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푸어 - 항상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을 위한 일 가사 휴식 균형 잡기
브리짓 슐트 지음, 안진이 옮김 / 더퀘스트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타임 푸어Time Poor

 

 


 

20150707_192143.jpg


 

종종 경험하지만, 선입견이 참 무섭다. 봄철 메이크업에나 쓰일듯한 살구빛 표지에 하이힐을 신은 엄마가 아이를 들쳐매고 달려나가는 표지. '항상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을 위한 일 * 가사 *  휴식 균형잡기"라는 부제를 보고 워킹 우먼의 고해성사 겸 자기계발서라고 짐작했다. 오판이었다. 더군다나 <타임 푸어>를 읽지 않았더라면 '오호라! 통재여'할뻔 했다. 그 정도로 저널리즘 정신이 투철한 기자 출신 저자는 숱한 인터뷰와 현장취재로 얻은 자료에,  B급 학자들이라면 명함을 감추고 싶어질만큼 맹렬하게 학문적 자료를 탐독하고 분석하여 유려한 문체로 엮어내었다.  표지만 보고 '일과 가정 사이에서 애매한 살구빛을 취하는 엄마들'이나 읽는 책이라고 생각했다면, 큰 손해다. 무조건 읽어라. 며칠이 걸리더라도, 종횡무진 배치된 자료의 방대함에 압도될지라도 무조건 읽어라. 특히 저출산 대한민국 사회에서 엄청난 세금을 써가며 출산장려정책을 고심하는 정책입안자들이여, <타임 푸어>를 꼭 읽어보라!

*

<타임 푸어>의 첫 몇 페이지를 읽을 때만 해도, 저자 브리짓 솔트과 나와 비슷한 부류라고 생각했다. 멀티 테스킹을 일상화하고, 맺고 끊어가며 일하기 보다 뭉뚱그려 해결하기를 선호하는 습성이 나랑 비슷했으니까. 실제 그녀는 퍼듀 대학의 조직심리학자인 엘렌 에른스트 코섹 박사가 "'퓨전 애호가 (fusion lover)'라고 부르는 극단적 통합(ubentegrator)'유형 (408쪽)"이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으니! 바로 10시간 넘도록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한 가지 일에 몰입할 수 있는 뚝심에 더해, 집필을 위해 과감하게 집을 떠나오는 결단이다. 쉽게 말해, 우선 순위의 일에 에너지와 시간을 집중 투자하는 분배력 말이다. 브리짓 솔트에게 불도저 같은 행동력이 없었더라면 이 놀라운 책은 독자를 만나지 못하고, 그녀의 머릿 속에서만 그물을 치고 있었을 것이다.

*

<타임 푸어>의 전반부에서는 '바쁨'의 사회문화적 맥락을 짚어본다. 톨스타인 베블렌이 <유한 계급론(Leisure Class)>에서 유한계급이 '과시적인 한가로움'과 '대행적 한가로움'을 통해 신분을 어떻게 드러내는지를 분석했다면, 최근의 연구에서는 사람들이 바쁨의 과시를 통해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고 높인다고 한다. '시간=돈=자원'인 사회에서 사람들은 의식, 무의식적으로 바쁨을 과시할 뿐더러, "저절로 바빠졌다"는 수사를 채택한다고 한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일해도 불행한 사회, 주인이 아닌 노예의 삶으로 이어지지만.

*

브리짓 솔트의 주장에서 가장 경청할 부분은 바로  "쫓기는 삶(overwhelm) (40쪽)"이 개개인이 시간관리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해결할 구조적인 문제는 지적이다. 우리는 "바쁘다, 바뻐"를 연발하면서도 정작 삶의 완성도와 만족도가 떨어진다고 호소하면, '시간관리능력의 부재'나 '무소유와 반대로 가는 과잉욕망'을 탓하는 개인 비난의 논리에 익숙해있다. 즉, 개인이 욕심을 버리거나 시간관리를 잘하면 해결되리라고 문제를 간과해버린다. 하지만, 브리짓 솔트는 '쫓기는 삶'을 보다 구조적인 차원에서 접근한다.

 '이상적 노동자'라는 문화적 이상향(ideal type)에의 환상을 양산하고 강요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미친 리듬을 비판한다. 동시에 이러한 압박은 특히 여성에게 불리하다며, 젠더의 요소를 가미해 분석한다.  본인 스스로가 두 아이를 키우는 커리어우먼으로서 '이상적 모성(ideal motherhood)'과 이상적 노동자 사이에서 괴로웠던 체험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며, 특히  "여성의 시간은 오염(262쪽)"되기 쉽다는 지적을 한다. 오염되고 분절된 시간감각으로는 칙센트미하이가 말하는 몰입(flow)을 경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저자는 여성 스스로 '죄책감, 두려움, 양가감정'이라는 자기 비난을 그만두고 시간 효능감을 높이도록 전략을 세우라고 한다. 그 과정에서 놀이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직접 체험해보는 등, 브리짓 솔트는 독자에게 최선의 대안을 보여주기 위해 말그대로 고군분투하며 최선을 다한다.

*


<타임 푸어>를 읽다보면 불도저같이 행동으로 몰아붙이는 그녀의 기질을 느낄 수 있는데, 그녀는 "나는 왜 항상 시간이 부족할까?"의 질문에 답하며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질문을 바로 바로 해결한다. 아니 적어도 바로 바로 그 질문을 답할 최적격의 권위자와 전문가를 직접 만난다. 놀라운 열정과 행동력이 아닐 수 없다. 덕분에 독자는 '시간의 아버지'란 별명을 가진 사회학자 존 로빈슨,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팻 뷰캐넌, 국방성 차관이었던 미셀 플루노이, 인류학자이자 세 아이의 엄마인 사라 블래퍼 하디 등 많은 저명인들의 인터뷰를 읽을 수 있다. 아울러 저자는 실제 '균형잡힌 삶'이 가능한지를 모색하면서 많은 기업인, 사회운동가 및 보통의 엄마아빠들을 직접 만나고 비단 하루뿐이라도 그들의 삶을 체험해본다. 웬만한 열정과 완벽주의가 아니고서는 이루기 어려운 성취라고 생각한다.

*

여름 휴가 때, 자기계발서 여러권 대신 <타임 푸어> 한 권을 가방에 넣어가 탐독하라! 나 역시 브리짓 솔트의 신참 팬으로서 그렇게하려한다! 그녀의 카피캣은 아니더라도, 닮고 싶고 배우고 싶다.

20150707_192212.jpg


 

20150707_192234.jpg

 

<타임 푸어>는 각주만 70페이지에 이른다. 저자 브리짓 슐트가 여성학, 사회학, 진화 생물학, 심리학 등 다방면의 학술서는 물론이요 방대한 양의 저널과 신문 기사 등을 참조했음을 알 수 있다. '참조'만이 아니라 완전히 브리짓 슐트의 브뤼꼴리쥬 작업을 통해 방대한 자료의 옷감이 새로운 수공예맞춤옷으로 탄생했다. 저자에게 경의를!
 

20150707_192245.jpg

 

*

출산 후, 육아와 전문번역가로서의 일을 병행하며 시간에 압도당해 살아왔다는 안진이의 번역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다만 303쪽에서 Kung이라는 여성을 언급했는데, 혹시 !kung족의 오역인지, 아니라면 !kung족 일원으로서 Kung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인지 궁금하다. !Kung족의 경우 지을 수 있는 이름의 풀이 남 녀 성별에 따라 제한된 편인데, 아직 kung이라는 이름의 일원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역자에게 묻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