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공감 - 김형경 심리 치유 에세이, 개정판
김형경 지음 / 사람풍경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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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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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년 전, 나보다 인생을 조금  더 살고, 나보다 사회인에 더 가까웠던 선배가 책을 선물해주었다. 당시 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도의 <로리타>나 장 그르니에의 <섬>, 아멜리 노통브와 미셸 트루니에의 소설을 탐독하던 때인지라 한국 작가의 소설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선배가 선물해준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은 굉장히 달랐다.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치밀했고, 가혹할만큼 캐릭터들을 통해 독자의 내면을 후비고드는 소설이었다. 게다가 성석제 스타일의 해학은 커녕, 우울하기까지했다. 지금은 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때 '김형경'이라는 작가에 경외감과 호기심을 갖게 되었음을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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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 딱히 그녀의 책을 찾아 읽어보지는 않았는데 최근 온라인 서점에서 그녀의 북콘서트를 개최한다니 참석희망자들의 덧글에서 그녀가 얼마나 신뢰받는 작가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열혈팬들이 많았다. 단순히 작가로서가 아니라, 인생의 멘토로서.

"정신분석 작가"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무서울만큼의 통찰력으로 인간의 심리를 꿰뚫어보되 차가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야기를 풀어주는 김형경. 그녀가 비록 정신분석학자라는 직함도, 심리상담을 위한 카우치를 물리적으로 마련해두지 않았어도 그녀의 에세이를 읽는 독자라면, 마치 부드러운 카우치에 누워 정신분석을 받는 기분이 들 것이다.*

<천 개의 공감>에는 독자 편지 형식으로 김형경 작가에게 보내온 다양한 사연을 소개하고, 작가가 이에 따뜻하나 도움이 되도록 적실한 말들을 붙인다. 우선 들어주고, 상대의 입장에서 공감하며 상대를 상상하고, 치우치지 않게 진단하되 재단하지 않는다. 진단으로 끝내지 않고,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하는데 예를 들어, 부모님과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해소하지도 못한 채 성인기가 되어 방황하는 성인에게는 '자기 안의 아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라 충고한다. 분노는 독과 같다며 분노의 대상을 향한 편지를 1차, 2차, 3차 거듭 써내려가면서 감정의 변화 추이를 응시해보라는 충고도 굉장히 마음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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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개의 공감>이 차가운 분석이나, 김형경 작가의 지적 현란함을 과시하는 에세이였다면 이렇게 여운이 남지 않았을 듯 하다. 작가는 신화학자 조셉 켐벨의 "Bliss"란 개념을 언급하면서, 성인기 특히 중년기에 이른 사람들에게 "Follow the Bliss"를 실천해보라고 권한다. 차갑고 기계적으로 느껴졌던 정신분석이 언어화하기 이전의 신비한 영역과 조우하는 대목이었다. 나라는 존재가 이 땅에 온 이유, 내가 하고 싶었던 본연의 것들에 대해 과도히 현실적일 필요는 없을 듯 하다. 몽상가라는 놀림을 받을 지언정, 어느 정도는 그 천복(Bliss)라는 것을 믿고 따르고 싶다. 내 안에 두려움을 직시하게 해준 <천개의 공감>, '이상화된 자아'와 '현실의 자아가 떨치고자 하는 불안감과 조바심' 사이에서 쪼그라드는 사람들에게 함께 읽기를 권한다. 김형경 작가는 포옹과 사랑, 공감을 해법으로 제시하니, 우선 자기 자신부터 포옹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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