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추천을 받았으나, 공공도서관마다 대출 예약자 최대 인원이 꽉꽉 차있었다.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을 만나기까지 몇 주 걸렸다. 제목이, 투명 비닐백인양, 꽤 정직하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정신과 의사"가 "사람 만난" 이야기겠구나! 책날개가 소개하는 저자 나종호는 스펙이 화려하다. 서울대 심리학과와 의대 대학원 졸업, 하버드대 보건대학원을 거쳐 현재 예일대학교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교수이다. "겨울왕국" Elsa 공주님의 드레스를 입은 딸을 돌봤다는 걸 보면, 많은 나이도 아닌데 사회적 성취가 크다. 게다가 뉴욕에서 정신과 진료하려면 네이티브급 영어를 구사할 텐데, 이래저래 능력자이구나. 책 읽기 전부터 저자의 화려한 스펙에 압도당한다. 솔직히, '뉴욕의 사람 도서관' 관장급 저자를 상상했다. 하지만, 이 에세이를 다 읽고 나니, 저자 나종호 교수가 설령 관장직함을 가졌을지라도, 일반 봉사자처럼 낮은 데서 자신을 덜 드러낼 분으로 그려진다. 또한 저자가 맺은말에서 부모님을 "무조건적인 사랑과 경청을 몸소 가르쳐주"셨다고 적었던데, 충분히 수긍 간다.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은 뉴욕 벨뷰 병원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하며 만난 동료 의사, 환자, 뉴욕 사람들을 등장시키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나종호 저자의 힘겨운 뉴욕 적응기로 해석된다. "대형 병원이라는 거대한 방파제도, 내 목에 걸린 의사 자격증이라는 방패도, 예고 없이 급습하는 혐오를 막을 수 없었다."(57)고 고백하는 저자는 이 문장에서 요동치는 감정을 걸러내느라 얼마나 애썼을까? 이 외에도 부분부분, 저자가 미국 특히 뉴욕 사회에서 피부색이 희지 않은 이민자로서 무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었던 사례가 등장한다. 한국에서는 소위 엘리트 코스만 밟았고 걸맞은 대우에 익숙했을 그가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 그래서인지 이 책 내내, 저자는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 사람끼리 더 잘 공감할 수 있을까? 공통점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도 공감하는 것이 가능한가?'의 화두를 붙잡고 있는지 모르겠다.

물론, 이 책에는 자살, 중독, 트라우마, 애도 등을 키워드로 아카데미아에서 인정 받는 저자의 전문적 식견도 많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극단적 선택"이라는 낙인찍는 용어 대신 "자살"을 제안하거나, 자살예방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전문가적 견해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이 책은, 저자가 피할 수도 없이 경험했던 차별과 모멸, 혐오를 이해하고 스스로 치유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성공한 뉴욕의 전문의, 교수라는 외피를 입었으나, 미국 사회 만연한 인종차별과 혐오의 총탄이 내부를 뚫어올 때의 당혹감과 불쾌감. 그는 그것을 이겨내고 더 좋은 의사가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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