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하는 여자 한복선 음식 시집 1
한복선 지음 / 에르디아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하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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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 좋은 5월 놀이터에서, 공원에서, 까페에서 책을 읽는다. <밥하는 여자>에 푹 빠져 읽는다. 옆자리에 사람이 앉으면 묻지도 않는 상대에게 대뜸 책 소개부터 한다. "요리 연구가 한복선 선생님 아시지요? 그분이 직접 민화그리시고 시까지 쓰셨다네요."하며서 <밥하는 여자>를 내민다. 열의 열 모두, "그래요?"하면서 놀라면서도 강렬한 호기심을 보인다. 그도 그럴것이 '한복선' 이란 이름 석자는 우리 음식문화에 조예가 깊지 않은 평범한 이들에게조차 익숙하지않은가. 중요무형문화재 '조선왕조 궁중음식 이수자'이자 요리 연구가로서......그런 그가 직접 쓴 시에 아기자기한 매력의 민화에 곁들여 내었다니,게다가 시집 제목도 자신의 정체성을 적확히 드러내는 <밥 하는 여자>라니.....호기심이 일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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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한복선 선생의 시는 4부로 묶여 구성되었다. 1부의 맛있는 멋있는 음식,’ 2유자이고 싶다,’ 3밥하는 여자,’ 4떡 옆에 장김치.’ 각 장의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밥 하는 여자>를 아우를 핵심 소재는 음식,’ 특히 우리 전통 음식이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효심사람, 생명 존중의 마음이 흐르고 있다. 그토록 어머니 황혜성(궁중음식 연구가) 교수를 뼈에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감사드리며, 그토록 자식을 아끼는 그 마음으로 평생 요리를 하였는데 어찌 한복선의 요리에 깊은 맛이 나지 않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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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편의 시, 곳곳에서 한복선은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음식을 추억한다. 그의 어머니 황혜성 교수는 양은솥에 지어 날가갈듯 고슬고슬 고두밥에 마른반찬을 좋아하셨고("밥상 예절"pp.14~5.), 여름반찬으로는 간간한 오이지를 제일 좋아하셨다 ("오이지" pp24~5.). 스마트폰으로 압축된 세상을 다섯 손가락 안에서 쥐락 피락하는 이 세상, 알아야 할 것 알아서 과시해야할 정보의 쓰나미 속에서 그 누구가 내 어머니 여름에 무슨 반찬을 제일 잘 자셨는지, 생신상엔 무엇을 꼭 올리셨는지를 그리 소중하게 기억하고 되뇌일까........한복선의 부모님을 향한 사모곡은 깊은 가야금의 소리로 시집 전체를 울린다. "매실나무(p.87)"에서는 고향집 부모님 산소 옆에서 부모님을 돌봐주는 매실나무를 그려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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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날 " 세상에 나 낳아 주심/ 내가 끓여 드려야 했는데 / 하얀 옥반과 함께("미역국" pp.64~5.)"라며 어머님께 미역국 올려드리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영계백숙 (p. 94)"에서는 "사위 아들 며느니 손주 앞앞이 한 마리/ 어머니 땀 뚝배기에 떨어진다./ 해 지면 뒤도 안 보고 우린 떠났다 / 크고 좋은 복숭아만 싣고"라며 어머니 가시고 난 후에 철없던 자식의 마음을 반성한다. 급기야 한복선은 어머니의 사랑에서 석화石花를 본다.

石花
돌의 꽃
바닷속 엄마의 젖 향 보드라운 아가의 속살
훗날 내 몸에 배어진 그리움
단단한 껍질 속 나 품고 바위에 꼭 붙어
피어난 어머니
"굴전 (p.16)"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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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침침해져서 취미로 그리던 민화가 깔끔히 마무리되지 않는다는 1949년생 한복선 선생은 자연의 섭리 노화를 감추지도 아쉬워하지도 않는다. 숨쉬듯 자연스레 긍정한다. "내 몸은 자연으로 간다........(중략)........자연으로 돌아가서 다시 태어난다 ("식" pp.12~3.). 정월 대보름의 아홉 가지 묵은 나물에서 "생것의 풋풋한 맛과 다른 깊이 ("내 더위 사" pp. 36~7.)"의 맛을 느낀다. 철들어서는 "엄마! 내 더위 사" 대신, "아이들 더위 내가 산다"했단다. 한복선 선생의 사모곡은 자식사랑 자손사랑으로 이어진다. "우리 식구가 모두 나에게 밥 달라 응석"이라며 엄마로서, 아내로서, 할머니로서 행복한 엄살을 하는 한복선은 "난 집에서 요리 선생이 아닌 /우리집 식순이 영원한 주방장( "뚝배기 된장찌개 " (p. 114) 이라며 또 행복해한다. 다 퍼주고 나누어주어도 아깝지 않다는 인자한 모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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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하는 여자>는 대한민국 한 여성의 자전적 일기로서도, 조상의 얼을 음식에서 찾고 전승하려 고군분투하려는 장인의 기록으로도, 사모곡과 사랑의 마음을 음식으로 변주한 독특한 시화집으로도 읽힌다. 이 볕좋은 5월에 꼭 야외에서 읽기를 권하고 싶은 아름다운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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