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강한 농업 - 도시청년, 밭을 경영하다
히사마쓰 다쓰오 지음, 고재운 옮김 / 눌와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고 강한 농업




20160210_213655.jpg


'헬조선' 의 염증과 맞물려 도시생활에 환멸을 느끼는 이들도 많은지 최근 농촌 생활을 꿈꾸는 도시인들이 늘고 있다는 기사를 자주 접한다.  깊은 고민 없이 대답한다면, 나 역시 "농촌의 푸름, 흙 내음 느끼며 살고 싶다"고 할지 모르겠다. 한술 더 떠서, 집' 앞에 유기농 텃밭을 일구며 특화작물로 소득원을 마련하네 마네' 할지도.....  하지만, 두 걸음 물러서 그려 보면, 빛공해를 탓하는 어설픈 환경주의자 흉내는 낼 수 있어도 밤의 깜깜함을 비효율이라 생각할 것 같고, 해충이건 익충이건 그저 자연도감책에서 보는 걸로 그치고 싶다고 징징거릴 것도 같다. 기존 공동체에 녹아들어 가야 하며 땅에 무지해서 생기는 손해를 꽤 오래 감수하며 농촌 생활에 적응해나가야 할 것 같다. 한 마디로, 실제로는 엄두가 잘 안 난다.
*
<작고 강한 농업>의 저자이자 히사마쓰 농원의 대표인 히사마쓰 다쓰오는 그런 면에서 지행일치를 이룬 사람이다. 본문에서 여러차례 자신을 명문대 출신(게이오 대학)에 토익 점수까지 높은 회사형 인재였다고 묘사하는데, 실로 그는 언어화와 암기에 재능이 있는 학교형 인재였던 듯 하다. 소위 학교 우등생, 회사형 인재들의 공통 약점이겠지만, 그는 조직 생활에서 삐딱선을 자주 타며 냉소주의와 무사안일주의로 회사생활을 한 듯하다(뭐, 회사에서만 이런 약점이 드러났던 것은 아니다. 농촌 생활로 갈아타기를 시도할 때도 다른 농부에게 "아무것도 못 하는 주제에 이치나 따지기는"이라는 욕을 들었다고 고백했으니) . 납득할 수 없는 권위에 대한 불복종, 학연 지연 따지는 일본 조직문화에의 회의 속에서 그는 농촌 생활, 아니 정확히는 유기농업을 꿈꾼다. 월급쟁이 생활은 눈가림용으로 하고 주말 농장에 재미를 붙이던 시절, 선배 농부가 그에게 "20대에 주말이 기다려지면 볼 장 다 본 건데."라고 쓴소리를 했단다. 이래저래 하여 그는 미련없이 회사생활을 그만두고 농촌으로 향한다.  

 

20160210_213824.jpg

여기까지는 사실 독자의 흥미를 특별히 끌 만한 소재가 아니다. 회사 생활 재미없고, 유기농 먹거리와 지구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아 귀농한 사례는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을 테니. <작고 강한 농업>의 흡인력을 높이는 지점은 바로 저자 히사마스 다쓰오의 솔직함이다. 그는 딱히 겸손한 사람인 것 같지도 않고, 자신의 선택을 낭만화하는 이상주의자도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사람이 참 솔직하다. (실제 겪어보면, 솔직하다기보다는 차갑다거나 감정절제형이라고 평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흠과 약점을 마치 남의 이야기 하듯 기술하는 그 담담함에 경이로움마저 느낀다. 농업 하는 사람에게는 대부분 "감(感)이나 근성"이 적어도 하나는 있는데 본인에게는 아무것도 없다고 담담히 스스로 평가한다.  자신은 어려서부터 부모님께 "또 억지 부리네!"라는 꾸중을 밥 먹듯 들었을 정도로 "이론이 앞서는" 성향이었다고도 고백한다. 그러나 어쩌면 히사마쓰 다쓰오는  기준점 자체를 타인보다 높게 두어 스스로 가혹할 뿐 꽤 괜찮은 자질을 갖춘 훌륭한 농부일지도 모른다. 
그는 본인에게 결여된 "감(感)이나 근성"을 특유의 우등생 두뇌 회전, 즉 "언어화"로 메꾸었다. 즉, 자신이 좌충우돌하며 습득하게 된 농업의 기술과 지혜를 표준화된 데이터로 저장하여 활용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하사마쓰 농원을 운영하면서 재배 품종별 작업설명서에는 '작업절차와 주의점, 깨달은 점' 등을, '작업 계획표'에 따라 일하고 '작업 내용'을 기록한다.

 
20160210_213911.jpg
20160210_213810.jpg
 

농업에 강하게 끌려 결국 꿈대로 땅을 일구며 사는 그는 바람에 각별한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밭에서 맞는 바람에 실린 흙과 채소의 향이 관능적이라는 그는 '풍요로운 바람'을 이렇게 이해한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때로는 본성을 드러내고, 자유를 가져다주지만 제어할 수 없는 존재."(118쪽) 그 바람을 향한 경외감을 담아 히사마쓰 농원의 심벌마크를 제작했다고 한다. 일본 여행할 기회가 생긴다면, 히사마쓰 농원에 꼭 들려서 그를 직접 만나보고 싶다. 이왕이면 바람에 실려온 흙과 채소의 향도 느끼고 맛보고.


 

20160210_213836.jpg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