 싶어지고 소개된 작가들을 만나고 싶어졌다. 그 전에 쓰기도 해야겠다. 끝을 보아야, 도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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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별 걸 다 궁금해하는 엉뚱 독자가 질문 드립니다. 왜 소개된 18인의 작가분 중에 김재영 님의 포토제닉한 사진이 유독 많이 등장할까요? 심지어는 같은 사진을 흑백으로 한장, 컬러로 한장 꽉 채워 도합 책의 두 면을 채워 편집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우아함이 종이를 뚫고 독자를 매혹시키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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