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에게 높새바람 35
오시은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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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에게 

오시은 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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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은 작가에게 미안해지는 동시에 감탄하였다. <내가 너에게>의 마지막에 실린 '작가의 말'을 읽고 난 후.'아이들 책이려니......'하며 별 기대 없이 집어 들었다가, 내 안의 작은 분노와 의협심(?), 혼란스러움 등이 뒤범벅된 불편한 마음으로 몰입해 읽은 <내가 너에게>. 수록된 단편 대부분이 어두운 내용이거나 상처입은 영혼들을 등장시켰다. 간간이 '윗집에 사는 승우는 손이 따뜻한 아이'처럼 희망의 편린도 보이고 환타지의 외양을 입긴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궁금해졌다. '도대체 오시은이라는 (젊다고 느껴지는) 작가는 산전수전 다 겪었나? 교육계에 몸담고 있어서 학교폭력, 가정폭력을 가까이서 목도했나? 아니면 본인 주변에 그런 이야기를 품은 사람이 있는가?' <내가 너에게>를 다 읽어갈 때쯤에는 거의 확신했다. 오시은 작가의 경험 세계가 그러하리라고. 그러니 이처럼 절절하게 마음을 울리면서도 구체적인 동화를 쓸 수 있었을 거라고. 하지만 틀렸다. 작가의 집필의도는 더욱 숭고했다.  

작가는 왕따를 당했다는 여중생의 죽음에 사람들의 관심이 바로 꺼지는 데 충격을 받았나 보다. 사람들이 외면하지만 그런 일은 날마다 되풀이된다는 인식을 했다 한다. 작가의 말을 그대로 빌어와 보자. "'관심을 두지 않으면 정말 사라지는 걸까?'하는. 그건 단순한 착각이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져도 한번 일어났던 일은 절대 사라지는 법이 없었다. ...(중략)....어째서 진실이 괴담의 옷을 입게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면 답은 분명해진다. 사람들이 그 진실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꾹꾹 눌러 놓은 진실은 용수철과 같아서 나중엔 더 높이 튀어 오른다.(pp. 109-110)" 그렇다. 작가는 사람들이 모르는 척 외면하는 불편한 진실을 폭로하는 고발자를 자처하였다. 그래서 "여기 실린 글들을 쓰는 일이 고달팠음을 고백 (p.111)"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너에게>에 실린 6개의 단편 중 가장 강렬하고도 작가의 주제의식과 재능을 두드러지게 드러내는 작품은 표제작인 '내가 너에게'이다. 1인칭 시점의 독백으로 전개되는 문장이 반복될수록, 화자가 망자(亡者)가 아닌가 싶었는데 그렇다. 화자는 교통사고를 당해 죽은 아이이자 왕따였다. 집단 따돌림의 가해자인 아이들의 악랄한 올가미에 걸려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49재 날, 엄마가 안고 있는 영정에 담겨 학교를 찾은 아이의 영혼은 가해자인 아이에게 말한다. "너를 겁주려던 건 아니었어. 다만 사실을 밝히고 싶은 것뿐이었어. 엄마가 진짜 이야기를 모른 채 슬퍼하는 게 싫었고, 선생님과 친구들이 나를 답답한 아이로만 기억하는 것도 싫었어. 내가 우연히 사고를 당한 것도 아니고, 일부러 죽으려 했던 건 더더욱 아니었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싶었어.(p.21)" 소름이 돋을 만큼 안타깝고도 처절했다. 오시은 작가의 글이, 억울하게 생명줄을 놓게 된 이 땅의 많은 왕따 피해자 아이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주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는, 이런 불편한 독백이 계속되지 않도록 오시은 작가는 조용히 각성을 촉구한다.

 

'내가 너에게' 외에도 '낯설고도 익숙한'이나 '숨바꼭질,' '그날의 오늘,' '문,' '헛것' 모두를 꿰뚫을 키워드는 바로 환상성이다. <내가 너에게>를 읽다 보면, 피범벅이 아니어도 불편하고 섬뜩해진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소화시켜주는 유화제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오시은 작가가 추구하는 환상성이 아닌가 싶다. 불편한 진실의 고발자, 즉 글로 하는 사회운동가로서 <내가 너에게>를 집필하면서 심적으로 힘들었을 오시은 작가가 다음번엔 좀 쉴 수 있도록 가벼운 작품으로 롤러코스터를 타고 독자를 찾아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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