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가장
어렵게 읽은 3장에서는 버틀러가 전복적 논의들이 지닌 한계나 논쟁 지점을 소개한다. 비판이 되는 리비어와 라캉의 저서를 읽어 보지 못했기에,
그들의 논의가 과거의 논의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해방의 이상을 설정함으로써 다른 대안을 낭만화한다는 비판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다행이도 조현준 교수의 <파리는 불타고 있다> (1990) 리뷰를 통해서 가면으로서의 여성성의 의미, '전복의 양가성 (131)'을
조금이나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4장에서도
조현준 교수는 각 장의 쟁점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보너스처럼 대중문화 속의 구체적 사례를 제시한다. 4장에서는 가브리엘 바우어 감독의
<비너스 보이즈>를 소개해준 덕분에 버틀러의 난해한 개념중, '수행성 performativity'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5장에서는 주디스 버틀러가 왜 '몸'을 다룬 유명한 여성페미니스트 크리스테바의 이론을 자가당착의 모순이라고 비판하는지를 소개한다. 아울러
현실에서의 출산과 모성이라는 문제를 (사) 한국여성연구소에서 제작한 <여성의 몸과 출산>이라는 다큐멘터리와 단편영화
<신호>를 통해 접근한다.아쉽게도 전자의 다큐멘터리는 비디오테잎 형태로만 존재한다고 해서 구매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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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쟁점으로서는
푸코와 위티그의 비판 지점을 소개한다. 위티그의 경우 레즈비언을 하나의 존재론적 이상으로 설정함으로써 "레즈비언이 남녀의 이분법에 기반한 여성을
초월하는 존재론적 위상을 차지하면서 또 다른 권력이 될 수 (p.200)" 있다고 버틀러는 비판한다. "정신부석학과 해체혼적으로 재해석된 푸코의
계승자 (29)"로서의 버틀러는 푸코의 섹슈얼리티 계보학에는 찬성한다. 다만 <에르퀼린 바르랭의 일기> 서문에서 푸코가 "에르퀼린의
쾌락을 비정체성의 행복한 중간지대로 낭만화 (179)" 한다고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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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는
패러디다>는 거듭 읽으면서 한 문단,
한 쟁점씩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재미를 주는 인문서이다. 버틀러는 "여성을 하나의 정치 주체 집단으로 범주화하려는 페미니즘의 노력에 저항하기
때문에 기존 페미니즘과 트러블을 일으(31)"켰는데 9*11 사건 이후 관심의 지평을 넓혔다. 결국 버틀러가 "모든 인간이 제도와 체계를 통해
서로 상호 의존하며 사는 비자족적 존재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비규범적인 삶을 사는 다른 이들의 생존 가능성을 높여주는 공존의 삶 (216)"을
모색한다는 것이 조현준 교수의 버틀러 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