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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치전 ㅣ 빛나는 우리 고전 그림책 시리즈 2
송언 글, 한병호 그림, 권순긍 자문 / 장영(황제펭귄) / 2012년 5월
평점 :
황제펭귄의 '빛나는 우리 고전' 시리즈의 첫 권이었던
<장화홍련전>......... 가벼운운 두께의 전래동화 몇 권은 읽혀보았지만 고전의 정석이라 할만한, 제법 글밥도 있는
<장화홍련전>....... 미취학생인 아이가 얼마나 소화해낼까 반신반의의 태도였다가 아이의 폭발적인 반응에 놀라서 아이 독서취향을
어른 시각에서 미리 재단하지 않겠노라고 결심했던 것이 몇달 전이다. '빛나는 우리 고전 시리즈'의 목록이 어서 길어지기를 기다리던 차에 이번에 두번째 책인
<전우치전>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반가움은 배가되었다.
"엄마 고전이 뭐야.?"
"엄마 제목에 '전'이 두번이나 들어갔어. 앞의 글자랑 뒤에 글자랑 똑같잖아."
"엄마, 이런 용 그림은 누가 그린 거야?" 아직 본격 책읽기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아이는 반가운 책을 안고는 질문공세이다. "전우치전"
4글자가 이름인 줄 알고 신기해하는 아이가 귀여워서, <홍길동전> <장화홍련전><전우치전>을 예로 들면서
'전'은 이야기를 뜻하는 옛말이라고 일러주었다. 사실 그렇게 말하는 엄마도 옛이야기의 '전'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를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없도록 앎이 짧다. 내 짧은 앎에 대한 부끄러움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며 더욱 커졌다. 송언 작가님의 탁월한 우리말 구사력과 탄탄한 문체에
반해서 그 부끄러움은 더욱 커졌다.
성균관대학교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하고 그 경쟁 치열한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작가분의 이력답게 황제펭귄의 <전우치전>은 문체가 아름답다. 예를 들어 부사
사용이 어찌나 적절하고도 맛깔나는지 아이에게 크게 복창시키라 하면서 구절구절 읽어주었다. "꺼이꺼이 울다." "닥닥 긁어모으다." "호락호락"
"슬금슬금 눈치만 보더라.". 30여년이란 긴 세월을 동화책 일러스트레이션에 헌신해 온 한병호 작가님의 묵향나는 그림과 어우러져 글의 묘미가
입에 착착 감기게 다가 왔다. 아이는 "등골이 휘어지다." "눈이 시뻘게져서 제 욕심을 채우다." "오줌 줄쭐 싸도록 혼찌검을 내주다.' 등의 표현도 궁금해
했다.
아이가 가장 궁금해 한 부분은 '도사'의 개념이었다. 왜 굳이
'마법사'라고 안 부르고 '도사'라고 부르는 거냐는 집요한 질문에 서양의 witch, wizard 개념과 사뭇 다른 도교적 철학도 바탕이 된
도사 개념을 설명해 주느라 애를 먹었다. 인생 무상, 세상사에 재미가 없어서 미련이나 욕심도 없이 백두산으로 들어가 버린 전우치의 마지막 행적을
예로 들어 '도사'의 특별함을 설명해주었으나, 아이가 중학생은 되어야 그런 정서를 이해하겠지 하였다. 그래도 <전우치전>에서
탐관오리들을 벌하고 가난한 백성들의 편이 되어 애를쓰는 전우치의 의로움과 통 큰 씀씀이, 인자하나 악인에게는 강한 대인 됨됨이는 아이가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이해했으리라. 책을 한번만 읽엇을 때는 임금님 앞에 무릎꿇고 포승줄에 묶여 있는 전우치가 "나쁜 놈이냐?"고 묻더니만, 여러번
<전우치전>을 다시 읽은 지금은 전우치 도사가 맘에 든다고 호들갑니다.
<전우치전> 을 비롯 황제펭귄의 우리고전 시리즈를 적극 권장하고 앞으로의 출간을 응원하고
싶은 이유는, 집필진들 자체가 우리문학 고전에 탁월한 식견과 친숙함을 가진 분들인지라 책 각권의 문체마다 우리말의 묘미 우리 옛 어휘의
아름다움과 옛 사람들의 정서를 잘 살려내고 있다는 점 외에도 아이가 '의로움' '충과 효' 등의 개념에 알게 모르게 친숙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책 말미에는 성균관대학교에서 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권순긍 선생님이 해설를 짧게 써주셔서 전우치라는 이야기가 가진 시대적 맥락과 의의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볼수 있다. 또한
1952년 범우사의 표지사진이 실려 있어서 고전 전우치를 읽는 감회를 새롭게 해준다.
. <전우치전>에서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이 나와서, 아이의 읽기 흐름이 자주 끊어지자,
모르는 단어 먼저 익히고 읽자는 제안을 하였다. 아이는 신이 나서 노트 3페이지에 걸쳐서 모르는 단어들을 적어 내려갔다. 엄마역시 괴발새발이지만
엄마표 우리말 사전을 함께 만들어 보았다. "귀때기"와 "귀"의 어감 차이와 본문에서 하필 "귀때기"라는 비하하는 표현을 못된 벼슬아치들에게 쓴
이유 등을 이야기해주었더니 아이는 고개를 끄덕끄덕. 이렇게 책읽으며 아이와 교감할 때가 나는 정말 행복하다.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도술이 진짜
있느냐?"는 아이의 천진함에도 행복하고...아이가 전우치처럼 약자에게 약하고 강자에게 강하면서도, 의와 인륜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진정
기원한다. 황제펭귄의 빛나는 우리고전 시리즈 덕분에 아이에게 직접 설명해주지 않아도 책을 통해 절로 인생의 중요한 가치를 익힐 수 있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