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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철든 날 ㅣ 사계절 중학년문고 31
이수경 지음, 정가애 그림 / 사계절 / 2014년 6월
평점 :
<갑자기 철든
날>을 읽기 전에 "'철든'이 무슨 뜻?"이냐며 제목부터 궁금해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조숙한 요즘
아이들은 "철 좀 들어라"라는 애정어린 훈계를 들어볼 일이 별로 없구나하는. 동시에 '철들다'는 어른이 되어서도 해독하기 어려운 심오한
말이구나싶었지요. 이수경 시인은 어렸을 적 뒷집 소금 독 깨 먹고도 "난 절대로 철 안 들 거야!"했다가 엄마께 혼났다죠? 시인의 할머니께서
"갑자기 철들면 죽는다"고 하셔서 어린 나이의 시인은 무서웠나봅니다. 시인이 열한 살 때, 시인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대요. 오남매의
장녀였기에 시인은 어려서부터 "어쩔 수 없이 철들어야" 했고, 그런 척 해왔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외가가 있는 서울에서 살게 된 시인은
마음 속 깊이 고향 지리산을 품고 살았대요. 시인의 시적인 표현을 빌자면, "사시사철 다른 노래를 불러주는 지리산을 품고 사는 동안 나도 모르게 진짜 철이
들어나보다."라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시인의 동시집 <갑자기 철든 날>은 '철든 봄,' '철든 여름,' '철든 가을,'
'철든 겨울,' '철든 우리'라는 챕터 제목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사시사철 지리산의 풍경과 그 안에서의 시인의 유년기가 겹치게 구성하였지요.
읽다보면 시인이 얼마나 생생하게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지 경이로울 지경입니다. <갑자기 철든 날>에 실린 총 46편의 시 중에 시인의 경이적인
공감각 기억력을 보여주는 동시 한 편을 그대로 옮겨와 봅니다.
*
황소 한 마리 먹기
이수경 동시
상추에 쌈 얹고
된장 발라
오므리는데
으아악!
달팽이 한 마리
상추 뒤에
상추 뒤에
"씻는다고 씻었는디
눈이 어두버 안 보였나 부다."
밭에서 일하고 온 할무이
암시랑토 않게
황소 한 마리 묵는다
생각하라지만
할무이, 할아부지
그렇게 먹은 적도 많다지만
으아악!
내 눈이 커졌다.
황소 한 마리
쌈밥 위로 올라섰다.
"어쩔 수 없이
철들어야" 했던 시인에게 "철들다"는 죽음을 향해가는 삶, 다시 삶에 빛으로 내리쬐는 죽음의 순환고리를 상기시키나봅니다. <무덤에
누워서도>라는 시를 읽으며 깜짝 놀랐습니다. 채반마다 호박, 가지, 토란 등을 썰어 널은 딸 (시인의 엄마)의 부지런함에 누워만 있기
미안해지신 시인의 할머니가 "무덤가에 누운 우리 / 막새바람 불러와 / 부채질해 주시지// 할머니는 바쁘시다. 무덤에 누워서도 할 일 참
많으시다." 랍니다.
*
이 외에에도 "밥
짓던 할머니 / 먼 산을 보면 / 할아버지 생각을 하시는 거다.....(중략)...... 복닥복닥 / 함께 살던 / 젊었던 시절// 그 옛날
생각을 / 하시는 거다." (<멍한 할머니>)라든지 "할머니 살아 계실 땐 / '시끄럽다마!' / 눈 부릅뜨던 할아버지// 이젠
할머니한테/ 큰절하고// 오래오래/ 엎드려 있습니다./ 일어날 생각을 않습니다" (<벌초하는
날>)
그리움의 정서가
절절히 배어나는 <갑자기 철든 날>에 유독 아버지의 이야기는 부재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와 막둥이인 다섯째, 그리고 둘째 셋째
넷째와 장녀인 시인의 모습은 시 속에서 그려지는 데 아버지의 모습은 구체적 형상으로 와닿지 않습니다. 아마도 시인에게 너무도 그리운 절대적
부재이기에 지리산 속에 꼭꼭 숨겨두었나봅니다.
"어쩔 수 없이
철들어야" 했던 시인에게 "철들다"는 죽음을 향해가는 삶, 다시 삶에 빛으로 내리쬐는 죽음의 순환고리를 상기시키나봅니다. <무덤에
누워서도>라는 시를 읽으며 깜짝 놀랐습니다. 채반마다 호박, 가지, 토란 등을 썰어 널은 딸 (시인의 엄마)의 부지런함에 누워만 있기
미안해지신 시인의 할머니가 "무덤가에 누운 우리 / 막새바람 불러와 / 부채질해 주시지// 할머니는 바쁘시다. 무덤에 누워서도 할 일 참
많으시다." 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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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에도 "밥
짓던 할머니 / 먼 산을 보면 / 할아버지 생각을 하시는 거다.....(중략)...... 복닥복닥 / 함께 살던 / 젊었던 시절// 그 옛날
생각을 / 하시는 거다." (<멍한 할머니>)라든지 "할머니 살아 계실 땐 / '시끄럽다마!' / 눈 부릅뜨던 할아버지// 이젠
할머니한테/ 큰절하고// 오래오래/ 엎드려 있습니다./ 일어날 생각을 않습니다" (<벌초하는
날>)
그리움의 정서가
절절히 배어나는 <갑자기 철든 날>에 유독 아버지의 이야기는 부재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와 막둥이인 다섯째, 그리고 둘째 셋째
넷째와 장녀인 시인의 모습은 시 속에서 그려지는 데 아버지의 모습은 구체적 형상으로 와닿지 않습니다. 아마도 시인에게 너무도 그리운 절대적
부재이기에 지리산 속에 꼭꼭 숨겨두었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