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섹시한 동물이 살아남는다 - 성의 기원을 밝히는 발칙한 진화 이야기
존 롱 지음, 양병찬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가장 섹시한 동물이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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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현의 길고 매끄러운 허리선을 연상시키는 표범의 유선형 몸체. 강렬한 핑크빛 띠지에는 "처음에는 낯을 붉히다가 이내 즐기게 될 것이다!"라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문구가 적혀 있다. 게다가 <가장 섹시한 동물이 살아남는다>라는 제목이라니! 제러드 다이어몬드(Jared Diamond)가 강력히 추천한 책이라니 당장  덥석 집어 읽고 싶어진다. 일반인에게는 생소하겠지만 고생물학계에서는 유명 스타인 존 롱 박사(John A. Long, 1957~) 가 2011년에 출간한 이 책의 원제는 이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동물의 성을 탐색하는 제목에 웬 오리가 등장하냐고? 아르헨티나 오리 중에는 몸길이에 버금가는 38cm의 생식기를 가진 개체도 있다 한다. 그렇다고 <가장 섹시한 동물이 살아남는다>가 영장류나 오리의 성생활에 관한 과학책이라고 생각하면 오산. 이 책의 저자인 존 롱 박사는 인류니 포유류를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 고생대의 어류에 집중하여 그 누구도 선보일 수 없었던 과학적 상상력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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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 "Research Medal of the Royal Society of Victoria (Earth Sciences 분야)"를 수여받는 명예를 안았던 존 롱 박사는 자신의 과학적 발견과 업적을 동료 학자들만 알고 있는 것이 못내 아쉬웠나 보다. <가장 섹시한 동물이 살아남는다>를 통해서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자신의 연구 주제-성의 진화사와 섹슈얼리티- 와 연구 과정에서의 뒷담화까지 소개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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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전반부(1-7장)에서는 주로 존 롱 박사가 실험실에서 '유레카(Eureka)'를 외치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담아냈다.  후반부(8-12장)에서는 보다 본격적으로 화석자료를 토대로 고생물의 생식기 구조 및 성행위에 대한 가설을 제시한다. 마지막에 해당하는 13장과 14장에서는 <정자전쟁(Sperm Wars)(1997)가 촉발한 논쟁을 중심으로 정자 간 경쟁이론과 진화발생생물학(약칭 evo-devo)에서의 성의 진화사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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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롱 박사를 실험실 밖, 구글(google)에서까지 유명하게 만들어준 것은 사실 그의 연구 업적 자체보다도 대중과 소통하는 그의 능력 때문일지도 모른다. 실제 그는 고국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저술활동이나 강연을 통해 고생물학을 대중에게 흥미롭게 전달하는 전달자(key science communicator)로서도 뛰어나다. <가장 섹시한 동물이 살아남는다> 역시 그의 이런 재능을 드러내주는 책으로서, 그는 무려 3억 8000만 년 만에 세상 나들이를 한 ‘틱토돈티드’의 화석에서 탯줄을 찾아낸다. 그와 동료의 과학적 상상력은 더욱 나아가 그는 틱토돈티드을 '모든 현생 어류의 어머니'라 하며 그 화석을 바탕으로 틱토돈티드의 성행위를 담은 영상물을 제작해서 영국 여왕 앞에서 상영하기에 이른다. 물론 그의 유레카적 발견은 이미 논문화되어 네이처(Nature) 지에 실렸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과학자로서의 존롱은 솔직하게 연구비와 명예에 대한 욕심을 드러낸다. "연구가 자동차라면 연구비는 기름이다. 기름 없이 굴러가는 차는 없다. (67쪽)"며 논문발표전까지 철저한 보안을 유지한다든지, 고생대동물의 성생활 에니메이션 제작이라는 센세이셔널한 퍼포먼스를 벌인다든지 하는 그는 차라리 솔직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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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롱은 고생대 물고기의 성생활에서 나아가, 독자들에게 친숙한 보노보 원숭이, 오리, 멍게, 상어, 펭귄, 개와 고양이 등 다양한 동물을 예로 들어 동물의 섹슈얼리티를 탐색한다.  짝짓기가 끝나면 자신의 생식기를 잘라버리는 따개비, 동성 펭귄을 사랑해서 동화책 주인공이 되기도 한 게이 펭귄 커플, 펠라티오와 유사한 행위를 하는 염소, 심지어는 '며느리도 알 수 없는' 공룡들의 성생활에 대한 가설을 소개하니 대중의 호기심이 자극받지 않을 수가 없다. 결국 그가 수억 년에 이르는 성의 진화사를 재구성하면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책 제목처럼 <가장 섹시한 동물이 살아 남는다>가 아니었을까? 단, '섹시'라든지 '성적 즐거움' '유희로서의 성'이란 개념은 인간 중심적인 것으로서 고생물이나 여타 동물에게 무차별 적용하는 데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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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으로 독자로서 이 책의 역자 양병찬에게 그 해박한 과학 지식과 매끄러운 번역에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과 포항공대 바이오통신원으로 의학및 생명과학 기사를 실시간으로 번역 소개하는 그의 번역실력이 아니었더라면 은 한국의 독자들을 찾기 어려웠으리라. 전문 과학용어는 출판사 측에서 각주로 해설해 주어, 고생물학 문외한의 독자가 친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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