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
석영중 지음 / 예담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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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고등학교 시절 좌우명을 묻는 질문마다, "인간은 맹세나 약속을 해서는 안된다."라고 적어냈던 것 같다. 어린 나이의 지적 허영이었을 게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읽었다는. 어른도 읽어내기 힘든 전문 번역의 두꺼운 러시아 고전을 어린나이에 얼마나 이해했으랴. "인간은 맹세나 약속을 해서는 안된다."는 문구는 16세의 유치함에 걸맞게 자기화한 해석 속에서 아마도 중간기말고사 시험을 위해 여러 지키지 못할 계획을 세워서는 안된다는 좁은 의미로 내려왔을 것이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읽었다. 톨스토이, 체호프의 단편들, 솔제니친, 고골, 푸슈킨에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학교 내신 성적을 포기해가며 열심히 섭렵했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읽어서인지 그 중 반쯤은 줄거리만 기억날 뿐, 주제나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채 지나버렸다.
석영중 교수의 <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을 읽으면서, '러시아 문학의 그 진한 맛 깊은 맛 오묘한 맛을 다 놓치고 읽었구나'싶었다. 현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이자, 한국슬라브 학회 회장으로서 2000년에는 러시아 정부로부터 푸슈킨 메달도 받았다는 석영중 교수는 '물질인 동시에 물질을 초월하는 (p.5)' 무한대의 스펙트럼의 속성을 가진 음식에 대해 전공인 러시아 문학을 중심으로 글을 써보고 싶었단다. 2009년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그 소망이 <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라는 맛있는 책으로 물질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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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인다'란 문구야 말로, 러시아 문학을 '음식'을 코드로 새롭개 해독하는 석영중 교수에게 적합하지 않은가. 그는 푸슈킨에서 솔제니친에 이르는 많은 러시아의 작가들이 음식 이야기를 즐겨했고 음식을 상징과 비유로 사용하기를 즐겨했음에 주목하였다. 음식의 인류학, 음식사학과도 접점을 이루며, <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에서는 음식 코드를 중심으로 작가의 삶, 작가가 살았던 러시아의 사회 문화며 시대상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러시아 문학을 오랫동안 연구해오면서 오래전부터 쓰고 싶었던 주제였던 만큼, 그 방대한 사례와 분석의 깊이에 감탄하게 된다. 게다가 석영중 교수는 이 새로운 러시아 문학 해석을 문학비평가나 전문가들만을 위한 암호로서가 아니라, 비전공의 일반인에게도 쉽게 읽힐 수 있는 편한 에세이풍의 글로 풀어주었다.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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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 (내용상 '러시아식 가정식 백반')'이란 소제목에 끌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에 대한 석영중 교수의 재해석을 유심히 읽었다. '그토록 유명한 작품이 이토록 재미없을 수 있을까?' 이해를 못하는 답답함에 울면서 중학교 떄 읽었던 <닥터 지바고>. 석영중 교수의 멋들어진 해석으로 다시 만나니 꼭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닥터 지바고의 시혼을 지핀 것은 혁명의 거대한 물결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으로 회귀하게 해주는 따스한 가정, 자아인 집, 가정적인 매력의 아내가 차려주는 따뜻한 집밥이었던 것이다.
석영중 교수의 바램처럼 <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로서 우리의 일상과 우리의 식사를 되돌아 볼 수 있었다. 봄꽃이 다 지기 전에 따뜻한 쌍화차와 쑥찰떡을 먹으며 다시 음미해보고픈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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