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적 생활양식을 넘어서 -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대의 인간과 자연에 대한 착취
울리히 브란트.마르쿠스 비센 지음, 이신철 옮김 / 에코리브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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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학'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면서도, 정작 정치니 경제니 따로도 모르는 데 교집합, 얽힌 동심원을 어찌 알까? 그런 이유에서 도전하며 배워가는 분야가 바로 정치철학이다. [Resilient Life]를 읽고 브래드 에반스에 매료당한 지 몇 년 만에, 뉘앙스가 비슷한 책을 만나 반가웠다. 


[제국적 생활양식을 넘어서: 전지구적 자본주의 시대의 인간과 자연에 대한 착취]. 웅장한 제목이다. 원제 [Imperiale Lebensweise: Zur Ausbeutung von Mensch und Natur in Zeiten des globalen Kapitalismus] 로 알 수 있듯 독일학자, 올리히 브란트와 마르쿠스 비센이 썼다. 


"제국적 생활양식"이 무엇이길래, 왜 넘어서야 한다는 걸까? 


책 제목을 담은, 이 질문이 핵심이다. 노트 13쪽이나 메모하며 완독했는데, 정작 한줄 정의가 버겁다. 책에서는 3장에 가서야 "제국적 생활양식의 개념"이라는 챕터를 배치해 개념 안내를 한다. 첫 문장을 인용해본다. 


  • "(제국적 생활양식은) 자본주의 중심부에서의 일상생활이 본질적으로 다른 곳에서의 사회관계와 자연관계의 형성에 의해, 즉 전 지구적 척도에서 노동력과 자연 자원 및 흡수원에 대한 원리적으로 무제한적인 접근에 의해, 따라서 자신이 자기 환경에 방출하는 것보다 더 많은 특정 물질을 받아들이는 생태계에 의해 가능해지는 생활양식(68)"      




아, 사회과학에 친숙한 독자일지라도 위 정의에 한 발 물러설 수 있다. 쉽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내 수준의 소화액으로 버무려 되새김해보자. 위 정의에서 "중심부"를, 군더 프랑크(Gunder Frank)의 세계체계이론에서의 중심부와 크게 다르지 않게 이해했다. 북반부가 "중심부"에 남반부가 "다른 곳"에 해당할텐데, 남반부 내에서도 변화와 경쟁이 심화되면서 북반부와 남반구 사이 생태적, 제국적 긴장 관계가 고조된다고 한다(저자들은 중국을 여러 번 언급한다).


"제국적 생활양식"의 계보를 추적해보면 500여년 전 식민주의, 그리고 19세기의 제국주의가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뻘이다. 20세기, 21세기에는 "노동력과 자원을 상품화함으로써 확장한" 자본주의기 전지구적으로 확산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생활양식은 (내가 선택한 용어라 좀 자극적이지만) 거머리처럼 흡혈할 "외부"를 지녀야만 유지된다. 예를 들어 "(초국가적) 돌봄 채굴주의"를 통해 GS의 노동력은 GN 중상계급의 재생산에 관여하도록 유출된다.  GS의 돌봄 노동이나 자원 등을 채굴해가면서도 "제국적 생활양식"은 그 기저층에서 자행되는 파괴와 폭력을 드러내지 않는다. 방어하고 현대화시켜 가려둔다. 되레, 그것이 정상normalcy인양 무력감을 내재화시킨다. 기존의 규범적 소비 양식에 무성찰적으로 굴복하고, 체제의 불공정함에 분노하는 대신 자신보다 약한 자들(이민자, 소수자 등)에게 화살을 겨누는 것이 그것이다. 이 부분에서 [Resilient Life]의 브래드 에반스가 겹쳐 생각났다. 




최근 [Clean Meat]를 흥미롭게 읽었고, "Eco"란 녹색 라벨을 달고 온갖 가치들을 상품화하는 시도를 실눈뜨고 의심하는지라 [제국적 생활양식을 넘어서]의 8장이 특히 유용했다. 이 장에서,  "녹색자본주의"라는 위장 환경주의를 맹비난한다. 21세기 인류가 직면한 다중적 위기는 되레 전환점 삼을 기폭제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제국적 생활양식을 방어, 지속하는 전략으로써 경제의 녹색화를 내세우지만 실상은 '갈색화'일지 모른다는 의미로 나는 이해했다. 예를 들어 "재조림산업reforestation"은 마치 자연이 훼손을 보상하여 대체가능하다는 확신을 유포시키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한마디로 녹색경제를 빙자해 자연을 가치화한다는 것이다. 



Burkina Faso, Africa. Photograph credit: Gray Tappan, CC0


당연지사, "넘어서자"는 주장에는 합당한 대안이 따른다. 저자들은 "연대적 생활양식"을 제안한다. 이는 "자신의 생활양식과의 대결, 그리고 제국적 생활양식 저편의 대안적 경험에 대한 허용으로부터 성립 (206)"한다. 물론 각개전투가 아니라 동맹의 확대를 통해 가능해진다. 이를 위해서는 "생각과 행동의 용기, 일정한 낙관주의, 생산적 자기비판, 약자와 배제된 자들의 대한 공감, 협력하려는 의지 (208)"가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제도적 응축"이 된 견고한 제국적 생활양식의 틈을 벌려 해체시키기에는 다소 이상적인 썰로서의 제안이 아닌가, 뒤끝이 개운하지는 않다. 어쩌면 [제국적 생활양식을 넘어서]의 마지막 챕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정치철학책이 내게 무척 요긴함을 재확인한 계기! 읽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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