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를 탄 엄마 느림보 그림책 50
서선연 글, 오승민 그림 / 느림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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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선연 글 * 오승민 그림
호랑이를 탄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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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를 탄 엄마>? 그 무섭디 무서운 '천하의 호랑이'에 올라탔단 말인가요? 그림책 표지 속 엄마의 치켜뜬 눈과 기묘하게 굴곡진 몸짓을 보니 호랑이를 잡고도 남게 무서워 보입니다. 제목이 호기심을 자아내는 <호랑이를 탄 엄마>는 참으로 적나라한 그림책입니다. 판타지를 표방했지만 지독히도 현실적인 묘사에 공감하다 못해 서글퍼지기까지 합니다.

대통령 선거 때 '아이 키우기 좋은 대한민국' 공약폭격과 막대한 세금을 쏟아붓고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초저출산 국가로서의 위기감을 안고 있습니다. 애 키우기 녹록하지 않습니다. 한국처럼 대학진학률이 높고 고학력 엄마들이 많은 나라에서, 엄마이자 커리어 우먼으로서의 줄타기는 거의 신기에 가까운 재주를 요구합니다. 현실이 팍팍하거든요. '어린이집은 쉬지 않습니다'라는 공익광고 문구를 비웃기라도 하듯, 연말과 봄, 여름, 겨울 초등학생 방학 시즌이면 어린이집에서 공문을 보내옵니다. "대청소 기간이오니, 이 기간에 '부득이'하게 보육을 원하시는 부모님은 미리 원에 연락을 바랍니다." 내 아이가 받을 불이익이 상상되는 데 어찌 '부득이'하게 시설에 아이를 보낼 수 있을까요? 꿀꺽 울분의 침을 삼키고 여기 저기 육아품앗이 손을 벌리러 다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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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를 탄 엄마>에는 이런 팍팍한 현실에서 전투를 벌이는 엄마가 등장합니다. 세련된 단발에 진주 목걸이와 빨간 하이힐, 몸에 피트되는 정장을 입었지만 왠지 우아하기보다는 초조해보입니다. 2004년 국제 노마콩쿠르 수상작가인 오승민은 파스텔로서 엄마의 퇴근길을 강렬한 환타지로 그려내었습니다. 도시의 불빛이 흐르는 늦은 저녁, 어서 퇴근해 집에 가고 싶은 엄마의 모습을 빌딩 숲의 짙은 색감이 삼켜버릴것만 같습니다. 도심 한복판에서 엄마는 호랑이와 맞닥뜨렸습니다. 떡 달라는 호랑이에게 서류뭉치를 냅다 던져주는 엄마, 호랑이는 서류에서 고약한 냄새가 난다며 줄행랑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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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려 종종걸음치는 엄마에게 다시 호랑이가 그르렁거리며 달려듭니다. "할멈"이라 부르며, 팥죽 달라는 호랑이에게 엄마는 '버럭'거립니다. "아줌마라고 불러도 돌아볼까 말까 한데, 날더러 할머니라고?"하는 그 대사가 참 서글프네요. 엄마노릇은 여성으로서의 매력, 섹슈얼리티를 퇴색하게 만드는 것인가요? 그런 대립의 사고가 참으로 안타깝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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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먹겠다고 달려드는 호랑이에게 엄마는 진주 목걸이 지뢰를 선물합니다. 발라당 넘어지는 호랑이를 뒤로하고 달아나다가 이번에는 엄마가 맨홀에 쑥 빠집니다. 빨간 하이힐 한 짝도 떨어졌고요. 잡아먹겠다고 달려드는 호랑이에게 "바빠서 점심도 못 먹었다"고 하소연하는 엄마.  고단한 직장에서의 하루가 엄마 뱃속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로 상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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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했던 엄마의 단발머리는 헝클어지고, 신발은 없어지고, 치맛단은 너덜너덜하게 뜯기고......과연 엄마는 오늘 밤 안에 집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다행히도 어리숙한 호랑이는 엄마를 '곶감'으로 단단히 오해했습니다. "그래, 내가 곶감이다! ......감히 네가 나를 가로막아?"하며 호랑이에게 달려드는 엄마는 온갖 '갑질'에 시달리고 시달려 독기만 남은 가련한 사회인같아요. 여자, 그냥 여자가 아니라 소위 "애 딸린 여자"가 커리어우먼으로 살아 남으려면 평범해서는 안 되고 '독해야'한다는 선입견을 강화해주는 설정이자 현실의 그림자일지도 모르겠네요. 씁슬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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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신만고 끝에 집에 돌아온 엄마, 엄마를 맞아 품에 달려든는 오누이는 호랑이 옷과 호랑이 머리띠를 하고 있네요. 종일 회사일과 사회생활에 시달리다 집에 들어온 엄마에게는 '사랑을 쏟아주어야 할' 자식들마저 부담으로 다가오나 봅니다. 피곤한 와중에도 엄마는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시네요. 하늘에서 내려오는 동아줄에는 잃어버렸떤 엄마의 하이힐 한 짝이 묶여 있습니다. "엄마, 얘네들은 엄마가 자서 자기들끼리 책봐."하면서 5세 꼬마가 코멘트를 하네요. 잠들어버린 엄마의 양팔에서 오누이가 깨어 있습니다. 엄마는 내일도 고된 호랑이밭으로 나가야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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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선연 작가는 <호랑이를 탄 엄마>의 본문에서 직접화법으로 호랑이의 정체를 밝힙니다. 바로 "천방지축 신입사원, 소리만 지르는 사장님, 부장님, 서류 보고 오만상 찌푸리는 팀장"님....그렇게 호랑이에게 시달리는 엄마가, 시나브로 호랑이로 변해가는 것은 아닌가 씁쓸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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