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 이야기 - 한 권으로 읽는 슬기로운 우화 50편 한 권으로 읽는 시리즈 (아이즐) 5
차보금 엮음, 이솝 원작 / 아이즐북스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이솝 이야기


어렸을 적에나 커서나 좋아하는 책을 보면, 호흡까지도 가빠질 정도로 책사랑이 지극한 저입니다. 꼬마일 때 2박 3일 하는 추석 명절, 설 명절이 행복했던 이유는 세배돈이나 떡국 때문이 아니라 좋아하던 아라비안 나이트 전권이나 삼국지 전권을 쭉 몰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부모님께 제 존재 자체를 감사드리지만, 특히 감사드리는 부모님의 은덕은 바로 많은 책을 어려서부터 접해주신 점입니다. 어떤 책을 사주셔도 저는 가슴이 뛸 정도로 행복하기만 했더랬어요. 그런데 숱한 책 중에서 친정 아버지는 유독히 제게 '이솝 이야기' '탈무드' '명심보감'을 함께 많이 읽어주시고 제 생각 나누기를 유도하셨더랬어요. 6,7세 유치원생이었던 제게 간혹 한줄씩 한문이 섞여 있는 명심보감은 곤욕이었지만, 이솝 이야기가 너무도 재미있어서 읽고 또 읽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제 아이에게 숱한 책을 사주고 읽혀오면서 정작 우화의 바이블이라 할 이솝이야기를 아직까지도 읽혀준 적이 없더라고요. 자각도 못하고 있었더랬어요. 그러다가 '아이즐 출판사'에서 이솝 우화 50편을 엮어냈다는 소식에 새삼 인식하게 된 거지요.

많은 책들을 사들이고 읽히려 노력했는데, 어떻게 이솝이야기를 놓쳤을까? 그 재미있는 이야기를? 생각해보니, 너무도 유명하고 유아들의 동화 세계에 가장 기본이라 할 이야기라 하다 보니 오히려 지나쳤나봐요. 그렇죠. 아무리 동화에 관심이 없고 이야기 기억하는 재주가 서툰 이라도 이솝이야기 몇몇은 다들 기억할 거예요. 아이즐에서 펴낸 <이솝이야기>는 많은 이솝의 우화 중에서 50편을 간추러 엮었어요. 계몽사 아동문학상 수상 경력도 있는 차보금 작가님의 글과, 무려 11분이나 되는 실력파 일러스트레이션 전문 화가분들이 힘을 합해서 책을 만들어주셨네요. 낱낱의 이야기가 비록 짧기는 하지만 50편이나 되는 이야기를 총천연색의 멋진 삽화와 싣다보니 책이 상당히 두터워요. 아이는 최근 갖게 된 책 중에 제일 두툼하고 제일 표지의 느낌이 좋다면서 잘 때도 이 두꺼운 책을 옆에 두고 잡니다.

책을 받은지 열흘이 넘었지만 사실 아이와 50편 전편을 읽지는 않았어요. 여느 책처럼 처음부터 차례차례 읽지도 않았어요. 마치 먹고 싶은 사탕을 아껴두었다 먹듯이 아이와 저는 하나씩 하나씩 이야기들을 열어보기로 했거든요. 우리가 처음 만난 이야기는 "개와 뼈다귀" 였어요. 아이가 유치원 다닌지가 벌써 2년하고도 몇 달이 되어가기에 저는 당연히 아이가 이런 유명한 이야기를 알 줄 았았는데 처음이래요. 자기 욕심때문에 굴러들어온 복을 차버린 강아지의 표정을 보며 아이가 웃어요. 정말 재미있대요. 우리는 googling해서 '개와 뼈다귀' 동영상 애니메이션도 찾아 보았어요. 그 외에도 "꽤 많은 여우", "해와 바람" 등 사랑스러운 일러스트레이션과 함께 감칠맛 나는 정갈한 차보금 님의 문장으로 많은 단편을 함께 보았어요. 아이가 큰 소리로 한 번 읽으면, 다음엔 제가 동화구연하듯 내용에 가지를 처서 들려주기도 하고 함께 동영상이나 다른 책들을 찾아보기도 하면서 재미나게 읽어나가고 있답니다. 아이는 이 두꺼운 책을 외출할 때도 가지고 다닙니다. '읽고 싶어서'라는 단순한 이유예요. 그리고 정말 이야기에 빠져서 읽네요. 왜 진작 이솝 우화를 만나게 해주지 못했지? 엄마의 생각 짧음이 반성되네요.




요새는 미취학 아동 들을 대상으로도 기능성 동화가 유행이잖아요. '기능성'이라는 말에 다소 가시가 있어 보이지만, 사실이 그래요. 6세를 위한 대입 논술 연계의 철학 동화나, 다문화 사회로 가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요구되는 '다문화주의'에 대한 개념을 키우기 위한 동화들이나 수학, 과학 전문 동화들. 기능성 동화 역시 유익하지만, 요새는 독서를 독서 자체로 대하기 보다는 소위 "독후 활동"이 대세가 되어버린 듯 해요. 책책마다 강박적일만큼 후면에 독후활동을 유도하는 온갖 아이디어의 페이지가 더 이어지지요.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생각해볼 문제" "함께 이야기 해봐요." "엄마는 아이에게 이렇게 질문해보세요." 등등 독후 활동을 유도하는 가이드가 실리기도 하고요. 그런데 아이즐 북스의 <이솝 이야기>는 그런 독후활동 페이지가 따로 없어요. 순수히 50편의 이야기만 실려 있어요. 왠지 자습서 해독을 강요받지 않고 내맘대로 자유롭게 읽을 수 있어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예요. 아이도 그렇대요. 편하대요. 아무 페이지나 펴도 새로운 이야기가 있어서 골라서 볼 수 있고, 짧아서 혼자 다 읽을 수 있고.

이 책의 두번째 강점은 무려 11명이나 되는 많은 일러스트레이션 전문 화가분들의 다양한 그림을 볼 수 있다는 거예요. 처음엔 저도 몰랐어요. 그런데 아이와 책을 읽다가 아이가 화풍이 비슷한 페이지를 신기하다는 듯이 찾아내더라고요.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책읽기의 새로운 재미를 주었어요. 어떤 화가분이 이 그림을 그렸을까? 찾아보기 활동 말예요. 이솝 이야기 덕분에 제 녹슬었던 동화구연 실력도 다시 정비 되었고, 아이와도 한층 가까와진 느낌이네요. 인생의 심오한 진리는 먼데 있는게 아니라 어린 시절 많이 접한 단순한 우화 속에 있었네요. 두꺼운 인생 지침서나 철학서가 아니라 예쁜 그림 가득한 이솝우화를 통해 삶의 소중함을 제 확인하는 제 마음도 즐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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