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1, 2월에 천천히 [재생산에 관하여: 낳는 문제와 페미니즘]을 읽었다. 재생산신기술과 페미니즘의 교점에서 "낳는 문제, reproduction"를 이야기한 책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포럼에서 발표된 글들을 엮은 책이다. 일상에서 이 주제로 대화를 나눠 본 적도, 난임 혹은 불임(이라고 명명된 몸의 현상)을 의학적 도움 받아서 해결하려는 분들을 만나본 적도 없다. 게다가 책에서 소개한 사례들은, 저자들의 학문적&생활 공간이 주로 서구사회인 만큼(간혹, 인도나 아시아 사례가 몇 줄씩 지나가듯 나오지만), 치우칠 수 밖에 없다. 활자 밖에서 이 주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는 갈증이 난다. 아니, 실로 경험하고 이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싶다는 공감 욕구가 올라온다. 책을 덮은 후에도 계속. 




Eva Rinaldi,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페리스 힐튼이 가쉽성 기사에 등장한다. 이번에는 동영상 유출 등 스캔들의 주인공으로서가 아니다. 그녀가 IVF로 쌍둥이 임신을 시도 중이라 한다. (상상 속의 쌍둥이) 두 명 중, 한 명에는 벌써 이름도 지어주었다고 하며, 앞으로도 서너 명 더 시험관시술로 갖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한다. 모두, 최근 그녀가 출연했던 팟캐스트 기사를 인용해  2월 11일자 중앙일보 기사에 밝힌 내용이다. 페리스 힐튼에게 비난이 쇄도했다고 한다. 아기를 갖고 낳고 싶어하는 욕구는 (많은 사람에게)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런데 왜 그녀는 비난받을까? 최근 읽은 [재생산에 관하여]와 연계점을 고민해 본다. 


  • 향후 패리스 힐튼이 공개할 수 있겠지만, 그녀가 시험관시술을 시도한 이유가 의료적 필요인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힐튼을 옹호하는 글을 쓴 에이미 클라인 기고문(아래 링크)으로 유추하건대 그렇다. "I get why people are upset about Hilton’s easy-breezy statement about using IVF for nonmedical reasons to have twins of specific genders." 즉, 차별적 용어라는 이유로 요즘에는 잘 안 쓰지만, 특정 성별의 특정한 명수의 아이를 갖겠다는 힐튼의 포부는 "디자이너 베이비 Designer baby"를 떠올리게 한다. 
  • 대놓고 말하지 않았어도 힐튼은, "원하는 대로 재생산 계획을 하고, 계획대로 얻을 수 있는" 소수자의 누림을 연상케 한다. 쌍둥이 이후에도 서너 명이라니? 그렇다면 최소 5명의 아이를 계획 중이다? "낳고 난 이후"의 돌봄은 누가 하는가? 질문이 저절로 꼬리를 물며 올라온다.  즉,  황금빛 예비엄마 미소를 띤 힐튼은 임신, 출산, 양육에서의 재생산 격차를 보여준다. 


 [The Trying Game]의 저자인 에이미 클라인은 힐튼이 성별과 아기의 명수를 특정했다 해서 비난받을 수 없다며 힐튼을 옹호한다. 자연스럽다는 이유에서이다. 다만, 힐튼이 아무리 훌륭한 의료진과 기술의 도움을 받을지언정, 시험관시술로 아기를 갖는 과정에서 정서적이고 신체적인 롤러코스터를 타며 힘들 터이기에, 미리 응원을 보낸다고 했다. 


이후, 힐튼 관련 기사를 따라가면서, 이 이야기가 미국 내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는지 지켜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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