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질문들
김경민 지음 / 을유문화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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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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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찌질한 위인전>을 위시하여, 유명 인물들을 맛깔나게 버무려놓은 책들이 많이 나온 줄로 안다. <세상을 바꾼 질문들> 역시 그처럼 가볍게 넘길 책인가 싶어 집어 들었는데, 생소한 베살리우스니 울스턴크래프트뿐 아니라 평소 더 알고 싶었던 이름들이 함께 올라 있다. 하인리히 슐리만, 프란츠 파농, 에드워드 사이드 등 소개된 인물의 전공과 저자 김경민의 전공분야가 겹친다. 그는 연세대학교에서 서양사를 전공하면서 『제국주의와 고고학: 19세기 영국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썼고, <네이버캐스트>의 '인물과 역사'에 글을 연재하던  재원이다. 스스로 말하길 "학계에 몸담고 있는 학생으로 '전공자들'을 위한 글만 썼던" 그에게 네이버캐스트에 연재하기는 참신한 도전이었다.

 독자로서 고마워할 일인데, 을유문화사의 편집자가 김경민의 글재주, 정확히는 독특한 관점을 알아보았나보다. 편집자는 "(그 유명한) 인물이 왜 그런 생각을 하였을까?" 즉 세상을 바꾼 '생각의 단초'를 집중적으로 탐색해보자고 제안했다. 김경민은 그 기획의도에 부응해 무려 열다섯 명의 인물을 소개한다. 저자는 전공자가 아닌 독자들도 "세상을 아름답고 윤택하게 만든 인물들에 대해 빠르고 쉽게" 접하도록 글을 썼다한다. 성공이다. 충분히 흥미롭고, 기대 이상으로 자극적이다. 책을 덮고나서도 <세상을 바꾼 질문들>에 소개된 인물들이 머릿 속을 파고 들며 생각을 가다듬어 보라고 자극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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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바꾼 질문들>에 소개된 열다섯 명은 연대기 순으로 배열된 듯 하다. 르네상스기 비운의 천재라는 베살리우스를 필두로 마키아벨리, 로베스피에르, 메리 울스턴트래프트, 베토벤, 찰스 다윈, 슐리만, 던컨, 샤넬, 애거사 크리스티, 파농, 마거릿 미드, 에드워드 사이드, 크레이그 벤터, 그리고 일론 머스크의 순서이다. 국적, 활동하던 시기나 활동 분야 등에서 공통분모를 찾기 어려우나 이들은 도전정신에 충만하고 행동력이 따라준 혁신가였다는 점에서는 한 우산을 나눠 쓸 수 있겠다. 추리소설, 현대무용, 고고학, 음악, 인류학, 역사학, 문화비평, 해부학, 유전공학, 정치학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며 인물을 선정한 저자의 매의 눈에 감탄한다. 그래도 굳이 딴지를 걸자면, 동양 출신의 인물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 동양에도 세상을 바꾼 생각의 단초를 보인 이들이 많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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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 공부하며 박사 논문 쓰느라 바빠 무용이나 고전 음악, 해부학까지 탐색할 여력이 많지 않았을텐데 김경민이 쓴 글을 보면, 해당 분야의 문외한이 썼다고는 짐작이 안 갈 정도로 인물의 핵심을 짚어 파고들어갔다는 인상이다. 책을 관통하는 핵심 화두인 '생각의 단초'를 놓치지 않았기에, <세상을 바꾼 질문들>을 다 읽고 나서도 개개의 인물들에 얽힌 에피소드보다는 굵은 흐름이 남는다. 어떤 이들은 개인의 영달을 위해 고민하고 달려나가지만, 어떤 이들은 왜 자신의 고민을 해결할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세상에 도움을 줄까? 주위 시선이나 편견에 굴하지 않고 내면의 소리를 끝까지 따를 수 있었던 그들은 어떤 정신력을 가졌을까? 대한민국 땅에서도 혁신적인 질문을 던지고, 과감히 행동하는 천재가 나올 수 있을까? 어떤 풍토여야 그런 인물이 나올까? 등의 질문이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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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열 다섯 명의 인물 중 애거사 크리스티, 더 정확히는 그녀의 첫 남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나 매력적인 미남을 남편으로 두고 행복한 가정을 유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와중에 머릿 속으로는 온갖 살인법과 범죄자 캐릭터를 구상했을 그녀를 상상하니 묘하게도 소름이 돋는다. 그 외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라는 역작에서 흑인의 정체성을 고민한 프란츠 파농이 활자에 묻히지 않고 실제 해방운동가로서 뜨겁게 살았고 에드워드 사이드 역시 이스라엘 초소에 돌을 던졌다는 일화는 실천적 지식인상을 고민하게 해준다. <세상을 바꾼 질문들>을 읽고나면, 고민하되 아집에 갇히지 않고 세상을 움직일 큰 고민으로 나아갔던 인물들 뒤편으로, 마찬가지의 고민을 하는 저자 김경민의 모습이 보인다. 앞으로도, 역사 전문가로서 역사 문외한을 위해 이런 유익한 책을 많이 써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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