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카드 뉴스처럼 키워드만 쏙쏙 뽑아 가독성을 높인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을 읽으니, 원전의 향기를 다시 맡아보고 싶어집니다. 서가 구석으로 밀려나있던 [국화와 칼]을 오랜만에 꺼내듭니다. 을유문화사에서 펴낸 김윤식, 오인석 교수님 번역본입니다. 예전에는 디저트용 챕터처럼 느껴졌던 12장 "어린아이는 배운다 (The Child Learns)"부터 읽습니다. 한 사회를 이해하는 데 양육법에 비중을 둔 학자는 제러드 다이아몬드뿐이 아닙니다. 원조는 마가릿 미드이며, 또 그의 스승이자 지적 동반자는 루스 베네딕트였으니까요.
[국화와 칼] 발행연도가 1946년이니 반세기를 훌쩍 지나 70여 년 전 일본의 양육법과 일본인의 심성에 관한 분석일텐데,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계속 자문하여 12장을 읽었습니다.
위 두 곡선이 일군의 미국 인류학자들이 분석한 일본인의 양육법과 미국의 양육법 차이를 잘 드러내 줄텐데요. 개인이 느끼는 자유(본문에서는 '제멋대로 구는 것"과 동의어로도 쓰인)와 자유에 대한 허용적 태도가 일본에서는 어릴수록,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커진다고 봅니다. 위 두 곡선 중 오른쪽에 해당하지요. 어려서는 엄마의 머리칼을 헝클어뜨리며 놀아도, 할머니 할아버지께 응석을 부려도 예쁨 받다가, 유년기를 거쳐 결혼적령기에는 자유허용도가 최저선에 도달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아기 때부터 조소와 배척에 대한 공포심을 심어줘서 ("너보다 아빠가 더 좋다." "얘가 너무 우니까, 아저씨가 데려다 키우실래요?" "사촌 **는 떼를 안 쓰는 데 넌 왜 그러니?) 어른이 된 후에도 그 공포감이 스스로를 극도로 규율하게 한다고 봅니다.
물론 이런 분석은 루스 베네딕트가 타로Tarot점을 보듯 가보지도 않았던 땅, 일본을 손바닥 보듯 꿰뚫어 본 것이 아닙니다. 2차세계대전이라는 큰 심연으로 인해 직접 가보기 어려운 그 지역 사람들 중 포로(이자 협력자, 혹은 일본의 입장에서는 배반자)들의 진술이나 문학작품, 신문기사 등 다양한 문헌 자료에 의거한 것이지요.
루스 베네딕트는 이런 양육법이 "일본인 인생관에 그 어떤 측면도 무시할 수가 없는 이원성 二元性을 가져다준다(302)"고 보았습니다. 이런 이원성은 긴장을 수반하게 마련인데, 이를 잘 극복하지 못한 이들은 규칙을 맹종한다거나 인격분열에 빠지기도 한다고 했죠. "기대에 부응한" 인간형들은 한 마디로, 칼날을 잘 갈아 관리하는 인간들이고요. 12장 마지막 페이지에서 [국화와 칼] 제목에 대한 해제적 성격의 문단이 등장하는 데요. "일본적인 의미에서, 칼이란 공격의 상징으로서가 아니라, 이상적이며 훌륭히 자기 행위에 책임을 지는 인간의 비유 (312)"랍니다.
예전에는 놓쳤지만 이제서야 눈에 들어오면 몇 가지 지엽적 포인트가 있는데요. 곁가지로 새는 질문이니 차차 찾아보기로 하고요, 1940년대만 하여도, 한 사회를 파악하는 데 양육법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크게 강조되지 않는 분위기였는데 루스 베네딕트가 [국화와 칼]의 한 챕터를 오롯이 할애하여 일본인의 양육법을 다뤄주었다는 자체로 고무적입니다. 고전을, 시차 두어 다시 읽어가니 분명 새롭게 얻어지는 부분이 있네요! 일본어를 안다면, 일본인은 [국화와 칼]에 대해 어떻게 피드백해왔는지 더 자세히 찾아볼 텐데 아쉽습니다!
1. 문화분석이라지만 추정이 가미된 인상기로 느껴지는 대목
* 일본의 갓난아기들이 백일 전후까지 차는 기저귀가 굉장히 무겁기 때문에 안짱다리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썰" 소개한 대목.
* 태평양 등지의 아이 이동방법인 그물망이나 보자기 활용은 아이를 수동적으로 만든다고 보았다. 반면 일본처럼 다리를 벌려 업는 방식은 기민함을 길러준다는 뉘앙스로 대조시키고 있다. (만약 이 논리대로라면, 러시아의 신생아 꽁꽁 싸매기, 한국의 신생아 속싸개로 꽁꽁 행위는 아기의 수동성을 높이는 양육법?)
2. 아이에게 뜸 뜨는 것이 새디스트적 가학 행위?
* 일본의 어린이에게 부모가 내리는 가장 큰 벌이 "뜸찔"이라고 루스 베네딕트는 소개한다. 피부위에 약쑥 분말을 놓고 태우는 행위는 고통스럽기도 고통스럽거니와, 흉터가 남기 때문이다. 화를 잘 내고 성질이 고약한 아이의 성질머리(?)를 고치기 위해 뜸질을 활용한다고 한다. 내가 직접 뜸을 떠 본 적은 없지만, 뜸뜨기는 일종의 건강증진행위로 이해해왔다. 그 주체가 아이라면, 특히나 현 시점에서의 건강뿐 아니라 수십 년 후까지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건강 증진법으로. "가장 엄한 벌"로서 "뜸질"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 하지만, "Time Out" 등의 체벌에 익숙한 서구인들의 눈에 "뜸질"은 이국적일뿐 아니라 가혹행위로 보일 수도 있겠다(하룻 밤 자며 생각해보니 생각이 좀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