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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가는 미술관 - 기억이 머무는 열두 개의 집
박현정 지음 / 한권의책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혼자 가는 미술관
<혼자 가는 미술관>의 저자 박현정은 "지극히 사적인, 그래서
누구에게는 오해에 불과한 하나의 이해들을" "객관성과 보편성을 찾아주는 논문보다 스스로에게 진실을 이야기한다는 체념 아래" 풀어
놓았다. 아마, 학문
공동체의 승인을 받아내기 위한 논문형식의 글쓰기에 매달려오다 보니, 숨통을 트여줄 개성체의 글에 갈증을 느꼈으리라. "미술관에 혼자 간 적이
있습니까?"라는 출판사 홍보 문구에서 느껴지는 여유로움, 고독한 자유로움이 12편의 에세이에 배어 있다.
혼자서도 얼마든 뷔페 차릴 수 있다는 듯,
박현정은 12편마다 다양한 문체로 각기 다른 풍미와 식감을 낸다. 기본 양념으로는,
오랜 세월 구도하듯 그림을 공부해온 미술사학자의 특유의 고독한 섬세함을 버무려 놓았지만......2012년부터 2013년까지 쓴 12편의 글에는
저자가 덕수궁미술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아예 하룻밤을 무단탐험했던 1999년의 기억이며, 대학원 시절 셋방 구하다가 '어수선하고 무질서함의
최고봉, 여자들의 방'을 보고 아찔해졌던 이야기, 어린시절 어머니께서 곱게 차려 입으시고 미술학원으로 나서던 때의 애잔함도 담겨있다. 마치
일기인양, 편하게 쓴 웹로그인양, 세피아톤으로 쓰인 회상의 문체가 읽기에도
편안하다.
읽다 보면 "혼자 가는"은 물리적으로 '동행 없이 미술관을 찾았다'는 의미 외에도, 혼자만의 기억의 방을
더듬는다는 이중적 의미로 다가온다. 짐작하건대 내성적이고 감수성이 예민한 성격의 저자는, 1700여 년 전에 만든 '닭 모양 토기'에서 어려서
키웠던 노란 병아리를 떠올린다. 아울러 자비 정신으로 그 병아리를 돌봐주신 불교신자 할머니도 추억한다. '불사의 약'을 만들겠다는 미션
임파서블의 포부를 밝히는 동생 앞에서 가족들이 어떻게 은밀한 공모자가 되었는지의 기억, 고문이 인간사의 '당연지사'임을 알고는 인간 잔혹성에
대한 분노가 놀라움으로 옮겨왔다는 고백 등, 다양한 추억과 정서가 <혼자 가는 미술관>의 서랍을 열 때마다 빼꼼 고개를 내민다.
연결고리를 생략한 채
기억의 파편만 얼기 설기 엮어 놓았다면, <혼자 가는
미술관>에 이처럼 빨려 들지 못 했을 것이다. 사학, 그중에서도 미술사를 전공한 학자답게 그녀는 기억의 편린에 미술사적
해독력을 입혀 보기 좋게 내놓았다. 게다가 낮은 목소리,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를 시공을 초월하여 듣고 통역해주는 능력이 탁월하다. 박현정의 이
산문집이 아니었던들, 서용선의 '단종 연작'에 대해서도 '사육신'에 대해서도 깊이 들어볼 수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 장을 "온 세계 사람들이 우리가 겪은 일을 다 알았으면 좋겠어"라는 부제와
함께 나눔의 집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보여준 점도 좋았다. 미술관 기행의 에세이가 독백이 아닌, 광장으로 나와서 소통을 호소하는 지점이기에.
'기억이 머무는 열두 개의 집'인 <혼자 가는 미술관>을 읽으며 자신의 기억이 어디까지 거슬러 올러가고 흐르고 또 박현정의 기억과
조우하여 다른 물길을 트는지 경험해보기 좋은 계절이다.
"나눔의
집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소장 작품들을 <혼자 가는 미술관>의 본문에서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